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물, SRPG. 둘 다 취향을 매우 타는 소재들이다. 그럼에도 오래도록 게이머들 사이에서 화자되는 장르로 남아있다. 그 옛날 작품부터 이어진 추억과 로망, 그리고 그 소재만이 낼 수 있는 특유의 '맛'은 어떻게 대체할 수 있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소재 모두 특색이 강하고 취향도 타는 만큼, 이를 섞어서 빚어내려는 시도는 많지 않았다. 메카물하면 파일럿들이 딱 봐도 조종하기 어려운 거대한 병기에 물아일체해서 화끈하게 적과 싸우는 맛을 살리는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던가. 반면 SRPG는 행동이 극도로 제한된 상태에서 기물과 전황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수싸움이 바탕이 되는 장르다.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만큼 조화시키기가 가까다롭다.
물론 그 소재에 추억을 갖고 있는 개발자들이 자신들의 로망을 원없이 담아낸 작품들은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지난 10월 30일 출시된 '메카아라시'도 어찌 보면 그런 사례였다. 그러나 '메카아라시'는 조금 달랐다. '메카물'이라는 소재를 'SRPG'의 전략성을 한층 더 색다르게 풀어내는 것에 주력, 최신 트렌드와는 다르게 신중하게 한 수 한 수 무거운 고뇌와 함께 두게 만드는 특유의 전략성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게임명: 메카아라시
장르명: SRPG
출시일: 2024. 10. 30.
리뷰판: 출시 빌드개발사: 블랙잭 스튜디오
서비스: 즈룽게임
플랫폼: PC, 모바일
플레이: PC, 모바일
파츠 단위로 관리하는 셈법
익숙한 개념을 틀어 빚은 전술의 깊이
처음 메카아라시의 전투 화면에 들어섰을 때, 얼핏 봐서는 여타 SRPG와는 비슷한 느낌이다. 원래는 캐릭터가 자리잡고 있는 전장이 메카로 바뀌었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띈다고 할까. 그 겉모습을 훑어보고 난 뒤, 스탯창을 보는 순간부터 '메카아라시'의 차이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본 HP 외에도 팔과 다리 등 여러 파츠가 나뉘어서 HP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통상 SRPG에서는 어느 한 캐릭터의 HP가 0이 되거나 혹은 상태이상에 걸리지 않는 한 전투를 속행할 수 있다. 그렇지만 '메카아라시'는 달랐다. 어느 한쪽 팔이 파괴되면 해당 파츠에 달린 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거나 양손 무기는 명중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리고 다리가 박살나면 기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전체 HP로 보면 전투를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어보이지만, 전투력이 현저하게 떨어져서 원활한 전투가 불가능하다. 다만 콕핏이 있는 몸통의 HP가 0가 되면 다른 파츠와 상관 없이 전투불능이 되어 전장에서 이탈하게 된다.
각 파츠별로 HP가 나뉜 것처럼, '메카아라시'는 대미지 공식도 조금 달랐다. 물론 각 게임마다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여러 스탯의 비중을 다르게 고려해서 대미지 공식을 산출하곤 하지만, 어느 하나의 HP에 그 공식에 대입한 수치가 들어가기 때문에 계산하기 쉽다. 그러나 '메카아라시'는 각 파츠로 분산이 되어서 더욱 낯설게 느껴진다. 그 공식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소위 '킬각'을 잡기 어렵다.
여기에 돌격수, 저격수, 격투가, 전술가, 수호자, 기계공 등 파일럿의 직업과 메카가 장비한 무기의 특성까지 고려할 필요도 있었다. 돌격수는 통상 공격이 다단히트로 각 파츠에 고루고루 들어가는 기관총이나 샷건류를 활용하는 반면, 저격수나 격투가는 비교적 취약한 파츠에 한 방을 꽂아서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쪽에 특화되어있었다.
그 중 저격수는 사거리가 길고 특정 파츠를 핀포인트로 저격하는 정밀 사격 스킬도 있지만 바로 앞에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없고, 격투가는 바로 근처에 있는 적만 타격할 수 있다는 점이 달랐다. 전술가는 로켓런처 등 어느 특정 파츠가 아닌 광역으로 타격하는 무기를 주로 활용하고 수호자는 탱커, 기계공은 지원으로 보면 무방한 느낌이었다.
