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퍼스트 디센던트', 롱런 가능성이 있는가?
정재훈 기자 (Laffa@inven.co.kr)
요 며칠 간, '퍼스트 디센던트'를 계속 플레이했다. 평소대로라면 '즐겼다'라고 쓰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즐겼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절반 정도는 재미있게 했고, 나머지 절반 정도는 악에 받쳐서 했다.
이 게임은 너무나 복잡하다. 게임 시스템도 그렇지만, 게임을 바라보는 내 심정도 복잡하다. 선역일 거라 생각했는데, 과거 범죄 전과가 가득 찬 주인공이라던가,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주 재료가 곤충인 음식 따위를 보는 기분이다. 게임의 좋은 부분도, 좋지 못한 부분도 너무나 명확하다. 그게 어느 정도 쏠려 있다면, 좀 더 쉽게 좋은 게임인지 아닌지 말할 수 있겠다만, '퍼스트 디센던트'는 그런 단편적인 평가로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어떤 부분은 꽤 잘 만들었다 싶으면서도, 어떤 부분은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모르겠고, 의외로 훌륭한 면이 있다 느끼면서도, 왜 이런 것조차 못 만들었을까 싶은 실망이 뒤따른다. 그래도, 1주일 정도 일상 생활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갈아 넣은 결과, 이제 이 게임에 대해 좀 말할 수 있겠다 싶은 수준까지 오긴 했다.
게임명: 퍼스트 디센던트
장르명: 루트 슈터, TPS
출시일: 2024. 7. 2
리뷰판: 출시 빌드(프리시즌)개발사: 넥슨게임즈
서비스: 넥슨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C(스팀)
어디서 본 것 같다
처음 하는데도, 너무나 익숙한 요상한 기분
요즘 게임 치고, 다른 게임 안 베끼는 게임은 보기 어렵다. 새 게임 시스템을 고안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시스템을 가져다 입맛대로 조금만 바꾸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렇기에,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리뷰를 작성할 때도, 어느 정도의 시스템 모방은 그럭저럭 관대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다 보니, 어느 하나를 지적하게 되면 연달아 다른 게임들의 평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너무 노골적이다. 부정하는 순간, 게임 기자로서의 자긍심을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 빼다 박았기에,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데스티니'와 '워프레임'의 하룻 밤 불장난으로 태어난 아이가, 넥슨게임즈라는 양부모의 손에서 자라난 아이가 '퍼스트 디센던트'다. 외모는 데스티니를 닮았고, 성격은 워프레임을 닮았다. 누가 봐도 친부모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유전적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워프레임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시스템을 먼저 보자. 캐릭터에 해당하는 '계승자'와 모든 무기에 숙련도가 존재하고, 이를 육성할 때 마다 통합 레벨(마스터리 랭크)가 올라가는 시스템부터가 판박이. 문양 시스템이나 에너지 수용체, 모듈 판의 극성 작업이나 레벨업 구조, 계승자를 만들 때 몇 개의 파츠 부품이 필요하고, 이 파츠 부품 하나하나를 몇 시간에 걸쳐 만들어야 한다는 점까지 모든 면에서 닮아 있다.
