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에 서브컬쳐 게임의 파도가 한 차례 몰고 간 이후, 이제 '서브컬쳐'는 마이너 오브 마이너가 아닌, 하나의 경쟁력 있는 장르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2020년 '원신'을 시작으로 자신의 애정 캐릭터를 어떠한 경계도 없이 풀 3D로 자유롭게 조작하며 모험을 하는 방향까지 발전해나갔죠. 여기서 더 나아가 자유도는 좀 낮추되 JRPG식으로 턴제를 넣는 식으로 변주하거나, 자신만의 액션을 추가하는 등 차별화를 꾀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물론 서브컬쳐풍 오픈월드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기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방대한 세계를 안정적으로 구축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그 넓은 세계를 꾸준히 돌아보게끔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함께 하는 갖가지 이야기거리에 이벤트를 제공해줘야 하니까요. 텐센트, 넷이즈 같은 회사들도 여러 차례 시도해서 이제 그 유형에 맞는 신작을 본격적으로 준비할 정도로 쉽지 않은 도전입니다.

그런 영역에 약 120명 정도 되는 중소 기업이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블랙스톰의 '리메멘토: 하얀 그림자'가 그 주인공이죠. JRPG 감성을 담은 오픈월드를 구현하고자 한 그들의 도전은 지난 12월 18일, 정식 출시를 통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습니다. 보험 삼아서 깔아둔 요소들을 미처 보여주기 전에 시동이 불안정하게 걸린 감은 있지만, 궤도 이탈을 막고 자신만의 노선을 다지기 위해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는 중이죠.

게임명: 리메멘토: 하얀 그림자
장르명: 턴제 RPG
출시일: 2024.12. 18
리뷰판: 1.08버전
개발사: 블랙스톰
서비스: 블랙스톰
플랫폼: PC, 모바일
플레이: PC, 모바일


클리셰라 무난한 맛의 스토리
스킵도 추가, 중반부터는 모범답안을 따라가는 중


우선 처음 '리메멘토'에 진입하면, 여타 3D 서브컬쳐 게임에 크게 밀리지 않는 무난한 캐릭터 모델링과 연출과 함께 게임이 시작됩니다. 다른 행성의 악신 '플레이오네'를 따르는 '마녀'들의 침공과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일행이라는 클리셰적인 이야기지만, 이 부분을 고유명사나 과한 꾸밈 없이 절제해서 바로 이해가 가도록 풀어낸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니모닉', '리메멘토' 등 아예 고유 명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흔히 아는 개념으로 치환해도 되게끔 해서 큰 문제는 없었으니까요. 여기에 주인공과 소꿉친구 미오네 그리고 몇몇 주요 캐릭터부터 차근차근 짚어나가면서도, 마녀의 잔혹함은 여과 없이 보여주는 연출로 여러 부연 설명 없이 바로 상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끔 했죠.

물론 일부 스킬 컷을 제외하면 비교적 담백한 느낌이라 심심하기도 하고, 무언가 거대한 이야기를 바로 체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울러 초반 주인공 일행은 서로 왜 같이 다니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도 거의 없어서 좀 허전한 느낌이긴 합니다.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제레미아나 세리에는 초반 튜토리얼 설명 외엔 마녀한테 조종당해서 트롤링만 하고, 몇 마디 거드는 거 외엔 메인 스토리에서 딱히 역할이 없죠.

▲ 대략 이런 이미지로 같이 다녔다는 걸 설명한 이후에

▲ 별다른 활약 없이 점차 비중이 공기화되는 초창기 멤버, 어딘가 익숙한 구성이

그렇지만 최근 중국발 서브컬쳐 게임이 처음부터 큰 세계관을 막 풀어내고 싶어서 여러 캐릭터들이 자기만 아는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식으로 전개되곤 하는데, 그런 게 적어서 캐릭터나 상황을 이해하기가 훨씬 편한 이점도 있었죠. 스토리에 대한 평가는 개인차가 커서 스킵하고 싶을 수도 있는데, 이후에 패치로 스킵까지 꼬박꼬박 넣는 등 유저 피드백 반영도 빠른 편입니다.

그렇게 스킵으로 넘어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중간중간에 픽업 캐릭터인 이사니아나 이후 픽업이 예정된 베아트리스가 나오는 구간부터는 한 번 훑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 최근 수집형 RPG가 캐릭터의 성능이 아닌, 주인공과 엮이면서 유저들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과정 자체도 중요시하고 있는데 그 문법을 확실히 지키면서 왕도적인 이야기를 정석적으로 풀어나가고 있기 때문이죠. 또한 각 캐릭터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호감도 시스템에서도 더빙은 꼬박꼬박 넣으면서 기본기를 갖춰둔 상태기도 합니다.



