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힐, 사혼곡 '사이렌' 등 일본의 대표적인 공포게임을 개발해 온 '토야마 케이이치로' 디렉터의 신작 '야구자: 슬리터헤드'가 정식 출시됐다. 약 3년 전, 처음 공개될 당시 기대와는 조금 다른 형태로.

게임은 고대 중국의 기담 모음집 '요재지이'에 실린 괴물 '야구자'를 모티브로, 90년대 홍콩 거리에서 펼쳐지는 기괴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플레이어는 형체가 없는 주인공 '빙귀'가 되어, 구룡(Kowlong) 시민들의 몸을 이리저리 빌려 가며 사람들 사이에 숨은 괴물 '야구자'를 처단하는 여정을 떠난다.

게임명: 야구자: 슬리터헤드
장르명: 액션
출시일: 2024. 11. 9.
리뷰판: 리뷰용 빌드
개발사: Bokeh Game Studio
서비스: Bokeh Game Studio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S5


시민이 내가 된다
네온사인 아래 펼쳐지는 '빙의' 액션

'야구자: 슬리터헤드'는 이제는 사라진 홍콩의 빈민가 '구룡채성(또는 구룡성채)'을 무대로 하는 빙의 액션이다. 초반에는 주인공 '빙귀'가 어떤 존재인지 밝혀지지 않고, 기억도 다 잃은 상태이지만, 어째서인지 '야구자'라는 괴물을 모조리 처단해야 한다는 강한 집념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빙귀는 여러 시민들의 몸에 '빙의'해 가며 잃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빙의 시스템은 초반 튜토리얼에서 착실히 알려주며, 상당히 쉬운 규칙을 가지고 있다. 길이 가로막혀 있을 때, 반대편 시민에게 빙의하는 등 길을 진행하는 핵심 요소로도 활용되며, 전투 도중에는 주변 시민의 몸으로 바꿔 가면서 적의 빈틈을 노리거나, 한숨 돌리는 등 전략적인 활용도 가능하다.

또 하나, 게임 속에서 중요한 세계관 요소는 '희귀체'라는 존재다. 구룡의 시민들 중에는 빙귀와 더욱 잘 호환(?)되는 신체를 가진 이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에게 빙의할 경우 더욱 강력한 힘으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신체가 없는 주인공의 특성상, 여러 희귀체들의 입장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이 게임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네온사인 즐비한 '구룡'의 거리

'시민을 직접 플레이한다'는 개념은 과거의 존재한 두 개의 오픈 월드 게임을 연상하게 한다. '프로토타입' 시리즈와 '워치독스: 리전' 정도가 그 적절한 예시일 것이다. 그러나, '야구자'는 기본적으로 그 두 개의 게임과는 다른 접근법으로 게임을 풀어내는 노력을 보인다.

가령, '프로토타입'의 주인공에게 있어 시민의 몸에 빙의하는 것은 그저 특정 행동을 하기 위한 기믹 요소에 그쳤다. 어떤 시민의 몸에 들어가든 주인공이 가진 슈퍼(안티)히어로적 기술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워치독스: 리전은 '평범한 이들'을 동료모은다는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시민들 저마다 개성을 불어넣으려는 시도를 취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났던 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야구자'에서 빙의는 그 두 게임의 교집합같은 느낌을 준다. 희귀체가 아닌 시민은 거의 아무런 특징이 없는 소모품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저 막힌 길을 넘거나, 야구자의 공격을 피하는 정도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다가 땅에 있는 다른 시민에게 옮겨가면. 주인공은 안전하지만 떨어진 시민은 죽는다(세상에!). 그뿐이랴, 희귀체 중에는 시민을 시한폭탄으로 사용하는 능력을 찾춘 녀석도 존재한다.

▲ 응~ 빙의하면 그만이야

▲ 시민을 폭탄으로 쓰는 정의의 사도라니

반면 희귀체들은 개성있는 액티브, 패시브 스킬을 지녔을뿐더러, 각자 배경 이야기를 가지고 핵심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역할을 한다. 결국, 여러 명의 주인공이 '야구자' 사건과 관련된 핵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편하다.

출시 전에는 이러한 희귀체를 마치 수집형 RPG마냥 찾으러 다니는 게임이 아닐까 하는 오해의 소지도 있었지만, 희귀체는 다분히 스토리 진행과 함께 순차적으로 풀리는 시스템을 취하고 있다. 정해진 희귀체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된다.

