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산속, 졸졸 흐르는 냇가 사이로 조용히 자리 잡은 사찰, 낡은 부처상, 이따금 들려오는 나무 풍경의 소리, 지금까지 출시된 게임 중에 가장 동양적이고, 가장 중국적인 모습이 게임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화면에서 게임의 주인공인 원숭이, '천명자'가 날뛰기 시작합니다.

그 상대는 무시무시한 요괴입니다. 때로는 신선과 천계의 것들과도 마주합니다. 천명자는 두 손에 쥔 '봉'과 다양한 도술로 치열한 전투를 펼칩니다. 때리고, 막고, 피하고, 넘어지고 날아가는 화려한 움직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갑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배경은 고고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계속 움직이는 것들과, 그 자리에 있는 것들이 완벽하게 어울립니다.

바닥이 보이지 않던 보스의 체력이 어느덧 얼마 남지 않았음을 눈치챔과 동시에 내 호리병의 잔량도 거의 남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손바닥에 땀이 흥건히 차오릅니다. 계속 떨던 다리의 진폭도 커집니다. 그리고 쓰러지는 보스의 시체를 보면서 다른 게임에서 쉽게 얻기 힘든 성취감을 흡입하게 됩니다.


게임명: 검은 신화: 오공
장르명: 액션 RPG
출시일: 2024.8.20.
리뷰판: 리뷰 빌드
개발사: 게임사이언스
서비스: 게임사이언스
플랫폼: PC, PlayStation 5, Xbox Series X|S
플레이: PC


가장 동양적이고, 가장 중국적인
압도적인 비주얼

아무런 예고 없이 2020년 깜짝 발표한 '검은 신화 : 오공'이 곧 출시됩니다. 중국의 게임 개발사 '게임 사이언스'에서 개발한 액션 RPG 검은 신화: 오공은 8월 20일 PC, PS5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XBOX X|S는 최적화 문제로 발매가 연기되었습니다.

검은 신화: 오공은 '소울라이크' 게임이다, '데메크'다, '갓오브워'다, 이렇게 장르를 대표하는 게임 중에 딱 하나만 꼽아서 닮았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검은 신화: 오공의 게임 시스템은 다양한 액션 RPG를 해봤던 사람이라면, 대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예를들면, 호리병에 들어있는 술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추가 효과를 내는 건, 엘든링의 영약의 성배병과 닮았고, 그냥 구르거나 피하는 것 보다, 공격이 내 몸에 닿기 직전 회피하면 다양한 이득을 주는 것 역시 다른 게임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검은 신화: 오공은 이런 익숙한 것들을 섞어서 맛있게 만든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게임에 등장하는 호리병 담금주 처럼요.


그렇지만, 검은 신화: 오공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비주얼입니다. 게임을 하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서유기의 배경인 당나라 시대의 고증이 담겨있는 디자인, 여기에 소설적, 게임적 각색 한 스푼, 그걸 언리얼 엔진5로 구현하고 다듬은 결과물이 압도적입니다.

그래픽 질감도 좋습니다. 주인공인 천명자의 몸에 뒤덮여 있는 털이나, 나무 뿌리인 듯, 눈썹인 듯, 피부인 듯, 실제로 볼 수 없는 질감도 진짜 있는 것 처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물과 화염, 산과 나무, 돌과 철, 검은 신화: 오공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정교합니다. 그리고 그 배치가 아름답습니다. 모험을 하고 있다 보면, 아름다운 배경에 매료되어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는 것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할 행동일 겁니다.


검은 신화: 오공의 전투
뛰어난 '봉술', 다양한 '도술'


검은 신화: 오공의 게임 플레이 9할은 전투입니다. 천명자는 자신의 무기인 봉으로 전투를 수행합니다. 천명자의 전투는 우리가 지금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접해왔던 길다란 나무 막대기로 하는 모든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휘두르고 찌르고 돌리고, 때로는 땅에 박아 넣어서 피하기도 합니다. 봉술은 '벽곤', '입곤', '착곤'으로 구분됩니다.