▲ 중반 이후 호감도 스토리 및 메인 스토리서부터 점차 감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PVP도 고려한 특유의 전략성
MP 카운팅, 가드 파괴 등 공수완급조절이 중요


이를 즐기는 구간까지 갈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스토리뿐만 아니라 게임플레이의 비중도 꽤 큽니다. 그리고 '리메멘토'의 게임플레이는 익히 잘 알려진 것처럼 턴제를 기반으로 한 오픈월드 RPG죠. 오픈월드를 탐험하다가 적과 조우해서 전투를 벌이게 되고, 그 전투는 속도 기반의 턴제 전투로 진행되는 익숙한 방식입니다.

여기서 '리메멘토'는 최근 정형화된 일반 스킬과 전투 스킬, 궁극기와는 다른 구도를 채택했습니다. 일반 스킬을 MP로 '강화'해서 1스킬, 2스킬, 그리고 궁극기까지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각각 1, 2, 3 MP씩 소모하는데, MP 수치는 파티원이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파티원이 한꺼번에 궁극기를 난사해서 전투를 그대로 끝내버리는 일은 드뭅니다. 거기다가 궁극기는 한 번 사용하면 쿨타임도 있어 MP가 있다고 무조건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적의 패턴과 대응을 예측해서 MP 소모 스킬을 배분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 각 캐릭터마다 일반 공격과 MP 소모에 따라 1, 2, 3티어 스킬을 보유하고 있고

▲ 페란시 3티어 쓸 MP 고려해서 일반 공격으로 넘어간 뒤 리필, 클로에 3티어까지 하면 완벽했지만 쿨이었을 줄은

여기에 속성의 상성을 한층 더 강조하는 '가드 브레이크'도 키포인트입니다. 상극인 속성으로 쳤을 때 가드 게이지가 깎이고, 0가 되면 가드 브레이크로 그로기가 되어 한 턴을 쉬게 되는 시스템이죠. 즉 바람 속성 캐릭터에게 불 속성으로 공격하면 가드 게이지가 깎이는 그런 방식입니다. 피해를 좀 더 받고 덜 받고가 아니라 아예 한 턴을 쓰지 못할 정도로 속성 페널티가 강하기 때문에, 여러 속성 덱을 육성하고 연구하게끔 유도했죠.

최근 등장한 서브컬쳐 오픈월드 RPG 대다수가 PVP가 없는데, 비동기식이긴 해도 PVP가 마련된 것이 '리메멘토'의 또다른 특징입니다. 그래서 처음 '리메멘토'를 접할 때는 우려 반 기대 반이었죠. PVP가 분명 PVE와는 전혀 다른 재미를 주고, 또 유저들 스스로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면서 빌드업하기 때문에 적은 리소스로도 효율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경쟁의 피로감이 쌓이고, 그게 캐릭터나 게임에 대한 애정을 넘어서는 순간 이탈할 확률이 높아지기도 하죠.

▲ 상성 속성으로 때려주면 가드 수치가 저하되고, 0이 되면 가드 브레이크가 되어 한 턴 쉬어야 한다

특히나 최근 서브컬쳐 수집형 오픈월드 RPG는 캐릭터와 함께 이야기를 풀고 몰입하는 경험 자체를 중시하는 터라 그럭저럭 성능만 갖춰지면 어떻게든 쓸 수 있는 식으로 설계를 하는데, PVP는 얘기가 좀 다릅니다. 그렇게 느슨하게 구성하면 소위 '먹잇감'이 되기 쉽죠. 그래서 자연히 센 캐릭터를 찾게 되는데, 그 센 캐릭터를 상성 속성으로라도 최소한의 대처는 할 수 있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그 센 캐릭터가 너무 말도 안 되는 스킬을 들고 오게끔 조율하는 것도 필요하죠.

그 부분에서 '리메멘토'는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 선을 그은 상황이긴 합니다. 통상 수집형 오픈월드 RPG가 2돌-전무 등 가성비 세팅을 했을 때 그 위력이 무시무시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리메멘토'는 그 모델은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용어가 다소 다르게 설정이 되어서 헷갈리지만, 타 게임에서 말하는 '돌파'는 '리메멘토'에서는 액티브 스킬 레벨업을 올리는데 사용됩니다. 그래서 동일 캐릭터를 많이 뽑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파고 보면 그 돌파 재료가 동일 캐릭터를 뽑는 것뿐만 아니라 각종 콘텐츠를 수행해서 얻는 재화로 교환해서 얻을 수 있고, 스킬 레벨업을 했을 때 수치가 조금 강화되는 정도로 밸런스를 조절한 상태죠.

