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퍼즐'하면 두뇌를 써서 차근히 문제를 푸는 게임이 떠오르곤 한다. 물론 테트리스처럼 순발력과 컨트롤을 겸비해야 하는 유형도 있지만, 통상 '모험' 요소가 더해진 상태에서 '퍼즐'을 강조하면 순발력과 컨트롤을 주무기로 삼기보다는 머리를 차근히 굴려서 해답을 찾아내는 구도를 특징으로 삼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바인'을 보았을 때 다소 낯설었다. 퍼즐이라기엔 애매한 전형적인 플랫포머였기 때문이었다. 실기 영상을 보고 인터뷰를 진행했음에도 내심 '퍼즐'의 정의에 맞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있었다. 그런데 이 혀 긴 개구리의 모험에 동참해 보니, 이 이색적인 '퍼즐'을 만들기 위한 고뇌가 이리저리 꼬이고 있는 손가락에서부터 전달이 되고 있었다.
게임명: 바인(Vine)
장르명: 퍼즐 플랫포머
출시일: 2023.6.22
리뷰판: 출시 빌드(1.00)개발사: 프로그파티
서비스: OT 게임즈
플랫폼: PC(스팀, 스토브)
플레이: PC
혀 긴 개구리가 주인공인데 왜 굳이 제목이 '바인'이었을까. 이 해답은 초반부터 바로 나온다. 덩굴이라는 단어에서 따온 '바인'은 작중의 핵심 요소이자, 낙원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덩굴에 둘러싸인 낙원이라는 등장인물의 말이 아니어도 곧 이어지는 튜토리얼에서 혀를 덩굴에 걸거나 덩굴에 매달려서 장애물을 극복하는 주인공 '릭'의 모습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점프와 여러 조작법을 토대로 스테이지 끝까지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전형적인 플랫포머 구성에 처음엔 코웃음이 나올지 모르겠다. 인디 감성을 자극하는 도트 그래픽에 귀여운 동물을 앞세운 감성적인 플랫포머라 여길지 모르니까. 거기에 덩굴에다가 혀를 걸고 장애물을 극복하는 액션이 추가된 정도로 보일 것이다.
그렇지만 '스윙'이 나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조금씩 달라진다. 처음에 '스윙'은 그래도 간단하긴 하다. 덩굴에 혀를 걸고서 점프해서는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구도에서 시작하니까. 인디애나 존스나 어디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로프를 위에 건 뒤에 로프를 붙잡고 반대편으로 신뢰의 도약을 하는 그 장면이 연상되긴 한다. 그만큼 익숙해서 조작감이 조금은 낯선 것쯤은 금방 극복할 수 있을 정도다.
거기에서 더 발전해봤자 타잔처럼 계속 무언가를 붙잡아 스윙하고 점프해서 붙잡아 스윙을 반복하는 컨트롤 정도만 떠오르겠지만, '바인'에서 보여준 응용은 예상보다 폭이 넓고 정교했다. 우선 단순히 왔다 갔다 하면서 반동을 주면 더 멀리 뛰는 구도도 아니었다. 마치 그네뛰기처럼 적절한 때에 놓고 뛰지 않으면 바로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높이 붕 뜨기만 하고 멀리는 못 가는 삑사리가 나기 일쑤였다. 정감 있는 도트 그래픽에 그 정도로 물리 엔진을 적용했을 거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던 터라 초반에 헤맬 수밖에 없었다고 할까. 오죽하면 개발자가 데모에서 여러 차례 그런 피드백을 받았는지, 스팀 커뮤니티에 게임 내 구현된 물리 요소를 부연 설명으로 붙여놨을 정도였다.
통상 '퍼즐'하면 컨트롤보다는 뇌지컬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조금 당혹스러울 수 있었겠지만, 조금 더 나아가면 순발력과 뇌지컬 그리고 컨트롤까지 요구되는 구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혀를 어디에다가 걸고 쭉 늘린 다음에 박스에도 혀를 갖다 댄 뒤에 위쪽 덩굴에 다시 걸어서 스윙으로 건너편으로 던지는 등, 말로 하다가 머릿속이 꼬일 것 같은 복잡한 동작들을 정확히 수행해야만 통과가 가능한 곳이 한둘이 아니다.
얼핏 봐서는 이런 게 될까 싶은 것도 어떻게 혀를 잘 놀리고 물리를 잘 이해하면 통과가 가능하니, 그 구성에서는 실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를 해도 손이 꼬여서 여러 차례 실패하지만 그 난관을 극복했을 때 느끼는 쾌감은 소울류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통상 퍼즐 게임을 할 때 진입장벽이 머리를 굴려도 해답이 안 나오고 방법을 찾지 못해서 포기하는 것 아니던가. 그렇지만 그게 또 퍼즐 게임의 묘미인 역설적인 상황이다.
