[인터뷰] 열혈강호, 완결 이후를 논하다
윤홍만 기자 (Nowl@inven.co.kr)
한국을 대표하는 무협 만화이자 올해로 연재 30주년을 맞이한 한국 최장수 만화 '열혈강호'가 완결을 앞두고 있다.
1994년 영챔프에서 연재를 시작한 '열혈강호'는 혈기 넘치던 원작자들과 마찬가지로 여러모로 튀는 작품이었다. 주인공인 한비광만 해도 당시 진중한 주인공상과는 거리가 먼 껄렁하고 경박하기 그지 없는 캐릭터였으며, 작품 전체적으로도 당시의 무협 장르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개그 코드가 많이 녹아든 가벼운 축에 속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파격적인 시도였지만, 그들의 그런 시도는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등장과 동시에 일약 최고의 인기 만화에 등극했을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으리라.
그랬던 '열혈강호'가 오랜 여정을 끝마칠 채비를 하고 있다. 내년, 최종화를 끝으로 완결을 내겠다고 한 것이다. '열혈강호' 팬들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소식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내년에는 완결을 내겠다고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완결이 주는 울림은 그전과는 사뭇 달랐다. '열혈강호'의 아버지들이라고 할 수 있는 전극진 작가와 양재현 작가 모두 이번에는 진짜라고 입을 모았다.
작품의 완결은 작가에게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게 30년이 넘도록 연재한 작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들의 청춘이 바로 그 작품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을 완결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시원할까, 아니면 아쉬움이 남을까. 완결을 앞둔 시점에서 전극진 작가와 양재현 작가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의 행보를 묻은 시간을 가졌다.
완결 앞둔 '열혈강호'를 소회하다
"지탱해 준 독자와 함께해준 모두가 있었기에 연재할 수 있었다"
Q. 만화를 연재한지 햇수로만 30년 차다. 이렇게 오래 연재할 줄 예상했는지 궁금하다.
전극진 : 사실 처음에 연재할 때만 해도 6개월 정도만 연재하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다.
양재현 : 연재하다 보면 우리가 끝내고 싶다고 해서 끝낼 수 없는 그런 시점이 올 때가 있다. 보통 그럴 때 그럼 좀 더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분량에 살을 붙이는데 '열혈강호' 역시 그런 셈이다. 처음에는, 이 배경에 이런 주인공이 등장하는 하나의 에피소드만 다룰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초대형 프로젝트가 된 상황이다. 처음부터 30년이 넘게 연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일 줄 알았으면 엄두도 못 냈을 거다.
Q. 6개월 정도만 연재할 생각이었다는 건 애초에 6개월짜리 작품이었다는 건가.
전극진 : 그런 건 아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당시에는 지금처럼 쉽게 만화를 연재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마땅치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뭔가 우리가 자유롭게 만화를 연재할 수 없는 환경이었던 만큼, 이 작품으로는 오래 연재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6개월 정도 만화를 연재하면서 우리의 실력을 보여준 다음, 빨리 다음 작품에서 진짜 우리가 하고 싶은 그런 만화를 연재하자는 생각이었다.
Q. 당시 환경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걸 의미하는 건가. 만화를 탄압하던 그런 분위기를 말하는 건가.
전극진 : 만화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연재를 막 했을 때는 지금처럼 웹툰 플랫폼이 있던 게 아니라서 만화를 유통하려면 우선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고 단행본을 내야 했다. 보통 잡지 하나당 12개의 만화를 연재했는데 잡지라고 해봐야 영챔프나 점프가 전부였다. 사실상 만화가는 많은데 24개의 만화만 잡지에 올라갈 수 있었던 만큼, 출판사가 원하는 대로 따르는 건 물론이고 다른 만화가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때는 우리도 젊어서 우리가 하고 싶은 만화를 자유롭게 연재하지 못하고 출판사가 원하는 만화를 연재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라고 좀 오만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좋아, 원하는 만화? 그려드릴게. 그런데 이건 우리 실력을 보여주려고 그리는 만화일 뿐이야. 우리 만화가 통한다는 걸 증명하면 그다음에는 우리가 원하는 만화를 그릴 거야'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열혈강호'인데, 이게 참... 인기의 맛을 보고 나니까 계속 연재하게 되더라(웃음).