또 PVP 보상도 랭크에 따라 받는 격차를 줄이고, PVP 보상 수령 주기를 주간보다 더 길게 잡아서 그 중요도를 우선 낮춰둔 상태입니다. 여타 서브컬쳐 수집형 RPG처럼 돌파 재료 획득 및 일일퀘 진행을 위한 숙제 정도로 넘어가게끔 해서 스트레스를 줄인 것이죠.

▲ 동일 캐릭터 혹은 위광으로 스킬 레벨업을 하고


▲ 위광 보상은 PVP에서 승패 상관 없이 주간 15전으로 조건을 맞춰놨다


보상은 풍성하지만 얕은 기믹과 필드
다소 엉킨 파밍 체계가 빚은 언밸런스한 스노우볼


아마 그간의 서브컬쳐 오픈월드 RPG를 기대했다면 '리메멘토'가 낯설었을 겁니다. 서브컬쳐 오픈월드 RPG의 시대를 연 '원신'이 그간의 일반적인 수집형 RPG와는 전혀 다른 문법을 제시했고, 그 문법이 서브컬쳐 오픈월드 RPG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바로바로 주는 보상 자체가 적고 효율적인 BM 패키지로 과금을 유도하지 않는 대신, 게임 자체 퀄리티와 캐릭터의 매력 어필로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돈을 쓰게끔 한다는 정공법은 서브컬쳐 오픈월드 RPG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입니다.

'리메멘토'도 그 전략을 일부 따라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규모에서 밀릴 수밖에 없긴 합니다. 그래서 이전 세대의 수집형 RPG 문법도 더하면서 차별화를 꾀하는 한편, 보상을 이리저리 뿌리고 또 필드 내에도 다양한 보상을 넣어두면서 유저들이 좀 더 필드를 둘러보고 게임을 붙잡게끔 유도했습니다. 이런저런 초반 오류를 수정하다 보니 보상이 좀 많이 늘어난 것이긴 한데, 어쨌거나 그런 다양한 보상에 리세마라도 간소화되면서 다시 한 번 '리메멘토'의 세계를 둘러볼까 하는 반응이 커뮤니티에서는 점점 보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둘러본 '리메멘토'의 월드는 얼핏 보았을 때 나쁘지 않았습니다. 월드의 그래픽이나 디자인은 잘 꾸며놨고, 탈것을 타고서 이리저리 달려가는 감각도 나름 잘 구현한 편이었죠. 벽타기가 없는 건 아쉽지만 점프로 폴짝폴짝 거리는 맛은 있고, 각 속성을 이용한 퍼즐이나 마법 회로 등 기믹은 나름 짜임새가 있는 편이었습니다. 보상도 뽑기권을 비롯해 꽤 쏠쏠하게 들어와서 찾아다니는 맛도 있고요.

▲ 벽타기는 안 되지만 필드를 이리저리 타고 돌아다니면서 기믹을 풀어가는 맛은 있다

▲ 필드 중간중간 보이는 기믹이나 퍼즐을 풀면 보상도 나름 쏠쏠하다

그렇지만 그 월드의 아름다움을 체감하기에는 편의성이나 디테일이 좀 아쉬웠습니다. 맵에 워프포인트나 던전 같은 정보는 나와있지만, 벽타기가 없어서 지정된 경로 위주로 가야 하는 게임인데 그걸 잘 표현해두지 않아 종종 돌아가는 일도 있었죠. 또 각 지역의 컨셉은 나름 정해진 편이고 그에 맞춰 톤도 통일된 편이긴 하지만, 너무 통일성을 강조한 나머지 그 지역 안에 건물이나 시설이 고만고만하게 보이는 것이 좀 아쉬웠습니다.

이 부분은 사실 대부분의 업무를 거진 다 파로스 기관에서 하면서 나머지 공간의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합니다. 마을 여관이나 여러 시설은 결국 대부분 스토리만 진행하는 공간이고, 그래서 기능적으로 그런 차이를 갖출 필요는 적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몇몇 필드는 그나마 여러 보상이나 채집, 낚시를 토대로 무언가 할 거리를 주기적으로 던져줬지만, 그외의 구역은 결국 쓰임새가 확 줄어서 필드 밀도가 낮고 허한 느낌이 드는 셈이었죠. 여기에 맵에 뭐가 있나 체크할 수 있는 핀 기능이 없다거나 가시거리 밖에 있는 물체가 전조도 없이 시야 안에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는 등, 소소한 부분에서도 디테일이 부족한 모습이었습니다.


