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저가 원하는 멀티 엔딩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점들을 신경써야 할까?

멀티 엔딩을 만드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엔딩 직전에 선택에 따라 다른 엔딩을 보게 하는 건 쉽다. 하지만 이건 진정한 의미에서 멀티 엔딩으로 보기 어렵다. 제대로 된 멀티 엔딩이란 게임을 하면서 유저가 여러 선택을 하게 되고 그러한 선택이 쌓여서 분기가 갈린 끝에 저마다 다른 엔딩을 마주하게 되는 걸 의미한다. 당연히 이런 식의 자연스러운 레벨 디자인은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처럼 만들기 어려운 멀티 엔딩이지만, 그럼에도 게임사가 멀티 엔딩을 넣는 이유는 단순하다. 잘 만든 멀티 엔딩만큼, 유저를 빠져들게 하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멀티 엔딩을 만들고자 했을 때 게임사가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아마 많은 게임사가 궁금해했을 이러한 의문에 CDPR의 모리츠 레어 시니어 퀘스트 디자이너가 답했다. 19일, 데브컴 1일 차 강연에서 그는 '사이버펑크 2077'의 멀티 엔딩을 예시로 들면서 유저들이 원하는 형태의 멀티 엔딩을 만들기 위해선 어떤 점들을 신경 써야 하는지 그들의 노하우를 전했다.

▲ CDPR 모리츠 레어 시니어 퀘스트 디자이너

멋진 엔딩을 만들기 위해선 크게 네 가지를 신경 써야 한다. 첫 번째는 플롯이다. 대부분의 게임은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플레이하다가 엔딩에서 이러한 긴장이 풀리는 식으로 플롯을 전개한다. 갈등의 해결이라고 볼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캐릭터다. 평범한 캐릭터여선 안 된다. 좋은 주인공 캐릭터는 일반적으로 내적 갈등을 지닌, 결함이나 결핍 등 특정 욕구를 가진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진행한다. '사이버펑크 2077'의 주인공 V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는 평범한 길거리 용병으로 나이트 시티에서 전설이 되기를 꿈꾼다.

엔딩별 테마 역시 중요하다. 사실상 핵심에 가깝다. 각각의 엔딩이 어떤 테마를 지녔는지에 따라 엔딩에 대한 분위기, 이를 접한 유저들의 인식 역시 달라지기 때문이다. 엔딩을 구분하는 마지막 요소는 감정이다. 어떤 엔딩이든 상관없이 마지막에는 감정적인 렌즈(Emotional Lense)를 남기고 이를 통해 바라보는 형태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 멋진 엔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기본 요소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멀티 엔딩을 만들 때는 더 많은 것들을 신경 써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각각의 엔딩이 독립적인 동시에 다른 엔딩에 대한 흥미를 자극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그는 "훌륭한 멀티 엔딩은 그냥 엔딩 하나를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엔딩은 어떨까? 어떻게 해야 그 엔딩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식으로 흥미를 자극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그는 각각의 멀티 엔딩이 어떤 식으로 흥미를 자극하는지 전설, 노마드, 조니, 기업 4개의 엔딩을 앞서 언급한 엔딩을 구성하는 네 가지 기본 요소를 통해 설명했다. 전설 엔딩의 플롯은 조니가 몸에서 제거됐지만,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아 시한부 인생인 상황이다. 이 엔딩에서 V는 나이트 시티의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는다. 많은 사람들이 V를 존경하는 등 나이트 시티에서는 노력만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힘들지만 노력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엄청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건 덤이다. 전설 엔딩에서는 집에서 게임 내내 수집한 각종 무기가 캐비닛에 보관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으며, 길거리 용병에 불과했던 V를 모두가 우러러보는 걸 볼 수 있다. 길거리 용병이 나이트 시티의 왕, 전설이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은 오래 가지 않는다. 달콤한 승리의 감정과 함께 어딘지 씁쓸한 느낌이 느껴진다.

마지막 장면은 전설 엔딩의 대미를 장식하는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를 배경으로 모종의 임무에 나서는 V의 모습을 통해 거물이 되었다는 점과 시한부 인생인데 죽는 게 대수냐는 V의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엔딩의 마지막 순간을 최대한 서사적으로 사용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노마드 엔딩은 줄거리는 전설 엔딩과 유사하다. 아라사카와 싸우고 조니는 사라지고 치료법은 없어서 시한부 인생이라는 점까지 똑같다. 하지만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변화가 생겼다. 나이트 시티의 전설이 되겠다는 낡은 꿈을 극복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족에 대한 관점 역시 달라진다. 진정한 노마드 가족을 얻게 되면서 나이트 시티의 전설이 되겠다는 꿈을 공허한 것으로 여기면서 거부하게 된다. 나이트 시티라는 꿈의 도시를 전혀 다른 식으로 바라보게 되는 셈이다.

유저들이 느끼는 감정 역시 전설 엔딩과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전설 엔딩이 웅장하면서도 어딘지 씁쓸함을 느끼게 해준다면 노마드 엔딩은 마지막에 혼자가 아니란 걸 보여줌으로써 얼마 안 남은 시간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온하게 최후를 맞이할 거란 걸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조니 엔딩에서는 조니가 결국 V의 몸을 차지하게 된다. 이 엔딩의 핵심은 조니의 캐릭터성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업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찼던 조니지만, V의 희생 덕분에 이러한 분노를 극복한 모습을 보여준다. 유저들이 느끼는 감정도 전설이나 노마드와는 사뭇 다르다. 나이트 시티의 전설이 되거나 혹은 진정한 노마드 가족과 최후를 맞이하는 것과 달리 V가 자신을 희생해 조니에게 몸을 넘겨주는 만큼, 어딘지 복잡하다. 얼핏 평온하면서도 어딘지 씁쓸한 느낌이다.


기업 엔딩은 유저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는 유일한 엔딩이다. 그렇다고 아무 의미도 없는 엔딩이라는 건 아니다. 결국 이 엔딩에서 V는 시한부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도 혐오하던 기업의 손을 붙잡게 된다. 살아남기 위해서 악마(기업)과 계약하는 그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셈이다. 시한부 인생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V의 표정부터 분위기, 유저들이 느끼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전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기 짝이 없다. 엔딩을 보노라면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들게 만든다.

▲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기 때문일까. 기업 엔딩의 분위기는 어딘지 불길해 보인다

'사이버펑크 2077'이 어떻게 매력적인 멀티 엔딩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끝마치면서 모리츠 레어 시니어 퀘스트 디자이너는 "기본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선 레거시 미디어에서 엔딩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다음으로는 유저의 선택이 게임의 콘텐츠에 어떤 식으로 연결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유저가 선택한 한정된 값을 기반으로 엔딩을 구축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엔딩이 더욱 만족스러워질 것"이라고 조언을 전하면서 강연을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