양재현 : 잡지의 지면을 따낸다는 게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서 당시에 누가 우리보고 그러더라. 정말 운이 좋은 작가들이라고.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만화를 연재하고 싶은 작가가 수없이 많은데 그중 일주일에 연재할 수 있는 게 24팀밖에 안 됐으니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
Q. 원래 계획과는 달리 장기 연재를 하게 된 건데 힘들지는 않았나.
양재현 : 신기하게도 우리가 지칠 때쯤이면 뭔가 힘이 되는 이벤트가 생기더라. '열혈강호 온라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만화가 게임으로 만들어지는 등 IP가 확장되는 그런 게 만화를 연재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전극진 : 개중에는 '열혈강호' IP를 활용해 스트리트 파이터 같은 오락실 격투 게임 개발 계약도 있다. 안타깝게도 오락실 시장이 망하면서 흐지부지됐지만, '열혈강호'라는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 다양한 산업이 생겨난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할 따름이다.
양재현 :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열혈강호'를 게임화, 영상화하기 쉽다는 점 역시 IP 확장의 원동력이 된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캐릭터를 구상하고 특징을 잡을 때 이런 부분을 고려하기도 했는데 이게 게임이나 영상을 제작하는 곳에서 좋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 요즘 작가들에게 좀 아쉬운 것도 있다. 최근에도 다른 작가들과 얘기한 부분인데 IP 확장에 대한 욕심이 좀 덜한 것 같더라. 웹툰이라는 산업이 많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캐릭터성을 살림으로써 IP를 확장할 수도 있는 만큼,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욕심을 부렸으면 좋겠다.
Q. 2025년 완결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정확히 어느 정도 남은 건지 궁금하다. 한편, 스핀오프를 준비 중이라고 했는데 보통 이런 만화의 경우 주인공과 히로인의 자식이 후속작이나 스핀오프에서 활약하더라. '열혈강호'의 스핀오프는 어떤 작품일지 힌트라도 부탁한다.
전극진 : 얼마 안 남았다. 내년 상반기 완결 예정이다. 스핀오프의 경우 원작 '열혈강호'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될 것 같다. 예를 들자면 '열혈강호' 자체가 신지에서 마지막 전투를 위해 빠르게 달려오다 보니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일일이 다루지 못한 게 있다. 세외사천왕이 대표적이다. 분명 설정상으로는 존재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그 위치에 올랐는지에 대한 그런 이야기가 빠져있다.
그리고 함께하는 작가들이 있는데 작가들 사이에서 '우리는 열혈강호에서 그리지 못한 이런 이야기를 그렸으면 좋겠다'는 그런 요청들이 있어서, 그들과 협업해 그간 보여주지 못한 '열혈강호'의 이야기를 보여줄 생각이다.
Q. 만화를 떠나서 어떤 일이든 30년 동안 꾸준히 한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화를 연재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 그리고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나. 에피소드 같은 것도 알려주면 좋을 것 같다.
양재현 : 힘든 시기라고 한다면 역시 우리가 막 연재를 시작하던 그 시기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만화 시장이라는 게 그렇게 여유로운 시장이 아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엄청 힘든, 쪼들린 시장이었다. 작가들도 넉넉하게 돈벌이할 수 있는 그런 시기가 아녀서 권당 10만 부 파는 작가라면 소위 잘나가는, 행복한 작가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래도 처음부터 나름 잘나가는 작가였지만, 그것도 다른 분들과 비교했을 때 얘기다. 지금과 비교하면 여러모로 힘들었는데 그때 큰 위기가 찾아왔다. 한창때 우리나라 만화 산업이 그대로 몰락해 버렸다. 당시라고 한다면 초창기 엠게임과 함께 새로운 사업(열혈강호 온라인)을 하던 때였는데 게임은 개발 중이라지만, 만화를 연재하기 힘든 환경이었으니 고민과 유혹이 많았다.
