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침이 밝아오는 줄도 모르고 계속했던 플레이. 충격적인 전개에 몇날을 여운에 몸살앓았던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위대한 프랜차이즈의 출발까지.

플레이어 저마다 올드 게임에 대한 추억 하나씩은 품고 산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가 됐다. 게임 구매는 더욱 쉬워졌고, 과거의 추억은 디스켓이나 CD를 대신해 쉽게 전송이 가능한 데이터 형태로 기록되어 영원히 남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과거 게임을 구하기 쉽지 않다. 나아가 스팀이나 온라인 게임 스토어에서 구매했다고 생각한 게임도 사실은 대여권에 지나지 않는다. 플랫폼이 사라지면 라이브러리 속 게임 역시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실질적인 소유권과 함께 게임을 영원히 플레이 가능한 기록물로 남기고자 하는 GOG의 '굿 올드 게임 보존' 프로그램 은 추억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살 수 있는 올드 게임은 13%뿐, 사도 내 것이 아니다
오늘날 온라인 배급 서비스의 대표로 불리는 스팀은 2003년 세상에 등장했다. 당시만 해도 밸브의 핵심 게임이 될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중심으로 DRM 관리와 업데이트 배포가 목적이었다. 이후로도 하프라이프2 독점 배포 등으로 유저가 늘었지만, 본격적인 성장의 계기는 서드파티 게임이 지원된 2007년이었다. 특히 2010년대에는 글로벌 서비스와 여러 인디 게임의 성공, 스카이림으로 대표되는 대작의 입점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 대체 불가능한 ESD가 되었다.

스팀을 대표로 하는 온라인 마켓은 게임의 접근권을 준다. 게임을 다운로드해서 즐기는 만큼 별도의 실물 제작이 필요 없고, 별다른 이유가 없다면 수량 제한 없이 판매할 수 있다. 또 영원히 게임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스팀의 본격적인 활성화 이전의 게임은 다르다. 게임의 역사적 기록과 보존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비디오 게임 역사 재단(Video Game History Foundation)'의 연구에 따르면 2010년대 제작된 게임 중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게임은 전체 게임 중 13%에 불과하다. 나머지 87% 게임은 데이터 손실로 역사 속에만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일각에서 불법 다운로드와 소유권 없는 롬파일을 통한 에뮬레이션 등이 오히려 게임의 생명을 이어가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기도 하다.

사진: 비디오 게임 역사 재단

단, 온라인 마켓에서 직접 산 게임이라고 영원히 구매자의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 게임을 비롯해 영화, 음악, e북 등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게임들은 구매자에게 직접 소유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판매자, 퍼블리셔, 혹은 온라인 마켓의 사정에 따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에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이런 콘텐츠에 구매라는 표현 대신 사용권(라이선스)을 얻는다는 것을 명시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오늘날 크게 활성화되어 간과되기 쉽지만, 내가 구매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DRM 없는 게임, 실질적 소유권으로
DRM 없는 게임 판매를 구축한 GOG의 게임 판매는 온라인 마켓의 소유권과 보존에 관한 의미를 떠올리게 한다.

게임 위쳐 시리즈로 유명한 CD 프로젝트는 폴란드에서 공식 라이선스를 얻어 게임 CD를 판매하는 첫 수입업자였다. 불법 복제가 만연한 시장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처음으로 현지화도 진행했고 2008년에는 배포 서비스 굿 올드 게임즈(Good Old Games)를 선보였다. 이게 오늘날 GOG의 시작이었다.

처음부터 GOG는 DRM 없는 게임 배포를 목적으로 했다. 정확히 말해, DRM이 없다는 게 게임의 소유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GOG 역시 여타 온라인 마켓처럼 소유권 대신 사용권을 판매한다.

