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국산 호러 게임의 대표작으로서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는 게임, '화이트데이'의 정식 넘버링 후속작이 지난 2월 16일 깜짝 출시를 알렸습니다. 21년 전부터 이어져 온 원작 팬의 기대와 '에피소드1'이라는, 하나만으로도 벅찬 짐을 두 개나 짊어진 작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번 '화이트데이2: 거짓말하는 꽃 Ep.1'은 두 마리 토끼를 모조리 놓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게임명: 화이트데이2: 거짓말하는 꽃 Ep.1 | 개발사: 루트엔스튜디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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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화이트데이'와 관련된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작 사건 바로 다음날? - 어쩌면 너무나 대담했던 설정
원작 '화이트데이'가 출시 이후 21년이 지났다는 것이 무색하게도, '화이트데이2: 거짓말하는 꽃'은 원작에서 일어난 사건 바로 다음날을 게임의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전작의 주인공인 전학생 '이희민'이 화이트데이 전날(3월 13일) 밤 자신이 짝사랑하던 학우의 책상에 사탕을 두러 밤에 학교를 찾았으니, 이번 작품은 3월 14일 밤의 연두고등학교를 무대로 하는 것입니다.
게임 속 시간으로는 약 하루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등장인물들은 새롭습니다. 이번 에피소드에선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주인공 '장성태'와 여자 사람 친구 '정수진'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두 이미 연두고등학교를 졸업한 졸업생들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주인공이 일하고 있는 편의점에 수진이 놀러와 '큰 사건'이 벌어진 연두고등학교에 '진실을 밝히러' 가자고 제안하며, 주인공은 아무 말 없이 수진을 따라 오밤중에 자신들이 졸업한 모교로 향하게 됩니다.
이렇게만 보면 성태와 수진,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한 두 사람이 도대체 왜 밤에 연두고에 들어왔는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들이 전작의 등장인물인 '성아'와 같이 학교를 다녔던 동기인 것은 초반부터 설명이 되는 부분이지만,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기까지 한 학교에 무작정 들어갈만큼 찾아야 할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마도 다음 에피소드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첫 인상을 남기는 에피소드1에서 해당 게임은 시작 단계에서부터 플레이어가 21년만에 다시 연두고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졸업생 둘이 찾아간 연두고는 실제로 원작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라는 것을 어느 정도 반영이라도 하는 듯, 전학생 희민이 '뒤집어' 놓은 학교 안의 이모저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게임 초반 마주하는 불타버린 강당, 그리고 그곳에서 반쯤 탄 채 괴성을 지르고 있는 여자 귀신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원작의 사건을 상기시키는 역할로서 등장하는 요소입니다.
불타버린 강당의 간단한 퍼즐을 풀고 나면 노후한 시설물이 인상적인 학교 본관 구역으로 오게 되며, 본관 구조는 원작과 거의 그대로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보다 향상된 그래픽을 통해 원작에서 유명한 장소를 재현하려는 개발사의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입니다. 그 외에도 2000년대 초반 학창 시절을 보내 온 사람들에겐 익숙한 필기도구와 책상, 교과서 표지 등은 20여년 전 과거를 떠올리는 묘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죠.
하지만, 2023년에 출시된 '화이트데이'의 정식 후속작이 원작 사건 바로 그 다음날을 배경으로 하는 점에 있어서는 반가움보단 아쉬운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전날 연두고에서 발생한 사건이 시놉시스 상으로 큰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을 이해하더라도, 어차피 주인공이 졸업생인 설정이라면 다음날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스토리 측면에서도, 또 게임 내 요소 측면에서도 더 넓은 운신의 폭을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언제를 게임의 배경으로 하느냐는 그리 크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부분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 바로 다음 날'이라는 게임의 어쩌면 너무나 대담했던 설정은 스토리상 주인공 일행이 오밤중에 연두고에 들어온 이유를 게임이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 것과 맞물리며 게임의 전반적인 개연성에 큰 구멍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어째서 한밤중에 고등학교에 들어왔는지 이해할 수 없는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러 반을 오고가며 퍼즐을 풀고 앞으로 나아가는 여정과, 중간중간 다짜고짜 다가와 몽둥이를 휘두르는 순경 아저씨와 숨바꼭질, 그리고 사진부원이 남겨놓은 일회용 카메라를 써서 찾아내는 심령사진 스팟들 뿐입니다. 모두 원작의 매력을 현시점에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는 요소들이지만, 부족한 스토리텔링은 플레이어가 굳이 이 모든 고난과 역경을 풀어내야 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주지 못했습니다.
원작의 주인공 희민이 밤중에 학교에 찾아간 이유는 어처구니는 없을지언정 꽤 그럴싸했고, 결과적으로는 플레이어가 학교에서 펼쳐지는 공포스러운 사건들을 마주하기 충분한 동기를 부여했습니다. 어처구니도 없고 그럴듯하지도 않다면, 학교에서의 모든 여정은 마치 하기 싫은데 끌려 온 방탈출 게임처럼 괴로운 시간이 될 뿐입니다.
'원작 감성에 집중한 게임플레이'를 표방했지만...
