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익숙함을 살짝 뒤튼 개성파 팀 FPS, '프래그펑크'
윤서호 기자 (Ruudi@inven.co.kr)
팀 기반 FPS, 이 장르처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가 까다로운 장르도 드물 것이다. 쏘고 맞춘다는 메커니즘이나, 그 메커니즘 위에 세운 소위 '국룰'이 오랜 세월을 거쳐서 이미 완성이 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픽이나 물리엔진은 꾸준히 발전해왔고, 여기에 '캐릭터'라는 요소에 집중해서 각각 캐릭터의 특색이 살아있는 고유 스킬과 궁극기를 한층 더 강조하는 소위 '히어로 슈터' 등 변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안에서도 유저들의 호응을 받는 몇몇 규칙들만 꾸준히 채택되고, 이를 기반으로 수렴진화하는 양상이 이어졌다.
넷이즈가 지난 6월 10일 Xbox 쇼케이스에서 공개한 '프래그펑크'는 그 '규칙'마저도 유저가 골라잡는다는 컨셉을 내세운 팀 기반 FPS다. 팀 기반 FPS라는 장르가 폭파 미션이나 점령전, 데스매치 등 유저들이 오래도록 플레이한 규칙 위주로 살아남지 않았던가. 그런 만큼 과연 어떤 식으로 '규칙'을 바꿀 수 있을지, 그것이 어떤 경험을 줄 수 있을지 개인적으로 상당히 궁금하던 차였다. 그래서 지난 10일부터 CBT를 진행하자마자 바로 접해본 '프래그펑크'는,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약간의 변주로 자신만의 개성을 확고히 표현한 특색 있는 작품이었다.
게임명: 프래그펑크
장르명: 팀 기반 FPS
출시일: 2024. 10. 10.
리뷰판: 프리뷰 빌드개발사: 배드 기타 스튜디오
서비스: 넷이즈
플랫폼: PC
플레이: PC
기본은 5:5 폭파미션 기반 FPS
하이퍼FPS 감성과 규칙 카드로 빚은 변수
팀 기반 히어로 슈터, 그리고 하이퍼 FPS적 감성이 있다는 말에 다소 오해가 있을 여지가 있지만, '프래그펑크'의 기반은 카운터스트라이크 혹은 발로란트로 친숙한 클래식한 폭파미션 기반 FPS다. 공격팀은 양 거점 중 하나에 컨버터를 설치하기 위해 침투하고, 수비팀을 이를 방어하는 식으로 지정된 라운드를 소화한 뒤엔 서로 공수를 교대하는 것까지, FPS 유저들에겐 너무도 익숙하다.
아마도 소위 '히어로 슈터'라는 장르가 하이퍼 FPS식으로 빠르게 치고 달리면서 격전을 벌이는 스타일이 많았고, 여기에 '룰을 바꾼다'는 말 때문에 다른 양상을 기대했던 유저에겐 의외일 여지가 있다. 트레일러에 소개된 캐릭터 디자인이나 각자 스킬도 상당히 개성적인데, 결국 조심스럽게 포인트에 접근하면서 에임이나 심리전으로 승부보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클래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미 그 장르는 양대산맥이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으니, 왜 이걸 선택했나 의문일 수 있겠다.
'룰을 바꾼다'는 캐치 프레이즈처럼, '프래그펑크'는 클래식한 그 룰을 변주하기 위한 다양한 변수들이 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룰'은, 엄밀히 말해서 폭파미션의 기본 자체를 완전히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여기에 매 라운드마다 팀별로 무작위로 등장하는 세 장의 샤드 카드에 포인트를 투자, 그 샤드 카드에 적혀있는 룰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샤드 카드는 CBT 기준으로 총 114장으로, 탄환 수를 늘려주거나 반동을 줄여주는 옵션부터 해당 라운드 한정으로 공수 전환, 차징하면 탄환을 막아주는 블레이드를 지급해주는 카드나 혹은 한 번 죽어도 좀비로 부활해서 상대편을 기습할 수 있는 카드까지 각양각색이다. 일부 카드들은 체감이 안 되기도 하지만, 블레이드 같은 카드는 통상 카스류에서 잘 활용되지 않은 근접 무기로 적을 기습하거나 시선을 끄는 사이에 아군이 협공으로 잡아내는 등 게임 양상을 크게 바꾸기도 했다. 물론 더욱 파격적인 룰일수록 최소 요구 포인트가 높은 만큼, 라운드마다 포인트 배분을 적절히 하는 것이 '프래그펑크'의 전략 포인트 중 하나였다.
매 라운드마다 지급되는 포인트로 장비를 구매하는 방식을 샤드 카드를 구매하거나 효과를 더 높이는 것에 투자하는 것으로 재해석한 만큼, '프래그펑크'의 무기 및 장구 구매는 클래식과는 다소 다르다. 원래는 라운드마다 승리, 패배 그리고 여러 부가적인 보상으로 받은 돈으로 무기나 투척 무기를 구매하는 것이 폭파미션 룰의 기본이지만, '프래그펑크'는 무기가 무료로 주어진다.