그리고 이런 자세마다 공격적인 특징과 수비적인 특징도 다른데요, 벽곤은 상대방의 공격을 패링 할 수 있고, 입곤은 지면 공격을 뛰어올라 피할 수 있고, 착곤은 공격 중에 뒤로 순간 회피가 가능합니다. 게임에 익숙해지면 익숙해 질 수록, 순간적으로 자세를 바꿔가며 고점을 노리는 플레이도 가능할 것 같지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천명자의 다양한 특수 기술이나 아이템도 적재적소에 사용해야 하거든요.

천명자는 봉술 뿐만이 아니라, '묘술', '체술', '잔털', '변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묘술'은 상대방을 정지시키거나, 천명자를 보호하는 진을 만들 수 있는 신묘한 기술입니다. 특히 정지술은 일반 몬스터 뿐만이 아니라, 보스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체술'은 천명자의 몸을 바꾸는 기술입니다. 순간적으로 돌처럼 단단하게 변해 상대방의 공격을 튕겨내거나, 연기로 변해 투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잔털'은 천명자의 털로 분신을 만들 수 있고, '변신'은 모험 중 처치한 강적의 모습으로 변해 그들의 강력한 기술을 빌려올 수 있습니다. 다양한 도술과 일반 공격으로 '곤봉 게이지'를 쌓은 뒤, 강력한 일격으로 요괴에게 큰 대미지를 넣는 게 대체적인 전투 패턴입니다.


검은 신화: 오공에는 다양한 적들이 등장합니다. 일반 몬스터인 '잡요괴', 네임드급 몬스터인 '두목', 보스급의 '요괴 왕'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잡요괴의 수만 해도 약 80마리가 넘는데다가, 두목은 약 45마리, 요괴 왕은 약 20마리 정도로, 합치면 약 150마리에 가까운 적이 존재합니다. 다른 액션 RPG들과 비교해도 굉장히 많은 축에 속하는데, 재탕하는 경우가 적어서 항상 신선한 전투 경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게임 진행 자체는 소울라이크나 액션 RPG의 흐름과 거의 같습니다. 회복, 부활, 아이템의 구매와 정비 등이 가능한 '토지신 사당'이 모험의 거점이 되고, 다양한 두목과 요괴 왕을 넘어서, 그 챕터의 최종 보스를 격파하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직선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챕터가 최종 보스를 향해 쭉 이어진 구성을 보여주긴 합니다만, 중간에 갈림길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 갈림길의 끝에는 비밀 맵이나, 비밀 보스, 아이템, 퀘스트 라인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검은 신화: 오공은 모험의 비중보다 보스와의 1:1 비중이 더 큰 게임입니다. 챕터1만 하더라도 준비된 보스전이 10회가 넘을 정도라, 맵 구석구석 탐색하는 유형의 게이머가 아니라면, 5분에서 10분마다 다른 보스전이 이어지는 상황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험 비중이 낮은 게 아닙니다.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아이템과 특성치를 얻을 수 있는 좌석 방석, 퀘스트 NPC, 보스전을 찾는 재미도 있습니다.


보스전은 이 게임의 또 다른 장점이 되는데요, 보스 디자인도 굉장히 잘 뽑힌데다가, 패턴도 대부분 재밌습니다. 구르기와 평타 위주로 차근차근 갉아먹는 '구평'을 하든, 정지술 타이밍에 모든 걸 몰아쳐서 집중하는 '폭딜'을 하든, 천명자가 가진 모든 방법이 곧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검은 신화: 오공의 총 플레이 타임은 25시간 근처입니다. 보스전이나 길찾는데 얼마나 고전하느냐에 따라 플레이타임이 많이 변하는 게임의 특징을 고려해도, 30시간 정도면 엔딩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구석구석 파밍하는 것을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40시간 이상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회차에 대한 계승 요소도 있습니다. 1회차 종료 시점의 레벨, 장비, 획득한 변신 등이 모두 이어집니다.

