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한 번 뿐인 만남

커다란 독에 작은 바가지로 물을 붓는다. 부어도 부어도 도무지 물은 차지 않는다. 그래도 붓고, 또 붓고, 또 붓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물이 넘쳐 흐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물이 흘러 넘치게 만든 '마지막 한 바가지'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실제로 독을 채운 것은 그 마지막 한 바가지가 아니다. 오랜 시간 꾸준히 인내를 가지고 부어온 그 전의 수십, 수백 바가지의 물이 독을 채웠기에 마지막 한 바가지의 물이 넘쳐흐를 수 있었던 것이다.

한달 넘게 못 넘어섰던 라그의 벽을 교체된 탱커와 공대장 체제 하에서 어떻게 일주일만에 넘길 수 있었을까? 마지막 한 바가지의 물 밖에 모르는 단순한 사람들은, 이런 경우에 흔히 예전 지휘체계의 문제점이 원인이었다고 쉽게 속단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대단히 드라마틱하게 일주일만에 화심을 정복하는 성과를 보였지만, 그 드라마 뒤에는 톱니바퀴처럼 냉엄한 인과의 법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이 쭉 쌓여서 공대의 전력으로 소화되는 과정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린 것이고, 주 마다의 출석 상황이나 기타 돌발 변수때문에 사소한 지체가 이어져온 것이다. 그 사소한 지체가 고정적인 실패의 분위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공대는 어떤 계기를 필요로 하긴 했다. 새로 출범한 투톱 체제는 바로 그 '계기'를 제공한 셈이다. 하지만 이 계기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일이주일의 차이는 있었을 망정 라그는 어차피 눕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미 라그를 잡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십, 수백 바가지의 물을 퍼부었던 사람. 취업이 일주일만 늦게 되었더라도 물이 흘러넘치는 그 자리에 조연이 아니라 주연으로 서 있었을 전임 공대장을 보면서 나는 그가 느꼈을 기쁨, 아쉬움, 착잡함에 속이 쓰라렸다. 오죽하면, 이제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나는 그날 라그나로스를 탱킹하는 자리에 서있는 신임 메인탱커가 얄미워보이기까지 했다. -_-;;; 왜냐하면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자리의 주역은 신임 탱커가 되어야 했고, 그 때문에 나는 단지 도움을 주러 온 OB에 대한 감사의 표시만을 전임 공대장에게 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지나온 날동안 부었던 수십 수백 바가지의 물에 대한 감사의 말은 내 마음 속에 묻어두어야 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앞으로 공격대 활동을 하는 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이와 같이 떠나보내야할 것이라는 사실을. 와우는 게임이다. 레이드는 게임을 즐기는 한 방식이다. 게임에는 끝이 있다. 영원히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고 피곤한 여행을 하던 중간에, 잠깐 나무 그늘 아래에 앉아 쉬는 것이다. 그늘 아래 있는 동안은 길동무라도 된 것처럼 잠시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지 몰라도 가야할 때가 되면 옷을 털고 일어나 인사를 하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뻗은 길을 향해 흩어질 것이다
.

그뒤로, 나는 공대장이라는 자리에서 오랜 시간 동안 참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맞아들였다. 사람에 따라 이별의 형식과 방법은 조금씩 달랐지만, 변하지 않는 건 한 사람이 떠날 때마다 40명의 바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공격대 라는 이야기의 조각이 조금씩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이다. 오늘 네파리안을 잡지 못한 채 한 명의 사제가 떠난다. 오늘 쑨을 쓰러뜨리지 못한 채 한 명의 도적이 떠난다. 그들은 현실이 부르는 길로 돌아간 것이고, 늘 하던 게임 하나를 마친 거지만, 와우라는 틀, 우리 공격대라는 틀 안에서는 한 명의 주인공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또 새로운 주인공을 맞아들이면서 이야기는 변한다. 그렇게 해서, 공격대 이야기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네버 엔딩 스토리가 되는 것이다
.

네임드에 도전하는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할 필요는 여기서 나온다. 실패가 두려워서는 아니다. 오늘 이후 당장 갑자기 게임을 못하게 되는 사람이 생길지도 모른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멋진 이야기의 결말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바로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거다. 물론, 까짓 게임에 뭐 그리 열을 쏟나 싶은 면도 있다. 대충 해도 뭐 인생에 큰 탈 없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만드는 이야기는 <용기 있는 바보들의 멋진 성공담>이 아니라 <인생 대충 산 소시민의 적절한 아이템 파밍기>로 끝난다. .... 드라마의 사이즈가 다르다. 기왕 찍을 거 좀 크게 찍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일본 다도의 금언으로 흔히 이야기되는 '일기일회'라는 말이 있다. 비록 공대는 매주 세 번 만날 약속을 한 다수의 집합체지만, 이 약속이라는 것은 현실적인 구속력이 전혀 없다. 자발성에 기대하는 이 비현실적인 구속력은 사람에 따라 차이가 좀 있지만 언젠가는 끝난다. 설령 좀 더 오랫동안 공대 활동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현실이 부르면 대책이 없다. 그리고 매우 슬픈 이야기지만, 현실 역시 견고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사람은 죽기도 한다. 삶의 바깥 테두리에 있는 바다는 검고, 어둡고, 아무도 항해해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촛불빛 아래 의지해서 게임이라는 걸 하고 있는지.

미처 자신의 이야기를 다쓰지 못하고 떠난 전임 공대장을 지켜보면서,
그것이 언젠가 내 미래의 일이 될수도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
나는 절대로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의 원칙이 필요했다.

 

22. 물 위의 전사, 물 밑의 공대장

공대장 재임 초기의 가장 큰 원칙은, 메인탱커는 물 위에/공대장은 물 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그건 나 자신의 한계와 취향에 근거한 판단이기도 했고, 그러는 편이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우선 나는 게으르다. -_-;; 레이드도 어지간하면 묻어가고 싶다. (..) 인원점검에 물자 분배에 루팅 진행에 거기다가 전술 지휘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저 무수한 일들 중에서 전술지휘가 제일 뽀대나는 영역이긴 하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새롭게 공격대를 결성하고 공대장 역할을 하는 젊은이들(...) 중 많은 수가 자신의 말 한 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39명을 보는 뿌듯함(...)을 그나마 낙으로 삼고 있을 거다. 솔직히 보통 인생에서 그런 경험하기 쉽지 않으니까
.

하지만 나는 전에도 말했다시피, 관찰하고 지켜보는 성격이다. 게다가 그때까지도 레이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람이었고, 때문에 내가 모르는 영역까지 통솔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그 짐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쪽을 택했다. 이런 역할 분담이 잘 되기 위해서는, 인내와 배려, 신뢰가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_-;; 끈기와 대범함, 그리고 음험함(...)도 필요하다
.

많은 공대에서 정치와 군사체제가 통일되어 있다. , 공대장 = 메인탱커인 경우가 많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메인탱커는 주로 탱킹 역할만 하거나, 지휘권 자체가 전사 클래스에 제한되어 있다. 전체적인 전술 지휘는 공대장이 하고, 따끔한 훈계도 공대장이 하고, 분위기 집중도 공대장이 한다. (그러는 것 같다) 나는 그 역할을 메인탱커에게 대부분 넘겼다. (우하하)

레이드 현장에서의 지휘는 크게 세 가지로 구별할 수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풀링 시작/마나 회복 타임/ 버프 타임/부활및 정비' 등 아주 기초적인 지시다. 매우 기초적인 것 같고, 뽀대는 별로 안나고, 귀찮은 일로 보이지만, 이게 잘 되면 진행이 매끄럽다. 또한 이걸 잘 하려면 40명 공대원 전원의 상태를 항상 체크하고 있어야만 한다. 뜻밖에도 신임 메인탱커는 이 역할을 아주 잘 해냈다.


메인탱커의 풀 사인과 함께 레이드가 시작되고, 끝나는 시간까지 거의 쉼없는 전투/루팅/전투/루팅이 이어진다. 전투를 하다보면 소수의 사상자가 발생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메인탱커는 항상 몇 파티의 '누구'라고 호명을 해서 부활을 요청했다. 타자 치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왜 그리 꼬박꼬박 이름을 호명했느냐고 나중에 물어봤더니, 2대 공대장겸 메인탱커가 늘 그렇게 사망자를 호명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_-;;;;
별게 다 멋있어 보이는구나. 남자애들이란' (...)

하지만 저런 호명에는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 지휘자가 항상 전공대원의 상태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어서 신뢰를 높이고, 딴짓을 못하게 한다. 그리고 자주 호명된 사람은 왠지 쪽팔려서 자생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된다. (...)
탱커의 입장에서도 저렇게 버릇을 들이는 것이 나쁘지 않다. 우선 공대원의 개별적인 버릇도 알게 되지만, 특정 코스에서 특정 클래스가 자주 눕는 걸 인식하면 기존의 전술에 어떤 변화가 요구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레이드 진행의 가장 기초적인 ABC부터 익혀나간 셈이다
.

이렇게 기초적인 지휘체계부터 잡은 다음, 두번째로는 '공략분석'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라그나로스를 처음 눕히고 난 뒤 공대 인원에 소소한 변동이 있었다. 그때마다 용암에 빠질 경우 도로 올라올 수 있는 자리 등을 신규자에게 설명하느라고 라그 앞에서 꽤 시간을 보냈다. 그러자 한 공대원이 제안하기를, 아예 우리 공대가 쓰는 각 네임드 공략법과 위치를 게시물로 작성해두고, 신규 공대원은 그걸 읽고 오게 하면 브리핑 시간이 줄어들지 않겠느냐고 했다.

! 좋은 생각 >< / (...) 이것도 메인탱커에게 넘겼다. s(-_-)V

잠깐! '그분' 인터뷰

공대장: 메인탱커 하시면서 제일 힘든 일이 뭔가요?
그분: 사실 닥탱은 힘들지 않았어욧. ( *닥탱: 닥치고 탱킹
* )
공대장: 그럼
?
그분: 매 네임드 도전할 때마다 해당 네임드 분석하고 공략 찾아서 추려내고 그런게

그분: 부담도 많이 되고

그분: 글 쓰기도 너무 힘들고 '';


사실 --;; 아는 사람은 아는 거지만 나는 글쓰기의 전문가(...). 하지만 절대로 저 일은 도와주지 않았다. (...) 왜냐면, 단순한 이유다. 공략 분석의 단계는 이를 테면 '적을 아는' 단계다. 메인탱커가 저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그의 자리는 오직 '닥탱'으로만 제한된다. 애초에 저 제안을 한 공대원은, 신규 공대원이 들어와서 저걸 읽으면 브리핑에 드는 시간이 줄어들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일단 한 번이라도 읽는 것이 도리라고 쳐도, 그렇게 읽어서 이 공대만의 '전술'이 바로 이해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글 읽기'라는 건 의외로 어렵다. 읽어서 무슨 뜻인지 아는 게 어려운게 아니라, 그게 몸에 바로 익혀지지 않는다. 물론 읽는다면 나아지지만, 그렇다고 브리핑의 부담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런 거 하나 올려놓고 신입이 해당 공대의 모든 전술에 바로 적응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사실 이 '글쓰기'는 애초의 제안자가 생각하지 못한 다른 방면에서 더 효과가 있었다. 메인탱커가 해당 네임드 전술 중 '전사'의 역할만이 아니라 전 클래스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는 기초가 잡힌다는 것이다. '글을 읽는 것' '아무 생각 없이'도 가능하다. 하지만 '글을 쓰는 것' '아무 생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약 공략 총정리를 하지 않고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공략 지식만 가지고 들이댔다면 메인탱커는 총체적인 시야를 확보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미 지나온 화산심장부/오닉시아/ 그리고 검은날개둥지와 안퀴라스 사원의 각 네임드별 전술 정리에 관한 메인탱커의 글들을 모두 모아서 분량을 가늠해보니 원고지로 약 520, 즉 책 반권 분량이 되었다. 그중에는 이제 낡은 전술이 되어 쓰지 않는 것도 있고, 공략 초반 잘못된 정보로 인해 자신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어쨌거나 이 빽빽한 글자들은 '방어구 가르기' 스킬 난사 기계로 전락할 수도 있는 '탱커' '전술적 판단이 가능한 ' 한 공대의 '메인탱커'로 만든 노력의 흔적이다. 물론 이 노력이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렇게 일을 덥석 맡겨버리고 아무 것도 도와주지 않은 나의 공이 크다! 음하하. (정말이닷)

다음은 예시로 삼기 위해 허락도 안 받고 낼름 퍼온, 메인탱커의 전술정리문이다. 비교적 이 작업을 시작한 초창기에 쓴 오닉시아 공략법인데, 공략한 네임드의 숫자만큼 존재하는 공략본들 중에 짧은 글에 속한다. 하이라이트는 두번째 줄이다.

길어서 접었음. 이하 '그분' 원고 무단전재

less..

오닉시아의 3단계 공격패턴에 따른 벤젼스 전술입니다.

우선 오닉시아는 도발에 면역이란 독특한 메카니즘이 있습니다(ㅠㅠ).

1
단계: 100%~65% -

이때는 오닉시아가 땅에 있습니다. 공격은 회전배기 폭풍날개 꼬리치기 회전배기 전방 120도 브레스를 사용합니다. 오닉시아는 도발에 면역이기 때문에 탱킹을 위해선 누적 어그로를 사용할수 밖에 없습니다.

전 공대원이 오닉시아 둥지에 진입하는 순간 멘탱은 바로 12시 벽쪽으로 방어구 가르기,방패가격으로 오닉과 마주보면서 끌고갑니다. . 일단 12시 벽쪽에 완전히 밀착하고 나면 약 2%정도 멘탱이 혼자 공격 하겠습니다. 진형은 메인탱커 기준으로 1,3.5,7파는 11시방향 2,4,6,8파는 1시방향 입니다.

일단 멘탱이 어그로를 한번이라도 잃으면 사상자가 반드시 발생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한번 잃은 어그로는 손쉽게 복구가되지 않습니다. 어그로 관리 하세요.. 화심에서 제가 이런 말씀드린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오닉시아는 도발에 면역이기 때문에 누적 어그로를 이용해 오닉을 고정시켜야만됩니다. 그렇다면 이 누적 어그로란건 가장 많은 댐쥐를 멘탱이 줘야한다는 결론입니다.

이때 멘탱을 재외한 다른 클래스는 일단 힐 받기가 힘드실거에요. 물론 오닉시아가 멘탱 이외의 다른 곳을 봐서도 안되긴 하지만요 오닉시아의 공격력은 만만치 않습니다. 제느낌으론 판금 방어구 기준 평타 700이상 크리는 1500까지도 나오구요 브레스 댐쥐는 심할땐 3000이상 나오기도 합니다.

오닉의 피를 2%정도 멘탱 혼자서 깍고나면 야수지배자님의 공격메크로에 의해서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겠습니다. 이때 모든클래스는평타,마법봉을 합니다. 이건 단순히 어그로 관리뿐만 아니라 2단계인 오닉이 하늘에 있을때 충분한 화력 발휘를 위해 마나를 관리한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또한 멘탱 재외 밀리 캐스팅님들은 공격을 지속적으로 계속 하는것 보단 중간 중간 한번씩 공격을 중지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사 냥꾼님의 경우 죽은척 하기의 쿨탐이 돌아올때마다 사용하는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진행하다보면 어느세 오닉시아의 피가 65%가 되어있습니다.

-2단계: 65%~39%-

일단 66% 정도가 되면 새기용 처리 전담반 5(9)6(3)는 미리 알방 앞으로 이동하시겠습니다. 오닉시아의 공격은 화염구와 오닉시아의 필살기 딥브레스인데요 화염구는 크게 문제가될것이 없습니다. 문제는 딥브레스입니다. 일단 맞으면 적게는 10분 많게는20분가까이 눕는 막대한 피해를 입힙니다. 거기다가 딥브레스 직후엔 알들도 다량 부화되어 새기용들이 우수수 나오기때문에 정말 전투가 힘들어 짐니다.

오닉시아 딥브레스 발동조건에 대해선 아래에 써놓았습니다.

오닉시아가 브레스를 쏘기전엔 "오닉시아가 깊은 숨을 들이쉽니다"라는 경고 메세지가 나옴니다. 메세지 직후 댐쥐 6000짜리 딥브레스가 날아오는데 이 브레스 방지법은 항상 오닉시아의 디버프 창에는 16개의 도트가 꽃혀 있어야됩니다. 도트가 꽃히면 오닉시아가 도트를 꽃은 사람을 인식하고 그 인식자를 보게되는데요 이때 밀리 캐스팅(사냥꾼/마법사)의 공격으로 인해 다시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하셔야 될것은 뭉쳐 있음 절대 안된다는 검니다. 그리고 한자리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어도 안됨니다. 마지막으로 주의해야될것이 새끼용 처리반의 움직임입니다. 새끼용 처리반(5.6)이 새끼용들을 처리할때 오닉 본채에 어그로가 쌓입니다. 때문에

때문에 알방 처리반은 새끼용 처리 직후 (9--->3,3--->9)한번식 바꿔가며 이동하시는 이유입니다.

