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숨 짭"
"BJ들 하는 거 봤는데, 재미없을 것 같다"
"유비 팬이지만 이번 건 거른다"


12월 3일 출시된 '임모탈 피닉스 라이징'에 대한 유저들의 반응입니다. 특이한 점이라면, 출시 전 트레일러 공개됐을 시점부터 이런 얘기를 쭉 들어왔다는 건데요. 팬덤도 단단하겠다, 무슨 장르든 최소한의 퀄리티 보장한다는 유비소프트 게임인데 나오기도 전에 이런 소리 듣는 걸 참 오랜만에 봤습니다.

그 이유를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야숨은 '잘 만든 게임 1' 정도가 아닌,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에 위치한 작품입니다. 그렇기에 임모탈을 상징하는 별명, '유비의 숨결'이 기대보단 조소에 가까운 의미로 들리는 건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임모탈이 야숨을 얼마나 따라했는지와는 상관없이, 국내 유저들에게 큰 매력을 어필하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주인공 '피닉스'의 개성 없는 디자인에서 일단 고개를 저었고, 또 하나 걸림돌을 꼽자면 세계관이었어요.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소재가 국내 게이머들에게 생소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숙하거나 특별히 더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았거든요. 어쩌면 그냥저냥 묻힐 수도 있었던 게임인데, '그분'의 짝퉁이라는 프레임으로 조금이나마 이름을 알렸다는 점에서 한 편으론 다행이라고 봐야 할까요.

출시 며칠 전, 게임 키를 확보해 미리 플레이해볼 수 있었습니다. 야숨의 팬이라서, 오픈월드 게임의 찐팬이라서, 그리고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를 만든 유비소프트 퀘벡이 투입되었음에도 그리 좋은 소리 못 듣고 있는 게임이 그냥 궁금해서 며칠간 꽤 열심히 했습니다. 궁금하신 것도 있고, 별로 안 궁금하신 것도 있으실 텐데...

야숨과 하나씩 비교해가며 제 생각을 말해보려 합니다.
진짜 야숨 열화판인지,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임모탈이 야숨과 비슷한지 아닌지는 굳이 제가 여기다 쓰지 않아도 다들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유튜브로 플레이 영상 많이 퍼졌으니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제 생각도 여러분과 같습니다.

주인공 '피닉스'는 스태미나 써가며 벽을 오르고, 이카루스의 날개로 하늘을 가르며 활공합니다. 와우, 정말 대단하긴 하나 우리가 야숨에서 링크로 실컷 즐겼던 그 느낌과 90% 똑같습니다. 맵 곳곳에서 발견되는 던전은 독립된 분위기의 환경을 제공하며 각자만의 퍼즐 기믹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것도 어디선가 본 거고요. 높은 구조물 올라가 세부 지역 맵 연다는 건 야숨도 그랬지만, 이건 원래 유비소프트가 어쌔신 크리드로 먼저 보여줬던 시스템이니 여기에 포함하진 않겠습니다.

딱 거기까지라면, 유비소프트가 그저 '야숨 스타일 유행할 것 같으니 일단 찍어내고 보자'란 생각으로 출시했다면, 임모탈에 대한 제 평가도 딱 여기까지로 하고 마무리하는 게 맞을 겁니다. 그래, 따라 한 건 다 아니까 그렇다 치고, 이제 그걸 얼마나 잘 살렸는지 한 번 봐야겠죠. 뒤돌아선 유저들을 향한 유비소프트의 마지막 변론 기회일지도 모르니까.