(유혹이라면?)
알다시피 일본은 지금도 만화 대국이지 않나. 힘들게 한국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만화 대국인 일본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것인가에 대한 유혹이었다. 그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었던 게 바로 앞서 언급한 힘이 되는 이벤트들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면 게임이 나오거나 영상이 나오거나 하더라. 그러면서 주변에서 좀 더 버텨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그게 큰 계기가 됐다. 우리가 이대로 포기하고 놔버리면 우리를 믿고 함께해준 그분들에게도 큰 피해가 될 것 아닌가. 그래서 버티다 보니 지금처럼 좋은 시기를 맞이한 것 같다.
Q. 그러고 보니 꽤 많은 작가들이 일본으로 넘어간 것 같다. 당시에는 흔했던 건가.
전극진 : 씁쓸하지만, 꽤 흔한 일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바라본 한국 만화가들은 그림은 잘 그리는 원고료는 싼 외국인 노동자로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데려가서 일도 많이 한 거로 알고 있다.
양재현 :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에 대해서 불만이 컸다. 특정 작품에 대한 작가로서의 가치를 인정해줬다보기 보다는 그냥 그림 잘그리고 원고료 싸니 데려간다는 느낌이어서 답답하더라. 근데 아이러니한게 뭔지 아나. 그렇게 싸게줘도 당시 우리나라보다 2~3배는 원고료는 더 줬다는 거다. 그러니 유혹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우리한테 접근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냥 작품째로 넘어오라는 것부터 각자 따로 연락해서 넘어오라는 둥 다양했다.
Q. 권당 10만 부가 일종의 스타 작가의 기준이었던 것 같은데 '열혈강호'는 언제쯤 달성했나.
양재현 : 우리는 1권부터 10만 부를 달성했다. 자랑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는데 1화부터 엄청 인기를 끌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게 당시 연재하는 만화의 인기에 따라 순위를 매겼는데 '열혈강호'가 2위였다. 당시 1위가 붉은매 외전이었는데 출판사에서 엄청나게 밀어주는 만화였다. 출판사에서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만화가 2등을 한 셈이었다.
근데 처음에는 그걸 알려주지 않아서 우리도 우리가 잘나가는지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인가 한 달에 한 번 표지를 그리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다른 만화도 많은데 왜 우리한테 이런 일을 주지 싶었다. 잡지 표지라는 게 사실 인기의 척도인 만큼, 인기 있는 만화들이 돌아가면서 그리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한테 계속 그리라고 하니 그때 우리가 잘나간다는 걸 알게 됐다.
Q. 한때 한국에서 만화가라고 하면 유명하긴 한데 돈을 못 버는, 소위 꿈을 쫓는 사람들이란 인상이 있었다. 안 그래도 2010년 인터뷰를 통해 적은 원고료, 스캔본으로 인한 문제 등을 토로한 바 있는데 그로부터 14년이 지났다. 지금의 한국 만화 시장은 어떻게 보고 있나.
양재현 : 일단 '열혈강호'에 대해서 말하자면 단행본을 비롯해서 전자책, 그리고 주식회사 열혈강호를 통해 웹툰 버전(열혈강호 리마스터)을 서비스하는 등 수익 다각화를 하고 있어서 과거와 비교하면 말도 안 될 정도로 수익을 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건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전자책이라든지 웹툰 등을 통해 언제든 만화를 접할 수 있고 작가들 역시 다양한 채널, 플랫폼을 통해 만화를 연재하고 수익도 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 있는 만큼, 여러모로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전극진 :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현재 한국 만화 시장은 단군 이래 최대의 수익을 내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네이버 웹툰 랭킹 10위 안에만 들어도 버는 돈의 단위가 다르지 않나.