알방 처리반의 어그로 분산(새끼용 처리직후 흩어져주는것)과 오닉머리 고정만 안시킨다면 오닉시아를 끌어내리는건 시간 문제입니다.

-3단계 : 39%~ 다운 -

예전에는 40프로가 되면 내려왔는데 요즘은 오닉시아가 39~38%가되면 땅으로 내려옵니다. 내려오기전에 "아직 혼이 더 나야겠구나!"라는 외침을 하는대 이때 멘탱은 오닉 내려오는지점으로 가서 탱킹을 시작하겠습니다.오닉은 땅에 착지하자마자 바로 광역 공포를 날림니다. 때문에 오닉시아가 내려올 준비를 할때 일단 알방에선 떨어져야됩니다. 공포로 인해 알방으로 골인하면 오닉시아가 아니라 새끼용들때문에 공격대가 전멸하게 됩니다.

일단 멘탱이 어그로를 먹을때까지 다른 모든 밀리 캐스팅님들은 공격을 중지합니다.

그리고 힐러들은 12시 벽 양옆 1시와 11시쪽 벽에 완전히 밀착합니다. 이 지형은 특이하게도 공포에 걸려도 용암피해를 거의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3단계 패턴은 위의 두가지를 재외하곤 1단계와 다를게 전혀 없습니다 역시 멘탱이 혼자서 2%정도 피를 깍고 밀리 캐스팅님들이 공격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오닉 피가 5%정도로 떨어지면 야수지배자님의 총공격멘트과 함깨 마지막 공격을 강행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 적을 '아는' 메인탱커의 기초가 되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다. 세번째로 필요한 것은 어쩌면 가장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 지휘권, 작전권이다.
레이드 진행 중. 특히 아직 눕혀보지 못한 네임드를 공략 중일 때는 참 여러 가지 갈등 때리는 상황이 많다. 여기서는 이렇게 해보자고 하고, 저기서는 저렇게 해보자고 한다. 사실 '어떤 상황에서도 다 들어맞는 백점짜리 전술'이라는 것은 없다. 해당 몹에 대한 분석/ 당일 클래스 구성/ 공대의 전통적인 장점과 약점등을 고려해서, 즉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최종적인 전술은 완성된다. 하지만 아직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는, A도 맞을 것 같고 B도 맞을 것 같다. 결단이 필요할 때다. 이 결단을 누군가가 해줘야 한다
.

이 작전권은 사실 대부분 공대장이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 역시 메인탱커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그래야 덜 귀찮으니까. ( -_) 가능한 모든 상황에서 메인탱커의 판단을 존중해주고, 설령 내가 속으로 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애매한 부분이 있을 때는 일단 메인탱커의 판단을 따랐다. 왜냐면.. 그래야 덜 귀찮으니까. ( -_) 정말로 정말로 아니라고 생각되어질 때는 남들이 볼 수 있는 공대 채널이 아니라 귓말로 간곡히 설득했다. 왜냐면.. -_- ;;; 음 이건 좀 귀찮았다. 다행히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작전권 이양(...)에 대한 내 입장을 상징할 수 있는 일화가 있다. 라그나로스를 눕히고 다음 목표인 검은 날개 둥지에 도전하여 첫 번째 네임드인 폭군 서슬송곳니를 공략할 때의 일이다. 공대는 화심과는 차원이 다른 특이한 네임드의 패턴에 잠시 혼란에 빠졌다. 폭군 서슬송곳니전에서 송곳니보다 더 무서운 오크 잡몹들이 사방 네 귀퉁이에서 쏟아져 들어오는데, 이걸 대처하는 방법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

첫째, 전사와 도적진등이 네 무리로 나눠서 네 귀퉁이를 각각 지키면서 나오는 잡몹들을 커트해야 한다는 각개격파술


둘째, 나눠서 싸우다가 한 군데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되니 가운데에 진지를 형성하고 잡아야 한다는 진형집중술.

의견은 꽤나 팽팽했고, 사실 난 어느 쪽이 더 좋은지 알 수 없었다. (...) 사실 주장하는 사람들도 어느 쪽이 더 나으리라는 보장을 딱히 못하고 있었다. 격론이 벌어지다가 공대 채널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한숨을 쉬고 , 누군가 물었다
.

공대원: ... 의견이 여러개 나왔는데.. 어떻게 해요?

이거 나보고 뭔가 결정해달라는 소리다.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공대장: 뭐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는데요.
공대원:

공대장: 전 결정했어요.
공대원: 어떻게요
?
공대장: 메인탱커님 의견에 동의해요
.
공대원: ........?


당시, 메인탱커는 아직 아무 의견도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뜨악한 공대원들에게 다시 말했다.

공대장: 제 의견은 메인탱커님 의견하고 같아요. 그게 뭔진 아직 모르지만. (...)
공대원: ......, . (...)


그러자, 비로소 각론과 한숨이 가라앉고, 공대원들은 메인탱커를 바라보았다.

그분: '';;


....
어쨌든 그분이 결정하고, 우리는 행동에 들어갔다. 이건 그후, 하나의 전통이 되어갔다.


그렇게 해서, 오랜 시간 물 위의 전사와 물 밑의 공대장은 서로의 역할을 다했다. , 물 위의 전사는 빡세게 공부하고 일하고, 물 밑의 공대장은 팽팽 놀았다 (아이 공평해)

체제 전환 후 첫날부터 이렇게 되지는 않았다, 당연히. 라그나로스를 쓰러뜨린 이후에도 신임 메인탱커는 아직 긴장을 많이 하고 있었고, 자신의 지휘권이 어디까지인지 잘 알지 못하는 시기였다
.
저 악몽 같던 오닉시아 칠전팔기의 날, 무수한 전멸이 반복되던 그때. 고전을 반복하던 전사 E로부터 카메라를 돌려, 같이 책임을 맡고 있던 신임 공대장(...)이 뭘하고 있었던 가를 살펴보자
.

.....
놀고 있었다 /<-0->/


어쩌다가 오닉을 거의 잡아가던 중에 전멸하면 채널로 "ㅠㅠ 아이구 아까워라~~" 같은 소리나 하면서 팽팽 놀고 있었다
. ~_~

과거의 전사 E, 오늘날의 '그분'께서 당시를 회상하며 하신 말씀, 인터뷰 한 토막 (...)

공대장: 그날 정신 하나도 없으셨죠? 근데 제가 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셨어요?
그분: 궁금했죠
.
공대장: 뭐라고 생각하셨어요? (.. 설마 '아니 저 인간이 나는 이 개고생시키고 자긴 쏙 빠져 있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 ..
)
그분: 그게

공대장:
그분: 분명히 이쯤 전멸을 하면 뭐라고 한 마디 쓴소리가 날아와야 하는데 암말도 없으셔서
공대장: ....
그분: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맘이 무지 불안했다는. '';;



그렇다. 카리스마 강한 공대장 겸 메인탱커의 역할을 각각 나눠받은 신임 공대장과 메인탱커는 '누가' 야단 치는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 게다가 설령 알았다고 해도 나는 그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앞서 오닉 칠전팔기 상황을 서술했을 때 얼핏 언급한 것처럼, 그날은 야단을 치고 분위기를 추스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자체적인 힘을 내는게 중요한 날이었으니 (험험, 다 계산해서 논 거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_-a)

어쩌면, 레이드 매순간마다 물 마실 시간 담배 피울 시간 버프할 시간까지 내가 다 지시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든 네임드 공략에 대한 글을 내가 다 쓰면서 시시콜콜한 잔소리도 늘어놓고 와우의 게임매커니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번거로운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이 공대는 '' 취향에 좀 더 맞는 공대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즐거움+ 번거로움을 포기해버렸다. 대신 한 명의 뛰어난 메인탱커를 얻었다. ^__^ 두고 두고 편했다. (...)

그러니, 공대장들이여. 할 수 있다면 놀아라!
조금이라도 뽀대나고 재미있어 보이는 역할이 있다면 넘겨라
!
공대를 내 입맛에 맞게 운영할 수 있는 '지름길'로 보이는 역할이 있다면 무슨 수가 있어도 넘겨라
!
그 일 역시 고생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
그러니 그 일을 맡아줄 사람의 의사는 항상 상왕전하 모시듯이 존중해라
.
일 하나를 주고, 결정권 하나를 넘겨주는 대신

당신은 동지 하나를 얻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
당신이 물 밑에 있어야하는 이유가 있다
.

................
그렇게 떠넘기고 나서도

공대장 일 많다. (퀘엥)

 

23. 본질적인 것, 본질적이지 않은 것.

전편을 읽은 좌백 .
"""
이것저것 다 떠넘기고 나서도 많이 남았다는 그 공대장의 일이라는게 뭔지 믿기지가 않소."
''... 그렇다. 안해본 사람은 도대체 모를 거다. 무슨 게임이 회사일도 아닌데 몹 쓰러뜨리는 것과 관련된 일 빼고나서 무슨 일이 남는지. '이상적으로는' 사실 안남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남는다. 현실적으로는 그거 말고도 머리 빠개지게 일 많은 것이 정상이다.

그럼 대체 팽팽 놀(..)면서 전사 등짝이나 보는 것 밖에는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은 공대장( -_)이 무슨 일을 했는지... 로 넘어가기 전에, <메인탱커는 물 위에/ 공대장은 물 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를 진지하게 다시 정리해보겠다. 무조건 내가 놀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고!

''''''말했다시피, 사람들은 게임을 하려고 레이드를 하는데, 게임 외적인 문제들이 더 골치를 아프게 한다. 이게 현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현실에 발목이 묶여서 게임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때로는 몹을 쓰러뜨리는데 관련된 일보다 공대 운영하고 인원 관리하고 사람들 사이 조율하는 일이 '' 어렵고 '' 힘들고 '더 중요해' 보일 때가 있다. 물론 중요하다. 이런 백업이 없으면 공대가 제대로 안돌아가고 당연히 몹도 못잡는다. 하지만, 본말이 전도되서는 안된다.

공격대는 친목단체가 아니다. 하다보면 친목이 쌓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원래 목적이 아니다. 공격대는 몹을 쓰러뜨리는 과정과 그 결과물을 공평하게 분배하여 즐긴다는 목적을 분명히 갖고 있는 임시적인 단합체이다. 말하자면, 한 조직이 움직이는데 정치/군사/경제/문화적 측면이 있다고 할때, 공격대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군사적(게임적) 측면이다.'' 그외의 분야들은, 가장 중요한 주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만' 돌아가면 된다
.

''''
설령 메인탱커를 겸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공대장의 머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공대 운영'에 관한, 비게임적인 문제다. 공대장의 그 고민이 물 위로 나오고, 공대원이 그 고민에 전염되면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자기 캐릭의 능력을 올리고 컨트롤이 상승되는 것에서 느끼는 '본질적인 게임의 재미'라는 것이 흐려질 우려가 있다. 재미가 없는 게임은 절대 오래 가지 못한다. ''따라서 언제나 공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당면한 네임드와의 전투여야 한다. 공대의 물 위를 지배하는 제일 큰 목소리는 전투에 관련된 목소리여야 하지, 누가 누구랑 사이가 좋네, 어느 클래스는 분위기가 개판이네 - 이런 것이어서는 안된다. 그런 자질구레하고/ 머리 아프고/ 해결책 없는 문제들(일시적으로 해결되더라도 절대 영구적으로는 해결 안된다!) 은 모두 공대장이 안고 물 밑으로 가라앉아야 한다. 물 위에는 항상, 게임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 - 저놈의 몹을 어떻게 때려잡나 - 물약은 뭘 먹어야 하나 - 이 타이밍에 무슨 기술을 써야 하나 - 이런 것들만 남겨야 한다. 그외의 자질구레한 문제는 누군가 덜어가주면 제일 좋고, 설령 상황이 안 좋아서 혼자 다 감당하게 된다고 해도 무엇이 공격대의 근본적인 목적인지는 잊지 말고 그 고민을 항상 공대원 앞에 커다란 볼드체로 써붙여야 한다.

다시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라그나로스를 처음 쓰러뜨리고 난 뒤의 공격대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여전히 공대장은 팽팽 놀고, 신임 메인탱커는 고군분투하고, 하나의 장벽을 막 넘어선 다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열병처럼 공대원 중에 일부는 공대를 떠나갔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고, 물이 갈렸다.

''
라그나로스를 눕히고 난 다음에는 당연히 그보다 더 어렵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더 좋은 아이템'을 떨군다는 검은날개 둥지에 눈이 돌아가기 마련이다. 새 인던 도전을 하는 시기는, 늘 어렵다. 이미 눕혔던 라그를 실패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려운 날도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공대의 분위기에 큰 침몰은 없었다. 평이한 나날이었다
.

''''
투톱 체제의 초기였던 이 시기에, 공대장과 메인탱커는 레이드 시간 외에는 거의 대화 자체가 없었다. 시작할 때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귓말, 끝날 때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귓말 외에는. 그럴싸한 운영진 회의라는 것도 없었던 건 물론이다
.

이젠 라그까지 원킬로 쭉쭉 뽑아버리고 얼른 검은 날개 둥지로 가야할 때가 아닌가- 라는 공대원들의 갈증이 점점 깊어지던 어느날. (그래봤자 시간상으로는 불과 첫킬 이후 2-3주 정도
?)

레이드가 끝난 뒤 갑자기 공대장이 메인탱커를 불렀다. 이때쯤, 아마도 메인탱커는 전임 공대장이 들고 다니던 쿠엘세라가 부러워서 용사냥개론 책 사려고 앵벌을 열심히 하던 때였을 것이다. 여명에서 한참 펄볼그 때려잡는데 갑자기 날아갔을 공대장의 무전.

공대장: 시간 좀 있으신가요? ^^
그분 :
?
공대장: 시간 좀 되시면 부탁드릴게 있어서요
.
그분:
.
공대장
: ^^
그분: 말씀하세욧


잔뜩 긴장한것(...)이 느껴지는 메인탱커에게 이날, 나는 처음으로 한 가지 요구를 했다.

그건 어찌 보면 레이드를 뛰는 전사를 단칼에 죽이는거나 다름이 없는 요구였다.

[출처] 진산의 공격대 이야기 - 23 : 본질적인 것, 본질적이지 않은 것 (Team Genocide) |작성자 아쉔베일

 

24. 노블리스 오블리제

공대장: 부탁드리고 싶은 건요.
공대장: 제가 공대를 운영하는 동안은

공대장: 죄송한 말씀이지만, 메인탱커 아이템 밀어주기라는 것은 절대로 안할 생각입니다.
공대장: 그래서

공대장: 포인트 관리에 신경 좀 써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메인탱커는 잠시동안, 내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듯 말이 없었다.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순간이 말하자면 공대장과 메인탱커가 거의 처음으로 독대를 하고 공대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때였다. 상대가 대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어디까지 서로의 원칙을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지, 서로의 기량을 재는 순간이기도 했다. (오 이렇게 묘사하니 멋진걸? (...))

거의 모든 정규 공대는 아이템 분배에 있어서 포인트 경쟁을 원칙으로 한다. 포인트는 매일의 출석과 네임드 킬 참여 등에 의해 가산되고, 아이템 획득이나 기타 공격대의 활동에 지장을 준 행위 등에 의해서 감산된다. 어떤 아이템이 드랍되었을 때, 만약 그것을 원하는 사람이 2인 이상일 경우 경매나 기타 입찰 방식에서 공격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대원칙은 '보다 높은 포인트'의 보유자가 우선권을 갖는 것이다.

아주 조악하게. 레이드에서 드랍되는 아이템을 두개의 분류로 나눠보자면, 레이드 자체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이 있고/ 레이드에 도움이 될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혼자 솔플을 하거나 pvp 전에 쓸때 도움이 더 되는 아이템이 있다. 전사의 경우 일명 '닥탱템'이라고 해서 닥치고 탱킹하는데 필요한 방숙/방패방어 등등을 높여주는 아이템이 있고/혼자 사냥하기에도 즐겁고 PVP를 할때 한 방 데미지도 강력한 치명타/전투력등을 높여주는 아이템이 있다
.

