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개발자' 중에는 정말 독특한 인물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게임 개발자들은 모두가 작품을 만드는 '크리에이터'다. 각자 게임을 대함에 있어 다른 자세를 취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람 개개인으로 봐도 독특한 인물들이 많은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일본의 게임 디자이너인 '호리이 유지' 또한 굉장히 독특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사정 없이 게이머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내용 전개와 괴상한 대사 센스. 그럼에도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면모 때문에 다 만든 게임을 갈아엎는가 하면, 만드는 작품의 텍스트를 본인이 혼자 집필했다.
- 1954년 1월 6일 효고현 출생
- 와세다 대학 제1문학부 졸업
-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메인 디렉터, JRPG를 정립
- 포토피아 연속 살인 사건, 이타다키 스트리트 시리즈, 크로노 트리거의 스토리 집필
- '시나리오 라이터'의 시초 중 한 명
'시나리오 라이터'라는 직업을 만들어낸 게임 디자이너. 그가 만든 게임 시리즈가 30년을 이어온 JRPG의 표본,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다. 수많은 게임 개발자가 강단에 서는 CEDEC 2016. 그중에서도 그의 강연은 가장 길고, 또 큰 규모로 이뤄졌으며, 동시간 때 어떤 강연도 배치하지 않았다. 그의 이름값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강연의 내용은 거창하지 않았다. 스퀘어에닉스의 수석 프로듀서인 '사이토 요스케'와 함께 강단에 오른 그는 준비되어 있는 의자에 앉아 조용히 말을 꺼냈다. 80분에 이르는 사이토 요스케와의 1:1 담화. 드래곤 퀘스트의 지난 30년에 대한 그의 회고가 이번 강연의 모든 것이었다.
어린 시절, 호리이 유지는 '만화 원작자'를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밖으로 이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만화 원작자라는 직업은 어른들이 볼 때 썩 멋진 직업은 아니었으니까. 대신 호리이 유지는 변호사가 될 거라고 말하고 다녔고, 칭찬을 듣는다. 당시 그는 특별히 어떤 뛰어난 면을 보여주거나 하진 않았지만, 게임 크리에이터로서의 면모는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에서 나온 산업 폐기물들을 가지고 여러 놀잇감을 만들었고, 대학 시절에는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마작과 주사위를 응용한 놀이를 즐겼다.
와세다 대학 1문학부를 졸업한 후, 그는 한동안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다가 27세에 NEC의 PC-6001을 접하게 된다. 그는 재미 삼아 PC BASIC의 기본적인 명령어들을 공부했고, '점'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다. '점'은 꽤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다방면으로 조사해 친구들의 패턴을 파악했고, 이를 통해 '점'을 만들었다. '점'은 요즘 볼 수 있는 간단한 심리 테스트와 비슷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친구들은 예외 없이 모두 적중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기해했다.
그 외에도 그는 PC-6001 전용 게임인 '스타 트렉'이나 '신장의 야망'등 BASIC을 이용해 찌여진 게임의 프로그램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일종의 치트성 플레이를 하곤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개발에 임한 첫 게임은 '러브 매치 테니스'. 그는 빠른 이미지 표현을 위해 BASIC뿐만 아니라 기계어도 체계적으로 공부했고, 1982년 에닉스(현 스퀘어에닉스)가 주최한 콘테스트에서 입선 작품으로 선출된다.
당시 대회에서 우수상을 획득한 게임은 현 '스파이크 춘' 소프트의 대표 '나카무라 코이치'의 작품이었는데, 호리이 유지는 게임을 만든 것뿐만 아니라 이 콘테스트를 취재해 '소년 점프'에 기고했다. 이 때문에 호리이 유지는 나카무라 코이치와 알게 되었고, 훗날 나카무라 코이치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초반부의 개발을 담당하게 된다.
이후, 해외 시장에서 '어드벤처' 게임이 유행이라는 것을 안 호리이 유지는 '포토피아 연속 살인 사건'이라는 게임을 개발하게 된다. PC-6001을 기반으로 직접 명령어를 써가며 진행하는 게임인 만큼 개발 난도는 높았지만 포토피아 연속 살인 사건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두 종의 어드벤처 작품을 더 만들게 된다. 이 당시 호리이 유지는 '위저드리'와 '울티마'에 단단히 빠져 있었고, 이는 어드벤처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카루이자와 유괴 사건'의 종반부에 RPG 요소가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동시에 호리이 유지는 'RPG'에 대한 열망을 품게 된다. 때문에 그는 '에닉스'와 RPG의 개발에 대해 논의했지만, 에닉스는 먼저 '포토피아 연쇄 살인 사건'을 패미컴 버전으로 컨버전하는데 주목하자고 말했고, 호리이 유지는 이에 따르지만 원래는 없던 던전을 집어넣는 등 RPG에 대한 욕구를 드러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호리이 유지'와 '드래곤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토리야마 아키라', 그리고 음악의 '스기야마 코이치'가 뭉쳐 만든 작품이 세상에 공개된다. 비교적 친숙한 단어인 '드래곤'과 낯선 '퀘스트'의 융합. '드래곤 퀘스트'의 등장이었다.
