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생 정글러 '크로코' 김동범은 딱 스무살이 되던 해 챌린저스 코리아 소속 위너스로 프로게이머의 삶을 시작했다. 쉽지 않은 출발이었다. 준수한 개인 기량과 별개로 팀 성적이 최하위를 기록하면서 강등을 당했다. 이후 브리온 블레이드로 이적했으나, 약 1년 반 동안 주전과 서브를 오가며 출전 기회를 많이 잡지 못했다.

드디어 2021년, '크로코'는 리브 샌드박스에 입단하며 꿈에 그리던 LCK 무대를 밟게 됐다. 리브 샌드박스의 주전 정글러 '온플릭' 김장겸의 출장 정지 징계가 '크로코'에게는 기회로 찾아왔다. 그리고 '크로코'는 그 기회를 잡았다. 1라운드 동안 성장 가능성을 충분히 증명한 그는 2라운드까지 주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이제 '크로코'는 리브 샌드박스와 함께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1라운드의 부진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2라운드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며 섬머 스플릿을 더욱 기대케 했다. '크로코'가 직접 전하는 데뷔 스플릿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한다.



Q. 프로게이머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

원래는 다른 게임을 하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LoL을 시작했다. 무난하게 즐기고 있다가 친구와 승부욕이 붙어 티어 내기를 하게 됐다. 내가 승리를 차지했다. 배치를 봤을 때는 실버였는데, 내기를 하면서 다이아몬드1까지 올렸다. 그때부터 LoL에 애정이 생겼고, 게임을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러다 친구가 프로게이머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해서 도전하게 됐다.


Q. 프로게이머가 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는 뭐라고 하던가.

당연히 반대가 좀 많았다. 부모님도, 여러 친구들도 반대했다. 설득은 딱히 안 했던 것 같다. 몸으로 부딪혔다. 공부하는 척 게임을 한 적도 있고, 다투기도 많이 했다. 이후에 아빠랑 진지한 대화를 좀 했는데, 나중에 후회만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다고 이야기하고, 프로게이머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Q. 이후 2019년에 위너스에 입단해 처음으로 2부 리그를 뛰게 됐다.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위너스에서 제의가 왔다. (20살에 2부 데뷔면 빠르다고 할 수는 없는데, 걱정은 없었나) 그때 내가 개인 방송을 많이 챙겨봤는데, 자주 보던 BJ가 자기는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어도 나이 때문에 못한다고 하더라. 그분이 25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20살은 젊은 나이라고 생각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도전했다.


Q. 입단 후에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

막내라 그런지 집을 나가니까 걱정을 되게 많이 하셨다. 응원을 해주시기도 하지만, 걱정을 심하게 하셔서 내가 걱정을 더 하게 된다(웃음).



Q. 올해 리브 샌드박스로 이적을 하면서 드디어 LCK 무대에 올랐다. '온플릭' 선수의 내부 징계로 1라운드는 단독 주전이기도 했는데,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당연히 성적이 중요하니까 성적을 기본으로 두고 왔다. 그리고, 좀 궁금한 것도 있었다. 1부 리그의 코칭은 어떨지, 실제 플레이는 어떨지,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또, 이전까지는 주전 경쟁을 항상 해왔는데, 이번에는 주전으로 뛸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성장할 수 있는 큰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부담감보다는 기쁨이 컸다.


Q. 1부 리그를 실제로 겪어보니 어떻던가.

2부 리그에 있을 때는 1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와보니까 1부 리그라서 다르다기보다는 각자 팀마다 색깔이 있어서 그에 맞게 코칭이나 플레이 방식이 변하는 거더라. 리브 샌드박스도 리브 샌드박스만의 색깔이 있지 않나. 그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해외 리그를 포함해 많은 팀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Q. '크로코' 선수가 생각하는 리브 샌드박스의 색깔은?

일단, 상체 세 명이 무력이 굉장히 강하다. 봇은 알아서 잘 하는 편이다. 이게 2020년도에 담원 기아가 우승할 때의 스타일과 비슷하다. 담원 기아의 감독이셨던 김목경 감독님이 계심으로써 그런 색깔이 더 잘 나오는 것 같다.


Q. 감독님의 특별한 주문이 있었던 건가.

그런 것보다는 선수들의 특성상 팀 색깔이 그렇게 맞춰지니까 그런 쪽으로 주문을 해주시는 게 아닌가 싶다.



Q. 탑-미드의 무력이 강한 게 정글러 입장에서는 큰 메리트일 것 같은데.

사실 처음에는 상체 라인이 센 게 오히려 독이 됐던 것 같다. 내가 아무래도 신인이라 그 센 걸 활용을 잘 못했다. 우리 팀은 이렇게 잘해주는데 내가 못하니까 많이 답답했다. 이제는 좀 이용할 수 있다.


Q. LCK 데뷔전은 기억이 나는지. 긴장되고 떨리지는 않던가.

LCK 데뷔 경기는... 내가 1라운드 때 정말 많은 정글 선수들에게 치여서 솔직히 기억하고 싶지가 않다. 그때는 힘들었던 기억만 남아 있다. 긴장은 생각보다 안 했던 것 같다. 롤파크였다면 달랐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하니까 긴장이 덜 된다. 그래도 롤파크에서 경기 한번 뛰어보고 싶기는 하다.


