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레다르의 광휘 아래 축제의 불빛이 은은하게 반짝이며, 힘겹게 얻어낸 평화를 기념하는 전사들과 시민들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안두인 린은 메렐다르 광장의 가장자리에 서서 환희에 찬 군중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루비안과의 전쟁은 마침내 끝났지만, 왕의 마음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그의 왕관의 무게나 지난 전투의 그림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 여자 때문이었다.

페어린 로서.

그녀는 군중 한가운데 서서 스틸스트라이크 장군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축제 불빛 아래 그녀의 갑옷이 빛나고 있었다. 안두인은 지금껏 그녀의 여러 모습을 보았다. 혼란스러운 전투 속에서 한쪽 팔을 대신한 그녀의 방패가 적과 충돌했고, 실명된 눈과 정의감에 타오르는 날카로운 얼굴이 결연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은 무언가 달랐다. 축제의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전투에 지쳐 있기만 했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은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 그 모습은 거의... 매혹적이었다.

엘프의 혈통을 나타내는 유일한 특징인 뾰족한 귀가 군인답게 짧게 자른 머리카락 옆으로 솟아나 있었다. 시선이 그녀의 턱선을 따라가자, 안두인의 가슴은 예상치 못하게 두근거렸다. 축제의 불꽃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확실하지 않았지만, 페어린은... 아름다웠다.

그는 망토 끝을 잡은 손가락을 미세하게 떨며 스틸스트라이크의 말에 미소 짓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장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문 미소였다. 그는 그 감정을 떨쳐내려 애썼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날카로운 외눈이 광장을 가로지르며 그와 잠시 마주칠 때, 그의 가슴은 다시 한 번 뛰기 시작했다.

환호하는 군중 사이에서 안두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의 시선은 다시 페어린에게 고정되었다. 이번에는 두 발이 마치 스스로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 같았다. 그의 가슴은 터질 듯이 빠르게 뛰었고, 왕으로서의 보여오던 평상시의 차분함도 이 미지의 긴장감에 압도되고 있었다.

페어린은 그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유일한 눈이 안두인을 보며 반짝였다. 그녀는 마치 안두인이 축제의 가장자리에 너무 오래 서 있던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재미있는 표정을 지었다.

페어린이 입꼬리를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드디어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시네요, 폐하?”

안두인은 그녀의 일상적인 말투에 순간 당황했다. 그는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음, 왕이 완전한 은둔자가 되는 건 곤란하니까요.”

페어린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뾰족한 귀가 빛을 받았다. “그래서 그랬군요. 스톰윈드로 도망치실 준비라도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 뻔했어요,” 안두인은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런 대화를 놓치게 됐겠죠.”

페어린이 눈썹을 지켜올렸다. 안두인이 던진 미끼를 물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오호? 정확히 어떤 대화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전쟁 전략에 대한 토론? 외교 협상에 대한 논의?”

그는 긴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음, 그보단 아마도... 드문 평화를 만끽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겠죠.”

페어린은 그녀의 방패에 기대며 미소를 지었다. 그 금속 광채가 안두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저희에겐 평화가 자주 찾아오지 않죠."

페어린은 한결 가벼워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평화가 찾아온 순간엔 그걸 즐기는 게 제일이에요. 그게 사교성이 다소 부족한 왕과 대화하는 거라도 말이죠.”

조금이나마 긴장감이 풀린 안두인은 짧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셔야죠.” 페어린이 대답하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웬만한 왕들이라면 저와 대화하는 걸 진작 포기했을 테니까요.”

“전 쉽게 포기하지 않아요,” 안두인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그 안에는 은근한 도발이 담겨 있었다.

페어린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녀의 미소는 평소보다도 더욱 진실되어 보였다. “그렇군요.”

둘 사이의 공기는 한결 가벼워졌지만, 그 밑바닥에는 깊은 감정이 싹트고 있었다. 안두인은 그것을 느꼈고, 페어린의 표정이 잠깐 흔들리는 것을 보며 그녀 역시 같은 걸 느꼈으리라 짐작했다.

“음,” 페어린은 갑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왕 오셨으니 축제를 좀 즐기시는 게 좋겠어요. 아니면 그 망토 뒤에 계속 숨어 계실 생각이신가요?”

