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3rd, 원신, 붕괴: 스타레일. 국내 기준으로 2017년 이후 쭉 퀄리티 있는 게임들을 선보인 '호요버스'는 이제 굳이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브랜드가 됐습니다. 특히 '원신'의 글로벌 히트 이후에 정립된 호요버스 특유의 스타일과 루틴은 어찌 보면 스케일이 큰 서브컬쳐 게임의 척도처럼 자리잡았죠.

그러던 차에 깜짝 발표된 신작, '젠레스 존 제로'는 공개 당시부터 정말 다른 의미에서 눈길을 끌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판타지, SF의 느낌을 어필해오던 그간의 호요버스와는 전혀 다른 현대적인 스타일을 내세웠기 때문이죠. 물론 그런 낯선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세 차례나 증명을 해왔던 호요버스인 만큼 글로벌 유저들의 기대를 안고 사전예약자 수 4천만 명을 돌파하긴 했습니다.

한편, 파이널 CBT까지 두 차례의 CBT를 해왔던 입장에선 잠재적인 불안요소들이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확신하긴 어려웠습니다. 파이널 CBT의 모습이 그대로 정식 출시까지 간 것이 '원신'부터 이어진 호요버스의 전통(?)이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런 예측까지도 벗어날 만큼, '젠레스 존 제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에 호요버스이기에 보여줄 수 있는 디테일까지 섭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해당 리뷰는 리뷰 작성을 위한 사전 빌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픽업 캐릭터 '주연'은 7월 24일 출시됩니다.

게임명: 젠레스 존 제로
장르명: 액션 RPG
출시일: 2024. 7. 4.
리뷰판: 사전 리뷰 빌드
개발사: 호요버스
서비스: 호요버스
플랫폼: PC, 모바일, PS
플레이: PC


쉽고 빠르고 호쾌한 액션
심플한 시스템과 UI로 상황에 맞춘 동작도 척척


젠레스 존 제로는 기본적으로 '액션'을 내세운 RPG입니다. 즉 액션의 완성도가 게임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핵심이죠. 이미 호요버스는 '붕괴3rd'로 액션 RPG에서 한 획을 그었던 회사였지만, 그 완성도가 높은 나머지 어줍잖은 정도로는 그 허들을 못 넘고 비교되어버릴 위험도 높은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젠레스 존 제로는 기존의 액션 RPG의 문법을 한층 더 간결하게, 그러면서 더 빠르게 전환되는 방향으로 액션을 새롭게 구성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모바일을 포함한 크로스 플랫폼 액션 RPG는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이 포함된 만큼, 그 한정된 틀에서 최대한의 액션을 뽑아내고자 오래도록 수렴진화해왔죠. 그래픽이나 연출은 진일보했지만, 입출력 장치가 같은 디스플레이를 공유하는데다가 평면 스크린을 기반으로 한다는 모바일의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전투 중에 다양한 키나 커맨드를 조합한 액션으로 어느 한 캐릭터의 극의를 보여주기보다는 여러 캐릭터가 한 팀으로 나가서 서로 교대로 출전, 각기 다른 액션을 그때그때 맞춰서 선보이는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커맨드 액션 대신 간결하게 버튼을 누르면 나가는 전투 스킬에, 회피나 반격키로 적의 공격을 피하고 받아낸 뒤 다시 맹공을 이어나가는 식으로 공방의 흐름을 조율해나갔죠.

그 틀을 좀 더 빠르고 간결하게 만들어낸 것이 '젠레스 존 제로' 액션의 핵심입니다. 전투 스킬도 간단하게 하나만 배치하고, 특정 조건에서 QTE를 통해 태그 콤보 공격을 이어나가는 방식에서 적이 공격할 때 패링 혹은 극한 회피하는 감각으로 일원화했죠. 여기에 '그로기'라는 시스템을 더해서 콤보가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어지게끔 했습니다. 젠레스 존 제로에서는 적을 공격하다 보면 적의 그로기 수치가 올라가고, 그 수치가 100%이 되면 게이지가 번쩍이면서 그로기 상태가 됩니다. 그때 전투 스킬을 사용하면 바로 콤보 스킬이 발동, 저스트 회피식으로 태그하지 않아도 화끈하게 맹공을 펼칠 수 있죠.