대체로 많은 공격대에서 전사들에게 닥탱템은 강매되다시피 하지만 인기가 없고 (비슷한 맥락으로 힐러에게 닥힐템도 그러하다) 치명/전투력 관련 템들은 인기가 좋다. 하지만 탱킹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닥탱템을 먹어야 하고, 이런 애로사항을 배려해주는 차원에서 메인탱커에게 탱킹용 장비를 '싸게' 밀어주는 경우가 많고/ 또는 반대로 생각해서 인기가 높은 치명타/전투력/데미지 관련 아이템의 제 1호가 드랍되었을때 설령 닥탱템을 먹다가 포인트가 나락으로 떨어진 상태라고 하더라도 메인탱커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양보해주는 경우가 많다.


내가 위에서 메인탱커에게 한 요구는, 간단히 말해서 닥탱템이고 뎀딜템이고 '밀어주는 일'은 절대 안할 거니, 뭐를 먹고 싶든 간에 먹으려면 포인트로 먹어라, 라는 요구였다.

전사를 무척이나 아낀다고 말한 입으로, 어찌 보면 참 잔인한 요구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저 말은, 2-3주간 공대 운영의 기본적인 흐름을 파악한 뒤에 내가 판단한 바, '전술적인' 분야를 뺀 나머지 공대 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건 바로 '아이템 분배의 원칙'이었다
.

아이템 분배 방식으로 무엇이 옳은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고,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A라는 방법을 택하면 B가 울고, B라는 방법을 택하면 A가 운다. 막공에는 막공 나름의 도덕율이 있고, 정규 공대에는 정규 공대 나름의 도덕율이 있다
.

만약 포인트가 높은 성기사가 치명 관련 장신구를 도적보다 먼저 먹었다고 치자. 난리난다. 개념이 어쩌네 저쩌네 하는 소리도 나온다. 보다 빠른 공략을 위해서 그런건 뎀딜 클래스에 양보해야 하는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그럼 성기사는 또 발끈한다. 그만큼 공대에 기여를 해서 포인트가 높은 건데, 도적들 다 먹기를 기다리면 또 그 사이에 신규 도적 들어올 거고, 그때 먹으면 말 안나올 것 같냐. 그때까지 레이드할지 안할지도 모르는 건데 그걸 왜 기다려야 하냐. 이 아이템 하나 때문에 누울 몹이 안눕고 안누울 몹이 눕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 기타 등등. 아이템 관련해서는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
.

공대장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의 손도 쉽게 들어줄 수가 없다. 사실 공대 평균 DPS를 높이기 위해서 딜 관련 클래스가 저런 템을 먹으면 '좋긴' 하다. 하지만 레이드의 팀웍이라는 건 단지 아이템만으로 맞춰지지 않는다. 자신이 원해서, 필요해서, 주어진 권리를 행사하여 아이템을 먹는 것을 '규칙'에 없는 기이한 원칙을 빌미삼아 양보를 강요한다면, 그 클래스, 혹은 그 플레이어가 느낄 박탈감은 어찌 할 것인가? 저런 강요를 받은 플레이어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공대에 대해서 거리감을 두고 바라보게 된다. 적당히 눈치 안 보고 먹을 템만 맞춘 뒤에는 다른 공대로 옮긴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인간적으로 무리한 일이 아니다. (물론 남은 사람들은 삿대질 하면서 욕한다
)

공대 규칙에 명시되지 않은, 당장의 효율을 고려한 임의적인 아이템 분배는 '규칙'을 중심으로 모인 공격대를 단숨에 논란에 빠뜨리게 하는 일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다.

해결책은, '모든 분배'는 규칙에 의거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규칙에 전 공대원이 동의해야 하며, 신규자는 그 규칙에 동의한 상태로만 공대에 가입을 시켜야 한다.

그럼 규칙을 어떻게 정해야 할까?

1. 아주 화끈하게, '모든 분배는 공대장이 알아서 합니다' 라는 가족적인 규칙도 가능하다.
=> 이 경우는 매우 드문 예지만, 실제로 있기도 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런 규칙이 성립되려면, 이 공대는 발생 자체부터 이미 단단한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었어야 한다. 일종의 족벌체제 재벌그룹 같은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공대는 공개모집을 통해 만들어진, 이를 테면 건전한 의미의 주식회사와 같다.
2.
닥탱/닥힐템에 대한 우대나 할인 보조책을 명시하는 것이다.
=> 제일 신중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모든 클래스, 모든 입장을 다 포용하는 포인트제도라는 것은 굉장히 만들기가 어렵다. 때문에 문제점을 보완하고 불만을 다스리려면 규칙은 갈수록 점점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법이 복잡하면 할수록 지키기가 어렵다. 마침내는 애초에 이 규칙이 어떤 이유로 만들어진 것인지조차 다들 잊어버린다.


당시, 나는 이미 '규칙'이 있고 그것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공격대를 물려받은 입장이었다. 만약 창설자였다면 규칙 설정에서부터 공격대의 성격을 규정할 수 있었겠으나, 처한 입장상 이미 있는 규칙 한도내에서 최소한의 변화만이 가능했다. 그 안에는, 메인탱커에 대한 아이템 우선권의 규칙은 없었다.

메인탱커에 대한 아이템 밀어주기는 단시간내의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메인탱커'에게도, 그리고 공대 운영진에게도 양날의 칼이다
.
설령 닥탱템은 정상 입찰 시키고 (은근한 전사클래스내의 암묵적 밀어주기를 보조책으로 쓰면서), 무수한 공격대를 괴멸로 이끈 마검 아쉬칸디 (...) 같은 것을 메인탱커에게 밀어준다고 쳐도, 혹은 그 반대로 닥탱템에 대한 암묵적인 우선권을 인정하고 마구 밀어준다고 해도, 심지어 전술병기라고까지 칭해지는 우레폭풍을 위해 바람추적자 족쇄를 포인트 우선순위 무시하고 밀어준다고 해도, 후과는 반드시 남는다
.

첫째. 분배에 있어서 '특별한' 경우를 만들어버리면, '모든' 경우가 특별해진다.


물론 메인탱커의 위치, 특별하다. 그럼 메인탱커만 그런가? 힐러는? 핑계 없는 무덤 없다. 억울한 사연 없는 클래스 없다. 한 가지 예외를 인정하면 곧 무수한 예외에 대한 검토요청서에 깔려죽는다. 그 예외들 중에 어떤건 옳고 어떤건 그르고가 중요한게 아니다. '한 사람'에게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곧 그것에 찬성한 모든 공대원은 마음속 깊이 '나의 예외'도 언젠가는 인정될 것이다라는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는 것이 문제다. , 언제든 아이템 문제가 불거져나올 요지를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메인탱커'만 고생하냐 공대장도 고생한다, 운영진 다 쌔빠진다까지 나오기 시작하면 괴롭다. (...)

둘째. '한 사람'에게 모든 걸 걸어버리면, 그 사람이 없어지는 순간 공대는 와해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휭휭 '메인탱커용 장비'로 감은 사람도, 어느 날인가는 갑자기 떠날 수 있다. 2대 공대장의 갑작스러운 탈퇴로 그건 뼈저리게 체험했다.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때, 만약 암묵적인 밀어주기로 '공대의 모든 방패' 역할을 한 사람이 독점했다면, 그 타격은 만만치 않다.

셋째.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게 공짜다.

<
, 양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고, 별말씀을.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는데요. 자 우리 메인탱커님 박수~> 이러면서 아쉬칸디를 먹었다고 치자. 메인탱커 하다보면 열받는 일 많다. 그것 때문에 좀 싫은 소리 해본다. <정말 남는 거 하나 없이 레이드 준비하느라고 이렇게 고생했는데...> 바로 반발 날아올 수 있다. <메인탱커라고 아쉬 먹었잖아요? 그런건 싹 빼고 말하셈
?>
무척 치졸해 보이는 다툼인데, 저것이 인간이다. (...) 잠깐 기분 좋은, 잠깐 효율 좋은 '밀어주기' 때문에 마치 월급 받고 뛴 직업 게이머처럼 의무를 요구당하고, 떠나는 걸음조차 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

나는 저 요구를 통해서 말하고 싶었다. 메인탱커를 맡게 되는 기간 동안, 게임내 물질적인 보상은 원하지 말라고. 탱킹이 재미있다면 탱킹용 템만 입찰하고, 탱킹은 어쩔 수 없이 맡은 거지만 뎀딜이 더 좋다면 뎀딜템만 입찰하라고. 그래서 만약 우리가 방숙 허약한 메인탱커를 갖게 된다면, 그 수준에 맞는 공대가 되면 그뿐이라고. (사실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더디게 가면 되지) 공대원들이 하도 불안해서 양보를 해준다면 그걸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나서서 양보를 중재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러니 알아서 하라고. 대신, 만약 일이 잘 풀린다면 보이지 않는 보상을 얻게 될 거라고. 최악의 경우라도, 공대에 빚진 마음 없이 떠날 수 있게 발뒤꿈치는 가볍게 해주겠다고 말이다
.
밀어주기 없습니다, 라는 냉혹한 말에 담긴 내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단지 메인탱커에게만 요구한게 아니라, 나 자신 역시 마찬가지로 그럴 생각이기도 했다
.

메인탱커가 과연 이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굉장히 냉정한 소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한동안 심사숙고하는 듯 침묵한 뒤에, 그는 대답했다
.

그분: . 알겠습니다
.

그뒤, 공대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내가 정한 저 원칙을 딱 세 번 어겼다.

첫번째는 메인탱커에게 밀어주기가 아니라 3파 전사를 위한 것이었는데, 검은날개 둥지 진입하면서 최소한 3명의 탱커에게는 보다 높은 탱킹능력이 요구되는 관계로 포인트상 우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닉시아 머리를 양보해줄 수 없겠느냐는 부탁을 한 적이 있다. 전사채널로부터 요구가 있었고, 검은날개 둥지 초반 공략시 전사클래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던 점과, 당시 전사진이 막 물갈이가 되던 시점이라 해당 클래스 사기를 고려해서 한 선택이었지만 하고 나서도 내내 뒷맛이 씁쓸했다. 다행히 공대원들이 불만 없게 넘어가서 문제 없었지만, '공략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런 예외가 버릇이 될까봐 '두번 다시 이런 경우는 없다'고 전사 채널에 단단히 못박아뒀다.

두번째와 세번째는 비슷한 경우다. 하나는 안퀴라스 사원 공략을 위해 녹색용 잡고 자연저항템을 메인탱커에게 밀어준 것이고, 쌍둥이 공략을 위해 흑마 탱커에게 암흑저항 관련 네파리안 퀘템을 밀어준 것이다. 암흑저항 템은 흑마 채널과의 협의로 내가 발의하여 집행했지만, 자연저항템을 메인탱커에게 밀어준건 공대원들이 먼저 제안해서 할 수 없이 받아들였다. 메인탱커에게 자연저항템을 밀어주고 나서 제일 속상했다. 비록 탱킹 외에는 쓸모 없는 템이고 그야말로 '공략'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가장 뚜렷한 것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나마 메인탱커를 공격대에 귀속시켜버렸다는, 애초의 원칙에 흠집이 난 사실 때문에.


이 세 번의 원칙 이탈 사례가 맘에 걸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약속은 메인탱커도 나도 마지막 날까지 비교적 잘 지킨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날, 보상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황당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요구를 메인탱커가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로 자신의 아이템 입찰을 통해서 내 요구에 대한 대답을 했다.

마지막날까지 메인탱커가 공격대로부터 얻어간 아이템 목록

투지: 풀셋
격노: 풀셋
천공쐐기 원반
불굴의 목걸이
용혈단망토
불꽃꼬리 다리보호구
화산 심장부 경갑
무거운 검은무쇠 반지
바람추적자의 족쇄 (게돈)
결속의 반지

오닉시아의 머리
말라다스 - 검은용군단의 룬검
엘리멘티움 보루 방패
아킴타로스의 징벌의 반지
생명의 보석
스틸린의 방어 스카라베
네파리안의 머리
수액투성이 건틀릿
지휘의 퀴라지 팔보호구(강제입찰)

less..투지: 풀셋
격노: 풀셋
천공쐐기 원반
불굴의 목걸이
용혈단망토
불꽃꼬리 다리보호구
화산 심장부 경갑
무거운 검은무쇠 반지
바람추적자의 족쇄 (게돈)
결속의 반지

오닉시아의 머리
말라다스 - 검은용군단의 룬검
엘리멘티움 보루 방패
아킴타로스의 징벌의 반지
생명의 보석
스틸린의 방어 스카라베
네파리안의 머리
수액투성이 건틀릿
지휘의 퀴라지 팔보호구(강제입찰)


이 요구가 있던 날로부터 며칠 후 라그나로스는 가시쐐기 도끼를 뱉었다. 그 도끼는 다른 전사의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그후 몇달, 아쉬칸디 축복 공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네파리안은 무서운 속도로 우리 공대에 네 자루의 '마검' 아쉬칸디를 떨궜다. 그러나 그중 무엇도 메인탱커에게 쥐어지지는 않았다. 당시 부동의 전사계 포인트 1위였는데도. (......솔직히 이때쯤 되서는 나도 걱정했다. -_-a , 저렇게까지 바란 건 아니었는데 내 말이 그리 무서웠나...;;)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제목을 달긴 했지만, 사실 이건 '지도층'이 아닌 '게이머'의 의무였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청렴결백이라거나 우린 사심 한 점 없었다구! 를 자랑하기 위한 원칙이 아니다. 실체는 그보다 훨씬 냉정하다. (받아들인 메인탱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

나는, '공대장'이라는 롤을 맡은 이 역할이 언제든 재미없어지면 관둔다라는 의사를 저 원칙에 담은 것이다. 마찬가지로 메인탱커에게도 동일한 티켓을 준 셈이다. 받아들이는 측에서 그걸 납득 못했다면, 티켓은 찢어졌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것으로 초기의 원칙 정리는 끝났다.
이제 딱딱한 이야기를 넘어서, 공격대의 또 다른 인물들을 만나볼 차례다
.

재미있는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혼자서만 설치지 않는 법. ^^

 

25. 한 사람의 아래, 만인의 위.

검은 날개 둥지의 첫번째 네임드는 폭군 서슬 송곳니다. 보통의 경우, 두번째 네임드인 벨라스트라즈에서 많은 공대가 좌절의 벽에 부딪치고, 첫 네임드인 송곳니는 쉽게 돌파하는 편이라고들 한다. 이를 테면 화산심장부의 첫 네임드인 루시프론이 일종의 맛보기라면 두번째 마그마다르에서 화산심장부의 초심자들이 처음 난관에 부딪치는 것과 비슷한 구성이다.

그런데, 우리 공격대는 기묘하게도 폭군 서슬 송곳니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지체했다.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송곳니 때문에 지체했다기 보다는, 이 시기가 공대 전환의 시기였기 때문에 지체했다는 것이 옳다. 그런 상황에서도 조용히 새로운 체제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송곳니는 좀처럼 해결이 안되지만 화산심장부의 공략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던 어느 날
.

메인탱커에게 레이드 진행을 다 맡겨놓고 팽팽 놀면서 잡담 채널에서 수다만 떨던 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어가는 메인탱커를 보고 약간 양심이 찔렸다. 아주 약간. (...) 메인탱커는 초기의 ''체가 점점 줄어들고, 꼭 필요한 말만 하게 된 상황이었다. 버프해주세요/다음 풀/거리 유지/서브 사냥개 대기/힐포인트 2파 전사님에게로... 등등
.
'
.. 조금 미안한걸' 싶어져서 한 마디 했다.

공대장: . 나는 팽팽 노는데 멘탱님 말 한 마디 제대로 못하신다. ~_~ 아이 미안해라..

그러자, 진행과 관련된 오더만 뱉던 그분 왈.

그분: 그게욧 <=== 갑자기 옛시절로 회귀

그분: 상처님이 저한테 인수인계해주시면서 <=== 잊혀졌을까봐 다시 말하는데, 2대 공대장겸 메인탱커다.
그분: 메인탱커는 과묵해야 한대욧
공대장: ....왜요?
그분: 그래야

그분: 카리스마가 있어보인다구욧

........... 잠시 공대 채널은 뜨악한 침묵에 휩싸였다.
......
....
...

누군가 용기 있는(...그리고 냉혹한) 사람이 한 마디 했다
.

누군가: ..... 그렇게 말한 상처님도 그다지 카리스마가 있었다고는 (..........)

...... 무언의 동의 (...)
......
그리고 물밑에서는 벽을 두드리며 웃느라 죽어가는 사람들 (...나만 그랬나
?)

여기에 결정타

그분: (자랑스레) 효과가 있지 않았나욧? '';
............
누군가: 아니 사실 과묵해서 카리스마가 넘친다면 차라리 서브 탱커님이 (...)