그런가 하면, 외모에 해당하는 UI는 '데스티니'를 그대로 따라간다. 맵 UI의 모습부터, 전체적인 비주얼, 적들의 디자인과 특징, 총기 구분과 디자인. 명명법까지, 데스티니를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뭐가 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두 게임을 섞었다는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정도로 노골적인 경우는 잘 없지만, 서로 다른 몇 개의 게임에서 핵심 시스템을 가져와 버무리는 시도 자체는 그리 드물지 않다. 요리로 비유하면, 게임 시스템은 식재료다. 된장은 한국의 전통 식재료고, 푸아그라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식재료지만, 둘을 섞은 음식이 미국 식당의 메뉴에서 쓰일 수 있다. 맛의 밸런스를 잘 잡고, 좋은 해석만 길들여지면 얼마든지 새로운 요리로서 기능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그 식재들을 가져다 독창적인 해석을 곁들여 조리해냈을 때이지, 서로 다른 두 재료를 그냥 한 접시에 올려놨다고 그걸 요리라고 하진 않는다. 아쉽게도, 퍼스트 디센던트는 이런 느낌이다. 푸아그라와 된장을 그냥 한 접시에 담고, 예쁜 캐릭터라는 양념을 한 번 쭉 뿌린 것 같다. 둘 다 훌륭한 식재이기에 못 먹을 음식은 아니지만, 기대하는 새로운 맛이 나진 않는다.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맛이 너무나 희박하다. 워프레임에서 먹어본 맛, 데스티니에서 먹어본 맛이 둘 다 있지만, 이 둘을 야무지게 합쳐 이전에 없던 맛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F2P 라이브 게임의 출시 시점에 내리기엔 너무 가혹한 평가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식 출시라면 명확한 방향성은 보여주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시스템과 저 시스템을 이렇게 합쳤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게임을 업데이트할 겁니다"라는 방향을 제시했어야 옳다. 그런데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게임이 업데이트되어도, 수평적 콘텐츠 추가는 예상할 수 있지만, 이 시스템들을 자연스럽게 포용할 큰 그림을 완성해낼지 알 수가 없다.
일단 화두는 던졌다. 두 게임을 노골적으로 따 왔지만, 아직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는 못한 게임. 이제부터는, 보다 디테일하게 무엇이 문제이며, 그리고 그럼에도 왜 내가 절반 정도는 이 게임을 즐겼는지를 말해볼까 한다.
계속 의문이 든다
'왜 굳이?'라는 생각이 계속 멤도는 게임 플레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왜 굳이 이렇게 했을까?' 혹은 '이건 도대체 왜 만든 걸까?' 솔직히 말하면, 이런 불평만으로도 리뷰 전체를 가득 채울 수도 있지만, 조금은 축약해서 말해 볼까 한다. BM이나, 가격 정책에 대해선 말을 아끼겠다.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은 각자의 견해가 너무나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퍼스트 디센던트'는 아직 완성된 모습이 아니다. 전반적인 게임 구조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부족한 마무리가 여실히 느껴진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하자 투성이 신축 아파트를 보는 느낌이다. 초기 평가가 복합적인 이유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출시일의 결정은 디렉터의 의사 외에도 다양한 변수가 적용되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테지만, 출시를 몇 달 미루더라도 이를 다 보완해냈더라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이다.
일단, 콘텐츠의 길이 너무 좁고, 막다른 길마저 존재한다. 라이브 게임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엔드 게임 콘텐츠를 전부 끝냈을 때를 제외하면 막히는 길 없이 계속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어떤 활동을 해서 재화나 재료가 쌓이면 이를 소모할 시스템이 있어야 하며, 의미 없이 쌓이는 재화나, 너무 부족한 특정 재화를 보완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 방향이 다양할수록 더 좋다. 굳이 공략이 없어도, 게임 시스템을 이해했다는 전제 하에 '이제는 뭘 해야 겠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바람직한 게임 디자인이다.
'퍼스트 디센던트'를 보자. 내 인벤토리에는 이미 만든 계승자 부품들이 몇 개나 쌓여 있다. 워프레임은 이렇게 만들고 남은 부품을 유저 간 거래로 처리할 수 있지만, 퍼스트 디센던트는 이를 소모할 수단이 없다. 이 남는 재료들을 몇 개 모아서 다른 재료로 합성할 수 있는 수단만 만들었어도 조금은 나을 거다. 이게 '막다른 길'이다.
콘텐츠 간의 순환도 순탄치가 않다. 후반부 콘텐츠나 얼티밋 계승자의 재료는 '암호화 상자'에서만 나오는 경우가 많아 몇 시간 동안 맵을 뒤지며 보물찾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계승자 '엔조'를 만들어야 하며, 엔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계승자인 '샤렌'을 만들어야 하고, 샤렌을 만들려면 같은 임무를 운에 따라 수십 번 반복해야 한다.
