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K-블록체인 '골든타임' 지났을까
박광석 기자 (Robiin@inven.co.kr)
2024년엔 국내에도 블록체인과 관련하여 다양한 새소식이 있었다. 국내에서 KBW와 UDC 등 국내외 블록체인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규모 컨퍼런스도 개최됐고, 인천과 부산, 제주도 등 시도 단위로 합심하여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을 위해 힘을 쏟겠다고 발표하는 등, 블록체인 산업 규모의 확대를 기대해 볼 수 있는 소식이 여럿 전해졌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성과들과 달리 산업의 성장률 지표는 매년 낮아지고 있고, 넘어야 하는 산 역시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다.
한국의 블록체인 업계가 멈춰있는 곳은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17년 12월이다. 당시 정부는 가상통화 관련 대책을 발표했고, 가상자산 관련 범죄의 엄중 단속을 예고하고 나섰다. 이때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나 투자가 함께 금지되어 은행이 실명계좌를 관리하게 됐는데, 이때 시행된 금융자본과 가상자산업의 분리가 7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이 성장의 걸림돌이 됐다.
업계 전문가들은 특정금융정보법 도입으로 은행이 실명계좌 발급을 담당하게 됐고, 여전히 법인 대상 계좌가 발급되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블록체인이라는 시스템 특성상 어떤 활동의 대가가 토큰으로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국내에서는 이러한 배경 탓에 이를 현금화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가 이어지자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 블록체인의 골든타임이 지나가 버리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 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13년 블록체인 산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블록체인 산업 자체는 꾸준히 성장 중이나, 성장률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19년 187.4%에 달했던 블록체인 산업 성장률은 2022년 37.7%로, 2023년에는 7.7% 수준으로 둔화한 상황이다. 혁신을 주도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블록체인 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결과인 셈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ICO 활동이 전면 금지되어 기업이 자금을 만들어낼 방법이 없으니, 블록체인 기술 인력 대부분이 싱가포르나 홍콩 등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이다. 블록체인 개발자의 이탈이 가속화되면 그나마 소폭으로 계속 성장하던 국내 블록체인 산업의 성장세가 머지않은 미래에 꺾여버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최근 친 가상자산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며 미국에서 가상자산 규제의 명확성이 확립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고, 비트코인은 역사적인 '10만 달러'를 기록하며 단순 가산 가치 이상의 상징성을 증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세계는 가상자산 제도의 정비와 블록체인 산업 지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로 알려진 블랙록(BlackRock)은 투자 포트폴리오에 비트코인을 최대 2%까지 편입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산운용 시 비트코인이나 가상자산을 포트폴리오에 넣는 게 국제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으나, 국내에선 오랜 규제 탓에 국제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글로벌 대세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그리고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국내에서도 하루빨리 국제적인 프레임워크를 참고하여 가상자산 관련 규제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