양재현 : 그래도 먼저 만화를 그린 입장에서 좀 아쉬운 게 있다면 수익이 좀 골고루 분배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1, 2, 3등의 격차가 엄청나던데 그 안에서도 1등과 2등, 2등과 3등의 격차가 또 크더라.
전극진 :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지금 10위 작가가 버는 돈만 해도 우리 때랑은 비교도 안 된다. 그리고 상위권 작가들에게 수익이 쏠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지금의 환경만 놓고 봐도 엄청 좋아졌다고 해야 한다. 계속 예전 얘기가 나오는데 우리가 잡지를 통해 연재했을 때인데 작품성이 좋고 상도 받은 분이 계셨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서 상업 만화로서는 큰 인기를 못 끌었다. 결국 외국으로 넘어가서 연재를 하게 되셨는데 그런 것과 비교하면 지금은 자기 작품으로 한국에서 연재할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Q. 한국 웹툰 시장의 성장이 고점에 다다른 것 아니냐는 등 비관적인 전망이 하나둘 나오고 있는데 우려스럽지는 않나.
양재현 : 전혀 우려스럽지 않다. 웹툰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만화의 규격,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가 거기에 종속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느 날 갑자기 웹툰이라는 게 사라질 리도 없지 않나. 과거 잡지로 연재하고 단행본을 내던 시기와 비교하면 보여주는 매체만 바뀐 셈인데 지금은 웹툰이지만, 언젠가 홀로그램 세상이 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결국 작가가 그런 플랫폼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예전에는 연재 환경이 바뀌는 그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분들도 있었는데, 결국 적응한 작가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업계의 대선배님 중 한 분 역시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셨는데 결국, 이건 작가 마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매체가 바뀌어도 그리고 싶은 게 있다면 그려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전극진 : 정확한 건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알기로 웹툰이 성공한 시장은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는 거로 알고 있다. 반면, 해외 진출 당시 기대했던 북미나 유럽 쪽으로 나갔던 작품은 기대만큼 큰 인기를 못 끈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과연 플랫폼의 문제일까 싶다. 일단 지금까지는 웹툰이 우리나라 만화 업계에 많은 기회를 줬고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줬는데 이러한 시스템을 만화 그 자체와 동일시해야 하는 건지는 의문스럽다.
Q. 웹툰은커녕 전자책도 생소하던 시기에 '열혈강호'는 앞서서 전자책을 내놨는데 특별한 가능성을 보기라도 했던 건가.
전극진 : 가능성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만화라는 게 결국은 잡지든 웹툰이든 플랫폼을 떠나서 일단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지고 읽고 구매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2000년도가 되기 전에 일일이 우리 만화를 스캔하고 그걸 인터넷에서 다운받아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르 해왔다. 그러다 보니 시장이 전자책, 웹툰으로 넘어갔을 때도 이전부터 했던 거라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근데 그런 건 있다. 시장이 바뀌었다는 걸 느낀 계기가 된 일이 있었는데 어느 시점에서 출판으로 찍어내서 받는 인세보다 전자책 인세가 더 많아지더라. 그걸 보면서 앞으로의 시대는 전자책, 웹툰의 시대겠구나 싶었다.
'열혈강호'의 아버지들이 그리는 미래는?