사실 카리스마라는게 뭔지 사람마다 정의가 다르다. 자신의 말에 반박을 할 여지 자체를 없앨 만큼 막강한 독재 파워?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면 뭐가 되도 된다는 신뢰감? 무수한 사람들이 떠들어댈때도 그 사람의 침묵이 더 무게 있어 보이게 만드는 존재감?

카리스마는 여러 가지 형태로 표현된다. 2대 공대장의 카리스마가 유연하고 유들유들한 카리스마였다면 (그래서 독재적인 느낌은 없었다) 나중에 평가되어 붙여진 것이긴 하지만 신임 메인탱커는 일명 '조용한' 혹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보유자라고 했다. 여기에, 공대의 두 번째 방패를 맡은 서브 탱커도 있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조용한'이라는 말보다 '과묵한' 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타입이었는데, 사실 메인의 역할을 제대로 지켜준데는 이 서브탱커의 역할이 무척이나 컸다
.

서브탱커는 또한 전사 클래스 대표자 역할까지 같이 맡고 있었는데, 앞서 표현한 전사ABCDE 중에 D에 해당하는, 즉 당시 전사진 중 가장 늦게 들어온 편인 (그래봤자 공대 출범후 2-3주 후쯤에 합류한 것이었지만) 아주 조용한 남자 나이트엘프 전사였다.

서브 탱커의 역할이 왜 필요한가? 그건 대략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화심/오닉을 중심으로)

첫째, 레이드에서 공격대가 상대하는 몹은 항상 단수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화산심장부의 코스 잡몹 중 용암의 거인 같은 경우는 생긴 것도 엄청 마초-_-;; 스러운 것이 꼭 커플로 다닌다. 따라서 이쪽도 커플(!)로 상대해야 한다. 메인탱커가 하나를 붙잡고 있는 사이, 서브탱커가 잡은 한 마리를 먼저 공대원들이 일점사해서 해치운다. 빠른 시간내에 화력을 쏟아붓기 때문에, 어그로가 튈 확률이 많다
.

둘째, 설령 단수의 몹을 상대하더라도 해당 몹의 특성에 따라 반드시 '메인탱커'가 어그로를 확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를 테면 라그나로스의 경우에는 주기적으로 메인탱커를 넉백시켜버리는데, 이때 잠시 어그로의 공백이 생긴다. 서브탱커가 이때 잡아주지 않으면 공대원들은 추풍낙엽이 된다. 오닉시아의 경우에도, 얼라이언스 드워프 사제만이 걸 수 있는 '공포의 수호물'이 없다면 주기적으로 거는 공포 마법때 메인탱커는 어그로를 놓칠 수밖에 없다. 서브탱커는 이때 방어력은 떨어지지만 공포에는 면역이 되는 격노 상태로 어그로를 잠시 넘겨받았다가 메인에게 인계해줘야 한다. 말한 대로 오닉시아는 도발에 면역이다. 강제적으로 어그로를 잠시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경우 메인과 서브는, 서로가 쓰는 스킬에 의한 누적어그로를 감으로 조절해야 한다. 서브는 항상 중용을 요구당한다. '메인보다는 적게' 그러나 '그외 공대원보다는 많게'. 이른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어그로 획득을 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언제나 비상사태라는 것이 존재한다. 메인탱커가 몹을 붙잡고 있다가 돌발상황에 의해 누워버렸다. 공격대에서 어그로 수치를 순위로 표현한다면, 메인탱커의 어그로 수치가 1위고, 그 다음은 강력한 뎀딜러이기 쉽다. 메인탱커의 돌연사 후에 바로 그 자리를 낚아챌 존재가 필요하다. 혹은 메인탱커의 탱킹 하에 몹 하나를 잡고 있는데 저쪽에서 새로운 순찰몹이 접근 중이다. 서브는 미리 달려가서 다가오는 몹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대충 '서브탱커'의 기능적 역할인데, 의무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아니지만 서브탱커에게는 또 하나의 역할이 있다. 어그로에서뿐만이 아니라, 공격대의 전술 확정 과정에서도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온화한 타입의 메인탱커 옆에 만약 불같고 태양같은 서브탱커가 있었다면 두 사람의 역할이 충돌을 일으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서브탱커는 불이 아니라 바위, 혹은 산과 같은 사람이었다.

앞서 말했던 오닉시아 칠전팔기의 그날, 사실 물 위에서는 감동적인 휴먼드라마가 '연출'되고 있었지만, 클래스별 채널창, 각 공대원의 길드창에서는 어떤 말이 오갔는지 알 수는 없다. 그때, 전사 채널에서도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있기 마련인 '어휴 거기서는 그렇게 탱킹하면 안되는데' 같은 말이, 당연히 나왔었다는 것이다. (나는 훗날에야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이 서브탱커가 딱 한 마디 했다고 한다. '
믿어줍시다. 가뜩이나 힘드실 텐데 이런 저런 소리 하지 말고.'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각자 다른 후반파의 전사로 별로 대화도 나눠본 적이 없는 메인탱커에게 귓말로 한 마디를 더 했다고 한다.

서브: 힘들겠지만 XXX님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힘내세요.


온화하게 공대를 이끌어가는 메인탱커 옆에는, 이렇게 단단한 서브탱커가 있었다. 사실 이 서브탱커에게는 마음 한구석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메인탱커가 메인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신뢰와 지원은 아끼지 않았지만, 서브탱커에게는 그 반도 제대로 못해줬다. 그럴 에너지까지는 없었다. 그냥 서브탱커의 기본 자질을 믿고, 맡겼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방목했다.. ㅠㅠ)

부탱커, Sub 탱커, Off 탱커라고 표현되는 이 2번째 탱커의 자리는, 언제든 메인의 역할을 넘겨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있지만 늘 조명을 받는 자리는 아니다. 갑자기 메인이 부재할 때는 언제나 서브를 돌아보게 된다. 서브가 메인 만큼 못해낸다면 '비슷한 역할을 해놓고 못하다니'라는 눈총, 자격지심에 시달리게 된다. 서브가 메인만큼 해낸다면, 그건 메인이 닦아놓은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흔히들 쉽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서브와 메인간의 역할은 다소 다르고, 두 사람 사이의 신뢰와 호흡은 단지 말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

전사 클래스 팀장으로서 서브탱커가 늘 했던 말이 있다
.

서브: 탱킹은 믿음입니다. 믿음의 탱킹!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닭살의 눈보라에 휩쓸려 몸부림쳐야 했다! /--/ (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
ㅠㅠ 어쨌거나 사나이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다. -_-b(...) 혹시라도 메인의 전술 브리핑에 대한 이의제기가 나올 때, 공대원들이 전술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이건 안되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할 때, 그는 항상 메인을 지지해줬다. 메인이 붙잡지 않는 몹을 붙잡는 기계적인 의미의 '서브'가 아니었다. 책임감이 굉장히 커서 가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안쓰러울 때도 많긴 했지만, 대부분의 순간에 공대장보다도 더 메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

메인에게는 많은 책임이 따르는 만큼 도와주는 사람도 많다. 서브의 자리는, 스스로가 알아서 찾아가야 하기 십상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서브의 자리를 철저하게 지켰던 이 전사가 공대의 체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메인탱커의 역할 수행에 얼마나 큰 힘을 주었는지는, 심지어 그 공격대에 속한 사람들조차도 쉽게 눈치챌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두번째의 자리, 두번째의 방패, 서브탱커, 오프탱커의 위치다
.

세월이 흘러, 검은 날개 둥지 공략 동영상 자료를 가끔 다시 재생해보면, 공대 전사 중 유일하게 나이트엘프 남자 캐릭터였던 (아는 사람은 안다. 나엘 남자 전사의 어깨가 얼마나 넓은지) 서브탱커가, 인간 여자 전사 캐릭터인 메인탱커의 옆에 항상 서있다. 말도 별로 없었고, 애교도 없었고 (...), 사나이답게 (?) 의외의 부분에서 소심하기도 했던 서브탱커
.

가끔 생각해본다. 만약 운명의 그날, 전사 E가 아니라 전사 D가 공대의 메인을 맡았다면 그 후의 공격대 이야기는 어찌 되었을까? 전사 E는 전사 D만큼 그를 믿어주고, 전사 채널을 적은 말로 휘어잡을 수 있었을까? 공대원들은 비슷하게 '조용'하지만 그 조용함의 색깔이 달랐던 전사 D를 전사 E만큼 챙겨줄 수 있었을까? 나는 전사 E에게 했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요구를 전사 D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었을까
?

답은 모르겠다. 역할이 바뀐 이야기에는 언제나 의외의 변수가 따르기 마련이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풀려나갔을 수도 있다. 그 결과는 긍정적이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함이 없다. 그는 정말 '좋은' 서브탱커였다. 메인탱커에게는 '좋은' 혹은 '나쁜' 이라는 수식어를 달기 쉽다. 그러나 '서브'탱커에게는 그러기가 어렵다. 보통 그들에게는 아무런 수식도 붙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공대의 두번째 전사는, 이런 수식을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한 서브탱커였다.

 

26. 별전: 운명의 결정자, 힐러

나는 성기사다. , 판금 사제다. 내 계정에는, 애초의 계정 원주인이 키웠던 만렙 드루이드가 하나 있다. 그리고 성기사를 다 키운 뒤에 물약 만들 캐릭터가 없어서 하나 더 만들어 키워둔 것이 사제다. , 얼라이언스 힐러 3종 세트를 모두 보유하고 있다.
딱히 힐러가 성격에 맞아서 다 키운건 아닌데, 사제로 플레이를 하다가 누가 '본캐(본래 캐릭터)는 어느 클래스에요?' '성기사인데요' 라고 하면 대부분 허걱한다. '아니, 그 답답한 힐러를 왜 또 키우셨어요? 보통 성기사 하시던 분들은 도적이나 법사 하면서 스트레스 푸시던데
..'

대부분의 사람들이, 힐러는 <힘들고/신경쓰는 것 많고/스트레스 쌓이고/재미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닥탱>만 하는 전사도 답답하긴 매한가지지만, 최소한 전사는 앞에 나서서 이끄는 맛이라도 있다. 그러나 힐러는 다르다. <모셔갈 땐 귀족, 모시고 나면 종년>이 되는 것이 힐러라는 거다.

적의 공격력은 높고, 아의 방어력은 낮기 때문에, 그 방어력의 모자람을 회복력 - 즉 치유로 메꾸면서 전력 편차를 줄여나가야 하는 레이드 전투에서 힐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진영별 8개의 클래스 중에 퓨어 클래스에 속하는 사제뿐 아니라 하이브리드 클래스에 속하는 성기사(호드는 주술사)와 드루이드까지도 '닥힐'을 강요받는다는 것은 위와 같은 레이드 전투의 기본 공식 때문이다. 아군의 방패는 '하나', 즉 그 순간의 '탱커' 뿐이다. 적의 공격은 그 '방패'의 방어력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 그러니 우리는 그 단 하나 뿐인 방패를 최선을 다해서 살려야 한다. 그러므로, 치유 기술을 가진 자, 모두 닥힐에 전적으로 복무하기를 강요당하는 것이다.

힐러의 스트레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레이드 소모 물품을 모으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사냥을 해서 돈과 물품을 마련해야 한다. 레이드에서 '데미지 딜러'의 역할을 하는 클래스는 개인 사냥도 쉽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힐러는? 그들은 대부분 '죽지 않을 뿐' '죽이지도 못한다' 사냥은 느리다. 지루하다. 그런데 힐러의 필수품 일급 마나 물약은 무척이나 비싸다. 마나는 떨어지고, 아군의 피가 바닥을 보이면 돈 생각을 할 겨를은 없다. 도적에게 살쾡이는 '선택'일 수 있다. 힐러에게 '일급 마나 물약'은 선택이 아니다. 그걸 먹으면 한 명을 살릴 수 있다. 그걸 먹지 않으면 한 명이 죽는다
.

이러니 와우 커뮤니티에서 힐러들의 불만을 둘러싼 논란 역시 아주 뜨겁다. 안그래도 힘든 힐러 서럽게 만들지 마라 / 서러우면 관둬라/ 힐러 없이 몹 하나도 못잡는 것들이/ 그럼 힐만 하면 몹 잡히냐? 다 자기 역할이 있는 거지/ 누가 뭐래? 서럽게 하지 말라는 거지/ 아쭈 까부냐? 이 개념없는 사제야/ 너 서버랑 캐릭명 대. 힐러들이 다 차단 걸면 인던 갈 수 있나 두고보자/님들아 그만들 싸우셈 근데 일마값이 너무 비싸염 (...)


나는 이 모든 논란들이, 아주 근본적인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힐러가 아닌 자들도, 힐러인 자들도 마찬가지다. 양자 모두가 힐러를 '봉사하는 자' 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간호사'를 백의의 천사로 착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보살펴주고, 치유해주고, 살려주는 사람은 뭔가 희생하거나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모두 착각이다.

간호사의 시조처럼 여겨지는 나이팅게일이 '위인전'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그녀가 신음하는 병사들을 보고 눈물 흘리면서 그 상처에 입맞추는 상냥한 마음씨의 천사였기 때문이 아니다. 그녀는 군대 내에서 전혀 위상이 없었던 '간호병'의 역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탁월한 전술가였다
.
어렸을 때 '나는 자라서 백의의 천사가 될 거에요' 라는 소망을 품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희망은 착각의 씨앗에서 자라나지만, 의외로 큰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잊으면 안된다. 그 나무가 자라났을 때, 현실에 뿌리를 드리우게 됐을때, 그 역할을 잘 해나가기 위해서는 어릴 적의 분홍빛 꿈만으로는 부족하다
.

비록 게임이지만 와우에서 힐러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저는 누군가를 지켜주는 수호천사가 되고 싶었어요'라는 소망에서 한 걸음도 더 전진할 생각이 없다면, 그래서 보살펴주는 희생자 천사 역할만을 하고 싶다면, 나는 힐러로서 레이드는 뛰지 말 것을 권하고 싶다. 레이드는, 비록 작은 규모지만 전쟁 게임이다. 전쟁에 필요한 것은 소녀가 아니다. 한 사람의 어엿한 병사다. 위에 나열된, 힐러에게 필수적으로 따라오는 스트레스를 견딜 신경이 되지 못한다면, 레이드라는 컨텐츠는 맞지 않는다.

힐러는 천사여도 좋다. 하지만 그건 희생자로서의 천사가 아니다. '운명결정자'로서의 천사다. 북구 신화의 세 여신에 비유하는 것이 좋겠다. 한 여신은 운명의 실을 풀어내고, 한 명은 잣고, 한 명은 끊는다. 탄생과, 삶과, 죽음의 주관자들이다.

레이드 전투를 플러스와 마이너스에 의한 숫자 게임이라고 생각해보자. 몹의 체력이 십만이고, 우리 방패의 체력은 일만이다. 숫자 게임은 단순하다. 우리의 일만을 '유지'하는 총시간 동안 적의 십만을 깎으면 이긴다. 적의 십만을 깎기전에 우리의 일만이 0점 이하로 떨어지면 진다. 딜러는 이 중 마이너스의 기능을 한다. 적의 십만을 깎는 역할이다. 탱커는 스스로 아군측 '플러스'의 주체가 되지만, 그가 하는 역할은 플러스의 기능이 아니다. 그는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중간에서 균형자의 역할을 한다. 플러스를 담당하는 것이 힐러다. 힐러는 전투라는 극한 상황에서 양수의 영역, 삶의 영역을 주관한다
.

그런데, 삶의 동전 뒷면은 죽음이다. 힐러가 삶을 주관한다는 것은 곧 죽음의 주관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나는 힐러를 '살리는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살리는 역할이 주다. 하지만 진정한 위기가 왔을 때, 이 여신은 변할 줄 알아야 한다. 그때 힐러는 죽음의 주관자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운명의 결정자가 된다.


내가 본 정말 뛰어난 힐러 몇명은, 이 판단이 가장 빠르고 냉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조급하게 힐하지 않는다. 누군가 다쳤다고, 어디선가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울며 불며 힐하지 않는다. 실수로 눕혔다고 눈 앞이 아득해져서 내탓이오를 반복하지 않는다. 자기방어적인 소녀의 눈물 대신, 그들은 냉정하게 자신의 플러스 기능을 어디에 투척하는 것이 공대 전체를 위해서 가장 현명한가를 순간적으로 판단하고 실행한다.

