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치열했던 것은 바로 중위권 싸움이었다. 그 중에서도 롱주 게이밍과 아프리카 프릭스가 4위와 5위에서 엎치락뒤치락하며 순위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다. 때문에 두 팀의 만남은 서로에게 아주 중요한 매치였다. 서로만 잡는다면 강팀 반열로 도약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1라운드 대결에서 웃은 쪽은 바로 롱주였다. 치열했던 풀 세트 접전, 승리의 일등 공신은 바로 '비디디' 곽보성과 그의 필승 카드인 갈리오였다. 섬머 기간 동안 그 어떤 미드 라이너를 상대하던 언제나 단단하게 허리를 지켜왔던 '비디디'가 이번에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비디디'가 프로씬에 등장한 건 나이 제한이 풀린 2016년. 당시 CJ 엔투스 소속 미드 라이너였던 '비디디'는 데뷔 전인 연습생 시절부터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솔로 랭크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피지컬 덕분에 SKT의 연습생 '스카웃' 이예찬과 함께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프로의 벽은 높았다. '비디디'는 팀의 부진과 함께 연이은 패배로 인해 쓴소리를 피할 수 없었다. 기대감과 주목도가 높았던 만큼 필요 이상의 비난도 있었다.
CJ 엔투스가 2부 리그로 강등된 뒤 '비디디'는 롱주 게이밍으로 거취를 옮겼다. 두 번째 기회가 찾아온 듯 싶었지만, 아직이었다. '플라이' 송용준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스프링 스플릿 동안 단 한 세트도 출전하지 못했고, 묵묵하게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다시 출전의 기회가 주어진 섬머, 그동안 쌓아왔던 포텐이 드디어 터졌다.
kt와의 첫 매치에서 오리아나로 노데스 플레이를 펼치며 미드 라이너계의 새 바람을 예고했던 '비디디'는 이후 경기에서도 제드, 카사딘, 탈리야, 르블랑, 루시안, 갈리오, 신드라 등 다양한 챔피언으로 수준급의 기량을 뽐내며 롱주의 허리를 단단하게 지켰다. 화려한 플레이나 임팩트는 타 최상위권 미드 라이너에 비해 부족할 수 있어도 기복이나 실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여러 가지 지표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26전 17승 9패를 기록하는 동안 평균 데스는 단 1에 불과하며, 킬 관여율도 78.2%로 매우 높다. 차곡차곡 쌓은 MVP 포인트도 어느새 800점으로 1위다.
그런 '비디디'의 손에 OP라고 꼽히는 갈리오를 쥐여줬을 때에는 그의 존재감이 더욱 빛을 발했다. 5전 전승을 기록하고 있는 '비디디'의 갈리오는 단 1데스만을 기록해 74라는 어마무시한 KDA를 보유하고 있다. 킬 관여율은 언제나 80%를 웃돌았다. 이쯤에서 아프리카전에서 갈리오로 보여준 '비디디'의 활약상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자.
■ 치열했던 1R : 다만 갈리오를 풀지 말았어야 했다
리워크를 통해 새로 태어난 갈리오는 OP 챔피언으로 떠올랐다. 7월 2일 기준으로 LCK 밴픽률 95.7%로 3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다. 승률도 65.8%나 된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좋은 스킬 구성이 그 이유였다. 미드 챔피언이라고 하기엔 괴이할 정도로 단단한 몸집을 자랑했고, 적들의 발을 묶을 수 있는 광역 CC기와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힐 수 있는 대쉬기를 보유했다. 라인 클리어도 좋았다.
화룡점정은 궁극기 '영웅출현'이었다. 갈리오의 궁극기는 빠른 합류를 가능하게 했고, 아군이 받는 피해량을 일정량 줄여줘 전투는 물론 포탑 다이브에도 요긴하게 쓰였다. 때문에 갈리오는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미드 라이너들에게 황금 같은 픽이기도 했다. 단단한 탱킹력 덕분에 라인전을 버티기에 용이했고, 운영 단계에서 쉽게 잘리지 않았다. 다소 과격한 진입을 해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이런 갈리오가 폼도 좋고 안정감 있다고 평가 받는 미드 라이너 '비디디'의 손에 쥐어지니 그 존재감이 남달랐다.