▲ 어떻게든 그로기 수치를 쌓고 E-콤보 스킬 연계로 누구나 쉽게 화끈한 액션을 펼칠 수 있다

즉 극한 회피나 그 타이밍에 태그해서 콤보를 이어나가는 걸 알면 좋긴 하지만, 몰라도 어쨌거나 계속 막 누르다보면 어떻게든 콤보가 나가서 연타할 수 있는 식으로 만든 것이 '젠레스 존 제로' 액션의 핵심입니다. 게다가 캐릭터 움직임도 빠르고 키를 눌렀을 때 반응도 굉장히 즉각적이라 막 눌러도 시원시원하게 적한테 달려가면서 타격하는 맛을 살려냈죠. 그간 모바일 기반으로 여러 액션 RPG가 출시됐지만, 이 정도로 AAA급 콘솔 액션 게임에 버금갈 정도로 빠른 속도감에 키 반응감을 보여준 작품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막 눌러도 무언가 나오는 시퀀스에 빠른 속도감은 이미 두 차례의 CBT를 통해 완성해왔던 요소인 만큼, 지난 CBT를 해온 유저라면 크게 놀라진 않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발전시켰을지 궁금할 텐데, 호요버스의 선택은 UI 그리고 각 캐릭터 역할군 및 속성, 무브의 효과의 디테일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막 누르기만 해도 화려하게 적을 소탕하는 게 분명 재미있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오래도록 서비스를 이어가기엔 쉽게 질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죠.

사실 돌이켜보면 CBT 단계의 '젠레스 존 제로'는 액션의 속도감이 원체 빠르긴 했지만, 그 속도감에 취해버리는 나머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기 어려웠습니다. 스킬 설명을 읽어보면 분명 여러 가지 효과들이 있긴 한데, 그걸 다 일일이 계산하면서 쓰기엔 페이즈가 휙휙 빠르게 변해서 어지러울 정도였죠. 속도감 있는 액션으로 유명한 콘솔 게임과 비교했을 때 그렇게 빠른 건 아니라서 경력자들은 그래도 쉽게 적응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경험이 없다면 그 모든 효과와 타이밍을 계산해서 콤보를 이어가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젠레스 존 제로에는 강공, 방어, 이상, 격파, 지원 등 역할군 외에도 물리, 에테르, 불, 전기, 얼음 다섯 개의 속성을 적극 활용하도록 설계가 되어있습니다. 각 속성별로 대미지를 누적하면 속성 이상이 발동하고, 그 상황에서 다른 속성 이상을 발동하면 '혼돈' 상태가 되면서 추가 피해를 입히고 그로기 수치도 높이게 되죠. 그러니 빠르게 각 속성의 캐릭터를 교체하면서 속성 피해를 누적, 혼돈 상태로 빠르게 만들어서 극딜하는 테크닉이 요구됩니다. 여기에 각 캐릭터마다 홀드, 몇 번 타격 후 스킬 발동시 특수 무브 등 특수한 조건이 제각각 하나씩은 껴있다 보니 캐릭터를 바꿀 때마다 그 효율을 극대화하려면 신경 쓸 것이 상당히 많죠.