부득이하게 몹이 애드가 되었다. 혹은, 부득이하게 메인탱커가 돌연사했다. 뛰어난 힐러는 이때 바로 다음 어그로를 먹게 되는 탱커를 가장 빨리 알아차리고 그를 살린다. 뛰어난 힐러는 동시에 죽어가는 네 명의 파티원이 있다면, 그리고 현재 남은 몹의 HP 17퍼센트라면, 자신이 3초 안에 치유할 수있는 최대의 총량과, 그로 인해 자신에게 돌아올 힐링 어그로를 계측하고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한다. 때로는 한 사람을 포기할 수도 있다. 때로는 모두를 포기하고 한 명만 살릴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든, 힐러의 판단은 파티의 생사를 가른다. 공격대급의 전투에서는 이것을 '보통 수준의 힐러'로서는 체감하기 힘들다. 보통 수준의 힐러에게는 오직 극악의 오버힐로 마나를 텅텅 비우는 것만이 힐러로서 성실하게 복무했다는 자기 위안을 주는 정도다. 눈이 트이고, 전황을 볼 수 있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낭비하는 힐이 사라진다.

내가 아는 한 사제가 있다. (초창기 공대 유일의 드워프 사제였다) 어느 날 이 사제와 나, 그리고 두 무분 전사(...) 이렇게 넷이 남작 코스를 돌았다. 서버 점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조급한 상황인데도 서로 능력을 잘 아는 편이기에 시시껄렁한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돌던 중에, 애드가 났다. 탱커 둘, 힐러 둘. 몹은 많아서, 힐링 어그로가 튀기 딱 좋은 상황. 재미있게도, 사제와 나 둘 다 애드가 나자마자 모든 치유를 일단 중지했다. 그리고 안전한 위치로 물러나서는 두 탱커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탱커 둘은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면서 열심히 몹을 때려잡았다. 그들의 피가 거의 바닥이 될때쯤, 사제와 나는 그야말로 '깨작깨작' 힐만 했다. 죽지만 않을 정도로. 그렇게 어그로를 조절하면서 치유를 해도 어느 순간엔가는 사제에게로 몹이 갔다. 방금 전에 소실을 쓴 것을 눈으로 확인한 상황일 때만 나는 그 몹을 내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면 잠시 후에는 전사가 와서 그 몹을 받아갔다. 이 모든 과정에 단 한 마디의 대화도 필요 없었다. 애드된 모든 몹을 정리한 뒤에야 비로소 전사 둘이 후 - 살았다 -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사제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담담한 투였다.

사제: 힐러 하면서

사제: 는 거라고는
사제: 배짱밖에 없네.


나는 사실 힐러 역할을 은근히 즐기기는 하지만, 단순한 힐키 난사만으로 끝날 수 있는 전투는 솔직히 졸립다. 그때의 힐러는 마치 게으른 잠꾸러기 천사같다. 파티원의 HP바가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거기에 무의식적으로 치유스킬키를 누르기를 반복한다. 탱커들의 장비가 좋아지고 난 뒤 용기대장전 같은 경우가 특히 그렇다. 졸려 죽겠다 ㅠㅠ

그러나, 비록 드문 경우지만 뜻밖의 위기 상황이 오면 갑자기 잠이 깬다. 그때가 최고다. 여기저기 사상자가 발생하고, 탱커는 소수만 남고, 몹들은 사방으로 튄다. 누구를 살릴 것인가, 누구를 죽일 것인가? 저 전사는 치유를 받아도 버티는 힘이 약하다. 저 전사는 조금만 백업해주면 35초쯤은 더 버틸 수 있을 거다. 두 명의 법사가 남았다. 저 법사는 마나가 바닥이다. 이 법사는 마나가 반쯤 남았다. 한 번쯤 딜을 왕창할 여력은 있어 보인다. 살릴 자와 죽일 자가 결정되었다. 집행한다. 내가 가진 바, 온갖 위기 대처 기술과 물품을 소모해서, 최후의 마나까지 다 짜내서 살린다. 실패하면, ', 아까 이렇게 판단했어야 하는 건데' 라고 혀를 찬다. 다음에 같은 경우가 생긴다면 이번의 실패가 참고가 될 것이다. 성공하면, 기분이 좋다. 누가 나의 이 칼같은 판단력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나혼자 기쁘고 즐거우면 되는 거다.

여기 어디에 희생자가 있단 말인가? 여기 어디에 남을 위해 온갖 순정 다 바치고 몸버리고 (?) 일마 버린 (?) 천사가 있단 말인가?
있는 건 게이머 뿐이다.

물론, 이렇게 냉정해지기는 쉽지 않다. 힐러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 왜냐하면 레이드의 세 가지 영역 탱킹/힐링/딜링 중에 가장 '실수하기 쉽고' '실수했을 때의 결과가 참담한' 것이 힐링이기 때문이다.
탱커가 방어구가르기를 1초 늦게 했다면, 1초 후에 하면 된다. 딜러가 공격을 1초 늦게 했다면 1초 후에 하면 된다. 하지만
힐러가 치유를 1초 늦게 하면, 그 사람은 죽는다.

힐러는 사람이다. 사람이기에, 실수에 놀란다. 실수로 누군가를 다치게만 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게임인데도, 그들은 파티원을 눕히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스트레스는 다양한 형태로 분출된다. 미안해하고, 고개 숙이고, 사과하는 사람도 있다. 이 스트레스에 굴복하고 싶지 않아서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왜 물약 안 빨았느냐고 반발하는 사람도 있다. 그건 모두, 운명의 주관자여야 하는 힐러를 플레이하는 것이 정작 운명에 대해 냉정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공대장으로 지내면서, 나는 힐러들이 이런 롤플레이와 실제의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무너지고, 폭발하는 것을 종종 보았다. 그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계속 주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 스트레스에 지지 않기 위해서, 이것이 게임이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궁극적으로는 아군을 살리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소녀의 마음이 아니라, 사신의 마음으로 치유하라고, 운명의 결정자가 되라고 말하고 싶다.

여담이지만, 우리 공격대에서 내가 힐러로 배치된 파티는 일명 '죽음의 조'로 불린다. 공대장 시절, 나의 레이드 중 행동 우선순위는 1번 몹 루팅 (화심 전체, 검둥 일부 코스에서는 일반몹 루팅을 계속해야 한다) 2번 운영진 채널에서 지속적인 전략 조율, 3번 메인탱커와 핫라인을 통해서 이후 레이드 일정 조정, 4. 공대 채널 잡담, 5번 손남으면 힐 (...) 이었다. (랄라)
'
목숨이 간당간당'해졌는데 파티창으로 세번 울면서 제발 힐좀 이라고 외쳤더니 그제서야 작은 힐 한 번 주던 공대장 (...) 이라거나, 아예 대놓고 '울파 힐러 없으니 (나 있는데) 다른 파 사제님들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라는 소리가 늘 나왔다
(...)

, 질쏘냐. 성기사의 필살기 무적은 에본로크 앞 고블린 폭탄병들 사이를 누비며 '루팅'할 때만 쓰고, 새로 공대에 들어온 신규자는 반드시 내 파티로 끌어들여서 신고식을 단단히 치르게 해주고 (?), <우리 파티는 자생 훈련 학교니까 열심히 사세요>라고 말하기를 서슴지 않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나는 힐러가 아니라 '루터'라고 대놓고 말하며 버티고 있다 ~_~ 배째.


나는 묻고 싶다. 힐러가 아닌 사람들에게. 당신들은 어떤 힐러와 함께 게임하고 싶습니까? 눈물이 많고, 늘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 스트레스로 인해 언젠가 '힐러 못하겠어요'라면서 새로 도적이나 법사를 키우는 그런 힐러와 '게임'을 할 수 있습니까? 아니라면, 그들의 냉정함을 용인해주십시오. 그들이 운명의 결정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당신들의 위에 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게임 속의 생과 사를 게임의 일부로 즐길 수 있게 될 때, 당신들의 게임 속에서도 승리의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라고.

그래서,
이제는 검은 날개 둥지의 첫 네임드이자
,
바로 이런 '냉정한 힐러' '좋은 힐러'라는 가르침을 준 그놈
.
'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 너희 모두 끌고 가겠다' 라고 외치는 폭군 서슬송곳니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차례다.

 

27.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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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급 레이드 인던을 두루 경험해본 사람들은 거의 입을 모아 이렇게 각 던전을 평한다. 화산심장부는 연습용, 검은날개둥지는 조직력 시험용, 안퀴라스 사원은 개인기 시험용, 그리고 낙스라마스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것에 더해 공격대 운영력까지를 시험하는 던전이라고.

화산심장부의 네임드들도 물론 강하다. 그러나 그 공략의 키워드는 사실 굉장히 단순한 방법으로 풀 수 있다. 적당한 화염저항력을 갖추고 탱킹과 힐링과 딜링의 기본 역할을 이해만 한다면, 이른바 원맨 공격대팀이라도 얼마든지 화산심장부를 클리어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검은날개둥지부터는 원맨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검은 날개 둥지의 8마리 네임드 몹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의 조직적 공략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요구는 종종 그 네임드들의 이름으로 읊어지는 시가 되곤 한다.

검은날개 둥지의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방 안 가득 용의 알들이 늘어서있다. 좌우에는 제단이 있고, 제단 위에는 지배의 수정구라는 구슬이 보이고, 그곳을 지키는 감시자 오크 몇 마리가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처음 상대해야할 네임드인 '폭군 서슬송곳니' 라는 용족이 이 알로 가득한 방을 오락가락한다. 사전지식이 없다면 공격대는 바로 이 폭군 서슬송곳니를 공격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달려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전멸로 가는 직행코스다. 송곳니를 공략하는 과정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우선, 1단계 지배의 수정구를 지키는 오크족 세마리를 잡아죽인다. 그리고 공대원 중에 한 명이 지배의 수정구를 작동시킨다. 이 구슬을 작동시킨 자는 일시적으로 폭군 서슬송곳니를 정신지배할 수 있다
.

송곳니가 지배되면서 바로 두번째 단계가 시작된다. 부화장에 사고가 난 것을 눈치 챈 오크정예병과 용족들이 송곳니방의 사방 문을 통해서 그야말로 '개떼'처럼 쏟아져나온다. 1단계에서 지배의 수정구를 작동시킨 플레이어는 송곳니를 조종해서 방안에 가득찬 알을 하나씩 부숴나가야 한다. (알을 부수는 것은 일반 공격으로는 안되고 오직 송곳니 조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근 오십개의 알들을 제거해나가는 동안 전 공대원은 거의 비슷한 수 (...)의 오크+용족 공격대와 상대해야 한다. 걔들은 장비도 더 좋고 정예몹들이다! 사실 송곳니전의 하이라이트는 거의 이 2단계라고 봐야 한다. 여기서 무수한 희생자가 발생한다. 오크+용족 공대는 숫자가 줄어드는 만큼 늘 보충된다. 하지만 우리편은 죽으면 다시 못 돌아온다. 마치 무협지의 한 장면처럼, 송곳니 방의 철창문은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닫히기 때문에 무덤에서부터 뛰어온다고 해도 다시 전투에 합류할 수가 없다. 한 명이 죽으면, 그만큼 남은 공대원이 받게 되는 '다굴'의 압박은 심해진다
.

천신만고끝에 송곳니 조종자가 방안의 알들을 모두 제거하면, 지배의 수정구에서 마력이 빠져나가면서 오크+용족 공대는 우르르 방 밖으로 달아난다. 그리고, 이때 비로소 폭군 서슬송곳니와의 전투가 시작된다. 송곳니와의 단독전투는 위험하긴 하지만 사실 단순한 구조다. 두 명의 탱커가 번갈아 어그로를 주고받고, 다른 클래스는 최대한 피해를 줄이면서 공격하고, 치유하면 된다. 사실 3단계가 어려운건 2단계에서 희생이 너무 클 경우 남은 전력이 적을 때 뿐이지, 3단계까지 적은 희생자로 통과한다면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재미있는 것은 제 2단계 때, 정신지배된 폭군 서슬 송곳니는 '아군'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송곳니 지배자의 조작에 따라 주변의 오크+용족 공격대에 송곳니가 두들겨 맞아 죽는 일도 생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공략은 실패하고 만다. 폭군 송곳니는 2단계에서 죽게 될 경우,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 너희 모두 끌고 가겠다!" 라는 대표 대사를 읊으며 그 방안의 오크, 용족, 그리고 플레이어의 공격대 전원을 '일격'에 죽여버린다. 참으로, 궁극의 물귀신 필살기라 아니할 수 없다.

때문에 송곳니 공략은 반드시 이렇게 진행되어야 한다. 두명 정도로 이루어지는 수정구 조작자가 송곳니를 지배하여 방안의 알들을 모두 깨는 동안 공대원들은 오크+용족을 따돌리며 버티고, 알이 모두 깨져 몹 공대가 물러가면 그때 비로소 송곳니를 처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쉽게 설명될 수 있는 폭군 서슬 송곳니. 그러나 우리는 검은날개 둥지에 진입하고나서 정말 오랜 기간 폭군 서슬송곳니 앞에서 머뭇거렸다. 왜 그리 눕지 않는지. 다른 공격대는 진입하고 첫 도전날에 잡기도 했다는 이 녀석을, 우리는 거의 한달 넘게 끌었던 것 같다
.

물론, 그 시기에 화심을 마무리한 후의 여파로 많은 인원 교체가 있었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은 아직 화심 장비도 못갖추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물갈이의 여파는 어느 시기에나 모든 공격대가 안고 가는 문제다. 라그나로스에서 왜 그리 시간을 끌었을까, 의문을 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검은날개 둥지의 첫관문에서부터 좌절에 부딪쳐야 했다
.

지금에 와서, 나는 조금쯤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우리 공격대는, 그때 아직 절제를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화산심장부에서는 절제는 없어도 큰 지장이 없는 덕목이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극도의 힐과 극도의 데미지딜링을 해야 하는 라그나로스를 '' 넘은 상태였고, 한 번 잡은 후에도 당일 출석율에 따라 여전히 라그에서 주저앉는 날이 심심치 않게 있었다. 라그를 잡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오버파워'에 익숙해져야 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탱킹,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데미지 딜을 해야 하는 라그나로스
.

하지만, 송곳니의 키워드는 오버가 아니었다. 우리는 해법이 극단적인 두 개의 네임드를 동시에 공략하는 것이나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걸 몰랐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2단계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고, 다시 이글거리는 협곡의 무덤에서부터 뛰어와 방안을 가득 채운 수십개의 알들 앞에 모여 '다시 갈게욧'하는 메인탱커의 말을 들어야 했다
.

수십마리 공대급 몹에 둘러싸여 맞기 시작하면 불과 1,2초 안에 이런 모습이 되어버리곤 했다
.
정말로 징글징글하다.


지금까지도 같이 공대 활동을 하는 한 사제는 이런 말을 했다.
"
처음 송곳니 들이댈 때는, 정말로 이런 놈을 어떻게 잡나, 우린 못잡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정말로, 그때는 그랬다. 도대체 이미 잡았다는 공격대는 어떻게 잡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때문에, 유혹의 목소리는 참으로 달콤하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거듭되는 전멸에 공대원들의 사기가 뚝 떨어졌을 때, 한 사람이 말했다.

"저, 송곳니 버그로 잡는 방법 있는데......"

 

, 게임의 신이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28. 가지 않은 길

전편의 마지막 장면:
"
송곳니 버그로 잡는 방법 있는데
..."
거듭되는 전멸에 지친 공대원들의 눈은 빛나고.... 과연 그들은 이 금단의 열매가 내뿜는 달콤한 향기를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40인의 바보들 앞에 다가온 거부할 수 없는 유혹! 과연, 결과는? 기대하시라, 개봉 박두두두두두두.... ( -_)



송곳니를 버그로 잡는 방법을, 나는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저 말이 나오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뒷말이 나오는 것을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
안됩니다."


반복되는 전멸로 지쳐있던 공대원들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쉬웠을까? 아마 이것이, 거의 처음으로 '물 위에' 공대장으로서 단호한 태도를 드러낸 때였을 거라고 기억한다. 그 전에는 나는 앞서 말한 대로 '농땡이' 공대장이었으니까.

와우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성기사에게는 '중재'라는 스킬이 있다. 이건 어떤 스킬인고 하니, 말 그대로 전쟁 상태인 적과 아군 사이를 '중재'하는 스킬이다. 성기사는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바쳐 양자를 일정 시간 화해시킨다. 그래서, 이 스킬을 쓰면 성기사는 무조건 '죽는다.' 대신, 중재를 받은 아군은 일정시간 동안 적에게 '공격'받지 않는 대상이 된다. 그외에 남은 다른 아군이 없다면 적은 물러난다. 이건 주로 전멸 위기일 때 사용하는 스킬로, 얼라이언스에서는 이 방법으로 성기사가 다른 부활 가능 클래스에게 중재를 걸고, 모두 전멸한 뒤 중재를 받은 플레이어가 몹이 물러난 다음에 아군을 부활시키는 방법으로 전열을 재정비한다. 중재버그란 바로 이 스킬의 특성을 사용하여, 송곳니 공략 2단계시 잠시동안 '아군'으로 분류되는 송곳니에게 중재를 사용하고, 몬스터 공격대가 더이상 전투 대상이 없다고 인식하여 모두 퇴장한 뒤에 송곳니만을 상대로 전투하여 승리를 취하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다. 실제로 써본 적은 없어서 자세한 방법은 모른다.