대신 횟수가 제한되어있고, 그 무기를 사용한 라운드에서 죽게 되면 일부 특수한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그 무기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라운드 시작 전에 무기 사용 횟수 제약을 풀어주는 샤드 카드가 나오거나, 혹은 슬롯머신에서 해당 무기가 뽑히거나, 아군이나 적으로부터 그 무기를 얻지 않고서는 활용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처음에 권총전부터 시작해 라운드가 진행되면서 점차 각 포지션별 혹은 자신의 주무기를 들고 가는 클래식한 틀에 국한하지 않고 초반부터 강공으로 나오거나, 해당 라운드는 버리되 상대방의 무기를 최대한 소진시키는 것에 주력하는 등 머리싸움이 이어졌다.
여기에 각자 독특한 스킬을 보유한 캐릭터들의 조합도 '클래식'의 틀을 다소 벗어난 것이 눈에 띄었다. 이미 각 캐릭터별로 다른 스킬과 궁극기를 활용해 전략적으로 활로를 개척하는 양상을 '발로란트'가 보여주긴 했지만, 스킬을 장비처럼 해석해서 비용을 지불하고 쓰게 만든 '발로란트'와 달리 '프래그펑크'는 구매하지 않고도 스킬을 매 라운드마다 지정된 횟수 내로 쓸 수 있게끔 했다.
그래서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땐 초반 라운드를 서로 간의 정직한 권총 에임 기본기 싸움 정도를 생각하다가 갑작스럽게 생긴 연막 장벽이나 트랩에 당황했던 적도 있었다. 여기에 칼을 든 상태 한정이긴 하지만 스텔스를 하고 기습하는 '제피르'도 있고, 횟수가 극히 제한되긴 했지만 레일건 비슷한 무기로 깜짝 저격하는 '할로우포인트'까지 각 캐릭터마다 특징이 초반부터 뚜렷하게 보였다. 이외에도 포탑을 잘 숨겨서 배치하고 엄폐물을 만들 수 있는 '니트로'나 체력 회복 및 트랩을 설치할 수 있는 '패소젠', 로켓런처로 폭넓게 타격할 수 있는 '브로커' 등 초보들이 잡을 수 있는 캐릭터도 여럿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한 캐릭터들의 스킬을 라운드마다 횟수 제한이 있긴 하지만 다음 라운드에서도 쓸 수 있는 만큼, 에임뿐만 아니라 '스킬'을 얼마나 적재적소에 잘 활용하고 적 스킬에 안 당해주느냐도 승부를 가르는 요소인 셈이다.
4선승제에 최후엔 듀얼로 승부
짧고 굵게, 라이트하면서도 밀도 있게
반동을 잡기 위한 여러 테크닉이 필요한 클래식 FPS 스타일에 룰을 바꾸는 샤드 카드, 그리고 각기 특색 있는 영웅 스킬까지 다양하게 섞은 것이 '프래그펑크'의 매력이지만, 역으로 단점이 될 여지도 있었다. 하이퍼 FPS와 클래식 FPS에 서로 기대하는 요소들이 다르고 배워야 할 것도 다른데, 그것을 섞어버려서 서로 발목만 잡고 학습 난이도만 높이는 부작용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위험도 높은 것이, 앞서 말했던 것처럼 '프래그펑크'는 흔히 말하는 '국룰'을 이리저리 뒤흔들지 않았던가. 그 말인 즉슨 기본 플레이 방식에 프래그펑크가 새로 내세운 '룰'까지 익혀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프래그펑크'는 라운드를 극도로 줄였다. 보통 10라운드 이상을 넘어가는 것이 소위 폭파미션의 국룰이지만, '프래그펑크'는 7판 4선승제, 3라운드 이후 공수 교대하는 방식이다. 보통은 그렇게 라운드를 줄이면 소위 돈을 파밍해서 장비를 맞출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터였다. 그러나 그 부분은 이미 비용은 지불하지 않되 구매할 수 있는 횟수 자체를 극도로 제한하는 다른 제약으로 전략성과 빠른 페이즈를 챙기게끔 보완했다.