흥미롭게도, 제가 임모탈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하게 만드는 계기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맵 디자인과 그 안의 구성을 야숨에서 따온 건 맞습니다. 그런데 게임 들어서자마자 '뭔가 할 게 많다'라는 메시지가 확 전해져옵니다. 넓게 펼쳐진 필드의 어느 쪽을 보더라도 '저기에 100% 뭔가 있다'는 느낌으로 가득 채워져 있거든요. 큼지막한 오브젝트가 떡 하니 놓여있거나 '나 좀 봐주세요'라며 깜빡이는 불빛이 여기저기 널렸으니 굳이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지요. 똑같이 필드는 광활하지만, '뭔가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정도에서 끊어낸 야숨과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스캔 화면으로 넘어가 보죠. 냄새가 솔솔 풍기는 곳을 조준하면 역시나 마킹 아이콘이 뜹니다. 이쯤 되면 예상했던 시나리오는 확신으로 이어집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장소엔 반드시 무언가가 있고, 그 이벤트가 전투 형태인지, 퍼즐 형태인지, 혹은 타임 트라이얼 형태인지 찍어둔 아이콘 모양으로 대충 알 수 있거든요. 내가 그곳을 직접 가보기도 전에, 이미 거기서 벌어질 일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는 셈입니다.

이벤트는 대부분 단순합니다. 주변 오브젝트를 활용하는 퍼즐도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 '어디 가서 레버 돌려라', '무거운 거 발판 위에 올려라' 정도라 큰 고민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찍어내기 가능한 구조 덕분에 이벤트 숫자는 많은 편이나, 야숨의 그것과 같은 깊이를 기대하면 안 됩니다. 즉, 임모탈의 이벤트는 대부분 휘발성이 강하며, 이 때문에 오픈월드 게임임에도 다회차 플레이에서 새로운 느낌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필드 구성은 전반적인 게임 분위기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 가기 전부터 예상되고,

▲ 예상은 예외없이 적중합니다


야숨의 경우, 이벤트나 오브젝트 대다수가 숨어 있었습니다. 가이드라인은 튜토리얼 지역이나 메인 시나리오 정도에서나 보였죠. 몇몇 퀘스트와 지역은 게임을 100시간 넘게 해도 아예 힌트조차 못 찾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놓고 드러내지 않은, 뭔가를 품고 있는 듯한 필드였기에 게임 배경의 색채를 비롯해 전체적인 분위기가 정적이었고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강했습니다. 닌텐도가 링크보다는 '야생' 그 자체에 포커스를 잡고 개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덕분에 플레이어가 '당장은 뭐 없어 보이지만, 한 번 가서 확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만듭니다. 튜토리얼 내내 '이건 그렇게 하는 게임'이란 걸 강조하기도 했고요.

반면, 임모탈의 필드는 그 많은 이벤트를 한 화면에 꽉 채워서 보여주려다 보니 전반적인 필드 디자인이 빡빡해졌고 일부는 작위적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높은 곳에서 주변을 둘러봐도 '저곳에 가면 어떤 게 있다'라는 정보만 전달될 뿐, 미지의 장소를 탐험해야 한다는 욕구를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야숨이 플레이어를 자연 그 자체에 풀어놓는다면, 임모탈은 자유이용권 끊어주고 이미 놀 거리가 정해진 유비식 테마파크에 들여보내는 모습이랄까요.


▲ 야숨(위)와 임모탈(아래)의 필드 디자인.
두 게임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혹자는 이러한 유비소프트식 오픈월드를 '양산형'이라며 혹평하지만, 저는 AAA급 오픈월드 게임을 양산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 자체가 유비소프트의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라 생각합니다. 이 프레임 안에서 수많은 작품을 출시하며 대중성을 검증받았고, 유비식 오픈월드 또한 신작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임모탈도 마찬가지입니다. 야숨에 비해 모험심을 자극하는 요소가 부족하다고는 하나, 전 이것이 임모탈의 메타크리틱 점수를 20~30점씩 깎아 먹는 큰 문제라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단지 스타일이 다를 뿐이죠.