▲ 속성 피해 수치, 그로기 수치 등 신경 쓸 게 많지만 깔끔한 UI로 단시간에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게끔 했다

이를 빠른 템포의 전투에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게끔 UI의 디테일에 신경을 쓴 것이 '젠레스 존 제로'가 내세운 해답이었습니다. 적의 체력바 옆에 또다른 게이지로 표시하고 각 속성마다 색을 뚜렷하게 차이를 둬서 속성 이상까지 얼마나 남았나 쉽게 카운팅할 수 있게 했죠. 더군다나 큰 공격을 할 때마다 띵 소리와 함께 적이 노랗게 빛나기 때문에, 그 타이밍에 바로 극한 회피 혹은 지원 이후 콤보 공격으로 공세를 이어가게끔 했습니다. 아울러 캐릭터의 스킬이나 콤보를 연습할 수 있는 VR 시뮬레이터도 마련해서 손을 풀고 젠레스 존 제로의 액션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했죠.

그리고 젠레스 존 제로의 액션 템포에 익숙해진 유저들을 위해 더 고난도의 도전 콘텐츠도 마련했습니다. 캐릭터 조합과 조건에 대한 이해도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 일종의 나선 비경 같은 콘텐츠인 '시유 방어전'은 물론이고, 로그라이크인 '제로 공동'에도 조건을 좀 더 붙여서 더 어렵게 플레이해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붕괴: 스타레일의 시뮬레이션 우주와 비슷하지만 다키스트 던전처럼 공동을 지나갈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100이 될 때마다 디버프인 '침식'이 생기는 '제로 공동'인 만큼, 몇몇 개의 악조건만 붙어도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듯 악재가 겹겹이 쌓이곤 했습니다. 쉽고 간편한 액션부터, 그 액션을 극도로 활용해서 불닭맛 매운 콘텐츠까지 다채롭게 플레이할 수 있게끔 디자인한 '젠레스 존 제로'의 설계는 사뭇 놀라웠죠.

여기에 컨트롤러와 패드로 액션을 즐길 유저를 위한 편의성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입니다. 전투 중 세밀한 진동 같은 기본은 물론이고, 각종 메뉴로 진입하는 상황까지 고려해서 키 세팅을 한 디테일이 돋보였거든요. 메뉴를 오갈 때 주로 쓰는 메뉴를 제외하면 한 번씩 스타트 키를 누르는 상황이 오게 되는데 젠레스 존 제로에서는 L2키와 R2와 그외 다른 키를 조합해서 원하는 메뉴로 바로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해서 오히려 익숙해지면 컨트롤러가 키보드 마우스보다 훨씬 편할 정도였습니다.

▲ 로그라이크 콘텐츠인 '제로 공동'은

▲ 일정 수준을 지나면 리스크는 기본으로 짊어지고 플레이하게 된다

▲ 스토리 모드도 조금 더 어렵게 하기 위한 도전 모드가 마련되어있으나, 난이도별 보상 차이는 없다


고유명사 트랩 없는 깔끔한 전개
일상 용어로 푼 내러티브와 스타일리시한 연출


정말 의외일지 모르지만, '젠레스 존 제로'의 세계관은 엄밀히 말해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발발한 '공동'이라는 재난 때문에 뉴 에리두라는 도시 하나만 멀쩡하게 기능을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공동'은 쉽게 말해서 시공간이 갑자기 어그러지면서 외부와 차단되는 현상입니다. 게다가 그 안에서 시공이 비틀어지면서 나오는 '에테르'라는 정체불명의 물질에 장기간 노출되면 사람은 물론이고 동식물, 심지어 기계까지 종래에는 '에테리얼'이라 불리는 괴물로 변해버릴 위험이 있죠. 그리고 그들이 에테리얼이 되면서 뿜는 에테르 때문에 공동이 점차 확장되고, 결국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늘어나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 '젠레스 존 제로'의 세계에 닥친 위기입니다.

얼핏 이야기만 들어보면 이미 시중에 흔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게임과 다를 바 없지만, '젠레스 존 제로'는 앞서 말한 걸 따로 짚어주지 않는 한 그렇게 세상이 위급해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레트로하고 익숙한 감성이 섞인 도시에서 현대적인 일상을 영위하는 모습이 더 눈에 띄죠. 주인공 남매가 자리잡고 있는 뉴 에리두 6단지만 봐도 복권방, 레코드점, 장난감 가게, 오락실, 카페, 라멘 가게, 잡화점, 그리고 남매가 운영하는 비디오 가게 등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제 새롭게 추가된 '루미나 광장'에서는 좀 더 발전된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죠.



