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서서히 들려오기 시작한 루머는 세상에 아직 남아 있는 '사일런트 힐'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코나미가 시리즈 중에서도 가장 팬이 많기로 소문난 2편의 리메이크를 개발중이고, 또 외전격 프로젝트 또한 준비중이라는 이야기였죠.

물론, 많은 우려 또한 공존했습니다. 웬만큼 잘 만들지 못하면, 그동안 추억 속 원작을 사랑해 온 팬들마저 등을 돌리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코나미의 행보는, 글쎄요. 솔직히 말하면 원작 팬들에게 신뢰를 주는 인상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사일런트 힐2 리메이크'의 정식 출시를 약 2달 앞둔 8월, 코나미는 도쿄 긴자에 위치한 사옥으로 전 세계의 게임 매체를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최초로, 리메이크 버전 '사일런트 힐2'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죠. 그리고 현장에 참석한 오카모토 모토이 사일런트 힐 시리즈 디렉터는 "리메이크에 대한 코나미의 진심을 보여주겠다"며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25년만에, 다시 사일런트 힐로
4K 지원, 놀라운 비주얼로 돌아온 잿빛 도시

▲ 안개로 자욱한 게 인상적이었던 시연장

마치 사일런트 힐을 연상시키는 듯 자욱한 안개가 맞이했던 '사일런트 힐2 리메이크' 시연장. 그곳에는 국내 초청 매체를 위한 한국어 빌드 좌석 또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출시를 약 2개월 앞두고 한국어 번역 상태 또한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죠.

이날 시연은 게임의 첫 부분부터 시작해, 약 4시간에 걸쳐 게임을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보스로 등장하는 '삼각두'를 대면한 이후는 엠바고 사항에 포함되었으니, 대체로 초반 도시와 두 개의 아파트 정도를 탐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셈입니다.

게임을 시작하자 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꽤나 디테일한 접근성 옵션을 지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각, 청각 등 장애를 가진 게이머를 위한 옵션은 물론, 퍼즐 난이도와 전투 난이도를 각각 따로 설정할 수 있도록 안배한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더욱 디테일해진 컷신 연출, 몰입감을 한층 높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역시 현세대 그래픽으로 재탄생한 게임 그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시연 시작 전 주요 개발진이 이야기한 것처럼, '사일런트 힐2 리메이크'는 여러 측면에서 현세대에 어울리는 '사일런트 힐'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초반 몰입감을 높이는 컷신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영상의 전반적인 카메라 구도나 연출은 원작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면서, 고품질 그래픽과 페이셜 캡쳐 기술을 통해 사실성을 극대화시킵니다. 게임이 시작되는 전망대 공중화장실 안, 거울 앞에 선 주인공 제임스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연출에 눈길이 가는 이유입니다.

▲ 내가 다시 이 거리를 걷게 되다니

25년이나 더 된 원작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겠지만, 게임의 전반적인 진행은 원작을 충실히 따릅니다. 3년 전 죽은 아내에게서 온 편지, 그 편지 한장에 의지해 사일런트 힐에 돌아온 주인공, 분명 이전에는 휴양지였지만, 지금은 지옥도가 되어버린 마을까지 말이죠.

원작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카메라입니다. 픽스드 카메라 시점으로 진행하던 원작과 달리, 리메이크 작품은 숄더뷰를 채택했습니다. 최근 서바이벌 호러 장르의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고, 이용자가 카메라를 비교적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기에 안개 속 마을을 탐험하기도 더욱 편해졌습니다.

시점의 변화는 탐험을 더욱 편하게 함과 동시에, 지역을 더욱 세밀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안개가 자욱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거리, 우연히 발견한 골목길이나 가게 안을 들어가 조사하는 과정 또한 원작과 다른 느낌을 줍니다. 그래픽 퀄리티가 높아진 만큼 오브젝트의 디테일 또한 상승한 점이 꽤나 좋은 인상으로 다가오는 편입니다.

▲ 오브젝트 디테일이 더해져 탐험의 재미가 더욱 살아나는 느낌


트렌드 맞춰 변화한 시스템
달라진 시점, 전투 메커니즘, 퍼즐을 토대로 한 레벨 디자인까지

시점, 그래픽의 변화는 이미 그 자체로도 원작과 다른 플레이 경험을 주지만, '사일런트 힐2 리메이크'는 그 밖에 여러 시도를 통해 게임을 신선하게 보이려 노력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를 전달하는 과정이 달라져 오랜 팬도, 또 새롭게 시리즈를 경험하는 이들에게도 안성맞춤이죠.

음향 효과의 변화는 시리즈 특유의 심리적 공포를 자극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합니다. 3D 음향의 도입으로 원근감이 느껴지는 음향을 들을 수 있고, 이따금씩 들려 오는 섬뜩한 소리는 플레이어가 긴장감의 끊을 놓치 않도록 합니다. 극초반 부분, 주인공이 사일런트 힐 안으로 접근할 때 이러한 음향 효과를 과시하는 듯한 부분이 있는데, 덕분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주변을 살피느라 한참 시간을 들여야 하기도 했습니다.