게임플레이 측면에서 '화이트데이2: 거짓말하는 꽃'은 개발사가 이전에 표방한 대로 원작의 감성을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습니다. 게다가 지난 21년동안 달라진 유저 편의성 등도 많지는 않지만 고려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죠. 대표적으로는 처음부터 사용할 수 있는 플래시라이트와 자동 저장 등이 원작과 차이를 두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학교 탐험 또한 과거의 향수를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메뉴 효과음이나 발소리, 달리면 줄어드는 스태미너 등 기본적인 요소는 그대로 계승하려는 시도로 보이며, 게임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본관은 처음부터 대부분의 층과 반이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초반 탐험이 약간 까다롭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인데, 다르게 말하면 진행해야 하는 구간은 전부 막혀 있어 퍼즐 구간을 예상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마주하는 공포 요소들은 원작이나, 그 리메이크작보다 공포 분위기가 줄어들었으며,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아쉬운 점 중 하나입니다. 대표적으로는 사물함을 열 때 튀어나오는 귀신이나, 반을 탐색하고 있으면 지그시 지켜보는 귀신들 정도인데, 이조차도 난이도를 낮추면 등장하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어 보다 쾌적한 학교 탐색을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이번 작품에서는 한치 앞도 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화면과 시종일관 주인공을 따라와 기여코 몽둥이를 휘두르고 마는 김순경이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로 등장합니다. 어두운 화면은 설정에서 감마를 최대로 높이면 어느 정도 해결되긴 하지만, 대신 원래 밝았던 광원 효과가 빛이 튀는(?) 현상이 발생해 강제로 밝기를 타협해야하는 상황을 연출합니다. 순경 NPC의 경우 개발사가 이야기한 대로 원작보다 더욱 어려워진 AI를 구현하는 데 어느 정도 절반의 성공을 거둔 모습이나, 너무나도 뿌리치기 어려울 뿐더러 귀신같은 능력으로 숨은 주인공도 찾아내는 경지에 이르러 중반 이후부터는 그저 귀찮고, 신경쓰이는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처음으로 순경이 성가시다고 느낀 부분은 자전거부실의 사물함을 연 뒤,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한 열쇠를 얻을 때였습니다. 분명 순경에게 위치를 들키지 않았음에도 부실 앞에서만 좌우로 서성이는 순경의 모습을 창밖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마치 게임이 '키 아이템을 얻었는데, 그대로 가기 아쉽지 않겠냐'고 눈치를 주는 것만 같았죠. 이처럼 주요 구간에서 필연적으로 순경을 마주하는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것은 플레이어에게 공포감보다는 염증을 느끼게 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거기에 게임에 등장하는 아이템들의 종류는 다음 구역을 위한 키 아이템 아니면 퍼즐 진행에 도움을 주는 문서, 괴담 콘텐츠 뿐으로, 원작에 등장하던 자판기나 음료수, 도시락 등의 존재가 없는 점은 게임의 볼륨이 크게 작아보이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원작과 비교하면 학교 구석구석을 뒤져 찾아내던 500원짜리 동전, 세이브용 사인펜 등도 찾을 필요가 없어졌으니, 자연히 교실 탐색의 긴장감 또한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To be Continued, 혹독한 평가를 만회할 기회가 될까
'에피소드1'이라는 부제와 함께 깜짝 등한 게임인 만큼, 이번 작품만으로 '화이트데이2'의 전체 스토리를 다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인상깊었던 것이라면 21년 전 원작과 동일한 장소를 활용하면서도, 전작에서는 그저 전설로만 치부되면 학교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새로운 장소를 제공한다는 것 정도겠습니다. 가령, 학교 건물이 먼 옛날 병원으로 사용됐다는 소문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지하실에 마련된 감옥(?)과 시체 소각장이 등장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세계관의 새로운 이면을 선보이는 것도 결국 플레이어의 관심을 끝까지 유지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플레이어가 다시 새롭게 연두고등학교를 탐험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기에는, 과거와 거의 달라지지 않은 본관 건물의 규모는 어찌보면 너무 그 공간이 너무 협소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앞으로 나올 에피소드가 본편과 같은 가격으로 책정된다면, 세 편을 합한 가격은 7만 2천원이 넘는 '풀 프라이스'에 속합니다. 소비자들은 이러한 가격에 걸맞은 볼륨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게임이 소비자의 기대를 져버렸을 때 혹독한 평가를 받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이트데이2'가 다음 출시될 두 차례의 에피소드를 통해 게임 속 등장인물인 수진이 이야기한 '진실'에 가까워지는 새로운 장소와 현상들을 더욱 풀어나가리란 것은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현재 게임의 상황을 미루어 볼 때, '에피소드2'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임 출시 이후 이용자들의 혹평이 계속되자, 개발사인 루트엔스튜디오는 스팀 내 공지를 통해 현재 많은 플레이어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는 전반적인 밝기 문제와 순경의 AI 등 문제들을 개선할 것을 밝혔습니다. 또한, 이용자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여 부족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향후 개발에도 반영할 계획이라고 전하기도 했죠.
위 두 개의 개선 사항은 분명 게임에 대해 팽배해 있는 이용자들의 혹독한 평가를 되돌리기에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에피소드 형태의 출시를 발표한 만큼 이를 시작으로 다음 에피소드에서는 이용자들이 기대하는 '화이트데이' 후속작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남아있습니다.
비록 첫 번째 에피소드가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이용자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간다면 언젠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세상에는 분명 그런 방식으로 차트 역주행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고, 이는 사실상 '화이트데이2'가 가진 유일한 극복 수단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