야숨은 배경과의 상호 작용 및 정밀한 물리 효과를 토대로 게임의 전체 시스템을 구성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따라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어찌어찌 따라 만든다 해도 원작을 넘어서는 평가를 받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라면, 야숨처럼 거대한 자연을 구현하고 이동 방식을 비롯한 탐험 구조 정도만 참고한 뒤, 나머지는 개발사가 자신 있어 하는 시스템과 콘텐츠로 채우는 방식일 겁니다. 미호요의 원신이 그렇게 했고, 지금 설명하고 있는 임모탈도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야숨의 필드와 유비식 오픈월드의 결합은 진입장벽이 확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굳이 오픈월드가 아닌, 일반 액션 게임 위주로 즐겨왔던 유저라도 임모탈에 적응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전투는 물론, 캐릭터 성장에 관련한 대부분의 요소가 일반적인 액션 게임의 틀을 따르기에 애당초 어려운 부분도 없으며, 혹여나 유저가 길을 잃지는 않을까 시종일관 배려하는 시스템이 뒤를 받쳐줍니다. 야숨에 비하면 머리 쓰게 만드는 요소가 적다 보니 성취감은 부족하나,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즐길 게임을 찾는다면 오히려 임모탈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 피닉스의 외모 빼면 모든 게 익숙합니다


초회차 플레이라도 그저 그런 콘텐츠가 반복된다면 솔직히 질릴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오픈월드는 장르 특성상 플레이 타임이 50시간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초, 중, 후반을 모두 관통하는 코어가 튼튼해야 유저를 엔딩까지 붙잡을 수 있습니다. 스카이림처럼 자유도란 단어를 재정의하는 수준의 플레이가 가능하든가. GTA5처럼 현실감 넘치는 배경에 개성 있는 캐릭터와 영화 수준의 연출을 강조하든가. 위쳐3처럼 메인, 서브 퀘스트 가리지 않고 높은 수준의 몰이도를 보여주든가. 뭐 방법은 여러 가지입니다. 하나같이 쉽지 않을 뿐이지.

그럼 임모탈의 코어는 뭐냐고 물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전 임모탈이 자신 있게 내세울 요소가 몬스터와의 '전투'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 매체 리뷰어들 대부분 '전투 하나는 정말 재밌다'라고 입을 모았고, 저 역시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잘 조여진 조작감에 각 몬스터의 다채로운 공격 패턴이 어우러져 기분 좋은 긴장감을 연출하며, 특히 마지막 일격으로 몬스터를 지평선 너머로 날려버리는 장면에선 타격감을 넘어 가슴이 뻥 뚫리는 상쾌함까지 전해져옵니다. 공중 콤보를 적극 할용하여 기존 오픈월드 게임과 비교해 전투에 입체감을 더한 점도 칭찬할 부분입니다.

패링과 회피, 반격 시스템 역시 야숨을 기반으로 했으나, 임모탈의 전투 템포가 상대적으로 빠른 데다 판정이 매우 넉넉하기에 실제 플레이 시 체감에선 크게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야숨과 비교해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으론 임모탈의 전투 시스템이 좀 더 대중성을 지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보이는 것 이상으로 전투가 정말 재밌습니다


게임이란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큰 가치는 '순수한 재미'에 있습니다. 그리고 임모탈을 하면 할수록 유비소프트가 닌텐도나 원작에 대한 경쟁심이 아닌, 존경심을 담아 만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야숨 스타일 오픈월드' 부담 없이 느껴보고 싶은 유저에게, 이후 야숨 스타일에 도전하려는 또 다른 게임사들에게 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임모탈은 나름의 가치를 가진 작품입니다. 그 정도 재미는 충분히 가졌습니다.

유비소프트가 만든 게임 중 '마리오+래비드 킹덤배틀' 이란 작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엔 2018년 1월에 스위치로 출시됐는데, 파이락시스 게임즈의 엑스컴과 참 많이 닮은 게임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엑스컴 짝퉁이란 세간의 시선을 정면으로 돌파했고 결국 평론가들의 극찬을 끌어냈습니다. 심지어 엑스컴 시리즈의 제이크 솔로몬 리드 디자이너가 "마리오+래비드 킹덤배틀을 보고 내가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내용이 담긴 글을 폴리곤에 기고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임모탈이 '마리오+래비드 킹덤배틀' 수준이라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원작자도 인정할 뛰어난 작품이라 말하려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단지, '짭숨'이라는 프레임 아래 원작에서 어떤 걸 가져오고 어떤 걸 포기해야 하는지 그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 위한 유비소프트의 노력이 가려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