▲ 이 근처에서 뒤로 돌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전투 시스템도 비교적 현대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처음 크리쳐를 마주하는 순간부터 제임스는 못 박힌 나무 막대에 의지한 채 사일런트 힐을 탐험하게 되는데, 회피 동작이 생겨 전투가 훨씬 수월해 졌습니다. 난이도에 따라 크리쳐들을 죽이지 못하고 도망쳐야 할 경우도 생길 것으로 보이며, 이 때에도 회피 키는 원작과 색다른 경험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퍼즐 또한 원작과 비교해 대단히 정제된 느낌을 전달합니다. '사일런트 힐2 리메이크'는 얼핏 보면 안개가 자욱한 지역을 플레이어의 의지대로 탐험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도를 제공하는 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꽤나 선형적인 구조의 레벨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심이 되는 것은 지역(스테이지)별로 중심에 위치한 '큰 퍼즐'입니다. 다른 퍼즐들과 비교해 이 퍼즐을 '크다'고 일컫는 이유는, 지역의 모든 탐험 구역, 그리고 동선이 이 퍼즐을 중심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 지역 하나를, 거대한 퍼즐을 풀어야 하는 공간(스테이지)으로 디자인한 점도 인상적

원작에서도 등장한 '닐리의 카페'를 중심으로 한 마을 탐사 공간이 그 적당한 예시입니다. 카페에는 장막에 싸여 있는 고장난 주크박스가 있고, 플레이어는 카페를 중심으로 한 지역 곳곳을 탐험하며 주크박스를 수리할 재료를 찾아나서게 됩니다. 주크박스 퍼즐을 모두 풀고 나면, 그제서야 다음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큰 퍼즐들은 25년 전 원작에서도 확인 할 수 있었던 '사일런트 힐2'의 대표적인 퍼즐을 재구성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너무도 오래 되어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동전의 양면을 이용한 퍼즐이나, 시계의 시침, 분침, 초침을 활용해 풀어내는 퍼즐들 말이죠.

큰 퍼즐을 중심으로 한 레벨 디자인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플레이어에게 목표를 명확히 던져주는 한 편, 퍼즐을 푸는 과정 자체에는 일부 자유도를 허락합니다. 큰 퍼즐의 재료를 구해야 한다는 대전제 아래에서, 재료를 구하는 순서는 플레이어의 손에 맡기는 것입니다.

▲ 25년 전 원작에서 등장했던 대표적인 퍼즐도 만나볼 수 있을 전망입니다


그래도 역시 중요한 건 '분위기'죠
'사일런트 힐' 특유의 을씨년한 분위기, "10점, 10점이요"


위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사일런트 힐2'는 25년 전 게임입니다. 당시로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던 심리적 공포 게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수 많은 서바이벌 호러 게임이 시장에 등장한 오늘날에도 같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렇기에 '사일런트 힐2 리메이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그래픽이나 연출, 게임플레이같은 요소보다는 '특유의 분위기'를 얼마나 잘 살려냈느냐일 수 있습니다. 프랜차이즈의 부활을 알리고, 그 첫 타자로 가장 유명했던 시리즈의 리메이크를 선택한 코나미, 만약 그 '특유의 분위기'를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리메이크 시리즈에 대한 기대도 크게 위축될 것이 분명합니다.

▲ 여기 기억하면 사힐2 팬 인정

개인적으로도 '사일런트 힐' 시리즈의 팬으로서, 이번 시연 기회를 통해 그 부분을 가장 확실하게 검증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4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진 시연 과정동안, 저는 게임에 확실하게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향상된 비주얼과 음향 효과가 주는 몰입감도 상당했을 뿐더러, 때로는 원작 그대로 펼쳐지는 게임플레이, 때로는 새롭게 깜짝 놀래키는 크리처들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쉽게 예상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 태그: 심리적 공포

초반부 우드사이드 아파트 구간을 지나면 펼쳐지는 '이면 세계' 또한 굉장히 잘 구현돼 있었습니다. '이면 세계'란 사일런트 힐 세계관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로, 녹슨 철창과 파괴된 구조물 등 섬뜩한 오브젝트가 가득한 현실의 저편입니다. 향상된 그래픽과 오브젝트 디테일, 그리고 녹슨 철판을 밟는 발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려주는 음향 효과 덕분에, 오랜만에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번 시연에서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초반입니다. 여러 NPC들을 만나고, 그들과 관련된 컷씬을 볼 수는 있었지만, 후반 구간까지 이러한 몰입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죠.

또 몇가지 걱정이 되는 부분도 존재하기는 합니다. 대표적으로 시연 마지막 구간에 마주한 '삼각두'와의 전투 시퀀스를 들 수 있겠습니다. 원작에서도 잠깐 싸우다가 헤어지는 식의 연출이 된 부분인데, 리메이크에서는 '회피' 액션이 추가로 마음만 먹으면 삼각두를 농락하는 플레이도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원작의 삼각두가 '죽일 수 없는 존재'이자, 마주치면 무조건 도망가야만 했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던 것을 생각하면, 그 임팩트가 조금 줄어든 부분이 아쉽기는 합니다. 과연, 개발진은 회피 액션을 비롯해 확 달라진 전투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마지막까지 긴장감을 줄 수 있는 비결을 찾아냈을까요? 정식 출시 이후 이 부분을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가? 전혀 위압감이 없는 이 친구는 좀 걱정이 되네요

또 기대되는 부분은 있습니다. 개발진에 따르면, 이번 리메이크 작품에는 원작에 존재하지 않았던 엔딩 2종이 새롭게 수록됩니다. 기존 엔딩도 다소 충격적이었던 것(이누 엔딩? 이라고?)이 존재했던 것을 미루어 볼 때, 또 어떤 엔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감도 오지 않네요.

앞으로 약 한 달 반, 다가오는 10월이면 오랜 기간 호러 팬들의 추억 속에만 존재했던 '사일런트 힐'이 본격적인 부활을 알립니다. 개발진의 이야기대로, '리메이크에 대한 진심'을 확인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