사실 유혹은 강렬했다. 검은날개 둥지에서 네임드 하나를 '잡는다'는 것의 의미는 크다. 그건 단적으로 말해 공격대 내에 상위 직업 셋템 3피스 보유자가 생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위셋템의 나머지 두 피스는 라그나로스와 오닉시아가 준다) 아주 쉬운 방법으로 우리는 '보물'을 획득할 수 있다. 그 유혹에 설령 넘어간다고 해도 그게 그리 큰 죄일까? 더군다나, 이것은 위치버그 같은 걸 이용한 방법도 아니다. 말 그대로 얼라이언스의 한 직업군에게 특화된 스킬로 공략의 복잡한 단계 하나를 줄여버리는 것 뿐이다.

그런데도 내 본능은, 그 길을 선택해서는 안된다고 빨간 신호등을 격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왜였을까? 그건, 우리가 검은 날개 둥지의 첫 관문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내겐 그 방법이 '버그'인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게 '쉬운길'인지 '어려운길'인지가 중요했다. 그때 우리는 '우리 공격대 수준에서는 송곳니를 '정석'대로 잡는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며, 자신감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만약 그때, 그 방법을 써서 송곳니를 잡는다면, 기쁘기는 할지 몰라도 여전히 그 자신감 부족은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다른 어려움에 부딪칠때마다 원죄처럼 솟구쳐올랐겠지. 우린 '송곳니'도 꼼수로 잡은 공대니까. 우리 공대의 수준은 이 정도니까. 이 이상 앞으로는 나가기 힘드니까. 이쯤에서 타협해도 좋아, 게임에 뭘 그리 목숨을 걸어? , 이 정도까지만 하는 거야. 이렇게 현실적이고 '어른'스러운 생각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안됩니다' 라고 했다. 쉬운 길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영리한' 공격대가 될 것이다. 어려운 길을 택하는 순간 우리는 '망하거나' 아니면 '강한' 공격대가 될 것이다. 강철은 두들겨서 만드는 법이다. 나는 그때 그 '반대의사'에 내 공격대 활동 여부를 걸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다. 공대원들이, 그리고 메인탱커가 원한다면 하긴 한다. 하지만 그렇게 송곳니를 잡게 된다면, 그게 내가 이 공격대의 한 사람으로 레이드를 뛰는 마지막 날이다, 라고 혼자 속으로 결정했다. 공격대가 이후의 난관에 쉽게 약해지는 것을 걱정한 면 보다도, 어쩌면 게이머로서의 자존심 같은 것에 사로잡힌, 약간은 감정적인 단호함이었다. 게임을 오래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버그플레이, , 무적키, 이런 것들은 바로 그 게임을 '그만하게' 만드는 종말의 징조라는 것을.


우리들 대다수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나의 '안됩니다' 이후에, 내가 혼자 생각했던 저 '단호한' 결심들이 무색해질 만큼, 공대원들은 편하게 말했다.

"
하긴, 그게 버그 플레이면 곧 막힐 텐데, 그때 가서 또 고생하느니 지금 정석대로 잡아봐요."
"
그래요. 좀만 더 하면 되겠네."


.... '';;
민망했다!! (... 괜히 심각하게 말했네 - 하고 --;;)
아무튼 그래서, 우리는 40명의 바보들답게, 더 이상 '가지 않은 길'을 돌아보지 않고, 다시 전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달려갔다. '가지 않은 길'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없다.

그 길이 잘못된 길이건, 단지 '현명한' 길이건 상관없다.
쉬운 길을 택한 자에게는 거기 합당한 보상이
,
험한 길을 택한 자에게는 또 거기 합당한 보상이 주어진다
.
그 선택을 통해서, 공격대는 또 하나의 개성을 갖게 된 것이다.

 

공격대 이야기 - 29: 첫번째 길모퉁이를 돌다

2006/08/08 16:59

2차에서 생존자가 많았지만, 전사들이 너무 많은 몹을 달고 다니다가 누워서 송곳니 탱킹할 사람이 없어 전멸한 적도 있다. 거꾸로, 사제들이 전부 누워서 힐러가 부족해 전멸한 적도 있다. 중간에 죽었다가 무덤에서 뛰어온 사제들이 철창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광역 치유 기술인 치유의 기원으로 힐을 해보기도 했다. 창살 건너 저편에서 힐을 하는 모습은, 정말 처절하기 그지 없었다. (...) 사실 큰 효과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한 점의 힐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만큼 절박했다.

이 시기에, 우리는 '전멸'을 연습했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군기가 잘 잡힌 군대와 그렇지 않은 군대의 차이는 '후퇴'할 때 드러난다고 한다. 규율이 잘 잡힌 공격대와 그렇지 않은 공격대의 차이 중 하나는 전멸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전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면 경험자는 누구나 '이번 판은 텄다'는 걸 안다. 성미 급한 사람은 '포기하고 새로 가요' 라고 외치기도 한다. 그 말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물약을 마시면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일단 물약을 안 마시게 된다. 실제로 그것이 포기할 만한 상황이었는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누군가 '포기해요' 라고 말하면 그건 정말 버리는 판이 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 우리는 약속했다. 전멸은 메인탱커가 결정한다, 라고. 탱킹만 열심히 하다가 누워버리면 탱커 역할을 다음 사람에게 넘기고 그냥 사망자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는 전황을 판단하고 후퇴와 도전을 결정하는 책임자가 되는 것이다. ... 생각해보니 죽은 뒤까지도 부려먹은 악덕 공대장이었던 셈이다
. ;

최전방에서 전투를 지휘하면서 책임을 맡은 메인탱커는 공략 실패가 눈에 보일 때 아마 누구보다도 낙담할 것이다. 그리고 머리속은 복잡하겠지. 하지만 메인탱커에게 '전멸 결정권'을 주면서, 나는 이 전투의 '중심'에 선 사람이 '패배' 조차도 침착하게 '결정할' 이성을 갖고 있기를 요구한 셈이다. 그가 빨리 판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더 많은 물약을 낭비한다
.

때로는 전멸이 뻔히 예상이 되더라도, <'메인탱커의 전멸 사인'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라는 한 마디에 가진 물약 다 먹고 필살기 써가면서 버텨보기도 했다. 질게 뻔하더라도 연습을 위해서 끝까지 부딪쳐봐야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 그 판단을 존중한 것이다. 때로는 아직 초반인데도 빠른 재도전을 위해 이른 시기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 지체없이 '전멸합니다' 사인을 내기도 했다. 그러면 하던 치유를 중단하고, 무기를 벗고, 부활 가능한 자리로 이동하고, 영혼석 유무와 중재를 확인한다
.

이렇게 우리는 '질서정연한' 전멸을 연습했는데, 이게 때때로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엄청난 전멸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화산심장부와는 다른 검은날개 둥지의 비밀에 접근해갔다. 우리는 수십마리의 몹들 속에서 '혼자' 살아남는 법, '살아남는 것에 지장 없을 정도로 남을 돕는 법'을 배웠다.


화산심장부에서는 네임드와 싸울때 네임드의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다수의 졸개들을 상대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끽해야 2-3마리, 많다고 해도 6-8마리 정도로 전사들이 각자 하나씩 탱킹을 하고 차례대로 점사하는 방식으로 보통 처리를 했다. 그러나 검은 날개 둥지의 '졸개'들은 그 숫자의 규모가 다르다. 전사가 붙잡아 탱킹할 수는 없고, 점사를 해서 처리할 상대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를 처치해봤자 또 하나가 젠되어 나온다. 이 전투는 '섬멸전'이 아니다. '버티기'. 이런 상황에서 가장 '냉정'해야할 것은 힐러들이었다. 힐러들은 화산심장부에서, 어떻게든 '탱커'를 살려야 한다는 교훈만을 배우고 왔었다. 그러나 이젠 달랐다.

와우에는 힐링 어그로라는 것도 있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A,B,C라는 몹 세 마리가 있다. 전사가 이놈들 앞으로 달려가서, 그 중 A라는 몹에게 데미지를 주면서 어그로를 당겼다. (이 어그로를 100점짜리라고 치자) B C는 자신에게 전사가 준 피해는 0이지만, 자기네편을 때리고 있기 때문에 역시 전사를 어그로 1위로 인식하고 같이 팬다. (이 어그로를 30점짜리라고 치자) 그때, 뒤에서 다가온 힐러가 전사에게 70점의 치유를 했다. (이 어그로를 50점 짜리라고 치자) 그러면, A라는 몹은 힐러가 획득한 50점의 어그로보다 자신이 전사에게 느끼는 100점의 어그로가 더 강하기 때문에 전사를 여전히 팬다. 그러나 B C 몹은 자신이 전사에게 느끼는 30점의 어그로보다, 힐러에게 느끼는 50점의 어그로가 더 강하므로 힐러에게 돌아선다.


송곳니전에서는, 수십 마리의 몹이 나오기 때문에, 전사를 '치유'하는 순간 힐러를 돌아보는 ''의 수가 엄청나다. 잘못 꽂히면 바로 사망이다. 때문에, 위와 같은 단순한 공식을 예로 들어서, 철저히 30점 미만의 어그로를 유지하면서 치유를 해야만 살 수 있다. 이것이 송곳니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절제의 미덕이다.

기나긴 기간과 많은 골드를 수업료로 바치면서, 조금도 변화가 없는 2차전 생존율에 한숨을 지으면서, 우린 언제쯤 대체 이 고비를 넘길 수 있을까 고민 하던... 어느날
.

마치 어제까지 가장 단순한 수학 공식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갑자기 오늘 그 공식에 담긴 모든 비밀을 풀어내고 응용까지 가능해져버린 것처럼
.
마치 십년째 꽃을 피우지 못해서, '저건 꽃이 없는 나무인가봐'라고 생각하고 있던 고목에 어느날 아침 갑자기 꽃이 만개한 것처럼
.

그 일은 '느닷없이' 일어났다. 2차전에서 항상 '절반 이하'의 생존율을 보이던 공격대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생존자가 '너무' 많았다. 나도 놀랐고, 메인탱커도 놀랐고, 공대원들도 놀랐다. 놀라면서 방 안에 남은 알들을 세어봤다. 남은 건 5. 오크와 용족 사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남은 알갯수를 카운트하기 시작했다.

5, 4, 3, 2, 1, 마지막 알입니다!

마지막 알이 깨졌다.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오크와 용족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송곳니가 우리들 앞에 비로소 '진정한' 적으로 등장했다. 그때 우리 공격대의 생존자는 참가자 38 32명이었다. 송곳니도 놀랐겠지만 (...) '갑작스럽게' 높아진 이 생존률에 가장 놀란 건 아마 우리들 자신이었을 거다.

믿음직스러운 우리의 탱커 두 명이 송곳니의 앞뒤를 가로막았다. 절제를 배운 우리들은 급하게 힐하거나 공격하지 않고, '어그로 조절!'을 외치고, 도적이나 사냥꾼들은 사제와 드루이드에게 붕대를 감아주면서 거리를 유지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여기서 한 순간이라도 실수를 해서 이 모든 걸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다고, 다들 무척이나 조심하면서
......

송곳니의 피를 천천히 깎으면서, 다들 기가 막혀했다
.

"
아니, 생존자가 20,25, 30명 이렇게 늘어난 것도 아니고
..."
"
갑자기 다들 왜 이리 잘하시는 거에요. -
-"
"
그러게, 다들 아침 뭐 드시고 오셨어요
. ;;"

기가 막힌 듯이, 어이가 없다는듯이, 갑자기 기적의 세례라도 받은 것처럼, 우리는 송곳니를 눕혔다.

아래는 송곳니 킬 기념 스샷 중의 하나인데,
우리 공대원 중 한 사람은 특이한 취미를 갖고 있어서

네임드를 잡을 때마다 그 앞에서 꼭 이렇게
"
네 이놈" 하고 몹을 야단치는 독사진을 수집하곤 했다.
... '
네이놈' 시리즈의 송곳니판이다
.
'
뭐 잘못 먹고 오기라도 한듯이' 전날과 다르게 '갑작스러운' 전력 상승이었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사실 우리는 그 비밀을 알고 있다. 그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의외의 선물이 아니라는 걸
.
가지 않은 길을 포기하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을 때, 우리는 바보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우회로는 아주 길고 산 너머까지 굽어져 있어서, 길 끝에 뭐가 있는지 걷는 동안은 보이지 않았다. 언제 이 여행이 끝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걸은 끝에, 우리는 산모퉁이를 돌아선 것이다. 그러자 그동안 산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이 길의 끝이 갑작스레 나타나 보인게다.

그렇게 우리는 검은 날개 둥지의 첫 관문을 통과했다.
하나의 길이 끝났지만, 그게 여행의 끝은 아니었다
.
그 다음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
검은날개 둥지의 진정한 보스라고 불리는, 바로 ''였다.

 

30. 붉은용, 벨라스트라즈

그는 누구인가? ~스트라즈라는 이름의 형식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그는 붉은용의 혈통을 타고 났다. ~스트라~는 붉은용들에게 붙는 이름이다. 둘째, 스트라''로 끝나는 이름으로 보아 그의 성별은 남성이다. 예전에 오닉시아 이야기를 할 때 언급된 알렉스트라'' 같은 경우는 여성이다. 통칭 '벨라'라고 불리는 검은 날개 둥지의 두번째 네임드의 이름 옆에 붙는 바이라인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붉은용, 숫놈 정도가 되겠다.

그러나, 블리자드의 사악한 음모에 의해 그는 단순한 붉은용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피통 크고 발톱 아픈 '보통의' 네임드가 아니다. 그는 지금까지 만나왔던 모든 몹들의 기본 디자인을 뒤집은 기린아였다. 그는 '가장 많은 유저를 죽인 몬스터' 1,2위에 항상 언급되고 있다. 때로는 데피아즈단 마법사, 때로는 어둠의 사냥꾼 보쉬가진이 그와 선두를 다투지만, 다른 몬스터들이 '저렙 시절' 혹은 ' 4대 인던에 입학한 풋내기 만렙'들을 제물로 삼는 하이에나 같은 살인자인데 반해, 벨라는 급이 다르다.

무엇보다도 그는 단순히 '유저'만을 죽이는 네임드가 아니다. 그는 무수한 '공격대'를 실제로 괴멸의 길로 이끌고 간 장본인이다. 단지 인공지능 몹일 뿐인 한 던전의 중간 보스가, 살아 움직이는 실제의 게이머 조직을 '파괴'하기도 하는 것이다. 어째서?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단지 몹이 강하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공격대를 해산까지 몰고가는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훗날, 공대장으로서 나는 그 이유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벨라를 처음 만난 것이 아니다. 1레벨부터 60레벨까지 캐릭을 키우는 와중에, 이 벨라스트라즈와 여러번 조우하게 된다.
첫 만남. 레벨 40대 초반의 가시덩쿨 구릉이라는 인스턴스 던전이, 아마도 풋내기 모험가가 처음 이 붉은용과 만나는 곳이리라. 그곳에는 "벨리스트라즈" (오타 아님) 라는 이름의 '인간'이 감옥에 갇혀 있다. 모험가들은 벨리스트라즈를 구출한 뒤, 이 가시덩쿨 구릉을 장악한 가시멧돼지들의 우상을 파괴하는 그의 일을 돕게 된다. 벨리스트라즈가 우상 파괴의식을 치르는 동안 모험가들은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의식이 방해받지 않도록 막아선다. 그리고, 의식이 성공하면... 벨리스트라즈는 홀연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붉은용의 형상이 은은히 떠오르는 불타는 화로가 나타난다. 풋내기 모험가의 머리속에 벨리스트라즈의 목소리가 '울린다'

"언젠가는 죽어 흙으로 돌아갈 생명이여... 기대한 대로 과연 영웅이라 할만 하다. 네 덕분에 이 야수들이 저지르던 처참한 학살은 이제 종결되고 너같은 평범한 생명체들에 대한 내 믿음도 다시 한 번 살아났도다. 영웅에게 걸맞는 보상을 받을 지어다."

벨리스트라즈는 모험가에게 반지 하나를 선물로 주고 사라진다. 이것이, 질기디 질긴 인연의 시작이다.