드래곤 퀘스트는 시리즈 첫 작품임에도 15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단번에 밀리언 셀러로 거듭났다. 1년 후인 1987년에는 '드래곤 퀘스트2'의 개발이 완료되었다. '드래곤 퀘스트2'는 전작의 두 배에 해당하는 용량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3인이 기본 파티를 이루는 현재의 드래곤 퀘스트 시스템을 확립할 수 있었고, 드래곤 퀘스트의 세계 자체를 크게 확장하게 된다. 하지만 호리이 유지는 처음 RPG를 접하는 게이머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해 처음부터 3인 체제가 아닌, 게임 진행에 따라 인원수가 늘어나는 방식을 만들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순항은 계속되었다. 2편, 그리고 3편에 이르기까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는 흥행을 이어갔고, 3편의 경우 그 인기가 최정점에 달해 숱한 사회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르자, 호리이 유지는 큰 압박을 받게 된다. 성공적인 행보를 걸어온 사람들이 흔히 겪게 되는 압박. 실패에 대한 공포가 찾아온 것이다. 때문에 호리이 유지는 차기작인 4편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시나리오를 만들게 된다.
4편에 이르러, 호리이 유지는 그동안 '메인 스토리'에 쏠려 있던 스토리의 비중을 나누게 되었고, 이를 각각의 캐릭터에게 분배했다. 등장하는 캐릭터마다 저마다의 에피소드를 만들고, 이 스토리를 엮어 하나의 전체적인 흐름을 만들어냈다. 3편과 함께 시리즈 최고의 명작 중 하나로 꼽히는 5편에 이르러서는 플레이어에게 선택(결혼에 대한)을 강요하고, 조부모와 자식에 이르는 3대가 함께 적을 상대하는 주제를 담아냈으며, 6편에서는 지형에 대한 개념을 바꿔 점점 열어가는 형식이 아닌, 처음부터 모든 지역을 열어두는 식으로 바꾸었다.
여기까지 말한 후에도 호리이 유지는 각각의 작품에 대해 조금씩 언급했다. 7편에서 추가된 '말하기' 명령, 8편에서 시도되었던 3D 그래픽. 그리고 9편에서는 '닌텐도 DS'의 크로스 네트워크를 응용한 시스템에 대해 말했다. 시리즈 첫 온라인 게임인 10편에 대해서도 짧게 말한 호리이 유지는 더 이상 과거의 작품들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 이후의 작품들은 이미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후 한동안은 가벼운 이야기가 오고 갔다. '치명타'를 어째서 '회심의 일격!'으로 표현했냐는 질문에 호리이 유지는 "더욱 드라마틱한 연출을 하고 싶었지만, 데이터 용량이 작았던 시절에 그 느낌을 표현하고자 한 시도 중 하나"라고 대답했으며, 디버깅과 마지막 밸런스 작업에 얼마나 시간과 인력을 투자하냐는 질문에는 한 달 정도 직원들에게 플레이를 시키고, 본인도 직접 플레이한 후 데이터를 정밀 조절했다고 말했다.
이제 남은 강연 시간은 10여 분. 사이토 요스케가 물었다. "게임 디자이너로서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호리이 유지는 대답했다. "재미 요소를 발굴해내는 창의력, 그리고 이를 시스템에 도입하는 과정을 극복하기 위한 인내, 마지막으로 완성된 시스템이 생각보다 재미가 없을 때 남기지 않고 싹둑 잘라낼 수 있는 용기입니다" 호리이 유지는 재차 말했다. 그의 30년 개발 인생에서 쌓아온 마지막 노하우가 마이크를 통해 객석에 전해졌다.
"드래곤 퀘스트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게임이라고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30년의 세월 동안, 게임 업계가 점점 변하는 만큼 많은 시스템이 생겨났습니다. 이제는 그것들이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려 새로운 무언가를 생각하는 과정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이럴 때는 과감히 재미 요소를 생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신의 게임이 게이머에게 선택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게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 보세요. 게임이라는 틀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한 엔터테인먼트의 성공 면모를 분석하고, 이를 잡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