▲ UI 감추기 기능이나 스샷 찍는 기능이 없다니 이 무슨 소리요

여기에 다소 어그러진 파밍 체계가 얽히면서 '리메멘토'의 루틴이 썩 기분 좋지 않은 것도 난제입니다. 오픈월드 RPG에서 최고급 재화 수급은 부족하더라도 초반의 하급 재화는 던전을 좀 돌다 보면 풍족하게 나오는 편인데, 리메멘토는 좀 달랐습니다. 던전 등급이 올라가면서 고급 등급 재화를 캘 수 있는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리메멘토는 하급 재화 아니면 고급 재화 한 종류씩만 나오는 이전 수집형 RPG 방식이라 오픈월드 RPG를 생각한 유저에겐 다소 의외일 수밖에 없었죠. 분해 기능을 처음부터 도입하긴 했지만, 초반 재화부터 재화를 얻고 이를 활용하는데 좀 더 시간을 투자하도록 유도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나마 몇몇 재화는 필드 몬스터를 쓰러뜨려서 얻을 수 있는데, 맵에 마커 기능이 없어서 일일이 암기하거나 다른 화면에 유저들이 미리 만들어둔 공략을 찾아보게 됩니다.

아울러 이런 장르에서 최종적으로 진행하게 되는 루틴인 장비 파밍도 아귀가 좀 안 맞는 게 문제입니다. 스킬 업그레이드에 쓸 석판과 세트 장비가 같이 나오는 방식인데, 그 쌍이 좀 쌩뚱맞기 때문이죠. 공격 세트 장비에 공격형 캐릭터용 석판이 나오긴 하는데, 속도 세트 장비에는 방어형 석판이 나오는 식이거든요. PVP 때문에 속도 세트를 맞출 필요가 있는데, 그렇게 되면 방어형 석판만 가득 쌓여서 다른 곳을 또 돌아야만 하죠. 그나마 주간 보스격인 '사도'가 좀 더 좋은 장비를 떨구고 횟수 제한이 없긴 하지만, 어느 정도 덱이 완성될 때까지 시간이 좀 들기도 하고 전복될 여지도 있어서 바로 그 효과를 체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 방어세트 드롭하는 던전에서

▲ 체력 세트 필요한 치유 계열 스킬 강화 석판을 매칭시켰을 줄은

그리고 그 스킬 재화도 앞서 언급된 것 때문에 효율이 썩 좋지 않다 보니 행동력 누수가 좀 있는 편이고, 그래서 세팅을 맞추는 스트레스가 좀 있는 편입니다. 그런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PVP용 장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한 여타 게임에서는 파밍 던전에서 나오는 부속물로 새로 장비를 맞추는 등 편의 기능을 마련해두는데, '리메멘토'는 아직 그런 부분에서도 많이 불편한 편입니다.

그렇게 루틴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쾌적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보니 돌아다니는 과정 자체가 썩 달갑지 않고, 각 지역의 특징을 만끽할 포인트가 부족해서 '오픈월드'의 강점이 부각되지 않다 보니 필드를 돌아다니는 경험 자체가 얕게 느껴지는 것이 '리메멘토'의 현재 문제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부분을 이벤트로 메우는 것이 보통 오픈월드 RPG의 루틴인데, 이마저도 삐끗해버릴 수밖에 없던 상황이 치명적이었고요.


▲ 낚시, 합성 등 필요한 기초 기능은 우선 구비된 상태다


급한 불은 껐으니 기반을 다질 시간
후발주자의 이점 활용 및 개성 확보가 필요


사실 '리메멘토'가 초반에 부진했던 건, 아예 게임이 제대로 구동되지 않거나 튕기고 여러 버그가 발생하는 등 굉장히 불안정했던 탓도 큽니다. 어쨌거나 국산 서브컬쳐 신작이니 한 번 즐겨보기 위해 들어갔는데, 다소 긴 초반 스토리 컷신을 보고 나서 게임을 좀 하려고 하면 페이탈 에러가 뜨거나 어딘가에 껴서 게임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는 일들이 있었으니까요. 혹은 스마트폰에서는 텍스처맵이 적용되지 않은 회색 화면이 어떻게 해도 풀리지 않아서 그때마다 매번 재설치해야 하는 수고도 해야 했습니다. 이런 걸 해결하는데 인력과 시간이 투입된 만큼, 자연히 앞서 말한 각 지역이나 캐릭터를 어필할 추가 인게임 이벤트까지 추진력을 넣지 못한 게 '리메멘토'의 또다른 아쉬운 점이었죠.