하지만 DRM이 없으면 이용자는 게임을 플레이할 때 별도의 인증을 할 필요가 없다. 스팀이나 어떻게든 자사 런처를 활성화시키려는 별도의 앱도 필요 없다. GOG 갤럭시 앱으로 스팀처럼 구매한 게임을 관리할 수는 있지만, 필요 없다면 구매한 게임 폴더에서 실행 파일을 실행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GOG는 구매한 타이틀이 잠기거나, 소유권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GOG가 말하는 구매한 물건의 소유, DRM-free를 통한 실질적 소유를 제공하는 셈이다. 그리고 올드 게임의 범주를 넘어 최신 게임 역시 DRM 없이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GOG는 이제 단순한 소유를 넘어, 영원한 플레이 경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게 'GOG 보존 프로그램'이다.

실제 개발자들은 떠난 회사의 게임,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나 개발자의 지원이 중단된 게임. GOG는 이러한 타이틀이 최신 시스템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도록 GOG 보존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해서 지원된다.

▲ 최신 시스템에서는 실행 되지 않는 게임들, 그 문제를 마켓이 나서서 해결한다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3: 컴플리트'에는 새로운 언어 추가와 최신 윈도우 호환성 확대를, 리메이크 이전의 바이오하자드 1-2-3 번들에는 향상된 다이렉트X 렌더링과 함께 신규 랜더링 옵션을 추가했다. 과거 배틀넷에서도 구매할 수 없었던 '디아블로1'은 업스케일 옵션이 포함된 개선 버전에 배틀넷으로 온라인 플레이가 가능한 클래식 버전을 제공했다. 여기에 확장팩 '헬파이어'를 무료로 추가해주기도 했다.

GOG는 11월 발족한 GOG 보존 프로그램 이전에도 현세대 시스템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지원을 이어왔다. 이번 보존 프로그램은 더 엄격한 품질 기준을 적용하며, 장기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 GOG는 시간이 지나며 잊혀지고, 호환되지 않고, 플레이할 수 없는 게임들의 최신 지원으로 추억을 보존하고, 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GOG, 게임의 영원한 플레이를 말하다
게임의 영원한 플레이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GOG지만, 서드 파티 마켓으로서의 제한도 가진다. 개발사, 혹은 퍼블리셔와의 상황에 따라 게임의 판매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GOG는 블리자드의 게임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워크래프트1)'과 '워크래프트2'의 판매가 오는 13일부로 종료된다고 밝혔다. 디아블로1과 워크래프트1&2는 블리자드 배틀넷에서도 판매되지 않았던 게임인 만큼 GOG가 오늘날의 PC에서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며 그 역사를 이어왔다.

이제 블리자드는 일부 국가에서 배틀넷을 통해 오리지널 워크래프트1&2를 판매한다. 최근에는 두 게임의 리마스터 버전을 출시하고 서비스하기도 했다. 블리자드가 자사 온라인 마켓이자 플랫폼인 배틀넷을 운영하고 집중하는 만큼 GOG를 통한 추가적인 서비스 필요성이 낮아진 점이 이유로 꼽히는 상황이다.


GOG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GOG 보존 프로그램 의지를 뚜렷이 했다. 영원히 살아있는 게임을 보존하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게 항상 바람처럼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그 사명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새롭게 GOG에서 더는 판매되지 않는 게임의 GOG 보존 프로그램 방침을 새롭게 알렸다. 이미 게임을 구매한 유저들이 있는 만큼, 상점에서 내려간 게임도 동일하게 시스템 호환성과 플레이를 유지하는 버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DRM이 없는 만큼 별도의 런처 없이 오프라인에서 계속 게임에 접근할 수 있다.

스팀의 성장과 함께 여타 ESD의 영향력은 힘을 내기 어려운 시장이다. 특히 GOG는 모회사인 CD 프로젝트가 게임 개발에 더 집중하고, 성과를 내오고 있는 만큼 거대 회사의 온라인 마켓보다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GOG는 지난 2019년 정리 해고와 함께 적자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렇기에 보존 프로그램의 의미는 GOG라는 한 ESD의 특별한 지원 서비스로 그쳐선 안된다. 이제는 영리적 측면을 넘어, 게임의 역사적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업계 전체가 그 가치를 고민해 볼 때이다. 디지털로 영원히 남길 수 있음에도, 게임이 그저 과거의 추억, 혹은 사라진 이야기로 남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