'마린' 장경환과 '쿠로' 이서행의 활약에 팽팽하게 흘러갔던 1라운드 1세트. 바론까지 내주며 위기에 몰렸던 롱주를 구한 건 바로 갈리오였다. 궁극기 진입각부터 좋았다. '프레이' 김종인의 바루스가 흩날린 궁극기 '부패의 사슬'과 맞물리면서 상대의 진영을 붕괴시켰고, 덕분에 롱주가 고립된 '마린'을 일방적으로 두드릴 수 있었다. 게다가 1대 4 구도에서 상대의 주요 스킬들을 모두 받아내면서도 살아돌아갔고, 마지막은 남아있던 아프리카의 나머지 챔피언 모두를 광역 도발로 묶어내는 장면까지 연출했다. 아군 딜러들을 위한, 완벽한 서포팅이었다.
2세트를 내주고 시작한 3세트에서도 롱주는 갈리오가 금지되지 않자 선픽으로 가져왔다. '비디디'의 자신감과 팀원들의 신뢰가 엿보인 픽이었다. 탱키한 갈리오를 전방에 내세우고 탑-정글-원딜 포지션에서 3딜러를 택한 롱주. 유일한 탱커인 갈리오의 역할이 중요한 조합이었고, '비디디'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냈다. 상대의 어그로를 충분히 끌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았고, 강력한 CC기를 통해 아군을 보호하거나 추격의 끈을 놓치지 않기도 했다.
'비디디'는 갈리오를 플레이한 두 세트 모두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단독 MVP까지 꿰찼다. 1세트에선 2킬 1데스 16어시스트에 킬 관여율 95%, 3세트선 2킬 0데스 10어시스트에 킬 관여율 80%를 기록했다. 최전방에 서는 탱킹 역할을 했다기엔 너무 높은 KDA 수치로, 안정감과 적절한 어그로 핑퐁 능력이 빛을 발하는 결과다.
■ 2R 재대결 : 또다시 아프리카의 발목 잡은 갈리오
6일 만에 다시 만난 아프리카와 롱주. 롱주는 '크레이머' 하종훈의 자야를 필두로 거세게 몰아붙이는 아프리카에게 1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1세트 9전 전승의 기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패배의 위기 앞에 놓인 상황에서 '전승 카드' 갈리오가 다시 한 번 등판했다. 역시 이번에도 존재감은 묵직했다.
시작은 '커즈' 문우찬의 그라가스였다. 주력 챔피언인 카직스가 금지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긴 했지만, 걱정을 단숨에 불식시키는 3레벨 유효 갱킹에 성공했다. 자신감이 붙은 '커즈'는 집요하게 적 정글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격차를 벌렸고, 이로 인해 교전이 발생할 때마다 어느새 갈리오가 등장해 수적 우위의 전투 구도를 만들었다.
갈리오를 견제하기 위해 뽑아든 미드 루시안은 갈리오의 발 빠른 합류를 쫓아가기엔 부족했다. 이미 킬을 먹고 성장하기 시작한 갈리오를 라인전에서 찍어 누르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잘라먹기에 능한 엘리스와 탐 켄치의 노림수 역시 갈리오의 '영웅 출현'에 의해 차단됐다. 갈리오는 아군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말 그대로 '영웅'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
'비디디'는 또다시 7킬 0데스 10어시스트에 킬 관여율 81%라는 어마어마한 수치와 함께 갈리오 전승을 이어나갔다. 이어진 3세트에서 아프리카가 갈리오를 금지하긴 했지만, 이미 기세를 탄 롱주는 강력한 상체 라인을 십분 활용해 3세트마저 대승을 거뒀다. 잘 성장한 '칸' 김동하의 제이스와 '비디디'의 탈리야는 전투마다 엄청난 대미지를 내뿜었고, 안정적으로 상대의 대미지를 받아내는 '고릴라' 강범현의 브라움도 명품이었다.
1, 2라운드를 모두 내주게 된 아프리카 입장에서는 픽밴 단계에서 자신감 있게 풀어준 '비디디'의 갈리오를 결국 막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말자하, 루시안 등 대응책으로 꺼냈던 픽들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갈리오에 대한 파훼법을 찾아낸다면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기에 그간 많은 팀들이 미드 피오라 등 참신한 시도를 해왔지만, 결과는 항상 같았다. 이렇듯 강력함은 이미 검증됐고, 한 번 패배를 맛봤던 상황에서 아프리카가 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을까.
OP 챔피언 갈리오와 '비디디'의 시너지가 다시 한 번 돋보인 결과였다. 경기 후 승리 인터뷰에서 "갈리오가 풀리는 순간 이겼다고 직감했다"고 언급한 부분에서도 '비디디'의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커즈' 역시 "세계에서 갈리오를 제일 잘하는 선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더 무서운 점은 '비디디'가 갈리오를 잘 다룬다고 해서 다른 챔피언에 약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는 것이다. 이제 갈리오가 너프된 패치 버전이 '비디디'를 기다리고 있지만, 그에게는 아쉬움 그 이상의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