한 라운드당 교전 시간도 상당히 짧았다. 걷고 달리는 속도부터 하이퍼 FPS의 느낌이 날 정도로 빠르고, 샛길이나 기믹을 활용하는 맵은 물론 각종 변칙 룰에 스킬, 투척 무기까지 템포를 끌어올리는 요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이퍼 FPS 느낌에 좀 더 가깝도록 체력도 통상 폭파미션 FPS보다 좀 더 늘려놨지만, 원체 빠른 교전 템포 때문에 그렇게 늘려놓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게임이 끝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실제로 게임플레이 타임은 한 판에 10분~15분 정도고, 일방적인 판에서는 8분 안으로 끝날 정도로 짧았다. 이는 빠르게 플레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너무 빠르게 지나간 나머지 학습조차 하지 못하고 그저 휙휙 지나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 부분까지도 고려했는지 '프래그펑크'는 킬캠은 물론 매 라운드마다 전 라운드의 하이라이트를 로딩 시간에 재생해서 주요 국면을 복기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매 라운드마다 대기 시간 전에 샤드 카드 포인트를 투자하는 시간까지 숨고르기 시간이 주어져서 한 라운드마다 짧고 굵게, 그리고 그 사이에 숨을 고르고 다시 집중해서 라운드에 투입할 수 있도록 완급조절했다.
여기에 3:3 매치 포인트 상황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듀얼'도 색다른 포인트였다. 5명의 유저가 순서를 정해서 승자연전식의 1:1에 투입, 어느 한 팀이 전멸할 때까지 무기 제약 없이 싸우는 이 방식은 그간 계속 이어졌던 폭파미션과는 전혀 다른 자극을 주면서 흥미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듀얼까지 포함해서 15분, 정말 길어져도 20분이 채 넘지 않는 한 판이지만 그 안에 여러 페이즈를 담아넣으면서 '프래그펑크'만의 재미를 확고히 전달해주고자 하는 의도가 선명히 보였다.
빠르고 색다른, '프래그펑크'
기본기도 확실하고 임팩트 있는 다크호스
히어로 슈터나 폭파 미션 기반 FPS, 어느 쪽이든 이미 레드 오션이라고 봐도 무방한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진 '프래그펑크'는 CBT 단계에서도 잠재력이 느껴진 작품이었다. 총기마다 특징있게 잘 잡힌 반동과 이를 컨트롤하는 테크닉, 타격감과 피격감, 그래픽과 특수효과 등 FPS의 기본기도 잘 잡혀있었다. 히어로 슈터의 기본기인 개성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도 나름 잘 갖춰두었으며, 이를 폭파 미션 기반의 FPS의 템포와 잘 조율한 디자인도 눈에 띄었다.
여기에 신중하게 매 라운드를 진행해야 하는 폭파 미션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팀 데스매치, 코어 쟁탈 등 대안까지도 마련하면서 FPS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고자 하는 시도도 보였다. 그 모드에서도 각각 독특한 샤드 카드를 배치하고 랜덤 상황을 발생시키면서 일반 FPS의 정형화된 틀을 깨고자 하는 '프래그펑크'만의 요소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개성을 어필한 만큼, 처음 접근했을 때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이 들 확률이 있었다. 클래식 FPS 느낌으로 접근하자니 템포도 빠르고 기이한 룰까지 더해져서 손에 잘 안 익고, 하이퍼 FPS식으로 하자니 끊어쏘기 등 총기의 반동을 잡는 테크닉 없이는 잘 안 맞고 초반부터 날아오는 저격에 쓰러질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수류탄이나 섬광탄이 2번 보조무기에서 권총이냐 투척무기냐 이지선다식으로 편성되어있는 등, 사소한 것부터 상당히 달라서 비슷비슷해보이는데 은근히 적응이 까다롭기도 했다. 물론 극히 기본인 '에임'이 뒷받침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그 에임을 갈고 닦는 과정에서 훈련장의 옵션을 좀 더 다양하게 갖춰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에 빠른 게임페이즈와 달리 라운드 사이사이 시간이 체감상 상당히 긴 것도 낯설었다. 보통 라운드 종료 후에 바로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매한 뒤 대기하는 단계만 있지만, 일일이 하이라이트에 샤드 구매, 그리고 상점에서 아이템을 구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슬롯 머신을 돌리기까지 여러 행동이 단계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 단계에서 아예 캐릭터까지 바꾸면서 다른 전략을 설계하는 깊이가 있지만, 로딩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조금 아쉬운 점이었다. 특히 종종 서버 지연으로 로딩이 길어지는 일이 잦아서 그럴 때면 갑갑함이 느껴졌다. 반면에 팀 데스매치는 리스폰이 굉장히 짧아서 즉각즉각 재정비하고 싸움에 끼어드는 맛이 확실하고 안정적이었다.
이렇듯 아직 CBT 단계라 불안정하지만, '프래그펑크'는 팀 기반 FPS 신작을 기다리고 있는 유저라면 주목할 타이틀로 꼽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양쪽의 좋은 점을 가져와서 자기식대로 섞는다는 말이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도저도 아닌 잡탕이 되어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이지만, '프래그펑크'는 그런 우를 범하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왜 이런 매칭이 잡히는지 이해가 안 가는 매칭이나 무단 탈주, AFK 등 문제들이 있었지만, 테스트에서 이런 피드백을 잘 체크해내고 정식 출시 전에 다듬는다면 '프래그펑크'는 분명 FPS 팬들이 한 번 새로운 감각으로 접근해볼 만한 타이틀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