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게임의 흥행을 만드는 핵심이 되기도 한다. 기술적으로 엄청난 복잡함이 없을 지더라도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누구보다 먼저 집어넣고, 그 참신함으로 눈길을 끄는 것이다.

이런 창의성은 처음이, 때로는 처음'만' 어렵다. 맛을 얼마나 잘 살렸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창의성의 짜깁기와 반복 자체는 따분할 정도로 쉽기 때문이다. 찌개보다는 퓨전 요리에 가깝다. 깊은 장맛이 없다면 구수한 찌개맛은 낼 수 없지만, 생각 못한 조합으로 인기를 끈 퓨전 요리는 그 조합의 흉내로 누구든 따라해볼 수 있다. 거기서 달라지는 비법으로 때로는 원조보다 더 나은 퓨전 요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모바일 앱마켓과 스팀 같은 온라인 스토어의 확장을 통해 인디 게임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던 때. '월드 오브 구(World of Goo)'는 그런 독창성과 아이디어의 성공이었다. 2008년 수많은 인디 게임 시상식을 휩쓸었고, 수많은 플랫폼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16년. 후속작 '월드 오브 구2(World of Goo2)'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대단하다. 긴 시간이 지났고, 유사한 게임은 쏟아지며, 핵심은 또 그대로 유지했음에도 여전히 재미있다.

게임명: 월드 오브 구2
장르명: 퍼즐
출시일: 2024.8.2.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2D Boy
서비스: 2D Boy
플랫폼: PC, Switch
플레이: Switch


핵심이 만든 플레이
월드 오브 구의 기본기

인디 게임 붐이라 불리는 시기, 그리고 모바일 시장이 떠오르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게임들이 부각되며 창의성으로 승부를 본 게임들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새로운 맛을 더한 게임들이 그 창의성을 갈무리했고, 그게 시장에 제대로 안착했다. 장르의 서막을 연 게임은 과거의 명작으로 불린다. 하지만 사실 낮잡아 말하면 낡은 게임이 돼버린다. 그게 '과거, 시장에서 눈부신 모습을 보여준 창의적인 게임'의 후속작이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성과를 얻고 그대로 시장에서 사라지는 이유다.

'월드 오브 구'는 그런 사라져가는 게임의 특징을 모두 갖췄다. 꼭지점을 확장해 나가는 오브젝트 건설 플레이는 이제는 '폴리 브릿지'가 더 익숙한 물리 엔진 건설 게임의 효시가 됐다. 첫 출시도 2008년. 여러 플랫폼이 나오며 그 생명력이 길어졌다고는 했지만, 2024년 후속작이 나오는 데까지 무려 16년이 지났다. 그때보다 훨씬 경쟁적이고, 창의성을 갈고 닦은 게임이 매일 쏟아지는 시장에서 '월드 오브 구'도 분명 낡아보인다.


그렇다고 후속작인 '월드 오브 구2'가 보여준 게임플레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다든가, 완전히 새로운 조합으로 플레이를 뒤집지는 않았다. 전작에 없던 다양한 구와 기믹의 추가, 새로운 지형의 추가가 담겨 더욱 복잡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핵심은 그대로다. 자칫 시대에 뒤떨어진 게임 플레이일 수 있지만, 월드 오브 구는 16년이 지나도 여전히 창의적인 스테이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창의적인 스테이지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은 복잡함이다. 앞서 말한 폴리 브릿지류 게임들은 물리 엔진을 활용해 다리를 확장하고 잇는 데 목표를 뒀다. 월드 오브 구의 목적은 단순한 연결이 아니다. 끈적거리는 구를 이어 건설하고, 그 구들을 파이프로 옮겨내는 것 까지가 목적이다.

건설 재료로 쓰이는 구. 그리고 오브젝트를 따라 이동하는 구. 그러니까 게임은 건설 재료로 쓰이는 구의 이동을 클리어 목표로 삼았다. 건설로 끝나는 것과 건설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의 차이는 꽤 크다. 그저 잘 만드는 걸 넘어 효율적인 재료-구의 활용. 이걸 파이프까지 옮길 수 있는 경로. 플레이어는 이걸 목표로 머리를 쥐어짜내야 한다.