앞서 '명중률'을 언급했지만, '메카아라시'는 엑스컴처럼 지형의 차이나 엄폐물이 명중률에 차이를 두는 시스템은 아니다. 특정 기믹이나 스탯에 따라 명중률이 달라지고, 해당 명중률은 각 공격 타수마다 적용됐다. 즉 다단히트로 들어가는 공격은 좀 더 맞을 확률이 높은 만큼 명중률이 낮을 때는 다른 무장을 활용해서 타격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이렇듯 파일럿의 역할군과 탑승한 메카의 장비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적을 야금야금 전투불능, 그리고 파괴해나가는 것이 '메카아라시'의 독특한 전술이었다. 적 격투가의 다리를 봉쇄한 뒤 원거리에서 차근차근 요리한다던가, 전술가는 로켓런처가 달린 팔을 박살낸 뒤 다른 적부터 처리하는 등 일반적인 게임과 다소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반대로 적도 이러한 문법에 입각해서 공격해오기 때문에 이에 맞춰 대응하는 전술전략을 짜면서 차근차근 접근해야 했다. 모든 RPG가 주력 딜러는 최대한 안 맞고 탱커가 받아내면서 서포터가 필요할 때 지원해주는 것이 이상적인 구도 아니던가. 특히 '메카아라시'는 아무리 HP가 높아도 아군 기체의 어느 한 파츠가 손상되는 순간 수가 꼬여버리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했다.
업적작이 필요한 레벨업
되짚어보면서 음미하는 특유의 전략
물론 자신만의 전략전술의 묘미를 담은 모바일 게임은 이전부터 계속 등장해왔다. 다만 대다수가 어느 정도 이상 스탯이 올라가게 되면 그저 밀어붙이는 양상이 되고, 그 시점을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앞당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일부 장르를 제외하면 모바일 게임 유저들이 여러 게임을 짧고 다양하게 즐기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카아라시'는 고집스럽게 그 전술과 전략을 계속 체감하면서 나아가도록 유도했다. 어떤 게임사건 콘텐츠 소모 속도를 늦추기 위해, 그리고 유저들이 차근차근 게임을 풀어가도록 하기 위해 여러 제약을 거는데, 그걸 좀 더 강화시켰던 것이다.
일례로 수집형 RPG 중에는 캐릭터 레벨을 계정 레벨 이상으로 올릴 수 없게 제한하는 사례도 있다. 별도로 과금을 한 뒤에 여러 던전을 추가로 돌고 파밍하는 수고까지 들이지 않는 한 캐릭터의 육성을 어느 정도 막아두는 장치를 한 것인데, '메카아라시'는 여기서 한술 더 떴다. 계정 레벨이 아닌 '허가증'으로 분류했는데, 그 말처럼 지정된 미션을 수행하지 않으면 상위 허가증이 나오지 않았다.
허가증 레벨이 높아지지 않으면 캐릭터 레벨 제한도 풀리지 않고, 자연히 장비 파밍이나 그 모든 루틴이 제약이 생긴다. 그걸 풀 방법은 지나온 스테이지의 업적을 다 달성하는 등 개발진이 내건 조건들을 다 푸는 것 혹은 일일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얻는 소량의 경험치를 누적하는 것뿐이다. 그마저도 일일퀘스트는 극히 소량으로만 경험치를 주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빠르게 돌파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개발진이 제시한 방향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튜토리얼을 강제로 시키는 것보다 더 강제적이긴 하지만, '메카아라시'는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의 구도 자체가 굉장히 독특했다. 공격할 때는 적을 킬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로 타격을 입혀두고 다른 타겟을 노릴지 체크해야 했고, 그러면서 이후 턴의 파츠 손실과 회복 동선까지 확실히 봐둬야만 했다. 약간의 손실이 굉장히 큰 스노우볼이 굴러가는 구도였기 때문에 더더욱 신중하게, 더더욱 전술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성장 자체도 과금으로 재화를 쌓는다고 해서 급속도로 진행되는 구조도 아니었다. 허가증 레벨을 높이지 않으면 레벨 제한이나 콘텐츠가 안 풀리고, 자연히 캐릭터의 스탯도 일정 수치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특히 개발진의 전작이 캐릭터 상위 스킬을 뚫으려면 레벨뿐만 아니라 상위 스테이지에서 나오는 재료들이 필요한 구조인데, 이를 고스란히 가져온 만큼 상위 스테이지를 어떻게든 공략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아무리 전략이 중요하다 해도 적의 반격을 받아내고 공격도 한 번은 받아낼 정도의 스탯은 쌓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또 미션을 달성해야 하는 연쇄작용이 벌어졌다.