▲ 오락실, 비디오 가게 운영, 자기 전에 스마트폰 보기 등 친숙한 일상의 모습에

▲ 신규 지역 '루미나 광장'을 통해 뉴 에리두라는 도시의 일상을 좀 더 확장해서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미 소개된 것처럼, 주인공 남매는 정부 허가 없이 공동을 누비는 사람들을 외부에서 서포트하고 출구까지 안내하는 '로프꾼'이기도 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공동'은 사람이 살 수 없는 구역이긴 하지만, 잠깐 들어간다고 해서 죽진 않죠. 게다가 위험해서 일반 사람들은 잘 들어가지 않고, 이전에 사람이 살던 구역을 집어삼킨 공간이라 그 안에는 미처 갖고 가지 못한 귀중품이나 다양한 정보들이 숨어있기도 하죠.

일상적인 도시와 비일상적인 공동, 이렇게 이원화된 구조를 내세운 '젠레스 존 제로'는 그간 중국 서브컬쳐 게임들이 보여주던 어둡고 진지한 느낌의 포스트 아포칼립스와는 전혀 다른 색과 내러티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체로 중국발로 시작해 최근 몇 년간 서브컬쳐에서 호응을 얻었던 포스트 아포칼립스류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비롯한 90년대말~2000년대 초의 작품들의 영향을 짙게 받은 작품들이죠. 그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그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그 안에 여러 알레고리와 모티브를 눌러담고 이를 자신들만의 언어로 녹여내면서 하나하나 파고드는 그런 맛을 한껏 끌어올린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한 번 빠져들었을 때 느껴지는 깊이감과 몰입감은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계속 언급이 될 만큼 확실한 힘이 있었습니다.

다만 여기에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나중에는 자신만의 용어와 심오한 세계관 설정에 지나치게 힘을 실은 나머지 소위 '고유명사 트랩'을 비롯해 '네가 원하는 답은 해주지 않겠다' 식의 내러티브를 줄곧 이어온 경향이 있었죠. 혹은 어떤 조직이나 인류의 운명을 건 싸움이라는 너무도 무거운 주제를 기억을 잃어버리거나 혹은 소시민적인 주인공에게 덜컥 맡겨버려서 그 막중한 무게감이 처음부터 느껴지고는 하죠.


▲ 평범한(?) 비디오 가게 점장이자 전설적인 로프꾼 '파에톤'으로서 일상과

▲ 공동을 탐사하고 도시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쳐가는 비일상을 균형 있게 담아냈다

'젠레스 존 제로'는 그런 공식에서 탈피, 일상과 비일상이라는 측면에 좀 더 집중하면서 좀 더 가벼운 분위기로 이야기를 쉽게 이끌어가는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평범해보이는 주인공이 원래는 전설적인 인물이었다거나, 그 주인공을 중핵으로 도시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음모를 파헤쳐나가는 왕도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죠. 그 위협을 처음부터 고유명사들을 비롯한 세계관 설명으로 급하게 몰아치는 형태가 아니라, 일상적인 공동 탐사 의뢰를 진행하다가 메인스토리를 그때그때 차근차근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가는 방식입니다.