루트 슈터라는 장르가 결국 '반복'을 피할 수 없는 건 태생적인 문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 반복도 더 다양하게 만들거나,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만들어지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키워서 다 때려부수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임에서 몇 시간 동안 보물찾기와, 미션 버튼 누르기만 하는 건 딱히 옳은 것 같지 않다.
이런 구조상의 문제 외에도, 퍼스트 디센던트는 너무 많은 부분에서 '덜 만든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급박한 전투 중에 써야 함에도 대부분의 스킬 선딜이 너무 길어 효용성이 떨어진다던가,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반 등급 무기, 굳이 시간 제한이 있는 플랫포머 미션, 계승자마다 구분되어야 마땅함에도 통합되어 있는 반응로 인벤토리, 왜 없는지 모를 하드 난이도 침투 미션의 매치메이킹,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해 사용 가치가 떨어지는 임시 거점과 백야 협곡의 말도 안 되는 레벨 디자인, 소위 'X알 패턴'이라 불리는 미니 보스들의 천편일률적인 무적 패턴에 실수로 갈아버리면 복구가 안 되는 궁극 무기까지, 이 모든 '부족한 부분'들이 계속해서 달리고자 하는 게이머들을 마치 고속도로에 있어선 안 될 방지턱처럼 멈춰세운다.
이 단점들을 보며 나를 포함한 게이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이런 요소들이 게임을 완전히 말아먹어서가 아니다. 그랬으면 차라리 게임을 안 하고 말겠는데, 오히려 조금만 바꾸면 훨씬 더 나아질 여지가 너무나 많이 보인다. 말 그대로 아주 조금만, 시스템을 약간만 바꾸면, 지금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좋은 게임이 될 여지가 너무나 뚜렷하게 보인다.
모듈작업이 필요없는 반응로와 악세사리는 계승자별로 인벤토리를 구분해 두었다면, 굳이 플랫포머 미션까지는 시간 제한을 넣지 않았다면, 스킬 선후딜을 조금씩 줄여 전투 중에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하드 난이도 침투 미션의 매치 메이킹을 변수 때문에 없앴더라도 MMORPG의 파티 찾기 시스템같은 별도의 파티 매칭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다면, 두 종류로 구분된 메뉴 UI를 보다 직관적인 형태로 다듬었다면, 악세서리 파츠의 스탯 적용량을 계승자 모듈에 맞춰 실 적용 수치로 보이게 했다면, 일단 한 번 수집한 궁극 무기는 부가 옵션이 없는 기본 상태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면, 샤렌 외에도 잠입 플레이가 가능한 수단을 만들어 두었다면, 정밀 조정기나 위상 변환기 등의 제작 수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남는 제작 재료들을 합성해 새로운 제작 재료로 뽑는 시스템이 있다면 등등, 그냥 조금만 생각해도 더 나아질 여지가 너무나 많다.
게이머들이 실질적으로 불평하는 포인트가 이거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검증된 두 게임의 핵심을 잘 가져왔지만, 이를 가져다 붙이려는 노력은 잘 보일지언정, 어떻게 하면 게임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고, 게이머들이 편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공식을 보고 그대로 했으나, 실제로 이해하진 못한 것 같은 어색함이 있다. 개발진들도 게임 꽤 만들었던 사람들이고, 다 알 만한 사람들일 텐데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그런데 또 재미는 있다
괜찮은 건파이트 감각, 충실한 기본기
역설적인 말이지만, 퍼스트 디센던트의 이 단점들이 오히려 게임을 계속 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조금만 더 고치면, 조금만 더 손보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게임이 될 여지가 보이니 말이다. 아예 게임 자체가 아무 재미가 없는 엉망진창 게임이라면 이런 기대조차 하지 않을 테지만, 예상 외로 게임의 기본기는 꽤 충실한 편이다.