어지간하면 이런 부분을 단점으로 두겠지만, '메카아라시'는 자신의 특유의 전략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그 모든 것이 다듬어져있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게임의 전반적인 구조가 확실히 잡혀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단점이라기보다는 특색으로 봐도 무방했다. 어느 정도만 육성하고 바로 고속도로를 뚫는 게 아닌, SRPG 특유의 수를 읽고 턴을 사용하는 그 특유의 재미를, '메카닉'이라는 소재와 함께 확고히 다져나갔기 때문이다.
묵직한 SRPG, '메카아라시'
느린 템포를 잡아줄 운영이 관건
이미 블랙잭 스튜디오가 '랑그릿사', '아르케랜드' 등 퀄리티 있는 SRPG를 선보였던 만큼, 이번에 선보인 '메카아라시' 또한 그만한 재미를 보여줄 것임은 분명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실력을 다시 증명했다.
물론 아쉬움도 남았다. 메카물의 핵심인 '파츠'를 게임 내에서 강조했는데, 그 파츠를 커스터마이징해서 자신만의 기체를 만드는 또다른 재미는 많이 퇴색된 느낌이었다. 이를 메카의 파츠로 보기보다는 장비나 룬 세트처럼 풀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SRPG 유저라면 친숙하지만, 메카물에 좀 더 관심을 가진다면 다소 아쉬울 여지가 있다. 아울러 각 파일럿마다 주무기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무기 선택의 폭도 생각보다 좁았다.
게임의 퀄리티와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게임 템포를 극단적으로 조절하는 구성도 양날의 검으로 보였다. 최근 모바일 게임 트렌드는 빠르게 궤도에 올린 뒤 숙제를 하다가 큰 이벤트 때 집중하는 양상이지 않던가. 그러나 블랙잭 스튜디오는 그와는 동떨어진 양상을 줄곧 보여왔다. 차근차근 이야기를 진행하고 게임 내 여러 요소도 천천히 풀어가면서 몸에 익숙해질 때 하나둘씩 콘텐츠를 푸는 것이 그들의 문법이었고, 그에 맞춰 나온 콘텐츠 설계는 '메카아라시'에서도 동일했다.
그 느린 템포를 발맞추면서 차근차근 나아가게 할 만큼 '메카아라시'의 전략성은 있으나, '수집형 RPG'라는 부분에서 보면 매력을 더 끌어올릴 준비가 필요했다. 캐릭터를 뽑고 메카를 뽑게 만들려면, 성능 외에도 수집욕을 자극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필요한 게 최근 모바일 게임계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근미래, '스톰스틸' 합금이 발견되고 이를 노리기 위해 각국 그리고 무장 세력들이 각축을 벌이는 구도 자체는 메카물을 즐기는 유저에겐 친숙한 이야기다. 그 핵심 기술을 보유한 사람 중 한 명을 죽였다는 누명을 쓴 주인공 케이든이 이런저런 음모에 휩쓸려서 실험체가 되고,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규합해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싸운다는 구조도 클리셰 그 자체긴 하다. 이는 곧 그만큼 잘 다듬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메카아라시'는 개발진의 이전작에 비해 번역에서 오류가 나거나 더빙이 어색한 경우는 많이 줄었지만, 세계관의 전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각 캐릭터의 특색을 충분하게 보여주지 못했다. 갑자기 플레이어블 캐릭터들을 너무 죽여대서 수집욕을 꺾어버리는 건 조금 줄였지만, '수집형' RPG에서 캐릭터가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좀 더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여러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특히 콘텐츠 소모 속도가 느리다는 건 어느 한 캐릭터를 뽑고 별도의 과금이 없으면 다른 캐릭터를 뽑기까지 텀도 길다는 뜻이기도 한데,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유저의 눈길을 붙잡을 수단이 더더욱 필요했다. 더군다나 '메카아라시'는 요즘 수집형의 트렌드 중 하나인 리세마라에 친화적이지도 않다는 약점도 있었다. 전략과 전술의 묵직한 맛이 있지만 느리게 음미하면서 즐겨나가야 하는 게임인 만큼, 그 맛을 온전히 끝까지 즐기게 하기 위한 운영 그리고 매력을 어필하는 것이 '메카아라시'에 앞으로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