아울러 '공동'이라는 재해도 처음부터 그 위력을 강조하지 않는 식으로 적절히 조율하고 그 구조도 브라운관 TV들로 치환, '일상'으로의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끔 했습니다. 물론 매번 다른 구조의 복잡한 공동을 이전처럼 풀 3D로 만들기는 어려운 만큼 전투가 벌어지는 일부 구간만 제외하고 그렇게 작업한 것도 있긴 할 겁니다. 그러나 마스코트 '방부'의 귀여운 모습은 물론이고 여러 기믹들을 브라운관 TV 시절이 떠오르는 레트로한 연출로 표현한 것들을 보노라면 그런 건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캐릭터들이 직접 이동하는 모습을 보지는 못하지만 설정에 걸맞는 구성과 특유의 레트로한 매력이 있는 스타일은 눈길을 잡기엔 충분하니까요. 더군다나 일상에서 곳곳에 보이는 레트로한 구성과 톤도 잘 맞아떨어져서 통일감도 느껴졌고요.

CBT 때는 오히려 그렇게 아기자기하기만 외관만 자꾸 보인 나머지 공동 탐사 때를 제외하면 그 위기를 느끼기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파이널까지 꽁꽁 숨겨두었다가 시연 빌드 그리고 정식 출시와 함께 보여준 구성은 그 밸런스까지 확실하게 잡았습니다. 주요 콘텐츠인 '제로 공동', '시유 방어전', '노토리우스 헌트'를 전초기지로 배분했는데, 그 전초기지에서 비로소 '공동'이 도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죠.

▲ 전투가 없이 기믹만 있는 공동 탐사에선 크게 그 위험이 안 느껴지지만

▲ 중반부터는 이전까지 그 외관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던 제로 공동이 모습을 드러내고

▲ 그 내부를 휘젓고 다니는 거대 에테리얼이 등장하면서 세계에 닥친 위험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로프꾼 신용 레벨, 즉 계정 레벨로 따지면 그 시기가 딱 일상적인 의뢰에 지루함을 느낄 차인데, 그 시점에 도시 한 구역에 크게 블랙홀처럼 자리잡으면서 확장하고 있는 공동을 보여주면서 효과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여기에 이를 억누르기 위해 마련된 각종 시설 그리고 대원들의 활약을 보면서 앞으로 등장하게 될 캐릭터들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죠.

물론 스토리나 내러티브는 개인차가 큰 분야라 속단하기는 이릅니다. 그렇지만 젠레스 존 제로의 내러티브는 그간의 대다수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브컬쳐 게임들이 놓친 부분을 잘 캐치한 느낌입니다. 이 장르의 작품 다수가 그간 전세계적인 위기를 불러온 현상과 세계관에 대한 심오한 설정 그리고 그 묘사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무언가 꼬여버리는 느낌이 짙었거든요. 그보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또 필요하다면 '스킵'도 선택하고 나중에 알아서 보게 만드는 '젠레스 존 제로'는 그간의 호요버스와는 확실히 궤가 다른 느낌입니다. 일상의 익숙한 소재와 스타일을 자신들만의 개성을 더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잘 풀어내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빌드업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호요버스라는 무게감과 숙제
스타일은 달라도 비슷한 콘텐츠를 라이트하게


젠레스 존 제로가 그간의 호요버스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실제 플레이하면 호요버스가 그간 보여준 것을 젠레스 존 제로식으로 변주한 것이 다수입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재화나 육성 구조는 물론이고 콘텐츠 구조까지, 원신과 붕괴: 스타레일의 것들을 젠레스 존 제로의 단어로 치환하면 대체로 맞아떨어질 정도죠. 시뮬레이션 우주 같은 제로 공동, 나선 비경 같은 시유 방어전, 주간 보스인 노토리우스 사냥, 유물 파밍하는 정기 소탕, 광추 같은 W 엔진, 주간에 제로 공동을 일정 수치만큼 돌고 그 보상으로 여러 재화를 교환하거나 일일 퀘스트, 그리고 일종의 패스인 리두 펀드를 통해서 얻는 보상들과 곳곳에 숨어있는 상자의 보상을 모아서 픽업 캐릭터를 노리는 루틴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 양식은 이미 서브컬쳐 유저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터라 적응하기엔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다만 초반에 빨리빨리 넘어가기 보다는 차근차근 그 방대한 세계관을 훑어보면서 지나가길 유도하기 위한 방식이라 전개 템포가 다소 느린 편이죠. 그러다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빠르게 성장이 되지만, 그마저도 이미 정형화된 루틴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미 두 차례에 걸쳐서 비슷한 콘텐츠 설계를 보여준 만큼, 그 맥을 잇고 있는 '젠레스 존 제로'를 가볍게 접근하기도 쉽지는 않죠. 원신이나 붕괴: 스타레일 모두 다 초반에 어느 정도 각을 잡고 임하지 않으면, 제 궤도에 오르기 전에 지쳐버릴 위험이 있는 게임들이었으니까요.