이 모험가는 그후 좀 더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마침내 60레벨에 도달한다. 그리고 검은 바위 첨탑 하층에 셋템(...)을 모으러 룰루랄라 가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던전 안을 방황하는 낯선 인간을 만난다. 그 이름은 벨란. 그런데, 낯선 남자에게서 어쩐지 낯설지 않은 냄새가 난다. (...) 벨란은 모험가에게, 검은바위첨탑의 좀 더 높은 곳, '상층'으로 가는 열쇠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가 알려준 바에 따라, 모험가는 하층을 지키는 세 장군을 잡아 그들로부터 열쇠의 조각이 되는 세 개의 보석을 구하고, 최종적으로 이 인장을 완성시키기 위해 테라모어의 용 서식처로 가서 앰버스트라이프라는 용을 정신지배해 그의 브레스로 인장을 달구어 최종적으로 '승천의 인장' 이라는 반지를 만들게 된다.

풋내기 모험가가 승천의 인장을 끼고, 지금껏 열리지 않았던 육중한 문 앞에 서면, 드디어 검은 바위 첨탑의 '상층'으로 가는 문이 열린다. 치열한 전투 끝에 모험가는 거대한 투기장과 같은 곳에 도착한다. 그곳의 관람석에는 바로 빅터 네파리우스 (네파리안의 인간형)가 있다. 어리석은 모험가들을 노리개감으로 삼아 부하들을 내보내던 네파리우스는, 이 모험가가 자신의 부하들을 하나하나 물리치자 최종적으로 가장 신임하는 족장 랜드를 내보낸다.

랜드는 '기스'라는 용을 타고 나와 모험가들을 짓밟는다. 상처투성이가 된 모험가가 마지막 희망을 품으며 '승천의 인장'을 사용하는 순간, 한 거대한 용의 형상이 이 투기장 안에 출현한다. 한 때 '벨리스트라자'였고, 한때 '벨란'이었으며, 풋내기 모험가를 검은 바위 첨탑의 진정한 군주 네파리안 앞까지 인도한 붉은용 '벨라스트라즈'가 바로 그다. 벨라는 모험가를 도와 랜드를 물리친다. 그리고 투기장 위에서 이를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빅터 네파리우스와 벨라 간에 잠시 날카로운 설전이 오고가는 것을 풋내기 모험가는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랜드는 쓰러졌지만, 그들의 싸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네파리우스가 언젠가는 내가 벨라, 너를 죽일 것이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무섭도록 불길하게 들린다. 그렇게, 그 날의 만남은 끝난다.

이것이 바로 검은날개 둥지에 들어가기 전, 이 모험가가 기억하고 있는 마지막 벨라의 모습이다. 이 세계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악한 우상을 파괴하며 돌아다니는 자,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영웅을 보다 높고 위험한 도전으로 이끄는 자, 인간의 모습을 하고 만나, 용의 모습을 드러냈던 자. 검은 바위 첨탑의 군주에게 대적했던 자. 데스윙의 장난이 아니었다면 자기와 같은 붉은용의 일원이었을 네파리안의 음모를 깨기 위해 불철주야 움직이던 자, 벨라스트라즈.

풋내기 모험가는 그 뒤로, 40명의 바보들 중 하나가 되어 화산심장부의 모든 네임드들을 물리치면서 여기저기 계급장처럼 상처를 달고, 에픽 아이템도 처덕처덕 둘렀다. 그는 점점 풋내기 꼴에서 벗어났고, 이제는 제법 역전의 베테랑처럼 굴기도 한다. 검은날개 둥지 초입에서 폭군 송곳니를 만났을 때는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그 고비조차 넘겼다.

폭군 서슬송곳니의 시체 너머로 철컹 - 거대한 철문이 열렸다. 그 안에 들어갔을 때, 이 풋내기 모험가의 눈에 보인 것은.

이렇게 쓰러진 벨라스트라즈 앞 옥좌에서, 빅터 네파리우스가 제압의 마법을 쓰고 있다가 공격대를 보고 거만하게 말한다.

"
, 영웅들. 아주 끈질긴 족속들이지. 바로 이곳에서 너희 동료가 내게 도전했다가 그 댓가를 치루었다. 이제 녀석은 나를 섬기지. 일어나라.. 붉은 고룡이여, 놈들을 처치하라
!"

네파리우스는 사라지고, 쓰러졌던 벨라가 힘겹게 일어선다. 그의 체력은 100프로가 아니라 30프로 상태다. 그는 거의 죽어가고 있다. 힘겹게, 벨라는 공격대를 돌아본다. 거기 서있는 모험가들은, '막 말을 탈 수 있게 된' 40레벨대부터, 그가 계속 지켜보았던 영웅의 씨앗들이다. 그는 이 모험가들이 자신과 함께 네파리안의 음모를 깰 수 있게 되기를 바랐으리라. 그렇게 되리라고 믿었으리라. 그러나, 한 가지는 맞고, 한 가지는 틀렸다. 그 영웅의 씨앗들은 결국 네파리안에 맞서기 위해 이곳에 왔으나, 벨라, 그 자신이 바로 그 앞길을 가로막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통탄하며, 그는 말한다.


너무... 늦었어.
네파리우스의 타락이 뿌리를 내려, 난 나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어
..
부탁이다, 도망쳐라! 내가 완전히 자제력을 잃기 전에
.
내 가슴 속에 검은 불길이 끓고 있다! 내뿜어야만 해
!
!
파괴
!
죽음
!
군주의 분노를 두려워하라
!
안돼, 난 싸워야해
!
알렉스트라자여, 도와주소서
!
난 싸워야해...

마지막 남은 이성의 힘으로, 그는 한때 자신이 관심을 기울였던 모험가들에게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 위해 마법을 걸어준다. 3분간, 매초당 500의 마나를 회복시키며, 매초당 50의 기력을 회복시키며, 매초당 20의 분노를 회복시키는, 그래서 모든 캐스터와, 도적과, 전사를 그야말로 '최강'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이 마법의 이름은 적색의 정수. 그것이, 30퍼센트의 체력상태로 마침내 이성을 잃고 공격대를 향해 화염숨결을 뿜게 되는 벨라스트라즈가 먼옛날의 풋내기 모험가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만약 이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면, 오늘 그 어떤 공격대도 네파리안에게, 혹은 쑨에게 좌절하는 일 따위 없을 것이다.

40명 전원을 최강의 상태로 만들어주고,
그 자신은 30퍼센트의 체력만을 남긴 상태로

'
'와 공격대의 전투는 시작된다
.
그렇게 하고서도, 그는 강하다
.
너무나 강하다
.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
그가 상위 허리와 용아 비수와 붉은용 수호방패를 주기 때문

그를 넘어서야만 검은 날개 둥지의 나머지 코스를 정복할 진정한 자격을 획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타락한 그를 죽이는 것이, 과거에 만난 벨리스트라즈, 벨란이라는 이름의 붉은용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벨라스트라즈와 싸운다.

 

31. 가야할 때, 누워야할 곳, 사라져야할 순간

송곳니가 쓰러지고, 그 방의 철창이 열렸을 때, 공대원들은 이제야 검은날개 둥지의 참맛을 보게 되었구나 생각하며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티없는 기쁨이 아니었다. 우리 앞에는 벨라가 있고, 우리는 그 벨라가 앞선 공대들을 얼마나 오랫동안 묶어두었는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겸허한 '후발' 공대였고, 공대의 많은 사람들은 레이드 경험이 처음이라는 것, 직장인이거나 주부이기 때문에 젊은애들(...) 처럼 컨트롤이나 센스가 빠르지 않다는 것 등등, 자신들의 약점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겸허한 자세로 벨라 앞에 섰던 것이다.

'
남들은 쉽게 잡는다는 송곳니에서 한달 넘게 걸렸으니 벨라는 두달 이상 걸리겠지. 두달 걸려도 느린 건 아냐' 라고, 혹시라도 성급하게 생각할 사람들을 다독이는 목소리도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벨라에 대해 들은 온갖 무시무시한 전설들 앞에 공손해질 수 밖에 없었고, 두달 정도쯤은 벨라 앞에 수리비와 상급 화염보호 물약을 헌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2005
11 18일 레이드 종료 시간 직전에 폭군서슬송곳니를 눕히고, 우리는 일단 벨라 앞에 가서 이미 다른 공격대에서 벨라전을 경험해본 전사B의 브리핑을 들었다. 뭔 소린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아무튼 무섭다는 것은 분명했다. 한 가지 똑똑히 알아들은 것은 '아드레날린'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데 죽을 때 폭발 데미지가 있어서 주변에 피해를 주니까 걸린 사람은 지정된 구석으로 가서 끽소리 말고 조용히 죽으라는 것 정도였다. (...) 레이드 시간도 거의 종료된 시점이었기 때문에 자세한 브리핑은 더 듣지 않고, 벨라님께 상견례나 하고 마치자 하고, 들이댔다
.

예의 멋진 대사가 흘러나왔다. 다들 워, 카리스마! >< 하면서 좋아했다. 벨라님이 적색의 정수 버프를 걸어줬다. 아싸! 마나 차는 거 봐라. 무지 빨리 찬.........
?

...
5초쯤 걸린 것 같다. 벨라님께서 첫인사 드리러 온 공격대를 전멸시키는데 걸린 시간이
. (...)

우리는 모두 웃었고, "그래, 그래. 이것이 바로 둥지의 진짜 보스라는 벨라님의 맛인 거야. >< 익숙해지자구. 우린 앞으로 이런 삽질 많이 해야 해~" 하고 격려한 뒤, 그날 레이드를 마쳤다.

길어서 접습니다

도로 접기
다음 한주, 화산심장부를 뛰는 동안 벨라님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나 한 존재에 대해 연구하고, 애태우고, 그를 위한 선물(상급 화보와 화저세트)을 준비하기 위해 아라시 고원에서 원소 앵벌을 했던 것들을 돌이켜보면, 거의 벨라와 사랑에 빠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 무서운 붉은용은 쉽게 공략(..)되지 않는다. 극한의 뎀딜, 극한의 힐링 외에, 벨라는 우리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가야할 때, 누워야할 곳, 사라져야할 순간을 알 것.

왜 그런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벨라전의 대표적인 특징을 이해해야 한다.
벨라전은 타임어택이다. 벨라가 공격대에 걸어준 이로운 마법인 적색의 정수는 3분짜리인데, 3, 180초 안에 벨라를 눕히지 못하면 이기기 어렵다. 그 이유는 벨라의 탁월한 화염 공격력 탓도 있지만, 이 용이 일정 주기마다 공격대 한 명에게 거는 '불타는 아드레날린'이라는 기술 탓이다. 짧게 줄여 '아드'라고 표현하는 이 기술은 18초간 지속되며, 18초 동안 아드에 걸린 사람은 매초마다 5퍼센트씩 생명이 줄어들고, 마지막 순간에는 주변 일대에 폭발 데미지를 주면서 사망하게 된다. 성기사의 무적도 이때는 소용이 없다
.
벨라는 이 아드레날린 기술을 45초마다 '마나가 없는 직업군'중 어그로 최상위자에게 한 번, 15초마다 '마나가 있는 직업군'중 어그로와 상관없이 랜덤하게 한 번 사용한다
.

그렇다면 벨라전 최적 180초 안에 '피할 수 없는 사망자'는 총 몇명인가? 4명의 '마나 없는 직업군'이 죽어야 하고, 12명의 '마나 직업군'이 죽어야 한다. 이것이 정확히 180초 안에 벨라를 눕힐 경우, 그리고 아드의 지속시간인 18초간 아드 대상자가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막 순간에 죽었을 때 낼 수 있는 '최소의' 희생자다. 만약 아드 대상자가 18초 전에 죽게 되면 그때부터 다시 아드 기술 주기 카운트가 새로 시작되기 때문에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 40명에서 16명을 빼면 24명이 남는다. 싸움이 길어지거나 벨라의 일반 화염 브레스, 회전 베기 등에 추가 사망자가 날 경우에는 더 적어진다. 갈수록 줄어드는 아군의 전력으로, 만약 3분을 넘겨 적색의 정수 버프까지 없어진 상황이라면 더군다나 승산은 없어진다. 게다가 벨라의 '머리'가 만약 공격대를 향하여 화염숨결을 뿜어내게 되면 거의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버려진 아이스콘처럼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따라서, 벨라의 머리는 반드시!! 딜러와 힐러들이 위치한 쪽이 아닌 다른 곳에 '단단히' 고정되어야 한다
.
'
머리'를 고정한다는 것은 곧 어그로를 고정한다는 것이고, 이 임무를 전사들이 맡는다
.
'3
'안에 죽여야 한다는 것은 곧 극도의 뎀딜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임무를 도적과 원거리 딜러들이 맡는다
.
'
불타는 아드레날린'이외의 이유로 사망자가 발생해서는 안된다. 벨라의 광역 화염 데미지는 굉장히 강하다. 이것으로부터 공대원을 보호하는 역할을 힐러가 맡는다.

우선, 전사는 벨라 앞에서 죽을 순서를 정해야 한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벨라는 45초마다 어그로 최상위권자인 마나 없는 직업군 (여기에 해당하는 것이 전사와 도적이다) 에게 아드레날린을 건다. 전사와 도적의 역할과 능력은 다르다. 어그로 최상위는 반드시 전사가 잡아야 한다. 그리고, 벨라의 어그로를 잡은 전사는 '반드시' 죽는다. 그렇게 죽어야할 전사가 4명이 필요하다. (180초의 배틀타임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그냥 4명이 한꺼번에 탱킹을 하면 되는 문제도 아니다. 아드레날린으로 사망할 경우 주변에 폭발 데미지를 주므로, 탱킹하는 장소에는 오직 그 '죽을' 전사만 서 있어야 한다. 그 전사가 죽으면, 바로 다음에 죽기로 되어 있는 전사가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한다. 이 중간 과정에서 잠깐이라도 어그로가 새면 (도적이나 사냥꾼 등에게) 벨라의 머리가 돌아가고 그러면 피해가 막심하다. 그래서 우선 '전사'들은 죽을 순서를 정해야만 한다
.

전사외의 클래스 - 원거리 딜러, 힐러들은 '누워야할 곳' 를 알아야 한다.

아드레날린에 걸릴 경우 반드시 공대원이 없는 곳에 가서 죽어야만 하니까. 게다가 그냥 맥없이 죽는 것도 아니다. 아드레날린에 걸린 동안은 모든 기술이 '즉시시전' 상태가 된다. , 캐스팅에 3초 걸리던 마법이 쓰면 바로 나가게 되는 거다. (말 그대로 아드레날린 상태! 미친 듯이 퍼붓고 죽는 것이다) 그래서, 아드레날린에 걸린 원거리 딜러, 힐러들은 일단 무덤으로 보아둔 곳으로 뛰어가서 미친듯이 힐을 하거나 벨라를 향해 마법을 쏘고는 마지막 순간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구석에서 홀로 죽어간다. 뒷일은 살아남은 동료들에게 부탁하면서! (.. 그리고는 누워서 공대창으로 벨라의 남은 체력을 카운트 해주면서 응원을 한다
(...))

도적들은 사라져야할 순간을 알아야 한다.

벨라의 어그로를 전사로부터 빼앗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도적'들은 제일 첫 전사가 죽고 두번째 전사로 탱커가 교체되는 순간,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소멸'은 도적들의 어그로 조절 스킬이다. 그림자처럼 사라져서 지금까지 데미지 딜링을 통해 누적된 어그로를 날리고 자신의 존재를 적의 시야로부터 일시 지우는 것이다
.

, 말로 하긴 쉽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공대원들이 동시에 강력한 화염데미지를 3초 마다 맞으면서, 이따금 회전베기와 엄청 센 브레스까지도 맞아가면서, 1초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극한의 뎀딜을 퍼부어가면서 그 와중에 자신에게 아드레날린이 걸린 건지 확인해가면서 (이거 놓치는 사람들 많다...) 누구 하나 실수 없이, 누구 하나 게으름 피우지 않고 총력전을 벌여야 하는 180. 180초는 결코 쉽지 않다
.

초유의 관심사는 일단 전사의 '순서'였다. 여기서, 공대 메인탱커가 당시 쓴 전술지침 중 탱커 순서를 결정한 부분을 발췌한다. (감상 포인트는 볼드체 처리된 부분. 다른 이름들은 X자로 가렸지만 그 부분은 원문 그대로 인용했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저분 캐릭명은 절대 저것이 아니다. (...))