일단,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건파이트 감각이 나름 괜찮다. 지적받았던 총기 격발음이나 타격감은 주관적인 기준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합격선에 든다. 적들도 시원시원하게 쏟아지며, 말도 안 되는 짜증나는 패턴의 적들이 즐비한 것도 아니다. 걸핏하면 무적 구슬들을 굴려대는 보스도 처음 보았을 땐 괜찮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구슬만 굴리는데다, 랜덤 구슬, 순차 구슬, 재생성 구슬 등 구슬 패턴 바리에이션이 너무 심해서 문제일 뿐이다.
생각보다 충실한 기본기 외에도, 나름 좋은 부분은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퍼스트 디센던트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요격전'은 앞서 언급한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맛'에 가장 근접한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게임을 잘 파악하지 못한 토끼 캐릭터 유저들이 무수한 죽음을 만들어내는 잔혹한 콘텐츠이지만, 네 명이 합심해 거대한 보스를 물리친다는 컨셉과 엄청나게 뛰어난 접근성은 분명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동종 장르 대부분의 게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미형 캐릭터들의 존재 또한,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특장점이다. 워프레임의 캐릭터들은 전체적으로 외계 누더기에 가깝고, 데스티니는 가장 예쁘장한 캐릭터의 피부가 회색이다. 그에 반해 퍼스트 디센던트는 그냥 마을 NPC들도 하나같이 연예인이다. 캐릭터 생김새로 게임의 인기를 말하는 건 영 이상하지만, 얼티밋 버니와 밸비가 없었으면 게임 유저는 절반도 안 됐을 거다. 다만, 남성 캐릭터들은 그냥 멋진 헬멧이나 씌워 줬으면 좋겠다. 눈화장까지 한 아이돌 페이스의 남자는 딱히 보고 싶지 않으니까. 이렇게까지 말하고 보니,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맛은 캐릭터 얼굴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정리하면, '퍼스트 디센던트'는 수많은 단점이 존재하고, 게임 내 메커닉 간의 순환 구조도 덜 만들어졌지만, 그럼에도 플레이 자체는 재미있다. 플레이만 재미있고 끝이라면 게임이 오래 가긴 어려울 테지만, 앞서 말한 막대한 량의 단점 중 대부분이 앞서 말했듯 '조금만' 변화를 주면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 또한 계속 이 게임을 플레이할 이유가 되어준다.
게임 출시 이후, 커뮤니티의 반응은 다른 의미로 폭발적이었다. 원색적인 모욕부터 논리적인 비판까지, 게임에 대한 좋은 얘기를 찾아보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서 서버가 터져나가자 '욕한 것 사과할 테니 서버 빨리 고쳐라'라는 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아마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거다. 분명 짜증나고 못 만든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데, 또 게임 자체는 재미있어서 더 열받는다.
하지만, 쉽게 고칠 수 있는 단점들이라 해도, 빠른 조치 없이는 만성 질환으로 발달할 뿐이라는 것 또한 잊으면 안 된다.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가능성? 충분하다. 커뮤니티엔 온갖 욕과 비판이 쇄도하지만, 수십 시간을 플레이한 게이머들이 즐비하다는 점에서 일단 기본은 된 거다. 하지만, 다가올 해일은 이미 예고되어 있고, 유예 기간은 길지 않다.
개발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진짜 급하다. 8월 중 진행되는 1시즌 전까지가 골든 타임이다. 이 안에 자잘한 단점과 시스템 공백을 해결하고, 적절한 밸런싱은 물론 모티브가 된 작품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매력'을 제시할 수 있다면, 분명 '복합적'을 딛고 긍정적인 게임으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게임은 너무나 복잡하다. 게임 시스템도 그렇지만, 게임을 바라보는 내 심정도 복잡하다. 선역일 거라 생각했는데, 과거 범죄 전과가 가득 찬 주인공이라던가,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주 재료가 곤충인 음식 따위를 보는 기분이다. 게임의 좋은 부분도, 좋지 못한 부분도 너무나 명확하다. 그게 어느 정도 쏠려 있다면, 좀 더 쉽게 좋은 게임인지 아닌지 말할 수 있겠다만, '퍼스트 디센던트'는 그런 단편적인 평가로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
어떤 부분은 꽤 잘 만들었다 싶으면서도, 어떤 부분은 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모르겠고, 의외로 훌륭한 면이 있다 느끼면서도, 왜 이런 것조차 못 만들었을까 싶은 실망이 뒤따른다. 그래도, 1주일 정도 일상 생활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갈아 넣은 결과, 이제 이 게임에 대해 좀 말할 수 있겠다 싶은 수준까지 오긴 했다.