이런 부담감을 여태까지 여타 서브컬쳐 게임들이 각 장르에서 쉽사리 보여주지 못한 스케일과 퀄리티, 연출로 커버한 것이 그 두 게임의 비결이었지만, '젠레스 존 제로'는 조금 다릅니다. 퀄리티는 확실하지만 앞으로의 모험을 기대하게 만들 방대한 스케일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죠. 현대인들에게 친근한 소재를 새롭게 재해석한 일상과 비일상을 오가는 구성은 거리감을 좁혀주기엔 충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색다른 무언가를 체험하기엔 조금 부족한 느낌입니다.

▲ 친숙한 소재를 잘 녹여냈지만

▲ 호요버스 특유의 스케일을 느끼기엔 아직은 부족하다

그나마 메인스토리는 나름 기대하게 만드는 구성이긴 합니다. 이전에 있던 일들과 각 인물들 사이에 관계, 그리고 도시의 이면의 이야기가 얽히고 설키면서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더군다나 그간 여러 작품에서 캐릭터 개개인의 이야기를 잘 풀어내는 노하우를 보여준 호요버스인 만큼, 이 부분도 무난한 편이죠. 그렇지만 이 부분도 호요버스의 그간 작품을 접한 사람들이면 하나하나 다 훑어보는 것도 꽤나 부담스럽게 여길 여지도 있습니다. 분량도 그리 짧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그간 호요버스는 '스킵'에 굉장히 부정적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번 '젠레스 존 제로'는 좀 더 파격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스킵도 지원하고, 이전에 지나친 스토리도 '비디오 가게'라는 설정을 활용해서 언제든지 다시 돌려볼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아울러 그간 호요버스의 정형화된 루틴도 대폭 축소, 유저들이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템포대로 플레이하도록 했습니다. 행동력을 소모하기 벅차거나 귀찮아질 때에도 쉽게 일일퀘스트를 클리어할 수 있도록 그냥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라멘 가게에서 라멘을 먹고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등, 소소한 조건들을 더해둔 것이죠. 그리고 반복해서 육성 재화를 파밍하는 던전의 몹 구성은 굉장히 간소화하는 한편, 유물 파밍격인 디스크 파밍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지 않도록 부위 혹은 세트를 골라서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마련해두었습니다.


▲ CBT를 거쳐서 호요버스 게임 특유의 일일퀘스트, 파밍의 부담감을 점차 낮춰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새로움과 익숙함의 'ZZZ'
기반은 다져진 상황, '진화'가 필요하다


'젠레스 존 제로'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좋은 점이든 나쁜 점이든 '호요버스'라는 말로 결국 다 설명이 가능한 타이틀이긴 합니다. 호요버스이기에 가능한 색다른 시도였고, 그만한 디테일을 갖출 수 있었으며, 또 너무도 호요버스다운 루틴이 맨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죠.

그 맥락에서 안 좋은 점들도 다 설명이 되는 것이 '젠레스 존 제로'의 현실입니다. 브라운관 TV모니터로 구현하면서 색다른 연출을 보여준 '공동'은 개발 코스트도 줄이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 아주 좋은 디자인이었지만, 그 내부를 살펴보면 그간 호요버스가 전작에서 보여준 콘텐츠들을 젠레스 존 제로식으로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렇게 치환이 되어버리고 익숙한 맛을 느껴버린 순간, 그 매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신작을 접할 때 새로운 걸 기대하기 마련인데, 그 기대가 반감된 셈이니까요.