“제가 그렇게 사교성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 안두인은 변명했지만, 그의 미소는 숨기려 했던 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페어린은 광장을 둘러보고는 다시 안두인을 바라보며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럼 증명해 보세요. 우선 그렇게 딱딱하게 서 있는 것부터 고치시죠. 지금 당장 왕명을 선포할 것 같은 모습이에요.”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알겠어요, 알겠어. 긴장을 좀 풀도록 하죠. 다만…” 그는 시선을 피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밤 당신이 이렇게... 다르게 보일 줄은 몰랐습니다.”

페어린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팔짱을 꼈다. “다르다뇨?”

안두인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적당한 말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평소보다 낫다거나 별로란 뜻은 아닌데... 그냥 다르다고요. 좋은 쪽인 것 같네요.” 그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의 뺨이 뜨거워졌다.

페어린의 입에서 뜻밖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유일한 눈이 재미있다는 듯 반짝였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폐하.”

안두인은 미소를 지으며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셔야죠. 폐하라는 말은 그만 좀 하시고요.”

축제 음악이 점점 잔잔해지며, 마치 세상에 그와 페어린 둘만 남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페어린의 시선은 안두인에게 머물렀다. 방금까지 나누던 가벼운 농담은 사라졌다. 침묵만이 남은 조용한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미소는 순수하면서도 어딘가 수줍은 기색을 띠었다.

안두인은 그녀의 유일한 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게를 느꼈다. 그녀도 자신만큼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외면한 채, 안두인은 그녀의 남은 팔 가까이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망설이며 공중에서 멈췄다. "페어린, 저는..."

그러나 그의 손끝이 그녀의 피부에 닿기 직전, 갑자기 목소리가 그 조용한 순간을 깨뜨렸다.

“오호,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부드럽고 익숙하면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목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안두인은 화들짝 놀라 손을 재빨리 뒤로 뺐다. 딱히 나쁜 짓을 저지르려 한 것도 아니었지만, 가슴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마구 두근거렸다.

온몸이 굳은 안두인은 심장이 목구멍까지 뛰어오른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익숙한 인물이 그 앞에 서 있었다.

그 검은 용이자 인간의 모습을 한 래시온이었다. 특유의 여유롭고 자신만만한 표정을 한 그는 팔짱을 끼고 서서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래, 래시온!” 안두인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다. 아직도 얼굴에 남아있는 열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안두인은 몇 년 동안, 어둠땅으로 끌려간 후로 지금까지 래시온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래시온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자신의 갑작스러운 개입에 흡족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래시온은 평소처럼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 네가 돌아왔다는 건 진작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안두인. 어떻게 변했나 보고 싶어서 왔지... 좋은 타이밍인 것 같군. 넌 너무 바빠서 내가 다가오는 것도 눈치챌 틈이 없었나 보지만.”

페어린에게로 시선을 옮긴 래시온은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은 누구시지?”

페어린은 그의 극적인 등장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차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페어린 로서입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그의 질문에 응답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힘이 담겨 있었지만, 동시에 래시온에 대한 분명한 호기심도 묻어나왔다. 그녀는 래시온을 한 번 훑어보고는, 이어서 자세를 바로잡고 말했다. “당신이 바로 그... 검은 왕자 래시온이시군요."

그리고 차가운 듯하지만 적대적이진 않은 말투로 덧붙였다.

"생각보다는 덜 크시네요.”

래시온 또한 그녀를 빠르게 평가하듯 훑어보았으나 미소를 잃지는 않았다. “나에 대해서 알고 있나? 흠, 안두인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나 보군.”

안두인의 얼굴은 다시 붉어졌지만, 아직 목소리가 따라주지 않았다. 페어린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이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음, 평판이 꽤 대단하시더군요.”

그리고 페어린은 다시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줄은 몰랐네요. 최근 여러 이방인들이 이곳에 방문하긴 했지만 말이에요.”

래시온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페어린과 안두인 사이를 날카롭게 오갔다. 그의 눈빛엔 마치 포식자가 먹잇감을 살피는 듯한 기색이 스쳤다. “그래서 정확히 무슨 얘기를 했다는 건가, 안두인?”

