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에게 게임이란 응당 추억이 된다. 그 추억은 후속작이나 확장팩에서 이어지기도 하며, 아예 다른 길로 접어들어 잊혀지기도 한다. 농익은 가을 콧바람이 변덕을 부려 내 마음 한 켠을 시리게 한 걸까. 가끔은 옛 추억이 그리워 깊은 회상에 잠기곤 한다.
진성까진 아니지만, 나를 늦깎이 블빠로 인도한 게임. 붉게 타오르는 석양마저 지게 만들고, 내 두 번째 인격을 류승룡으로 받들던 게임. 파급력이 어찌나 대단했는지 철옹성 같던 롤 점유율을 야금야금 갉아먹고 결국 왕좌를 찬탈했던 그 게임. 수면제와 레스토랑의 고급 계보를 이으며 스산한 폭풍전야 현상까지 멀끔히 잠재웠던 오버워치. 아, 2가 나왔으니 이제 오버워치1이 되는 건가?
기자 역시 오버워치와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함께 나누던 때가 있었다. 얼마나 하얗게 불태웠는지 한낱 루저였던 내가 오버워치에서는 먼치킨의 수준까지 도달해 본 적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수도 없이 질문을 받아왔다. 모름지기 랭킹이 나뉜 게임이다 싶으면 꼭 나오는 질문. "그래서 님 티어가?"
무릇 대한민국 게이머라면, 아니 지구촌 게이머라면 게임 실력에 대한 품평은 가장 민감한 주제 중 하나다. 가족과 게임 실력은 건드는 거 아니랬는데. 그나마 '그님티'는 잘하냐, 못하냐를 떠나서 상대를 헐뜯고 비난하는 목적이 아니라는 것. 어디까지나 이해하기 나름이다. 아 그래서 기자 티어는 어디냐고?
아시아 78등까지 찍어봤다. 브론즈부터 그랜드 마스터까지의 티어를 예측했겠지만 요건 몰랐을 거다. 점수 스크린샷을 보여주면 가끔 논란과 의심이 불타오른다. 스크린샷 불펌부터 조작까지 이유가 다양하다. 그럴 땐 개인정보가 담긴 프로 게임 리그 참여 자격 획득 메일을 보여주면 금새 사그라든다. 괜스레 어깨에 뽕이 차는 건 비밀이다.
그토록 열정 가득하고 승리에 목마른 열혈 플레이어는 다 옛말. 눈앞에 모기가 왱왱거려도 잡지 못하는 처참한 반응 속도를 가진, 내일 모레 서른을 바라보는 수염 거뭇거뭇하게 난 아재는 즐길 줄이나 알지. 나이가 하나 둘 쌓일수록 처절한 승부에 대해서는 아웃 오브 안중이다. 추억을 빌미 삼아 가볍게 오버워치2 찍먹이나 해봐야겠다.
막상 다운로드를 하려니 섬짓 망설여진다. 흑인 대머리 인남캐와 도리깨 여전사에게 무참히 짓밟혔던 나날들. 수리검 닌자와 6발 들이 리볼버 총잡이보다는 융합포, 레이저, 로켓 해머 등 최첨단 미래 무기로 무장한 어깨 형님 세 명과 그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세 명의 의무병만이 전장에서 살아남던 시기가 떠올라여서일까.
하지만 로드맵을 보면 한시름 놓인다. 블리자드에서 칼을 갈고 나온 건지 지난날의 약점들을 모조리 보완하려는 업데이트 예정 내용이다. 시즌제 업데이트라니, 그 옛날 짜잔형이 이걸 봤어야 했는데. 이대로만 나와 준다면 찍먹이 아니라 푹먹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고, 행복회로를 바싹 태우며 당장 사전 다운로드를 하러 간다.
다만 명색이 랭컨데
그러고 보니 오버워치2 출시를 기념하며, 마치 예전에 이름 좀 휘날리던 영웅들이 재회라도 한듯 추억 섞인 디자인의 의자도 나왔다. 블리자드와 공동으로 디자인한 공식 라이센스 게이밍 의자 시크릿랩 오버워치 컬렉션.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의자라고? 스트리머들이나 e스포츠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앉는 그 의자가 맞다.
시크릿랩 의자는 특히 게임과 유서가 깊다. 프로게이머 출신인 CEO가 게이머의 특성을 고려해서 만든 의자라니까 성능에 대한 의구심은 잠시 내려놓고, 디자인을 보자. 게임 관련 디자인이 들어간 제품은 무려 50개가 넘는다. 개중에 오버워치 디자인 제품은 파치마리, 오버워치 로고, 디바, 트레이서, 겐지로 구성됐고 이번에 새로 나온 디자인은 트레이서, 겐지다. 주 캐릭과 이렇게나마 재회하다니 금방이라도 최고의 플레이 먹는 상상을 한다.
디자인을 살펴보면 가죽의 색배합이 굉장히 잘 나왔다. 오버워치는 영웅을 대표하는 퍼스널 컬러가 있어 자칫하면 촌스러워 보이거나 단조로워 금방이라도 질릴 법한 디자인이 나올 수 있는데 제품 사진을 보니 디자이너가 열일했구나 라는 생각만 들더라. 때 탄다며 검은색 의자만 강요하는 엄마의 의견에도 반박이 가능하다.
디테일도 빼먹지 않았다. 의자 앞쪽 사이보그 닌자인 겐지의 바이저 디테일에서 '오' 했다면 뒤쪽에선 '이야'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겐지의 궁극기 대사 "용이 내가 된다"를 반영한 건지 의자 등받이엔 거대한 용이 자수로 수 놓였다. 떡대만 좋다면 용 문신이라고 우겨도 될 정도.
주황색 쫄쫄이 하면 생각나는 트레이서 레깅스의 벌집 패턴 또한 의자 디자인에 고스란히 적용됐다. 그리고 트레이서 가슴팍에 부착된 시간 가속기 역시 의자 뒤쪽에 큼지막하게 자수 표현되었다.
시크릿랩 제품은 사용자 키와 몸무게에 따라 사이즈가 나뉘는데, 그에 따라 가격도 다르다. 시크릿랩 오버워치 컬렉션 R사이즈(170~189cm, 100kg 미만 권장)는 62만 9천 원부터 구성에 따라 가격이 추가된다.
톡 까놓고 얘기하자면 한두 푼 하는 가격은 아니다. 하지만 저가형부터 고가형까지 수십 개의 게이밍 의자를 조립해 보고 써 본 입장에서 시크릿랩은 게이밍 중 탑이 아닐까라는 생각. 그냥 의자에는 가성비가 없고 돈을 들인 만큼 기능이 추가되며, 척추에서 나오는 비명의 데시벨이 달라진다고 평을 내리고 싶다. 개인적으로 설날 특가를 놓친 게 천추의 한이었는데 조만간 지갑 일발 장전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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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봉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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