"만화 '열혈강호'는 끝나도 '열혈강호'의 세계는 끝나지 않는다"
Q. 현재 실사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OTT 드라마 중 다양한 영역으로 IP 확장을 전개 중이다. 다만,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 애니메이션이 아닌 다른 쪽으로 IP 확장을 할 경우 성공한 적이 적어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원작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전극진 : 운이 좋았던 건지 '열혈강호'를 연재하면서 초반부터 다른 분들과 함께 일할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도 젊었던 시기여서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만들었지?' 하고 어처구니없어한다든가 실망도 많이 하고 그랬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좋았던 일, 나빴던 일 여러 가지를 경험하고 '열혈강호' IP와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우리가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것도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기대해야 하는 것과 상대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 이런 걸 어느 정도 알게 됐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지금은 크게 걱정한다든가 그런 건 없다.
양재현 : 특히 일본이 그런 원작의 실사화나 이런 부분에서 혹평을 받는 일이 많은데 왜 그런가 하니 원작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이 심한 것 같다. 다들 알 거다. 실사화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배우들이 코스프레를 하고 연기를 하는 그런 느낌인 게 많다.
'열혈강호' 원작자로서 의견을 내자면 각 매체에 어울리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 원작은 원작, 실사 영화나 드라마는 그거대로 어레인지를 해야 한다. 엑스맨이 대표적이다. 원작 코믹북의 코스튬을 영화에 그대로 가져왔다면 아마 엄청나게 유치하게 보였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걸 어레인지하니 유치한 감성이 사라지지 않았나. 그나마 한국이 다행스러운 게 그 부분인 것 같다. 웹툰 등의 원작을 실사화하는 데 있어서 일본식보다는 미국식 시스템의 감각을 가져온 것. 이건 '열혈강호' 실사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의 언어로, 그걸 제작하는 분들의 감각대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창작해야 하는 게 맞다고 본다. 물론 원작과 달라도 된다는 그런 얘기는 아니다. 단지, 실사화에 있어서 원작자로서 우리가 해야 할 건 이 캐릭터가 어떤 캐릭터인지 설정을 잡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는 의미다. 너무 깊게 관여하지 않으면서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주는 것, 그게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극진 : 왜 그런가 하니 일본이 여러모로 독특한 케이스라고 하더라. 그쪽에서 일하는 분들과 얘기를 나눠봤는데 IP 검수를 작가가 직접 하는 게 아니라 제작위원회를 만들고 그곳에서 검수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제작위원회가 제작사로부터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내용을 전달받고 그걸 다시 작가와 상의해야 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검수하기도 불편하니 애초에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원작과 똑같이 만들라고 한다더라. 그러다 보니 소위 배우가 원작을 코스프레하는 그런 영화나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Q. 그런 면에서 볼 때 애니화는 한결 수월하지 않을까 싶다. 한편으로는 만화 원작자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열혈강호' 애니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양재현 : 우리도 몇 번 하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깨달은 게 있다. 내 그림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되게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그림, '열혈강호'의 그림체는 소설과 만화의 중간 지점의 감성을 지녔는데 이 느낌이라는 게 참 미묘하더라. 그냥 똑같이 그린다고 해서 그 느낌이 사는 것도 아니고 보이지 않는 영역이다 보니 똑같이 따라 그린 것만으로는 그 느낌이 빠지니 보이는 결과물도 어딘지 건조하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모든 구조를 규격에 맞게 만들었는데도 그런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열혈강호' 애니화에 대해서 쉽게 접근했다가 낭패를 봤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애니화라는 건 모든 만화가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니만큼, 언젠가 그 느낌을 담아낸 결과물이 나오리라는 희망의 끈을 항상 놓지 않으려고 한다(웃음).
전극진 : 마블도 그렇고 일본에서 대박이 난 만화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 콘텐츠가 성공할 때를 보면 영상화를 통해 성공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우리 역시 언젠가는 좋은 작품이 나오길 바라고 있다. 한편으로는 실사의 경우 재해석이 들어가지만, 애니는 직설적이서 더 와닿는다고 해야 할까. 언젠가 꼭 그런 작품이 나오길 바란다.