보통 모바일 기반 크로스플랫폼 게임들이 출시 초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리메멘토'의 현 상황은 상당히 뼈아프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오류들은 출시 후 주말까지 포함해서 핫픽스를 꾸준히 하고, 23일에 버전 패치까지 적용하면서 이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입니다. 끼임 현상 자체는 아직 조금 남아있지만, 긴급 탈출 기능을 넣어서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게는 했죠. 그리고 당장 급한 문제는 각종 보상 혹은 핫타임 우편으로 빠르게 대응하는 편이긴 합니다.

▲ 초반 부족했던 부분을 패치 및 보상으로 개선, 보완해왔다

실제로 출시 초만 해도 어둠 속성 기믹은 암속성을 뽑지 못했던 유저들이 아예 엄두도 못냈었습니다. 어둠 속성 빼고 나머지 속성은 다 지급됐는데, 어둠 속성은 5성 페란시 혹은 4성 리리아 둘 밖에 없기 때문이죠. 페란시가 이 게임에서 핵심인 MP를 채워주는 궁이 있어 리세필수픽이긴 해도, 빛/암 5성은 월광이나 필그림처럼 확률이 훨씬 더 낮아서 획득하기 비교적 어렵습니다. 여기에 4성은 아예 천장이 없었기 때문에 운이 나쁘면 아예 못 볼 확률도 있었죠. 이런 부분은 23일에 구글 인기 순위 1위 보상으로 리리아를 주면서 일부 해소한 셈입니다.

아울러 월드맵 레벨, 여기서는 칼레이도 레벨을 올렸을 때 스토리가 급작스럽게 어려워지는 현상도 조절하는 등 불합리하게 느껴졌던 부분에 대해선 나름의 대처가 보이고 있긴 합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다음에 유저들이 무엇을 하게 만들 요소가 당장은 적다는 것이 '리메멘토'가 당면한 또다른 문제입니다. 보통 스토리를 다 깨고 나면 이벤트를 좀 즐기다가, 그 이벤트까지 다 마무리되면 다음 업데이트에 추가될 이벤트나 신규 캐릭터를 기다리며 일일 퀘스트를 즐기는 것이 오픈월드 RPG에 확립된 루틴이기 때문이죠.

특히 이벤트는 보상도 보상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세계관과 캐릭터를 어필하는 포인트이기도 해서 더욱 중요한 부분입니다. 캐릭터와의 연결고리는 각 캐릭터별 호감도 퀘스트로 어느 정도 보완을 한 상태지만, 그 스케일이 수집형 RPG의 SNS 혹은 카페나 숙소에서 선물 주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오픈월드로 펼쳐둔 상태라 그 세계에서 함께한다는 느낌을 만끽하게 하기엔 아직은 좀 부족한 느낌입니다.

▲ 상시 5성 선택권 등 지급 이벤트도 갖췄으니 이제 인게임 이벤트도 점차 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리메멘토'가 후발주자로써 이미 답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상태에,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본적인 틀은 갖춰두고 있다는 점일 겁니다. 유저의 분신인 주인공과 다른 캐릭터들이 교감을 이어가면서 이 세계에서 같이 활약하는 과정을 그려내야 하는 기본 문법은 충실하고, 준수한 캐릭터 모델링에 모핑 같은 기본도 잘 갖춰져 있죠. 또한 필드를 샅샅이 돌아다니면서 기믹을 풀고 보상을 찾아가는 기초적인 구성 자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24일과 25일 개발자 노트와 공지를 통해 6주 단위 업데이트 기조를 천명하는 한편, 일부 업데이트를 앞당기고 상시 5성 선택권 지급을 예고하는 등 추진력을 얻기 위한 기초 작업에 들어섰으니까요. 그리고 유저들이 가장 불편해했던 반복 파밍을 한 번에 행동력을 몇 배 소모해서 보상을 한꺼번에 받는 식으로 개편하는 등 여러 가지로 개선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경쟁작들의 대형 업데이트는 물론 쟁쟁한 신작이 예고된 2025년 그리고 그 이후로도 살아남기 위해서 '리메멘토'는 한 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을 겁니다. 체급 차이가 있어도 지갑을 좀 더 열게 할 합리적인 BM을 구성하거나 타 경쟁작이 시도하지 못할 스타일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쌓는 식으로 측면승부를 보면서 역주행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긴 하니까요. 아쉬운 점도 있긴 했지만, 왕도적인 구성을 어떻게든 잘 보여준 '리메멘토'가 자신만의 무기를 갈고 닦아 올해의 빅 웨이브를 버텨내고 성공 신화를 써낼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