기본에서 확장하는 새로움
핵심 안에서 더하고 변화하다

월드 오브 구2는 이번에도 퍼즐 게임의 왕도를 따른다. 일단 '알려줄테니 배우고, 응용해서 써먹어라'다. 처음 몇몇 스테이지에서는 구들을 잘 연결해 건설물이 끊어지지 않게 만드는 법을 배운다. 다음은 더 적게 구조물을 쌓아 구를 아끼는 플레이를 배우고 다음은 지금까지 배운 것만으로는 깰 수 없는 스테이지를 맞이한다.

플레이를 통한 창의성의 발현. 사실 이렇게만 보면 다른 잘 만든 퍼즐 게임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 규모나 배경이 다를 뿐 어차피 다 배운 거 써먹는 거다. 학교 수업 잘 들으면 되는 퍼즐이다.

그런데 그렇게 배운 걸 써먹을 문제가 많지 않다. 한 두 문제는 잘 풀 수 있겠지만, 몇 문제 풀면 다른 유형의 문제가 나온다. 수많은 기믹, 새로운 요소를 어떤 식으로 끼얹었느냐가 '월드 오브 구2'의 다름이다.

이번 작에는 전작의 일부 구나 환경 요소를 덜어내고, 플레이를 다양하게 만들 것들을 더했다. 보통 이러한 기믹 플레이는 한두 번은 게임을 색다르게 만든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플레이를 그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은 플레이를 반복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같은 해법의 확장, 또 다른 확장 정도로 퍼즐의 한계가 생긴다. 제작진의 아이디어에 막힌 창의성의 확장이 결국 크기만 다를 뿐 비슷한 퍼즐의 반복이라는 매너리즘으로 구현된다.


'월드 오브 구2'는 그런 해법의 제한을 아예 새로운 기믹을 통해 해결한다. 게임에는 종장 부분과 충격적인 전개의 챕터4 정도를 제외하면 3개의 챕터마다 15개 정도의 스테이지가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각각의 스테이지에서 기존 퍼즐 해법의 확장만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구간은 기껏해야 한 기믹당 두 세 스테이지 정도에 그친다.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구, 기믹은 서너 스테이지가 지날 때마다 새롭게 추가되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다. 어떤 기믹은 정말 한 두 번 쓰이고 게임에 등장하지 않는다. 익숙해질 만하면, 사실 익숙해질 겨를도 없이 새로운 구를 활용한 플레이에 적응해야 하고, 그게 매 스테이지를 새롭게 만든다.

보통 플레이어가 배우는 건 특정 퍼즐의 해법이다. 하지만 기믹이 달라지면 해법도 달라진다. 그리고 그 기믹이 여럿 더해지면, 여러 해법을 복합적으로 활용해 풀어내야 하는 색다른 스테이지를 구성해야 한다. 결국, 모든 건 개발자의 맵 디자인, 게임 플레이 구성 역량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기믹 활용이 분명 새로운 재미를 주겠지만, 그걸 모두 게임 안에 구현할 시간과 자원, 창의력의 부족이 비슷한 퍼즐의 반복을 만든다.

반대로 새로운 것을 계속 추가하면 그것의 해법을 새로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월드 오브 구2'는 구를 연결해 확장하고, 파이프로 보내는 목표 자체를 바꾸진 않는다. 기본적인 핵심을 익혔다면, 새로운 기믹도 충분히 창의적인 플레이로 풀어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약간이라도 달라진 상황에도 오브젝트가 크게 변동하는 물리 기반. 여기에 수많은 기믹을 넣어두면서도 근간은 그대로 유지하고, 또 그 기믹을 활용하는 플레이의 다양성을 지키고 있다는 것. '월드 오브 구2'의 강함은 창의성의 기반을 잡아 놓은 탄탄한 기본기가 바탕이다.



진짜 끈적함으로
액체가 만든 시간의 활용

끈적끈적 하다고는 하지만 전작에서는 그 특성이 별로 드러나지 않았던 구. 후속작에서는 기름과 같은 오브젝트 오일로 진짜 끈적한 플레이를 만들었다. 오일은 액체다. 때로는 다른 오브젝트에 붙어 구 역할을 하기도 하고, 잠든 구를 깨우기도 하고, 물건을 밀어내 지형 상황을 바꾸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꼭지점을 기준으로 연결된 선들의 집합과 그 무게 정도의 물리에서 오일과 용암 등 액체를 통한 보다 변화무쌍한 물리 전개가 이루어졌다. 기술의 발달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이 액체류가 게임 플레이에 준 영향이 더 크다. 구들을 한데 모으는 전작의 능력이 사라지며 구의 이동과 연결은 순전히 오브젝트의 배치로 결정된다.