더군다나 호요버스의 게임들은 그간 방대한 스케일과 묵직함을 보여준 대신, 그만큼 가볍게 플레이하고 접근하기 어렵다는 인상도 있었습니다. 물론 멀티플레이 요소가 원신의 몇몇 이벤트나 붕괴: 스타레일의 친구 지원 빼면 거의 없다시피하니 자기 템포대로 즐길 수는 있지만, 그 스케일과 퀄리티를 어필하다 보니 캐릭터만 보고 가볍게 접근하기보다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거든요.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얻기 위한 과정도 그리 녹록치 않았고요. 거기다가 기존 호요버스 게임 대비 속도가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콘텐츠를 하나하나 해금해나가는 과정은 비교적 느린 편이기도 합니다.

▲ 중간중간 붕 뜬 타이밍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관건이다

사실 호요버스의 그간 게임들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것보다는 기존 여러 게임들의 장점을 참고해서 자신들만의 스케일과 퀄리티 그리고 세계관을 빚어서 연성해낸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여기에 '젠레스 존 제로'는 이전에 호요버스가 보여준 액션 노하우와 콘텐츠 설계를 새로운 세계관에 맞춰 변주한 느낌이었고요.

물론 이전 대비 좀 더 쉽고 화끈해진 액션은 확실히 손맛도 좋고 스토리와 컨셉에 맞춰 언제든지 자유롭게 연출할 수 있는 공동의 디자인은 정말 놀랍지만, 그게 익숙해진 순간부터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이전 대비 익숙한 소재에 확실한 내러티브로 끌고 가는 이야기와 캐릭터 자체의 매력으로 어필하고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젠레스 존 제로'의 현 단계의 숙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호요버스이기 때문에 믿고 플레이하지만, 반대로 호요버스이기 때문에 예상이 가능한 것도 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특별방송에서는 이전에는 잘 언급하지 않던 각종 뽑기 보상에 대한 언급이 나왔고, 게임 내에서 야금야금 업적으로 받는 보상도 좀 쏠쏠하게 넣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 복권을 다 긁은 이후에 일일퀘스트나 제로 공동 보상 등의 루틴만이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그간의 행보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 틈새를 어떻게 메울지도 관건이죠.


물론 그런 매너리즘을 새로운 넘버링 패치 때마다 날려버렸던 호요버스인 만큼 궁극적으로 그 부분은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겁니다. 사실 라이브 서비스 게임은 출시 이후에도 꾸준히 업데이트로 새로운 걸 보여주고 기존의 문제를 보완하면서 다듬어가는 것이 핵심이니까요. 다만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준 만큼, 좀 더 색다른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긴 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젠레스 존 제로는 좀 더 심플하게 즐기는 액션과 멋진 스타일 그리고 좀 더 가볍고 명료한 내러티브로 신선한 악센트를 줬지만, 그 익숙한 맛을 벗어나 자신만의 매력을 온전히 끌어올리기엔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마치 호요버스의 전작 '붕괴: 스타레일'이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서 페나코니에서 비로소 완벽에 가까워졌다고 평가받은 것처럼 말이죠.

과연 호요버스가 이번에도 익숙하면서도 또 새롭게 빚어낸 스타일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앞으로 그 행보를 지켜볼 필요는 있을 겁니다. 어찌 됐거나 현 서브컬쳐에서 보기 드문 스타일을 제시한 몇 안 되는 사례고, 그 성공이 다소 고착화될 수 있는 서브컬쳐 게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올 수도 있을 테니까요. 아직 그 가능성만 차근차근 다듬어가는 단계지만, 그간 여러 차례 증명해왔던 '호요버스'인 만큼 이번 '젠레스 존 제로'로 장기 흥행 3연타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