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회연구소는 금일(16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WHO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 논란,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게임이용장애 코드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민관 협의체 위원이기도 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박종현 국민대학교 교수 발제를 맡았으며, 이어서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최승우 한국게임산업협회 정책국장, 최준영 문화사회연구소 소장이 토론에 참여하며, 게임이용장애 국내 도입과 관련된 여러 우려를 전했다.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가장 먼저 발제에 나선 이동연 교수는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한 국제질병분류(ICD-11)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적용하기까지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한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동연 교수는 WHO의 ICD-11에 대해 "정신의학, 뇌과학, 심리학, 사회행동학, 컴퓨터 게임 디자이너 등 각계 사이에 합의된 입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이와 관련해서 임상 수준의 연구가 부족할 뿐 아니라 진단을 위한 구성 체계 작업 과정이 약물 사용과 도박 기준에 너무 많이 의존하는 점 등을 지적했다. 이에 대해 그는 "게임이용을 과도하게 병리화하면 게임을 많이 생각하거나, 기분 개선을 위해 게임을 하는 것마저 게임이용장애로 분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이동연 교수는 국내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2019년 7월 정부가 발족한 민관 협의체에서도 의견이 모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의료계, 게임계, 법조계, 시민단체 등 각계를 대표하는 민간위원 14명, 정부위원 8명, 총 2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게임산업과 평범하게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 모두에게 영향을 끼칠 주제임에도 치열한 토론이나 세미나는 없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까지 진행한 회의는 11차례에 불과하다"면서, "1년에 2차례 회의한 것에 불과한데 이걸로 충분히 논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민관 협의체에서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쪽에서 ICD-11 도입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여기고 회의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동연 교수는 "한 정신의학계 위원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ICD를 거부한 사례가 없다면서 사실상 도입은 확정된 상태고 이걸 어떻게 도입할지 논의해야 한다더라. 그래서 협의체를 만든 기본 원칙은 등재 여부를 논의하기 위함이지 도입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강력하게 반발했다"면서, 현재의 민관 협의체 구조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동연 교수는 "협의체는 늦어도 2026년에 도입 여부를 결정하는 걸 목표로 운영할 예정인데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2025년까지 관련 조사와 사회적 합의를 시급하게 이끌 필요가 있다"면서, "첫 번째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두 번째로는 협의체에서 합의 가능한 진단 도구가 도출되어야 하며, 세 번째로는 진단 도구 결정에 따른 실태 조사를, 끝으로 도입 여부에 따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파급 효과에 따른 객관적 정량수치를 도출해야 한다"고 짚었다.

끝으로 그는 현재의 협의체 구조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이러한 일정을 소화하는 건 불가능하다면서 "협의체의 새로운 논의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ICD-11 도입과 관련해서 해외 연구 동향 등을 분석하는 한편, 국민 여론 수렴을 위한 공개 토론회나 공청회 등의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박종현 국민대학교 교수

박종현 국민대학교 교수는 ICD-11 도입에 대해 강제가 아니라고 입을 열었다. WHO가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권고사항일 뿐이라면서 "지금까지 ICD의 내용을 KCD에 관례적으로 수용하긴 했지만, ICD-11을 도입하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을 예로 들면서 "ICD-11에 앞서 미국정신의학회는 2013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 제5차 개정안(이하 DSM-5)을 제작하면서 인터넷 게임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를 병리적 증상에 포함했는데 이에 대해 질병코드를 부여하지 않고 추가적 연구가 요구되는 사항으로 분류하면서 인터넷 도박과 구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박종현 교수는 "미국에서도 이처럼 신중하게 논의하는 상황에서 관례적으로 ICD-11을 도입하고자 하는 건 너무 섣부른 것 같다. 한국 실정에 맞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그의 생각을 밝혔다.

게임산업에 악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기본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일반 국민은 일반적 행동의 자유, 놀이에 대한 자기결정권, 게임문화 향유권 등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는데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화는 일종의 규제로 작동해 자의적인 기준마련이나 운영에 따라 기본권 침해의 결과를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행정부처가 우리 국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설정된 해외 기구의 결정을 기계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국민주권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서 박종현 교수는 사회적인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담배나 주류, 사행산업과 마찬가지로 게임이용 관련 부담금이 신설될 수 있다"면서, 2013년 손인춘 의원 등 17인의 국회의원들이 '인터넷 게임 중독 치유 부담금'을 부과하도록 발의한 법안을 예로 들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게임이용 관련 세금과 부담금을 신설한다고 했을 때 이와 관련해서도 여러 논란이 발생할 것이라고 박종현 교수는 내다봤다. 그는 "부담금을 내야 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그 기준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매출로만 정하기도 애매하다. 돈을 잘 버는 데 게임이용장애, 소위 말하는 게임중독 비율이 낮은 회사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매출은 적은데 게임중독 비율이 높은 회사가 있을 수도 있다"면서, "이와 관련해서 중독유발지수라는 용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게 정말 평가 기준이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법상 비용 부담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점 역시 우려를 표했다.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해서는 아직 이렇다 할 치료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임상실험이 만연해질 텐데 이에 따라 의료급여 지출이 많아지고, 이는 곧 국가 재정이 불필요하게 소모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박종현 교수는 게임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해서 국내 게임산업이 갈라파고스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게임질병코드를 도입할 경우 글로벌 게임 기업들이 철수할 가능성이 있는데 그 결과 우리 게임에만 질병코드를 적용하는 역차별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면서, "우리 게임의 해외 진출에도 어려움이 생길 공산이 크다"고 우려를 표했다.

▲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가운데)

발제 후 이어진 토론회에서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은 미국의 땅콩 알레르기와 관련된 사례를 들면서 무조건 금지하는 게 과연 옳은지 의문을 표했다. 이장주 소장은 "미국에서 90년대에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을 조사하니 천명 중 4명꼴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때부터 알레르기를 일으키니 땅콩을 들어간 음식을 다 차단했는데 10년 후 다시 조사하니 아이러니하게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이 천명 중 14명꼴로 늘었다더라. 조금씩 면역력을 길렀어야 했는데 그냥 무작정 차단하니 오히려 먼역력이 떨어져서 늘어난 것"이라면서,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통제력이 생기는 게 아니지 않나. 자연스럽게 접하고 면역력을 길러야 하는데 무조건 차단할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게임이 그렇게 큰 문제라면 질병코드를 도입하지 않은 지금 엄청난 난리가 났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현 상황을 꼬집었다.

▲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는 질병코드 등록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특정 행위에 몰두하는 건 게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쇼츠나 틱톡, 인스타그램 모두 특정 행위에 중독되게 만든다"면서, "중요한 건 게임이 아니라 특정 행위에 몰두하도록 하는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 흥미로운 건 게임 이용자들이 무조건 여기에 빠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에는 이런 디자인에 염증을 느끼는 이용자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게임을 찾아서 떠나는 식으로 일종의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걸 볼 수 있다"면서 이러한 문제해결 방법에 대해 반드시 제도적일 필요는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