게임명: 퍼스트 디센던트
장르명: 루트 슈터, TPS
출시일: 2024. 7. 2
리뷰판: 출시 빌드(프리시즌)개발사: 넥슨게임즈
서비스: 넥슨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C(스팀)
어디서 본 것 같다
처음 하는데도, 너무나 익숙한 요상한 기분
요즘 게임 치고, 다른 게임 안 베끼는 게임은 보기 어렵다. 새 게임 시스템을 고안하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시스템을 가져다 입맛대로 조금만 바꾸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렇기에, 게임을 플레이하거나 리뷰를 작성할 때도, 어느 정도의 시스템 모방은 그럭저럭 관대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다 보니, 어느 하나를 지적하게 되면 연달아 다른 게임들의 평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너무 노골적이다. 부정하는 순간, 게임 기자로서의 자긍심을 내려놓아야 할 정도로 빼다 박았기에, 도무지 부정할 수가 없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데스티니'와 '워프레임'의 하룻 밤 불장난으로 태어난 아이가, 넥슨게임즈라는 양부모의 손에서 자라난 아이가 '퍼스트 디센던트'다. 외모는 데스티니를 닮았고, 성격은 워프레임을 닮았다. 누가 봐도 친부모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유전적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워프레임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시스템을 먼저 보자. 캐릭터에 해당하는 '계승자'와 모든 무기에 숙련도가 존재하고, 이를 육성할 때 마다 통합 레벨(마스터리 랭크)가 올라가는 시스템부터가 판박이. 문양 시스템이나 에너지 수용체, 모듈 판의 극성 작업이나 레벨업 구조, 계승자를 만들 때 몇 개의 파츠 부품이 필요하고, 이 파츠 부품 하나하나를 몇 시간에 걸쳐 만들어야 한다는 점까지 모든 면에서 닮아 있다.
그런가 하면, 외모에 해당하는 UI는 '데스티니'를 그대로 따라간다. 맵 UI의 모습부터, 전체적인 비주얼, 적들의 디자인과 특징, 총기 구분과 디자인. 명명법까지, 데스티니를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본능적으로 뭐가 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두 게임을 섞었다는 그 자체가 아니다. 이 정도로 노골적인 경우는 잘 없지만, 서로 다른 몇 개의 게임에서 핵심 시스템을 가져와 버무리는 시도 자체는 그리 드물지 않다. 요리로 비유하면, 게임 시스템은 식재료다. 된장은 한국의 전통 식재료고, 푸아그라는 프랑스에서 유명한 식재료지만, 둘을 섞은 음식이 미국 식당의 메뉴에서 쓰일 수 있다. 맛의 밸런스를 잘 잡고, 좋은 해석만 길들여지면 얼마든지 새로운 요리로서 기능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그 식재들을 가져다 독창적인 해석을 곁들여 조리해냈을 때이지, 서로 다른 두 재료를 그냥 한 접시에 올려놨다고 그걸 요리라고 하진 않는다. 아쉽게도, 퍼스트 디센던트는 이런 느낌이다. 푸아그라와 된장을 그냥 한 접시에 담고, 예쁜 캐릭터라는 양념을 한 번 쭉 뿌린 것 같다. 둘 다 훌륭한 식재이기에 못 먹을 음식은 아니지만, 기대하는 새로운 맛이 나진 않는다.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맛이 너무나 희박하다. 워프레임에서 먹어본 맛, 데스티니에서 먹어본 맛이 둘 다 있지만, 이 둘을 야무지게 합쳐 이전에 없던 맛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F2P 라이브 게임의 출시 시점에 내리기엔 너무 가혹한 평가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정식 출시라면 명확한 방향성은 보여주었어야 한다.