'바인'은 그 역설 사이에서 능숙하게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다. 머리로 이해가 안 가도 몇 번 해보면 바로 이해가 가고, 손이 꼬여도 여러 차례 해보면 결국은 극복하도록 유도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중반부터는 갑작스럽게 '호펫'이라는 변종들이 추격, 최대한 빠르게 머리와 손을 놀려서 탈출하는 재미까지 더했다. 잔잔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퍼즐만 풀다 보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던 부분을 빠르게 캐치해서 추격전의 묘미로 보완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도망가는 구도만 연출하는 것은 아니었다. 직접 공격은 못하더라도 적이 올 때 트랩을 건너편에 있는 박스를 스윙으로 던져서 발동시켜서 저지하거나 박스를 끌고 와서 깔아뭉개는 등 지극히 퍼즐 플랫포머적인 요소로 대처하는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이런 게임플레이 구조가 '바인'만의 요소는 아니지만, 꽤나 제한 없이 늘어나는 '혀'라는 소재에 디테일한 물리 엔진 그리고 짜임새 있는 구조로 자신만의 개성 있는 퍼즐 플랫포머를 만들어 낸 점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혀를 붙였다가 뗀다는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키를 눌렀다가 떼는 구성을 갖춘 건 좋았지만, 종종 그 조작이 소위 '씹히는' 일이 있었다. 심지어 튜토리얼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게임 특성상 마치 청기백기처럼 어느 버튼은 꾹 누르면서 다른 버튼은 눌렀다 뗐다를 반복해야 하니 정확하게 조작법을 수행하지 않으면 튜토리얼이 통과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분명 키를 누르고 있음에도 반응이 오지 않아 결국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었다.
그나마 체크포인트로 다시 돌아가서 진행하면 원래대로 잘 된다는 점이 다행일까. 게다가 죽으면서 리트라이하는 구조상 체크포인트도 꽤 촘촘하게 깔려있어서 부담감은 덜하긴 했다. 그래도 멀쩡하게 잘 나가다가 조작감이 틀어져서 다시 시작하는 구도는 게임플레이 흐름과 몰입감을 끊는 요소 아니던가. 혀의 방향을 조작하는 것도 마우스 포인터를 따라가기보다는 패드를 이식한 느낌이라 적응하기 전까지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키가 잘 안 들어먹히면 더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불편함에, 죽으면서 나아가야 하는 어떤 '목적'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쉬웠다.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낙원을 찾아 떠나는 개구리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음악과 감성적인 도트로 그려진 데다가 더빙까지 입혔지만 '바인'만의 무언가를 던져주기엔 2% 부족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주파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낄 유저들을 위해 중간중간 각종 도전 과제처럼 놓인 수집품을 모아서 히든 엔딩에 도전하는 맛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퍼즐 게임을 접했을 때 겪게 되는 최초의 장애물을 완화하지는 못했다. 통상 퍼즐에 다른 장르가 붙을 때는 꽤나 짜임새 있고 신기한 그 '퍼즐'을 왜 풀고 나가야 할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중화하기 위한 것도 있는데, 그 부분에서 '바인'은 상당히 아쉬웠다. 그런 것 없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클리어했을 때의 '쾌감'만은 확실하니, 도전 정신을 불태우면서 할 기본 자격은 갖췄지만, 플러스 알파가 좀 아쉽다고 할까.
물론 이렇게 개발자가 대중성이나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온전히 파고드는 것이 '인디'의 매력이긴 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바인'은 1인 개발팀 프로그파티의 꽤나 성공적인 첫 발이라고 하겠다. '로프 액션'이라는 말만 들었을 때는 굉장히 단순해보였던 퍼즐이, 몇 가지 규칙이 붙으면서 뇌지컬과 피지컬 모두 요구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넘어가는 쾌감을 주는 모험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모험에 담긴 이야기나 코어 외에 다른 디테일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있어도, 홀로 뚝심 있게 자신만의 개성을 확고히 보여준 '프로그파티'라는 이 개발팀의 앞으로의 행보는 눈여겨볼 필요는 있을 듯하다.
7.5
- 감성적인 도트와 음악으로 빚은 분위기
- 몇 가지 변주로 무궁무진하게 뽑은 로프액션
- 물리 법칙까지 고려하는 정교한 퍼즐 디자인
- 그런 거 몰라도 클리어는 가능한 유연함
- 종종 키가 잘 안 먹히는 오류
- 직관적이지 않은 마우스 조작
- 약간의 실수도 용납 안 되는 중후반 맵
- 몰입하게 만들 플러스 알파는 다소 미진
리뷰 플랫폼: PC (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