오일은 이러한 오브젝트를 간접적으로 연결하는 힘을 가진다. 오일을 빨아들인 구가 수축하거나 팽창하고, 비어있는 구들은 검정색 오일을 흡수해 일반 구와 같은 형태가 된다. 밀어내고, 흡수되고, 옮겨가며 플레이의 다양성은 더욱 높아졌다.

당연히 맵 디자인 역시 큰 변화가 생겼다. 오일이나 용암은 흐른다는 특성에 맞게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사라지기도 하고, 때로는 게임 플레이를 방해하기도 한다. 게임 플레이 자체에 타임 어택이 걸린다.

이러한 시간적 제한은 꼭 액체가 존재하지 않더라도 많은 스테이지에 존재한다. 제한된 오일을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 빠르게 오일 발사기를 움직여야 한다. 잠시 탑 세우기에 여유를 가지면 그대로 필요한 오브젝트를 날려버리기도 한다.

이러한 속도전은 플레이어의 순발력과 정확한 조작을 필요로 한다. 분명 기믹의 변화, 긴장감 있는 스테이지 활용을 만드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하지만 깊게 고민하고, 하나하나 구를 설치해 플레이의 정확도를 높이는 플레이를 막아 퍼즐보다는 순간적인 판단에 의존하는 플레이를 유발한다. 일종의 플레이 타임 늘리기 역할도 하는 셈이다.


여기에 여러 오브젝트를 활용한 수많은 기믹의 조합이 그려지다 보니 실제 스테이지 하나하나에도 많은 반복과 분석이 개발 과정에서 필요했을 것이다. 이는 곧 개발 자원으로 이어지는데 상술했듯 챕터3까지 40여 개 정도에 그치게 됐다.

비교적 적은 볼륨 해결을 위해 스테이지 안에 숨겨둔 요소를 더해두고, 구 획득이나 목표 시간 등을 도전 과제 형태로 설정해 파고들 거리를 만들어 두긴 했다. 이게 모은 구로 높은 탑을 쌓는 콘텐츠 월드 오브 구 주식회사 정도의 매력을 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또 터치를 통한 직관적인 조작으로 플레이가 수월한 닌텐도 스위치에서도 원하는 대로 조작을 완벽하게 하기 어려운 점은 아쉽다. 선택을 되돌리는 것도 버튼 같은 게 아니라 맵을 돌아다니는 하얀 벌레를 터치해야 하는 데 이게 배경과 엮여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다.

탐정 어드벤처 월드 오브 구
비유와 메타 게임으로 빚은 내러티브


표지판을 이용한 관찰자, 물질 소모와 환경이라는 문제에 관해 풍자적으로 표현했던 내러티브는 이번 작품에서 더욱 직접적이고, 풍자적으로 그려졌다. 어느 정도 공통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던 이야기는 챕터4에서 아예 '월드 오브 구'라는 게임 자체의 메타적 주제로 흘러간다.

월드 오브 구9, 11, 17이라는 또 다른 게임의 이야기를 안에 담고 그 안에 보다 직설적인 방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한다. 게임 안에 스스로 게임임을 인지하는 존재부터 가상현실을 주장하는 이들을 향한 실랄한 비판. 여기에 아예 게임 장르가 달라지기도 한다.


게임의 1/4, 그것도 내러티브의 다음으로 나가는 종장 직전의 구간에 이런 기이한 세계를 담아내는 결단이 돋보인다. 분명 이 이질적인 구간은 줄곧 몰입감 있게 게임을 즐긴 이들이 이 게임을 어떻게 바라볼지 전혀 다른 평가를 내리게 하기 적합하게 하니 말이다.

마치 뜬구름 잡는 컷신으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파악할 수 없게 하더니 게임 후반부에는 아예 메타게임을 부르짖으며 이야기의 전개를 흐트러버린다. 반대로 주제를 충실히 전했다고 느낀다면 중간중간 표지판에 담긴 비유와 챕터4 흐트러진 이야기가 엔딩과 엮이는 구간에 여러 의미로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다.

어쨌든 말로 길게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플레이를 통해 그 변화를 체감해야만 하는, 그런 이야기가 전개된다.

직접 해봐야 알 수 있는 이야기, 플레이, 게임. 그게 '월드 오브 구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