▲ 희귀체는 저마다 개성 있는 공격으로 전투를 이끌어갈 수 있다


많은 것을 담고 싶었던
하지만, '거의 모든 것'이 부족한


과거 홍콩을 연상케 하는 매력적인 도시, 그 이면에서 펼쳐지는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솔직히 '야구자'는 거의 모든 면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임이다. 몇 세대 전 콘솔 게임처럼 보이려는 것이 개발진의 의도였다면, 굉장히 정교하게 원하는 바를 성취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발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와 의사결정이 오갔는지 알 방법이 없고, 개중에는 콘셉트 유지를 위해 지독하게 지킨 개발 기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게임에는 '타협'의 결과처럼 보이는 부분이 아주 많다. 주요 컷신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든 캐릭터의 더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등장인물의 거의 모든 대화 장면은 추임새 음성만 들어가 있다. 처음에는 게임만의 특징이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몰입감을 저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스테이지도 제약이 심한 편이다. 네온사인 간판이 그득한 홍콩의 거리를 보여주는 비주얼은 훌륭한 편이나, 같은 스테이지를 상당히 여러 차례 플레이하도록 게이머를 강제한다. 어찌나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타임 루프' 기믹까지 보여주는데, 결국 같은 시간대를 반복한다는 설정으로 플레이어가 똑같은 스테이지를 여러 차례 클리어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장치로 쓰이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 기괴함보다는 웃음이 더 먼저 나오게 하는 야구자들

캐릭터 모델링은, 말할 것도 없다. 일발 시민들은 물론이거니와 희귀체라는 인물들의 개성도 두드러지지 않는다. 도시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 군상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노력은 십분 이해하나, 수 세대 전 게임의 모습처럼 보이는 느낌을 지우기는 역부족이다.

이처럼 '야구자'가 보여주는 부족한 부분은 너무나도 많아서, 한 번 시작하면 온종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다. 전투? 대박이다. 튜토리얼 전투만 해보고 너무 놀란 나머지 바로 환불 버튼을 눌렀다 해도 누가 그를 탓할 수 있으리.

이 문제 대부분은 게임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빙의를 통해 여러 신체를 옮기며, 적의 허점을 포착하는 규칙, 희귀체라는 존재를 통해 저마다 독특한 방식의 전투를 구사하는 것. 듣기만 했을 때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신선한 콘셉트다. 그러나 아무리 신선한 콘셉트라고 해도 허공을 가르는 듯한 타격감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패링 시스템, 적은 수의 적 종류, 소름끼치도록 과거에 머물러 있는 모델링 등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여러 모자란 부분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점을 꼽으라면, 여러 희귀체들이 가진 배경 이야기와 저마다 다른 야구자에 대한 태도가 이야기에 잘 녹아있다는 것이다. 야구자에게도 선한 면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보이는 족족 죽여야만 한다는 사람, 그저 빙귀와 만나니 강해진 힘이 좋은 사람 등 다채로운 성격들이 게임에 깊이를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초반 뿐이지, 느닷없이 동료로 등장하는 희귀체들이 늘어날 수록 앞으로의 이야기가 걱정되기만 한다.

▲ 전투도... 보기보다 할만하다. 그래도 기대치를 좀 낮추자



누가 그랬더라, 실소도 웃음이라고
B급으로도 설명이 어려운, 취향 타는 게임

▲ 거의 모든 연출이 예스럽다. 그래서 웃음이 난다

지금까지 부족한 점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했지만, '야구자'는 정말 이상한 게임이다. 불평하면서도 컨트롤러를 놓지 못하게 하는 기묘한 매력이 있다. 이렇게 부족한 게임이 재미가 있어도 되나? 보아하니 그럴 수도 있는 것 같다.

분명, 모든 요소를 하나씩 뜯어 보면 부족한 점만 보이는데, 막상 계속 게임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 상당히 무서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점점 게임 특유의 이상한 감성(?)이 자꾸 입가에 웃음을 짓게 한다. 이럴수가, 야구자가 내 머리도 대체해버린 게 아닐까.

'킹받다'는 용어는 이제 특정 세대의 신조어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사용되는 단어가 됐다. 이제 우리는 '열받는다'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현상에 대해 '킹받는다' 말고 다른 단어를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야구자'는 열받는다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 '역시 사이렌 개발자'다 싶은 기믹까지도...

이 게임은 눈으로 보여지는 부분 외에, 더 많은 부분이 수 세대 전 콘솔 게임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져 있다. 캐릭터 모델링만 낡아보인다는 게 아니라, 이야기 흐름, 콘셉트,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9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한 점도 어우러지며 '타임머신'을 탄 듯한 느낌까지 전달한다.

이미 그 부분에서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데,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인간의 뇌를 먹어치우는, 무시무시한 생물이 사람 사이에 섞여 사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생각했다면, 당신은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그 이상 따지지 말자. 작은 부분까지 집중해 보려고 하면, 실망감만 늘어날 뿐이니까.

▲ 치명적인 척 너무 열받아 진짜

요컨대, 사람들의 머리가 쪼개지면서 괴물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 게임이 공포 태그를 달고 있는 것은 대단히 불합리한 처사다. 컷신 일부는 조금 공포스러울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코미디에 더 가깝다. 야구자의 생김새도 그리 무섭지 않고,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마다 폼 잡는 주인공 장면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만 난다. '킹받지 않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누가 그랬더라, '실소도 웃음'이라고. 어이가 없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오지만, 그닥 싫지는 않은 기분이다. 게임이 전하는 감성이 자신의 취향이라면, 그리고 위에 나열된 일련의 문제점을 모두 안고 갈 수 있다면, '야구자: 슬리터헤드'는 꽤 재미있는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 절대 모두를 위한 게임은 아니지만, 취향이 맞으면 꽤 인상적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