Q. 그렇다면, 1라운드를 치르면서 어떤 점이 특히 부족하다고 느꼈나.

라이너에 대한 공감 능력이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라이너의 주문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믿음이 부족하기도 했고, 예를 들어 미드 라인을 밀어달라 했을 때 내가 언제 가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지금도 부족하긴 하지만, 그때보다는 나아지지 않았나 싶다.


Q. 정글러와 라이너 간의 입장 차이는 프로씬에서도 흔한 일 같더라. 신인이다 보니까 입김에서 밀린 적은 없나.

나는 내 주장이 강한 편이라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일단 할 말 다하고 '조커' 조재읍 코치님께 한 소리 듣고 깨갱 하고...(웃음) 그랬다.


Q. 메타에 따라 정글러의 입김이 세야 할 때도 있고, 라이너의 입김이 세야 할 때도 있지 않나.

지금은 라이너 입김이 좀 세다. 전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했다면 이제는 맞춰줄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Q.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웠던 정글러는 누구인가.

'피넛' 한왕호 선수가 많이 힘들었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 그런 게 많이 느껴졌다. 나는 LCK 첫 시즌이고 '피넛' 선수도 나를 처음 상대하는 거라 분명 데이터가 많이 쌓이지 않았을 텐데, 연구를 잘하신 건지 아니면 원래 나 같은 스타일을 잘 잡아먹는건지 처음부터 상대를 너무 잘하시더라.

'피넛' 선수와 하면 내가 생각한 게 다 읽히고, 내 수는 다 틀리는 느낌이다. 내가 원래 게임하면서 육감적으로 느낌에 따라 플레이를 많이 하는 편인데, 그 감이 다 틀려서 당황했다. KeSPA컵 때부터 LCK 정규 시즌 1라운드, 2라운드 내내 그랬던 것 같다.


Q. 2라운드에는 경기력을 꽤 많이 끌어올렸는데, 아쉽게 플레이오프에는 들지 못했다.

젠지 e스포츠를 잡으면서 플레이오프 가능성을 많이 올렸는데, 그 기회를 잡지 못한 게 정말 아쉽다. 아프리카 프릭스전이 정말 아쉬웠던 것 같다. 특히, 나 스스로에게 아쉬움을 많이 느꼈다. 개인적으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


Q. 스스로 느끼기에 어떤 점이 많이 성장한 것 같나.

예전의 나는 성격적으로나 게임하는 스타일이나 철이 많이 없었다. 감정에 휘몰아치는 편이었다. 2부 리그에서의 경험은 그런 안 좋은 습관을 버리는 과정이 돼주었다. 플레이스타일적으로는 차이가 없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공격적인 스타일이다. 근데, LCK 한 스플릿을 거치면서 공격력은 더 증가하고, 더 생각하면서 플레이를 하게 됐다. 능력치가 전체적으로 상승한 것 같다.


Q. 팀 내 POG 1위에 오른 것도 유의미한 결과일 것 같은데.

시즌 도중에는 POG에 대해 크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다. POG를 받으려고 게임을 하는 건 아니니까. 근데, 결과가 이렇게 따라와서 당연히 기분이 좋았다.



Q. 시즌이 끝나고 팀원들과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장난으로 고생했고, 다신 보지 말자고 했다(웃음). 섬머 때 같이 더 잘해서 좋은 성적 내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Q. 이 자리를 빌려 팀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사실 내가 멘탈이 별로 좋지 않은데, 게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늘 멘탈 잘 잡아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수혁이에게. '페이트' 유수혁 선수가 사람이 정말 힘들 때 옆에 가만히 있어줄 줄 안다. 그게 큰 도움이 됐다. 또, 시즌 내내 상호가 정말 든든했다. 아무래도 내가 데뷔 시즌이다 보니까 긴장도 하고, 질 때마다 굉장히 분하고 힘들었다. 그때마다 '에포트' 이상호 선수가 케어를 많이 해줬다.


Q. 섬머 스플릿 목표, 그리고 개인적으로 보완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

스프링 막바지 때처럼 계속 성장해서 더 높은 위치를 바라보고 싶다. 플레이오프 턱걸이가 아닌 안정권에서 상위 자리를 다투는 팀이 됐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지금도 라이너들에게 공감하는 능력이 계속 필요하다. 거기에 더해 개인 기량이 안 떨어지면 될 것 같다.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팬분들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프링 스플릿이 끝나고 팬분들께서 선물을 보내주셨다. 사실 내가 이렇게 팬이 생길 줄은 몰랐는데, 기분이 정말 좋더라. 개인 방송에서 불면증이 심하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기억하시고 수면에 좋은 향이 담긴 스프레이를 선물해주셨다. 또, 민트 초코를 먹는 걸 보고 대량으로 보내주시기도 했다. 관심과 응원을 많이 보내주고 계신다는 게 느껴지더라. 모든 팬분들께 진짜 감사하다고, 보답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