"우리는 이 시스템과 저 시스템을 이렇게 합쳤고, 앞으로 이런 식으로 게임을 업데이트할 겁니다"라는 방향을 제시했어야 옳다. 그런데 모르겠다. 그냥 이대로 게임이 업데이트되어도, 수평적 콘텐츠 추가는 예상할 수 있지만, 이 시스템들을 자연스럽게 포용할 큰 그림을 완성해낼지 알 수가 없다.
일단 화두는 던졌다. 두 게임을 노골적으로 따 왔지만, 아직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는 못한 게임. 이제부터는, 보다 디테일하게 무엇이 문제이며, 그리고 그럼에도 왜 내가 절반 정도는 이 게임을 즐겼는지를 말해볼까 한다.
계속 의문이 든다
'왜 굳이?'라는 생각이 계속 멤도는 게임 플레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왜 굳이 이렇게 했을까?' 혹은 '이건 도대체 왜 만든 걸까?' 솔직히 말하면, 이런 불평만으로도 리뷰 전체를 가득 채울 수도 있지만, 조금은 축약해서 말해 볼까 한다. BM이나, 가격 정책에 대해선 말을 아끼겠다.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부분은 각자의 견해가 너무나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퍼스트 디센던트'는 아직 완성된 모습이 아니다. 전반적인 게임 구조부터 세세한 부분까지, 부족한 마무리가 여실히 느껴진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하자 투성이 신축 아파트를 보는 느낌이다. 초기 평가가 복합적인 이유 또한 이 때문일 것이다. 출시일의 결정은 디렉터의 의사 외에도 다양한 변수가 적용되기에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테지만, 출시를 몇 달 미루더라도 이를 다 보완해냈더라면 오히려 낫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이다.
일단, 콘텐츠의 길이 너무 좁고, 막다른 길마저 존재한다. 라이브 게임의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엔드 게임 콘텐츠를 전부 끝냈을 때를 제외하면 막히는 길 없이 계속 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어떤 활동을 해서 재화나 재료가 쌓이면 이를 소모할 시스템이 있어야 하며, 의미 없이 쌓이는 재화나, 너무 부족한 특정 재화를 보완할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 방향이 다양할수록 더 좋다. 굳이 공략이 없어도, 게임 시스템을 이해했다는 전제 하에 '이제는 뭘 해야 겠다'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바람직한 게임 디자인이다.
'퍼스트 디센던트'를 보자. 내 인벤토리에는 이미 만든 계승자 부품들이 몇 개나 쌓여 있다. 워프레임은 이렇게 만들고 남은 부품을 유저 간 거래로 처리할 수 있지만, 퍼스트 디센던트는 이를 소모할 수단이 없다. 이 남는 재료들을 몇 개 모아서 다른 재료로 합성할 수 있는 수단만 만들었어도 조금은 나을 거다. 이게 '막다른 길'이다.
콘텐츠 간의 순환도 순탄치가 않다. 후반부 콘텐츠나 얼티밋 계승자의 재료는 '암호화 상자'에서만 나오는 경우가 많아 몇 시간 동안 맵을 뒤지며 보물찾기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이 과정에서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계승자 '엔조'를 만들어야 하며, 엔조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려면 계승자인 '샤렌'을 만들어야 하고, 샤렌을 만들려면 같은 임무를 운에 따라 수십 번 반복해야 한다.
루트 슈터라는 장르가 결국 '반복'을 피할 수 없는 건 태생적인 문제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 반복도 더 다양하게 만들거나,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만들어지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열심히 키워서 다 때려부수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게임에서 몇 시간 동안 보물찾기와, 미션 버튼 누르기만 하는 건 딱히 옳은 것 같지 않다.
