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규 테마 '태양의 항구' 영상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했던가. 게임 개발도 비슷하지 싶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콘텐츠를 만들었든, 어떤 방향으로 유저를 이끌려 하든, 대부분의 게임은 다수 유저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게임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었다.

'던전스트라이커'가 대형 업데이트를 앞두고 유저 간담회를 가진 이유도 그런 맥락으로 풀이되었다. MORPG 장르의 초신성으로 각광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한 지가 석 달, 많은 유저를 만족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쓴소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유저들은 상위 던전을 놀라운 속도로 정복해나갔다.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말이 들려오는 것은 당연했다.

22일 오픈한 다섯 번째 테마 '태양의 항구'는 국면 전환을 위한 회심의 카드였다. 확장팩 개념으로 준비되었던 이 업데이트는 오픈 이래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볼륨을 넘어 가장 주목할 점은 유저의 요구가 속속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템 드랍 확률도 급격히 늘어났고, 무조건 재료를 얻는 퀘스트도 추가되었다. 소위 노가다를 눈에 띄게 줄이겠다는 개편도 보였다.

태양의 항구에서 선박 정비를 끝낸 '던전스트라이커'가 새 항해를 위해 돛을 펼칠 수 있을까. 개발사 아이덴티티게임즈의 김태연 기획팀장을 만났다.


▲ 아이덴티티게임즈 김태연 기획팀장



이번 '태양의 항구' 업데이트에서 가장 중점을 둔 요소는?

종합적으로 강조하려 했다. 이전까지도 자주 업데이트를 했지만 '오픈 이후 최초 정규 컨텐츠'라고 언급한 것도 그런 이유다. 기존에는 '화룡의 탑'과 같은 특수 던전 중심의 업데이트였고, 퀘스트 추가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태양의 항구'는 여태껏 있던 작은 업데이트와 달리 맵과 퀘스트, 거기에 따라오는 아이템까지 하나의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에 더 신경을 썼다.


태양의 항구는 지금까지의 콘텐츠 양에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규모인지?

월드맵에 새로운 구역이 생기는 정도다. 100단계 이상의 메인퀘스트가 준비되어 있고, 기존 55레벨에서 레벨 한 단계가 오를 때마다 아이템이 크게 업그레이드가 되는 변화도 이루어진다.


오픈 이후 최초의 정규 콘텐츠인데, 기대보다 늦었다는 의견이 많다.

기존 콘텐츠가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유저들의 의견을 많이 들었다. 그 반응을 보면서 우리 스스로도 부족했구나 싶다. 정규 콘텐츠는 굉장히 많은 그래픽 작업을 포함해 수많은 자원이 들어가기 때문에 빨리 내놓을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다.

오픈 뒤 최소 6개월 동안 유효할 것이라 생각하고 예정보다 이른 시기에 런칭했는데, 오픈하고 보니 '안되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45레벨에서 엔드 컨텐츠를 생각한 게임이었다고 당시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레벨이 상승하면서 콘텐츠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급히 이루어진 밸런스 패치도 있었다. 제대로 된 볼륨을 제공했으면 좋았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사실 '태양의 항구' 역시 확장팩 같은 개념이었다. 최대 레벨을 65 내지 70까지 끌어올린 후에 다시 엔드 컨텐츠를 펼칠 계획이었는데, 앞서 말한 이유로 작업을 앞당겨서 너무 늦지 않게 선보이려 했다.


▲ 신규 테마의 중심 거점 '태양의 항구' 전경


콘텐츠 소모가 예상보다 빨랐던 것인지?

콘텐츠 소모의 관점이 무엇이냐가 다르다. 초반에는 게임이 상당히 하드했다. 아이템 하나 만드는데도 수십 시간이 걸렸고, 희소성을 요구하는 아이템 위주로 구성했다. 사실 그 아이템을 획득한 유저가 많냐 하면 그렇진 않다. 그럼 아직 획득할 것이 남았으니 컨텐츠 소모가 안 된 것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그 관점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오픈 이후 시각이었다. 오히려 아이템 획득 조건을 완화시키면서 콘텐츠의 수명을 일부러 줄였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콘텐츠 소모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유저들의 콘텐츠 소모 속도를 따라가는 개발사는 없다. 최상위 유저는 굉장히 빠르게 콘텐츠를 소모시키고 라이트 유저는 그렇지 않다.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콘텐츠 소모를 가속시키고, 빨리 플레이를 끝낸 하드 유저는 다른 직업으로 플레이를 해보는 등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 최근 패치들 경향에 대해 하드유저들은 "힘들게 재료를 얻어서 아이템을 만들었는데 왜 조건을 완화시켜주냐" 하는 불만도 냈는데, 최근 어느 정도 라이트유저를 위한 패치라는 점을 이해하는 분위기다. 이제 콘텐츠 소모를 걱정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소모될 콘텐츠라면 재미있게 소모되길 기대하고 있다.


업데이트 발표 내용에 있었던 아이템 드랍 확률 증가도 그런 의미인가?

'태양의 항구'는 새로운 맵과 새로운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전보다 훨씬 쉽게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아이템마다 적절한 가치를 갖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힘든 제작옵션을 가진 템을 만들기 위해 20여 시간을 투자했는데 남보다 안 좋은 템이 나오면 박탈감이 들기 마련이다. 템을 짧은 시간에 만들어서 사용하되 무작위 옵션을 통해 하드 유저에게 동기부여를 했다.


재료 드랍 확률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조금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있나?

