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한국어로 찾아 온 일본 국민 파티 게임, '모모타로 전철'
김규만 기자 (Frann@inven.co.kr)
일본 누적 판매량 400만 장을 넘어선 국민 파티 게임, ‘모모타로 전철 ~쇼와 헤이세이 레이와에서도 국룰!~(이하 ‘모모타로 전철’)’이 한국어로 출시됐습니다. 최근 여러 일본 게임들이 하나둘씩 한국어 지원을 늘려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게임까지 공식 한국어 버전을 만날 수 있다니 놀랍다는 커뮤니티의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이번 모모타로 전철은 이미 일본에서는 2020년 출시된 버전으로, 최신 게임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본에서는 그 후속작이 2023에 출시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모모타로 전철을 한국어로 플레이하기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또 새로운 파티 게임을 찾고 있던 캐주얼 게이머들에게는 나름 희소식일 수 있습니다. 출시 이후 체험해 본 ‘모모타로 전철’은 비록 낯선 모습이었지만, 일본의 국민 파티 게임으로 오를 수 있었던 ‘재미’만큼은 확실하게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게 그렇게 우정을 파괴한다면서요?
기본적으로 ‘모모타로 전철’은 일본 전국을 하나의 보드로 활용하는 ‘보드게임’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전철 회사 사장이 되어, 매 판마다 새롭게 선정되는 목적지를 향해 주사위를 열심히 굴려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산을 늘려가며 상대 전철 회사보다 앞서나가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어 버전 ‘모모타로 전철’은 혼자서 즐기는 ‘나 홀로 모모전철’ 뿐 아니라 가족과 친구와 즐기는 모드,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을 활용해 다른 플레이와 즐기는 온라인 모드도 지원합니다. 온라인의 경우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중에만 가능하며, 로컬 모모전철 메뉴를 통해 근처 사람들과도 통신하며 게임을 즐길 수 있죠.
이번 체험기에서는 파티 게임의 가장 큰 허들이기도 한, ‘친구’가 없는 상황에서 혼자 게임을 즐기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물론 마음이 맞는 친구와 즐길 때 가장 재미있겠지만,게임은 혼자서도 ‘모모타로 전철’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나 홀로 모모전철을 시작하면 자신 외에 두 명의 NPC 캐릭터를 상대로 선정할 수 있으며, 이때 선택하는 NPC에 따라 게임의 난이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가장 초심자를 위한 난도인 ‘콩도깨비’의 경우 주사위가 1~3까지밖에 나오지 않고, 특정 카드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제약 사항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NPC들은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전철 회사를 운영하며, 이들과 대결을 하는 동안 게임의 이모저모를 파악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언제나 도쿄역에서부터 기차가 출발합니다. 가장 처음 선정되는 목적지까지 빠르게 다가가는 전철 회사가 해당 판을 승리하게 되죠. 일본 지리에 익숙하지 않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목적지로 가는 최단 구간을 분홍색 화살표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까지 향하며 만날 수 있는 타일은 여러 색상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파란 색 타일(플러스)에서는 자금을 추가로 획득할 수 있고, 빨간 색 타일에서는 반대로 자금을 뺏깁니다. 노란 색 타일에 멈춰설 경우 게임에 유용한 카드를 무작위로 획득할 수 있으며, 보라색 도시 모양에 진입할 경우 소지금에 한해 도시의 상점을 매입할 수 있죠. 매입한 상점은 수익률에 따라 매년 소지금을 늘려주는 역할을 하고요.
여기까지만 알아도 기본적인 게임플레이를 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노선이 굉장히 여러 갈래로 펼쳐져 있을 뿐, ‘부루마블’같은 보드게임을 하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모타로 전철’의 묘미는 첫 번째 목적지에 누군가가 다가간 이후부터 시작되죠.
누구든 첫 목적지에 들어서게 되면, 해당 플레이어는 상금을 얻고 다음 목적지가 다시 선정됩니다. 다시 선정되는 목적지에 따라서, 1등을 달리고 있던 사람도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죠. 예를 들어 목적지가 고베에서 센다이로 바뀌었다면, 아직도 도쿄에 발이 묶여 있던 꼴찌가 더 유리한 위치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물론 그 뿐이 아닙니다. 누군가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면, 그 다음 판에서는 이전 목적지에서 가장 멀리 있던 사람에게 ‘가난뱅이 신’이라는 것이 들러붙게 됩니다. 응애 가난뱅이 신부터 거대 가난뱅이 신까지 여러 바리에이션이 있지만, 이들이 하는 것은 들러붙은 사람의 소지금을 탈탈 털어버리는 것입니다.