이런 구조상의 문제 외에도, 퍼스트 디센던트는 너무 많은 부분에서 '덜 만든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급박한 전투 중에 써야 함에도 대부분의 스킬 선딜이 너무 길어 효용성이 떨어진다던가, 존재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반 등급 무기, 굳이 시간 제한이 있는 플랫포머 미션, 계승자마다 구분되어야 마땅함에도 통합되어 있는 반응로 인벤토리, 왜 없는지 모를 하드 난이도 침투 미션의 매치메이킹, 가는 길이 너무 복잡해 사용 가치가 떨어지는 임시 거점과 백야 협곡의 말도 안 되는 레벨 디자인, 소위 'X알 패턴'이라 불리는 미니 보스들의 천편일률적인 무적 패턴에 실수로 갈아버리면 복구가 안 되는 궁극 무기까지, 이 모든 '부족한 부분'들이 계속해서 달리고자 하는 게이머들을 마치 고속도로에 있어선 안 될 방지턱처럼 멈춰세운다.
이 단점들을 보며 나를 포함한 게이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이런 요소들이 게임을 완전히 말아먹어서가 아니다. 그랬으면 차라리 게임을 안 하고 말겠는데, 오히려 조금만 바꾸면 훨씬 더 나아질 여지가 너무나 많이 보인다. 말 그대로 아주 조금만, 시스템을 약간만 바꾸면, 지금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좋은 게임이 될 여지가 너무나 뚜렷하게 보인다.
모듈작업이 필요없는 반응로와 악세사리는 계승자별로 인벤토리를 구분해 두었다면, 굳이 플랫포머 미션까지는 시간 제한을 넣지 않았다면, 스킬 선후딜을 조금씩 줄여 전투 중에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하드 난이도 침투 미션의 매치 메이킹을 변수 때문에 없앴더라도 MMORPG의 파티 찾기 시스템같은 별도의 파티 매칭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다면, 두 종류로 구분된 메뉴 UI를 보다 직관적인 형태로 다듬었다면, 악세서리 파츠의 스탯 적용량을 계승자 모듈에 맞춰 실 적용 수치로 보이게 했다면, 일단 한 번 수집한 궁극 무기는 부가 옵션이 없는 기본 상태로 만들어낼 수 있게 한다면, 샤렌 외에도 잠입 플레이가 가능한 수단을 만들어 두었다면, 정밀 조정기나 위상 변환기 등의 제작 수량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남는 제작 재료들을 합성해 새로운 제작 재료로 뽑는 시스템이 있다면 등등, 그냥 조금만 생각해도 더 나아질 여지가 너무나 많다.
게이머들이 실질적으로 불평하는 포인트가 이거다. '퍼스트 디센던트'는 검증된 두 게임의 핵심을 잘 가져왔지만, 이를 가져다 붙이려는 노력은 잘 보일지언정, 어떻게 하면 게임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고, 게이머들이 편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공식을 보고 그대로 했으나, 실제로 이해하진 못한 것 같은 어색함이 있다. 개발진들도 게임 꽤 만들었던 사람들이고, 다 알 만한 사람들일 텐데 도대체 뭐가 문제였던 걸까.
그런데 또 재미는 있다
괜찮은 건파이트 감각, 충실한 기본기
역설적인 말이지만, 퍼스트 디센던트의 이 단점들이 오히려 게임을 계속 하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조금만 더 고치면, 조금만 더 손보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게임이 될 여지가 보이니 말이다. 아예 게임 자체가 아무 재미가 없는 엉망진창 게임이라면 이런 기대조차 하지 않을 테지만, 예상 외로 게임의 기본기는 꽤 충실한 편이다.