체감적으로 뚜렷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신규 아이템 재료의 드랍 확률은 대부분 두 자리 수 퍼센트를 가지고 있다. 각박한 드랍률은 거의 없다. 확률에 기대는 것을 넘어 확정적으로 재료를 주는 일일퀘스트도 준비했다. 아무리 운이 없어도 일일퀘스트만 잘 해주면 기본적으로 쌓는 재료가 있다. 일일퀘스트 몬스터를 잡다 보면 높은 확률로 재료를 더 얻을 수도 있다.

▲ 신규 직업 '미스틱' 일러스트


신규 직업인 미스틱이 경갑인데, 현재 경갑 직업들이 많아지면서 형평성과 밸런스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경갑으로 묶인 직업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모든 직업을 다 아우를 경우는 유리함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모든 것을 다 끝낸 하드코어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 기준으로 장거리 캐릭터가 근거리 캐릭터가 나눠진다고 했을 때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경갑의 경우 보통은 많은 조작과 함께 스타일리시한 전투를 기본으로 한다. 손이 많이 가고 컨트롤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성능이 다른 직업만큼 나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경갑이 유리하지 않냐는 말이 많지만 데이터상으로 더 쉽게 전투를 진행하는 것은 철갑 계열이고, 극딜을 뽑아내는 것은 캐논블레이저의 중간 몬스터 사냥을 제외하면 의복 계열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밸런스가 굉장히 잘 맞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패치를 계속 해나갈 예정이다.

▲ 역동적인 무빙이 특징, 신규 직업 '미스틱' 플레이 영상


현재 강화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한데.

경제적인 관점에서 조정할 계획이 있다. 강화를 하는 과정에서 시행 수에 비해 너무 골드가 많이 들어간다. 사실 언제나 말이 많은 이슈다. 강화가 문제가 되는건 8강 이후다. 7강 정도는 돈을 어느정도 들이면 달성하기 어렵지 않은데, 8~10강 구간이 너무 하드하다, 많은 돈이 들어가면서도 진입할 수 없다는 피드백이 많이 있다. 그것에 대해 여러가지로 검토를 하고 있다.

'던전스트라이커'는 강화에서 아이템이 소멸하는 경우가 없다. 비싼 무기가 파괴되어서 게임을 포기하게 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된다, 다시 돈을 벌 밑천을 날리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렇다 보니 돈이 바닥날 때까지 계속 시도하다가 망했다는 제보도 있다. 그래서 강화 시스템이 별로라는 말이 돌기도 한다.


유저들의 다양한 성향을 만족시키는 강화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까다로울 것 같다.

여러 논의가 되고 있다. 확정된 것은 없다. 그래도 최근엔 유저들 사이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웬만하면 최대 8강 정도 하고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자체 제한이 나온 것이다. 그것으로 어느 정도 자정이 되지 않나 싶다.


이후 큰 규모의 콘텐츠 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난 발표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신규 레벨 던전을 제작하고 있다. 정규 컨텐츠가 업데이트되었으니 그것을 기반으로 일반적일 엔드 콘텐츠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그 사이에 정규 업데이트가 아니라도 소소하게 작동하는 콘텐츠 역시 계속 추가할 예정이고, 문제가 발견돼서 구현하지 못했던 차원 던전 등을 업데이트할 것이다.


탈것 혹은 펫 업데이트 역시 예정에 있다고 들었다.

구현 가능성을 먼저 검토하고 있다. 펫이나 탈것 역시 월드에 존재하는 개체이기 때문에 시스템에 기반해서 파티 플레이에 문제가 없는지 살핀 다음 추가할 예정이다.



오픈 이후 지금까지를 돌아보며 제작과 기획 면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전반적으로 많이 숙성을 못 시키고 업데이트한 것들이 아쉽다. 악몽 던전만 해도 오픈할 때 선보인 뒤 한 달 가까이 패치가 있었다. 패치가 적용된 상태에서 오픈이 됐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태양의 항구'는 가급적 내부에서 시간을 많이 확보해서 제작 진행이 완료된 것을 내놓았다. 실제 오픈했을 때 얼마나 문제가 발생할지 걱정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퀄리티를 위해 마냥 미룰 수도 없고 시기적절한 오픈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반대로 만족스럽게 느끼는 부분은?

많은 분들이 게임을 해주고 계시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처음 만들 때부터 이런 쿼터뷰 SD 캐릭터의 게임이 얼마나 주목받을지, 얼마나 지속될지 걱정했다. 여태껏 많은 시련이 있었는데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많은 분들이 게임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시는 것도 진심으로 감사한 부분이다.


던전 스트라이커가 유저들에게 어떤 게임이 되었으면 하는지?

'살아 있는 게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우리 게임을 이야기할 때마다 따라오는 비슷한 장르의 게임들이 있었다. 동류의 게임들이 저렇게 쟁쟁한데 자신 있냐는 질문에 확언을 하지 못했다. '디아블로' 시리즈만 예를 들어도 정말로 잘 만든 게임이니까.

게임 서비스를 하면서 새로운 것을 제공하려는 의지가 컸다. 온라인 게임의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겠다. 아주 매끄럽고 완벽하게 태어나진 못했지만, 꾸준히 유저들의 방향성에 맞추어 개선해나가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원하는 호칭이 바로 '살아 있는 게임'이다.

"이제 할 거 다 했네" 라고 말해도 새로운 패치와 업데이트가 이루어졌을 때 "다시 할 만하네" 같은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게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그런 게임을 만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유저들에게 한 마디 부탁한다.

열심히 준비했으니 재미있고 즐겁게 즐겨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동안 '던전스트라이커'에서 안 좋은 경험을 겪고 떠난 분들도 한번 다시 관심을 갖고 돌아오시면 어떨까.

▲ 신규 던전 보스 중 하나인 '크로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