Q. 직접 투자해서 만들 계획은 없나.
전극진 : 아, 그건 좀... 예전에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에 직접 참여한 적이 있는데 가관이었다(웃음). 그냥 우리는 만화나 그리고 그 외 IP 확장은 다른 분들에게 맡기겠다.
Q. '열혈강호 온라인'을 비롯해서 여전히 많은 게임들이 '열혈강호' IP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원작자로서 게임화에 대해서도 욕심을 내고 있는 건가.
전극진 : 사업적인 욕심이라기보다는 소통에 대한 욕심에 더 가깝다. 만화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유저들이 원하는 다양한 것들이 있지 않나. 게임이든 영상화든 다양한데 그 부분을 우리가 캐치해서 사업을 전개하고 그걸 유저들이 좋게 받아들였을 때, 참 뿌듯하더라.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유저들이 원한다면 싱글 패키지 게임이라거나 더욱 다양한 게임으로 내는 일은 있어도 단순히 게임으로 더 많이 만들면 더 많이 돈을 벌겠지? 이런 생각에 접근하지는 않을 것 같다.
양재현 : 만화로서 '열혈강호'에 바라는 것과 게임으로서 '열혈강호'에 바라는 건 분명 다르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 부분을 잘 캐치한 개발사가 있다면 우리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개발사로서는 어쨌든 손해를 보지는 않아야 하지 않나. 개발사가 우리에게 '열혈강호'로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기획서를 전달했다면 다각도에서 검토하고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전달한 걸 테니 '이건 '열혈강호'라고 할 수 없다' 수준이 아닌 이상은 활발하게 사업을 전개하는 게 맞다고 본다.
Q. 꿈 많고 열정 넘치던 대학생들이 이제는 50대가 됐다. 앞으로도 만화를 계속 그릴건지, 그렇다면 언제까지 그리고 싶은지 듣고 싶다.
양재현 :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은데 이미 극진형이랑은 얘기를 다 했지만, 내년에 '열혈강호' 완결을 끝으로 은퇴할 생각이다.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오랫동안 만화를 연재하면서 몸이 꽤 안 좋아졌다. 거의 모든 작업을 직접 다 하고 있는데, 한 명 있는 문하생이 배경과 뒤처리를 해주고 있지만, 그마저도 같이 할 정도다. 그러다 보니 몸이 많이 망가져서 작년에는 두 번이나 입원할 정도로 안 좋아졌다.
전극진 : 내년에 완결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 둘 다 체력이 많이 떨어졌다.
양재현 : 그렇게 병원 신세를 지고 나니 만화를 계속 그리는 건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힘들겠다 싶더라. 만화도 중요하지만, 가족이 더 중요하지 않나. 그러다 큰일 나면 그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되돌아보면 난 만화를 그리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보다는 만화를 기획하거나 연출하는 그런 걸 더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단지, 그걸 표현할 수단이 만화였던 것뿐이다. 그래서 만화가로서는 은퇴하겠지만, 아예 은둔한다거나 그렇지는 않을 거다. 이후로는 '열혈강호'라는 IP, 작품을 관리하는 PD로서 제2의 인생을 살고자 한다. 내가 보고 싶었던, 그렇지만 내가 담아내지 못했던 '열혈강호'의 이면을 다른 작가들을 통해 만나고 싶다.
전극진 : 난 잘 모르겠다(웃음). 같은 일을 이렇게 오랫동안 한다는 게 뭐랄까, 쉽지는 않은 것 같다. 회사를 다닌다면 진급을 하면서 뭐 업무가 줄어들던가 바뀔 텐데 만화가는 안 그렇지 않나. 30년 내내 똑같은 일을 한 셈이다. 물론, 우리 만화가 사랑받았을 때는 더없이 기뻤지만, 순위라는 게 항상 그대로인 것도 아니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당연함에도 그걸 유지하기 위해 힘을 쏟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도 분명 있었다. 그래서 일단 연재가 끝나면 어떤 식으로든 후유증이 올 테니 당분간은 좀 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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