일단,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건파이트 감각이 나름 괜찮다. 지적받았던 총기 격발음이나 타격감은 주관적인 기준에 영향을 많이 받기에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합격선에 든다. 적들도 시원시원하게 쏟아지며, 말도 안 되는 짜증나는 패턴의 적들이 즐비한 것도 아니다. 걸핏하면 무적 구슬들을 굴려대는 보스도 처음 보았을 땐 괜찮았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죄다 구슬만 굴리는데다, 랜덤 구슬, 순차 구슬, 재생성 구슬 등 구슬 패턴 바리에이션이 너무 심해서 문제일 뿐이다.
생각보다 충실한 기본기 외에도, 나름 좋은 부분은 여럿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퍼스트 디센던트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인 '요격전'은 앞서 언급한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맛'에 가장 근접한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게임을 잘 파악하지 못한 토끼 캐릭터 유저들이 무수한 죽음을 만들어내는 잔혹한 콘텐츠이지만, 네 명이 합심해 거대한 보스를 물리친다는 컨셉과 엄청나게 뛰어난 접근성은 분명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동종 장르 대부분의 게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미형 캐릭터들의 존재 또한,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특장점이다. 워프레임의 캐릭터들은 전체적으로 외계 누더기에 가깝고, 데스티니는 가장 예쁘장한 캐릭터의 피부가 회색이다. 그에 반해 퍼스트 디센던트는 그냥 마을 NPC들도 하나같이 연예인이다. 캐릭터 생김새로 게임의 인기를 말하는 건 영 이상하지만, 얼티밋 버니와 밸비가 없었으면 게임 유저는 절반도 안 됐을 거다. 다만, 남성 캐릭터들은 그냥 멋진 헬멧이나 씌워 줬으면 좋겠다. 눈화장까지 한 아이돌 페이스의 남자는 딱히 보고 싶지 않으니까. 이렇게까지 말하고 보니,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맛은 캐릭터 얼굴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정리하면, '퍼스트 디센던트'는 수많은 단점이 존재하고, 게임 내 메커닉 간의 순환 구조도 덜 만들어졌지만, 그럼에도 플레이 자체는 재미있다. 플레이만 재미있고 끝이라면 게임이 오래 가긴 어려울 테지만, 앞서 말한 막대한 량의 단점 중 대부분이 앞서 말했듯 '조금만' 변화를 주면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 또한 계속 이 게임을 플레이할 이유가 되어준다.
게임 출시 이후, 커뮤니티의 반응은 다른 의미로 폭발적이었다. 원색적인 모욕부터 논리적인 비판까지, 게임에 대한 좋은 얘기를 찾아보기가 힘든 수준이었다. 하지만, 저녁 시간이 되면서 서버가 터져나가자 '욕한 것 사과할 테니 서버 빨리 고쳐라'라는 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아마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을 거다. 분명 짜증나고 못 만든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데, 또 게임 자체는 재미있어서 더 열받는다.
하지만, 쉽게 고칠 수 있는 단점들이라 해도, 빠른 조치 없이는 만성 질환으로 발달할 뿐이라는 것 또한 잊으면 안 된다.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가능성? 충분하다. 커뮤니티엔 온갖 욕과 비판이 쇄도하지만, 수십 시간을 플레이한 게이머들이 즐비하다는 점에서 일단 기본은 된 거다. 하지만, 다가올 해일은 이미 예고되어 있고, 유예 기간은 길지 않다.
개발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진짜 급하다. 8월 중 진행되는 1시즌 전까지가 골든 타임이다. 이 안에 자잘한 단점과 시스템 공백을 해결하고, 적절한 밸런싱은 물론 모티브가 된 작품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퍼스트 디센던트만의 매력'을 제시할 수 있다면, 분명 '복합적'을 딛고 긍정적인 게임으로 접어들 수 있을 것이다.
- 탄탄한 기본기와 슈팅 감각
- 동종 장르 중 가장 아름다운 캐릭터 조형
- 반복 플레이를 감수할 만한 기본 재미
- 기억에 남지 않는 서사 구조
- 명백한 시스템 공백과 부실한 순환구조
- 너무 많은 조작을 요구하는 산만한 UI
리뷰 플랫폼: PC (출시 빌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