검은 신화: 오공은 서유기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가 쭉 진행되지만, 스토리텔링 자체는 친절하지 않습니다. 서유기에 어떤 등장인물이 나오는지 알고, 불교에서 사용하는 단어에 익숙하다 할지라도, 게임 전체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스토리를 보여주는 방식이 소울라이크처럼 모호하고 상징적입니다. 이야기가 중반에 접어들어야 천명자가 왜 이런 모험을 하고 있고, 왜 요괴들과 싸우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퀘스트라인은 더 소울같습니다. 대사에서 힌트를 유추해야하고, 퀘스트 마커나, 알림이 아예 없습니다. 미니맵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퀘스트라인은 천명자가 모험 중 어떤 보스를 잡았거나, 스토리를 진행하거나하면 경고 없이 끊기기도 합니다.


이런 중간에 이야기가 단절되는 경험은 모험 내내, 이전에 가보지 않았던 갈림길에 대한 생각을 계속 들게 합니다. 앞에 대단한 풍경이나, 거대한 보스를 앞두더라도 '아, 먼저 거기 가볼 걸 그랬나'라는 작은 후회들로 게임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챕터1의 작은 산길에서 헤메는 수준이 아닌, 거대하고 복잡한 중후반부 챕터에 진입하면, 초반 챕터에서는 보스러시 같았던 게임이, 길찾기 게임이 되어버려 지루해질 수 있습니다. 게임 후반부에 도저히 진행 방법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 몇 시간 가까이 끙끙 앓다 해결한 경우도 있습니다.

단점을 말한 김에 더 말해보자면, 이런 액션 RPG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인 고저차 있는 전투에서 상당히 어색한 경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적이 단차 아래로 잠깐 떨어질 때 히트박스가 이상해진다거나, 내가 아래에서 위로 공격할 때도 가끔 어색합니다. 보스들이 바위나 장애물 위에 이상하게 올라가진다면, 급박한 전투흐름이 갑자기 싸해질 때가 존재합니다. 자주는 아니고, 정말 가끔이긴 하지만요.

그리고 게임의 마감새가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 튀어나온 실밥 같은 것이 보인다는 것도 단점으로 꼽을 만 합니다. 초중반까지는 버그나 오류가 없는 완벽한 명품처럼 보였거든요. 후반부 챕터에서는 사운드 싱크가 맞지 않는다거나, 보스전 중간에 효과음이 안나온다거나, 나무가 공중에 떠있는 잔버그, 좋지 못한 마감새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천명자가 곤봉 게이지를 활용한 강력한 일격을 사용할 때나, 돌로 변해 상대방의 공격을 튕겨날 때 느껴지는 짜릿한 타격감은 확실한 재미를 줍니다만, 대부분의 전투가 일반 공격을 하면서 진행되는데, 이런 일반 공격의 타격 효과, 사운드가 다소 심심하다는 생각을 줬습니다.

번역에 대한 부분은 최종 출시 버전이 아닌, 리뷰 카피로 게임을 플레이했기 때문에 정확한 평가를 내리긴 어렵습니다. 스토리, 이야기 전달에 대한 번역은 부드럽게 이해가 잘 된다고 느꼈고, 아이템 설명이나 요괴 도감에서 번역이 되지 않은 부분이 다소 존재했습니다.


중국 게임의 '금강여의봉'


검은신화 오공은 훌륭한 게임입니다. 가장 중국적인 이야기와 비주얼을 전면에 내세웠고, 그걸 멋지게 잘 묘사했습니다. 아름다운 장면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은 지루할 틈 없이 다음 챕터, 다음 보스, 다음 아이템, 다음 변신 등 반드시 기다리고 있는 다음 '맛'을 향해 강하게 나를 몰아세웁니다.

때로는 길을 헤메기도 할 것이고, 봉 말고 다른 무기도 없는지 찾아보게 될 것이고, 지나친 상자에 대한 아쉬움이나, 일관적이지 않은 보스 난이도에 불평하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게임을 마치고 난 뒤, 천명자의 여정을 쭉 돌아보며 좋았노라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아마도 검은신화 오공은 중국 게임의 이정표가 될 것 입니다. 마치 손오공의 금강여의봉처럼 길고 커다랗고, 우뚝 솟아 있는 모습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