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마침내 도타2 유저들의 성지인 시애틀에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작년 TI5 취재를 위해 시애틀에 왔을 때는 구름 한 점 없이 밝고 화창한 날씨가 저를 반겨줬는데, 비행기 기내에서 기장님이 시애틀 현지 날씨는 구름이 많고 비가 조금 오고 있다고 방송을 하시더군요. 솔직히 조금 시무룩해졌습니다.

작년과 가장 달랐던 점을 꼽자면 단연 온도였습니다. 작년의 시애틀은 한국 초여름 날씨에 가까울 정도로 햇볕이 뜨거웠는데, 공항 문 밖을 나서자마자 엄청난 추위와 칼바람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시애틀 바깥 온도는 무려 16도. 불과 12시간 전에만 해도 있었던 한국과 20도나 되는 온도 차이를 보인 것이죠. 거기다 매서운 바람까지 불어닥치자 긴팔 하나 없던 저는 추위에 덜덜 떨어야 했습니다.


밸브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달리기를 약 20여 분, 저는 TI6 그룹 스테이지가 열렸던 장소임과 동시에 제 숙소이기도 한 매리어트 벨뷰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TI5 그룹 스테이지 장소였던 웨스틴 시애틀 호텔과는 달리 도시 중심을 꽤 벗어난 교외에 위치한 곳이었죠.

숙소에서 간단하게 짐을 풀고 선수들이 연습을 하는 연습실로 들어가 봤습니다. 마침 타이밍 좋게도 MVP 피닉스 VS 나비의 스크림이 막 시작됐더군요. 상대 푸쉬 조합에 밀려 1세트를 패배한 MVP 피닉스는 2세트에서 불리했던 초반을 딛고 역전승을 따냈고, 3세트까지 승리를 거두면서 2:1로 승리했습니다. 제가 도착하기 전에는 이홈과의 스크림에서 승리했고, 나비전 이후에는 얼라이언스와의 스크림에서도 2:0 승리를 거둘 정도로 이날 MVP 피닉스의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선수들에게 그룹 스테이지 '무재배'의 이유를 물었더니 "괜히 게임하다가 우리들끼리 멘탈이 터졌어요"라고 합니다. 그리고 메인 이벤트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며 여전히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죠.

또, A조 팀들을 상대로 한 스크림에서는 전부 승리를 거뒀다고 합니다. 그 OG를 포함해서 말이죠. 의외로 B조 팀들이 정말 지옥같았다고 했는데, 현지 스크림에서 유일하게 패배한 상대가 바로 B조의 디지털 카오스였다고 하네요. 현지에 있는 모든 팀 선수들이 B조가 훨씬 더 지옥같은 조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B조는 만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6무가 재평가가 되는 걸까요?


사실 뭔가 하려고 계획했던 건 많았는데, 10시간의 비행 동안 한숨도 자지 못했던 탓에 엄청난 피로가 몰려와서 뭔가를 할 힘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 왔으면 포켓몬GO를 해야지!"라며 저녁을 먹은 후 밖으로 나갔다가 14도의 추위에 놀라 바로 방으로 도망치듯 복귀했고, 이내 쓰러져서 아침까지 일어나지 못했죠.



다음 날 아침 키 아레나로 움직일 시간이 되자 호텔 로비에는 전 세계의 최고의 도타2 팀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도타2 팬들에겐 유토피아와도 같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선수들에게 뛰어가 사인을 부탁하고 싶었지만 이성이 본능을 억눌렀죠.

여전히 바깥 날씨는 대단히 추웠습니다. 혼자 긴팔이 없어 덜덜 떨던 중, MVP 피닉스 측에서 팀 유니폼을 하나 빌려준 덕분에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죠. 잠시 걷자, 밸브 측에서 선수들의 이동을 위해 준비한 차량이 줄을 지어 서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리무진이었는데, 이번에는 팀별 로고가 그려진 커다란 밴이네요.


숙소에서 키 아레나까지는 약 20여 분.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선수들은 곧 다가올 OG전에 대비해 전략 전술 논의를 했고, 이내 만담 타임이 찾아왔습니다. '넛츠', 'kpii', '힌' 이승곤 선수와 '제락스' 등 지난 TI5에서 MVP 피닉스와 MVP 핫식스의 영웅들이 한 데 모였다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마치' 박태원 선수만 없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는 곧 군대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최소 6살 이상 어릴 친구들에게 한참 욕을 먹고 있을 이등병 '마치' 선수를 놀린 선수들은 다시 OG전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고, 승자전 1라운드에서 OG만 넘는다면 결승도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았습니다. 물론 OG를 넘었을 때의 이야기겠죠.


멀리서 드디어 시애틀의 랜드마크, 스페이스 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드디어 키 아레나가 눈앞에 온 것이죠. 1년 만에 다시 찾아온 그곳이지만 날씨를 제외하곤 변한 게 없습니다. 엄청난 수의 관중, 열렬한 환호, 뜨거운 열기까지 말이죠.

MVP 피닉스의 선수들이 입장하자 레드카펫 옆에서 기다리던 관객들은 굉장한 환호를 보내왔고, 일부는 큰 소리로' QO!'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QO' 김선엽 선수의 인기는 어디서나 굉장한가 봅니다.


드디어 익숙했던 그곳, 키 아레나 2층 스위트룸으로 입장하자 키 아레나 한가운데의 전광판에서는 The International이라는 너무나 반가운 글자가 모두를 반겨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중들이 속속 입장하고, 잠시 스위트룸에서 대기하던 MVP 피닉스의 선수들은 이내 오프닝 무대를 위해 떠났죠.

지난 TI5때는 오프닝 날 드문드문 빈 자리가 보였는데, 이번에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의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월요일 아침인데도 말이죠! 이곳의 첫 무대를 여는 팀은 바로 MVP 피닉스와 OG. MVP 피닉스는 최강팀인 OG를 넘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곧 그 결과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겁니다.

▲ 사육당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