금전 감각 사라지는 게임플레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목적지에서 가장 멀리 있었던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빚더미에까지 앉히는 모습이 사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의외로 이러한 요소들은 ‘승자가 뻔한’ 게임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가난뱅이 신은 들러붙은 사람만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열차가 그 주변에 있어도 가난뱅이 신의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사람은 최대한 가난뱅이 신을 피해 다음 목적지에 향해야 하고, 꼴등은 될 수 있다면 자신에게 붙은 가난뱅이 신의 ‘악한 영향력’을 다른 플레이어에게 나눠줄 수도 있겠죠. 가난뱅이 신의 파괴력에 따라 자산 1등을 달리던 사람도 순식간에 파산할 수 있으니, 전통의 우정파괴 게임으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난뱅이 신만이 게임에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노란 타일에서 얻을 수 있는 ‘카드’ 또한 모모타로 전철의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실, 게임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데는 가난뱅이 신보다도 ‘카드’의 활용이 더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느낌도 줍니다.
‘모모타로 전철’의 어떤 카드는 부루마블의 황금열쇠보다도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꼴찌인 상태에서 사용하는 카드부터 모든 빚을 탕감해주는 카드, 자신이 유리한 상황을 두 배로 더 유리하게 만드는 카드, 무수히 많은 주사위를 굴려 한 번에 엄청나게 많은 칸을 이동할 수 있는 카드 등... 게임에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카드들이 등장하죠.
이 카드들은 물론 자신의 상황을 역전시키는 데도 요긴하게 활용되지만, 그만큼 타인의 불행을 야기하는 방식으로도 잘 쓰입니다.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의 전철을 방귀로 날려버린다든지, 6개 대도시 중 하나를 선택해 순간이동을 하는 등 상황을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묘수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모타로 전철’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명언(?)가장 잘 어울리는 보드게임 중 하나기도 합니다. 줄곧 1등을 내달리다 -100억에 달하는 빚더미에 쌓이고 나서도, 카드를 잘만 사용하면 다시 재기에 성공할 수 있는 게임인 셈이죠. 게임을 플레이하는 햇수를 늘리면(모든 플레이어가 한 턴씩 소비하면 1개월이 흐릅니다. 1년은 12턴 정도 되는 셈) 수조 원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에, 터무니 없는 빚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너무 주눅이 들 필요 또한 없습니다.
진입 장벽 높은 일본 지명? "설명 텍스트도 지원합니다"
결국, ‘모모타로 전철’은 이렇게 일본의 각지를 전철로 여행하며, 천재지변(?)을 최대한 피하며 목적지에 가장 많이 도착하고, 총 자산 No.1에 다가서는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비주얼로 보여지는 것보다 규칙이 간단하고, 초반 튜토리얼 기능이 지원돼 어렵지 않게 게임에 녹아들 수 있었던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진입 장벽은 조금 느껴지는 편입니다. 일단 ‘왜색이 짙다’는 말이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비주얼 측면이 국내 게이머에게 호불호가 나뉠 것으로 보입니다. 모모타로 전설의 스핀오프 작이라는, 시리즈의 태생과 같이 일본 설화 속 여러 존재들이 등장한다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고요.
일본 전역을 무대로 하는 만큼, 국내 게이머가 몰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도쿄나 오사카, 후쿠오카처럼 유명한 지명은 들으면 알지만, 그 외에 다른 지명은 들어도 어디쯤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습니다. 물론, 분홍색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면 되지만, 전체적인 몰입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모모타로 전철’은 각 지역의 특산물이나 역사, 문화 등을 설명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닌자’로 유명한 이가 지역에 가면 수리검 판매점을 매입할 수 있는 것 처럼요. 또 돋보기를 눌러 각 지역 별 설명을 확인할 수도 있으니, 일본 지역에 관심이 있는 게이머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올 연말 연시, 친구들과 함께 보낼 시간이 있다면, ‘모모타로 전철’을 통해 우정을 다지는(파괴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