안두인은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는 얘기야, 래시온,” 그가 중얼거리며,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그러나 페어린은 도전에 주저하지 않고 끼어들었다.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녀의 유일한 눈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이제야 그 이유를 알겠네요.”

래시온은 넉살 좋게 웃으며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말했다. “자신감이란 승리가 확실하단 걸 알고 있을 때 나오는 법이지.”

“그걸 자신감이라고 부르시나요?” 페어린이 팔짱을 끼며, 전장에서 적을 마주하는 듯 날카로운 말투로 대꾸했다.

래시온은 그녀의 관심을 즐기는 듯 미소 지었다. 안두인은 둘 사이에 튀어오르는 불꽃을 느끼며 다급히 말했다.

"하여간, 래시온. 이게 대체 몇 년 만이야."

그러자 래시온은 다시 안두인 쪽으로 몸을 돌리며, 한결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 “정말 오랜만이야, 안두인. 그러게. 벌써 몇 년이 지났지?”

“생각보다는 오래됐지,” 안두인은 놀라움과 따뜻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어.”

래시온의 시선이 잠시 안두인에게 머물렀다. 평소와 같은 여유로운 모습 뒤에서 무언가 깊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 감정을 감추었다. “뭐, 내 가장 소중한 친구가 돌아왔다는데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하지만 보아하니 너도 꽤 바빴던 것 같군.”

페어린은 옆에서 안두인을 흘끗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바쁘다고 할 수 있죠.”

그들 사이에 낀 안두인은 불안한 시선을 번갈아 보냈다. 페어린과 래시온은 서로를 향해 미묘한 긴장감을 흘리고 있었다.

안두인은 래시온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처럼 래시온이 능글맞은 태도로 여유롭게 매력을 드러내는 상황은 항상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페어린이 그 엄격한 태도를 잠시 내려놓고, 래시온과 맞서며 놀라울 정도로 가벼운 태도로 반응하는 걸 보니, 안두인은 어쩐지 혼란스럽기도 했다.

래시온은 안두인에게 의미심장한 눈빛을 던지며 미소를 지었다. "내가 뭔가를 방해한 것 같군," 그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에 과도할 만큼 순진한 말투로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두 사람만의 시간을 방해한 걸까?"

안두인의 심장은 멈출 듯이 뛰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페어린이 그를 대신해 대답했다. “그건 아니니 걱정 마세요. 그냥 축제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안두인을 향해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렇죠, 안두인?”

안두인은 입을 열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방금까지 주위를 떠돌던 로맨틱하던 기류는 이제 어처구니없을 만큼 가벼워져 있었다. 래시온의 눈은 장난스럽게 빛나며, 안두인의 내적 갈등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물론이죠.” 안두인은 간신히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저... 축제를 즐기고 있었을 뿐이야.”

래시온은 조용히 웃음을 터뜨리며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의 존재감은 여전히 강렬했다. “그럴 줄 알았어.”

안두인은 점점 더 얼굴이 뜨거워졌다. 이건 그가 예상했던 저녁이 아니었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침착함을 되찾으려 애썼다. “축하할 일이 있었다 보니까. 모처럼 말이지.”

래시온은 한 걸음 더 다가가며 페어린에게 다시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그래. 근데 당신은 여기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건가?”

페어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하며 남은 팔을 살짝 움직였다. “안두인 님의 동료로서 모처럼 찾아온 드문 평화를 즐기려고 했을 뿐이에요. 당신과의 재회에 끼게 될 줄은 몰랐네요.”

래시온은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는 군중 속에서 울려 퍼졌다. “뭐, 그렇게 됐군. 안두인은 내가 없으면 좀... 다른 사람이지. 그렇지, 안두인?”

안두인은 래시온의 장난기 어린 시선과 페어린의 미소 사이에서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많은 게 달라지긴 했지.”

래시온은 다시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가 만든 불편한 공기가 제대로 작동하는 걸 즐기고 있었다. “좋아. 이제야 좀 예전 같아 보이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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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현 시점 안두인의 배필로 가장 유력한 두 사람을 소재로 ai한테 글 써달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