(전략) ... 1번 탱커가 사망하면 순간적으로 밸라스트라즈가 다음으로 높은 어그로를 가진 전사를 바라보게 됩니다. 이 때 밸라스트라즈의 고개가 좌측으로 돌아가게 되므로 밸라스트라즈의 타겟이 된 전사님은 재빠르게 전 밸라 탱커님이 사망한 위치로 이동해 메인 탱커의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때 전사님들의 재빠른 행동만큼이나 힐러들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힐러들 역시 다음 탱커가 누가 될 지 확실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간혹 어그로가튄 탱커분에게 대한 힐이 부족해 탱커가 힘없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밸라스트라즈를 타겟으로 지정한 채 F키를 이용해 힐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공대원님 중 한분이 밸라스트라즈의 타겟이 누구인지 매크로를 이용해 공대 전체에 알려주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탱커 교체 작업을 원활하게하기 위해 메인 탱커를 담당할 순서를 미리 설정했습니다.

탱킹 순서는 1 XXXXX-->2 XXXXXX-->3 XX-->4 못난이-->5 XX-->6 XXX-->7 XXXX

현재 XXXXX님에서 XXXXXXX님 까지는 교체작업이 무난하지만 3파부터는 어그로가 어디로튈지는 글쓰는 저또한 판단되기 힘들어집니다. 이점은 앞으로의 벨라전 최고의 과제로 남을듯싶습니다. (후략)

죽을 순서를 정하고, 누워야할 곳을 한 번 더 돌아보고,
사라져야할 순간을 위해 도적 클래스장은 일제 소멸 명령 매크로를 준비했다
.
준비는 마쳤지만 우리는 이 싸움이 아주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다
.
다른 누구도 아닌, 검은날개 둥지의 진정한 보스라는 바로 그였기에
.
그런데.

 

공격대 이야기 - 32: 그것은, 돌연, 폭풍우처럼

게임/디지털

2006/08/15 19:52

11 28.
송곳니를 킬한 날로부터 2주 후
.
검은 날개 둥지
.
벨라스트라즈의 방

늦가을의 한낮.


"용서해라! 나도 죄값을 치를 것이다!"


벨라가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외치는 대사가, 어김없이 던전 안에 울려퍼졌다. 무한대의 마나로 퍼붓는 치유와 공격 마법이 난사되는 소리, 전사와 도적들의 칼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 어디선가 또 쓰러져가는 아드레날린 사망자의 단말마. 첫 전사가 쓰러지고, 두번째 전사가 쓰러지고, 세번째 전사가 쓰러지고, 네 번째 전사마저 쓰러지고...

180
초가 지났다. 적색의 정수 버프는 끝났다. 공대원은 반 이상 누웠다. 다섯 번째 전사는 앞선 네 명의 전사들처럼 안정적으로 벨라의 머리를 잡지 못했다. 진형이 흐트러졌다. 벨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공략이라면 벨라는 처음 디딘 자리에서 단 한 번도 발을 떼어 옮겨서는 안되는데
.

도적들이 회전베기에 난자당하고 화염숨결에 녹아내렸다. 전사가 간신히 벨라의 어그로를 획득해도 난전 중에 힐러들은 제때 그를 치유할 수가 없었다. 다섯 번째 전사, 여섯 번째 전사가 쓰러졌다. 일곱 번째 전사마저도 쓰러졌다. 벨라의 피는 2퍼센트가 남았다. 남은 사람들은 불과 10여명, 탱커도 없다. 파멸의 저주를 날린 흑마법사가 쓰러졌다. 고통을 걸고 보호막을 쓰는 사제를 향해 벨라가 다가갔다. 성기사는 천벌의 망치를 날리고, 장판 깔고 (...), 지휘의 문장을 발동시킨 후 양손무기를 들고 벨라를 때려보지만 벨라는 돌아보지도 않고 사제를 앞발질 한 번으로 쓰러뜨린다
.
벨라의 피는 1퍼센트가 남았다. 남은 사람은 불과 다섯 명
...

또 실패구나
.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그 생각뿐이다. 당연한 실패다. 담담해지려고 애쓴다. 마지막으로 남은 벨라의 피 1퍼센트는, 정말 1퍼센트가 아니다. 무수한 공대가 벨라의 피 1퍼센트에서 한달, 혹은 두 달을 보낸 것이다. 벨라의 피 1퍼센트는, 아드레날린 으로 인한 필수 사망자를 뺀 공대의 전력 반으로 상대해야 하는 1퍼센트다. 탱커가 없거나 어그로가 널을 뛰는 상태에서 맞이해야 하는 1퍼센트다.

길어서 접습니다

도로접기
벨라는 1퍼센트가 남았다. 우리는 다섯명, 아니, 또 한 명, 또 한 명이 누웠다. 이제 셋. 사제가 다시 고통을 건다. 이미 쓰러진 공대원들이 외친다.
"
조금만 더! 조금만 더
!"
"1
프로! 1프로
!"
하지만 그렇게 외치면서도 이미 공대원들은 다시 무덤부터 뛰어올 마음의 준비를 한다. 남은 사람은 셋, 여전히 벨라는 1퍼센트.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조금만 더!" 라고 외쳐도, "조금 더"를 깎기 위해서는 아직 한 두달을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응원한다. 그것이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동료들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에
.

네 번째 전사로 이미 아드레날린에 걸려 사망한 메인탱커 역시, 이런 처참하고 가능성 없는 상황에서도 전멸 사인을 내리지 않는다. 공대장인 나 역시, 전멸 사인은 내지 않았다. 사인을 내지 않아도 어차피 몇초후면 전멸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명이 더 쓰러졌다. 이제 남은 사람은 둘
.

나머지 공대원들은 모두 누운 채로 벌써 벨라를 이만큼이나 깎아내렸다는 것에 뿌듯해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난전이라 이건 제대로 된 공략이라고 볼 수 없다고 걱정하면서.. 그 거대한 몸을 유연하게 움직여 마지막 남은 희생자들을 향해 움직이는 ''의 자태를 누운 채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남은 사람은 둘.
벨라의 체력은 1퍼센트
.

마지막 남은 사제가 포기하지 않고 고통을 날렸다
.
파멸의 저주가 터졌다
.

그리고

사제를 향해 앞발을 치켜들던 벨라가
천천히 쓰러졌다.

 

믿기지 않아서,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아서, 어이가 없어서, 찰나의 침묵. 그리고 환호. 방금 온몸이 짜릿해지는 충격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 와 이게 무슨 일이냐고 외치는 사람, 만세를 외치는 사람....

이미 다른 공대에서 벨라를 잡아본 경험이 있는 공대원들이 가장 놀랐다. , 이렇게 빨리 잡을 줄은, 제대로 벨라에 들이대본건 고작 2주인데. 2주만에. 2달이 걸려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2주 만에
.

환호와 축하, '내가 날린 파멸이 터졌어!' '나 끝까지 망치 던졌어!' 하는 무용담들이 오가는 그곳은, 이미 온라인으로 연결된 모니터 앞이 아니라 고대의 용이 잠자는 침침한 던전의 한 방. 우리는 피투성이, 땀투성이로 그를 눕힌 40명의 드래곤슬레이어였다
.

그때, 내 손을 들여다보니 정말로 땀이 흥건히 배어 있었다. 벨라를 잡았다는 실감이 비로소 들었고, 겨우 심호흡을 하고 진정을 한 뒤에 타자를 쳤다
.

, 빠른 부활 해주시구요. 부활 후에 루팅 진행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공격대가 처음 벨라를 잡은 날이다. 우리는 불과 '2주만에' 벨라를 정복한 것을 기적으로 여겼다. 그야말로 돌연, 폭풍우처럼, 우리는 검은 날개 둥지의 최대 난관을 통과해버린 것이다. 공격대들이 무척 많은 우리 서버에서, 이 벨라전에서의 '기적'으로 인해 우리 공격대는 검은 날개 둥지 정복의 서열이 단번에 얼라이언스 6위로 뛰어올랐다.
그 얼마 뒤, 벨라스트라즈는 블리자드의 패치로 인해 총 체력이 1퍼센트 낮춰졌다. 벨라의 마지막 남은 1프로가 '단순한 1프로'가 아님을 체험했던 선발 공대들은 그 패치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그뒤의 공대들은 속속 벨라를 정복해나갔다. 요새 만들어지는 공격대들은 불과 3-4주면 네파리안까지도 잡아내기도한다. 경험이 쌓였고, 화산심장부 막공대가 활발해지면서 기본 장비도 좋아졌다. 공략 자체도 무척 대중화가 되었다. 심지어, 요즘은 검은 날개 둥지 막공까지 만들어져서 얼마 전에는 1주일 공략으로 크로마구스 앞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지금에 와서는, 벨라 2주차 정복은 기적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민망한 것이리라
.

먼저 그 길을 가는 사람들보다, 나중에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이 더 쉽게, 더 빠르게 가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잦은 너프로 인해 벨라가 과거의 위용을 잃고, 훨씬 쉽게 정복되는 것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그렇게 정복한 후발 공대를 '제대로 고생 못해봤다'고 폄하하는 것은 사실 어린애 같은 심보다. 패치 때문이 아니라도, 진보는 당연한 필연이다. 우리는 누구나 개척자이기도 하고, 수혜자이기도 한 것이다.


사실, 지금은 사라진 그 1프로 덕분에, 우리는 좀 더 짜릿하게 좀 더 통쾌하게 벨라라는 산을 넘을 수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1프로의 체력이 너프된 이후 벨라전을 치러보고 얼마나 허탈해했던지. 1프로의 차이는 생각보다 컸다. 4번째 탱커와 함께 눕던 벨라가 갑작스레 3번째 탱커가 아드에 걸리기도 전에 누울 만큼 허약해져버린 것이다. 산이 높아야 정복하는 쾌감이 크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건 아마 우리가 이제 사라진 1프로를 겪어보았기 때문에, 좀 더 어려운 과정을 겪어 봤기 때문에, 한 번 넘어본 산이기 때문에, 그뒤로 장비가 좋아졌기 때문에 '쉽다'고 느끼는 것 뿐일 거다. 장비 허름하고, 경험없는 상태로 만났다면 지금의 벨라 역시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게다가, 벨라스트라즈의 비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체력 1프로 너프로 인해서 좀 더 쉽게 잡힌다고, 벨라가 공격대 파괴자의 명성을 잃은 것은 아니다
.

2
주차만에 벨라를 눕히고서 공대장이었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엉망진창 난전끝에 잡긴 했지만 어쨌든 벨라는 누웠다. 대체 왜? 어렵기는 했지만 2주 만에 잡을 수 있는 이 벨라가 왜 공격대 파괴자라는 말을 들은 것일까? 이 비밀을 알게 된 것은 벨라 도전 시기가 아니었다.

이제 다들 벨라를 잡는 방법을 알게 되고,
탱커들이 어그로를 놓치지 않고
,
딜러들이 제대로 뎀딜을 하게 되고
,
힐러들도 힐 포인트를 놓치지 않게 된 그때부터
.
벨라전의 노하우를 공대원들이 잘 알게 된 바로 그때부터
,
우리가 벨라의 피맛에 길들여지기 시작한 그순간부터

벨라의 역습은 시작되었다.

 

공격대 이야기 - 33: 누가 공격대를 살해하는가?

게임/디지털

2006/08/17 21:36

기적처럼 느껴졌던 벨라스트라즈의 첫 킬 이후, 우리는 검은날개 둥지의 모든 네임드들 중에 가장 마초스럽고! 가장 파워풀하고! 가장 단순무식하며! 에본로크에 이어 <정작 네임드 자체는 별볼일 없지만 그리 가는 길의 잡몹은 귀찮기 그지없는 네임드> 2위에 당당히 마크된 용기대장 래쉬레이어를 향해 진군했다.

하지만 이 진군은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와우의 인스턴스 던전은 1주일에 한 번 리셋되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는 용기대장을 만나기 위해 1주일에 한 번은, 송곳니와 벨라를 잡아야 했던 것이다. 벨라전은 180초동안 이루어지는 격렬하고 짧은 싸움이다. 그러나 그 180초를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간은 실로 길다
.

1
기나긴 준비

상급 화염 보호 물약을 준비하기 위해 개인별로 돈을 벌고 재료를 모으는 시간은 넘어가자. 송곳니를 쓰러뜨리고, 벨라 방의 고블린들을 처치하고 난 뒤 40명 공대원들이 상층으로 이동한다. 사제들이 먼저 입장하고, 사제들을 보호할 소수의 호위 캐릭들도 입장한다. 상층의 앞에 있는 몹들을 처리하고 역술사 몹을 사제들이 지배해서 화염저항 버프를 걸기 시작한다. 패치되기 전의 상층에는 총 15명이 입장 가능한데, 사제와 기본호위 캐릭터 5명을 제하면 10명씩이 돌아가면서 상층 앞에 줄을 서고 대기하고 있다가 들어가서 한 명 한 명 버프를 받고 나온다. 못잡아도 20분은 걸리는 과정이다. 잠깐 느슨해진 이 와중에 누군가는 전화를 받으러, 누군가는 애기가 울어서, 누군가는 잠깐 자연의 부름을 받아서 자리를 비운다. 사제들이 전원 다 버프 받았느냐고 확인하고, 겨우 철수하려고 하면 자리 비웠던 사람이 잠깐 잠깐 하면서 울며 달려온다. 다시 버프를 주고 겨우겨우 벨라 앞에 모인다
.

2
허무한 전멸

비싼 상급 화염 보호 물약을 하나씩 마시고, 전 공대원에게 풀버프가 돌아간다. 마나를 채우고 전사 순서를 정하고 다들 신경이 잔뜩 곤두선 채로, 첫 번째 전사가 벨라에게 가서 말을 건다. 난 싸워야해! 전투 시작! 그런데 벨라가 대뜸 옆을 돌아보고 브레스를 쏜다. 난리가 난다. 파티원들이 거의 빈사상태가 되니 힐러들은 힐 돌리랴, 정신없고 딜러들은 딜을 퍼부울 엄두가 안난다. 부랴부랴 전사가 벨라의 어그로를 확보해서 겨우 머리를 돌린 찰나, 힐 하느라고 정신없던 사제 하나가 아드레날린 걸린 줄 모르고 있다가 폭사해서 힐러가 반이 죽는다. 힐러가 반이 죽자 탱커를 살릴 사람이 없다. 첫번째 탱커는 아드레날린에 걸리기도 전에 눕고, 두번째 탱커가 센스 있게 제때 머리를 앞으로 돌리긴 했지만 역시 살리기 역부족이다. ... 결국 얼마 못가 전멸한다.

길어서 접습니다

less..

3 책임전가
전사가 투덜거린다.
"
힐 못받아서 죽었어요. 전사를 아드레날린으로 죽이지 않고 힐 부족으로 죽이면 어쩝니까
?"
힐러가 발끈한다
.
"
노느라고 힐 안했나요? 힐러가 초장부터 다 죽었어요. 왜 벨라가 이쪽을 돌아봅니까
?"
탱커도 받아친다
.
"
도적측 공격이 먼저 들어갔어요. 있는 대로 도로 당겼지만 벌써 브레스는 나간 거구 어쩝니까
."
도적도 가만 있을 수 없다
.
"
탱커가 그 정도 잡아줘야지. 극뎀딜 하라고 해놓고 그럼 뭐 어쩌라구요. 한다고 열심히 했구만
."
공대 분위기 싸늘해지고, 공대장은 도로 다독여서 다시 상층 버프를 받으러 열심히 뛴다. 1번 코스가 반복된다
.

4
계속되는 전멸

겨우 상층 버프 다 받고 모였다. 화보 들이켰다. 막 마지막 주의사항 점검하고 있는데 누군가 실수로 벨라에게 마법봉(,)을 쏴버린다/혹은 거리 잡으려고 들어가던 1번 탱커가 그만 벨라의 인식 범위 안에 들어가 버린다. 준비 안된 상태로 공대는 다시 전멸한다. 1번 코스를 반복한다. 겨우 상층 버프 다 받았다. 이쯤 되면 화보 준비를 조금 한 공대원은 슬슬 화보를 못 먹기 시작한다. 깐깐한 공대원이 '벨라전에 화보 안드시는 분 계십니다. 이런 정신 상태로 어떻게 벨라를 잡습니까? 한 번 잡았다고 만만한 놈이 아니에요! 다들 화보 드세요!" 그래도 없는 걸 어쩌냐? 못 먹는 사람은 못먹는다. 준비를 좀 덜해왔네요 죄송합니다라고 사과를 하는 사람도 마음이 편치 않다.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길드챗이나 직업 채널을 통해서 평소 주는 거 없이 미웠던 공대원이 화보도 안 먹은 걸 보면 자근자근 씹어준다. 서로 싸늘해진 상태로 다시 들이댄다. 화보 못 먹은 사람부터 퍽퍽 죽어나간다. 1프로 남을 때까지 살아남아서 버티다가 죽은 사람은 더욱 열불이 터진다. 한 두명만 생존자가 있었어도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화보를 3-4개나 아끼지 않고 먹었는데! 이 모든 게 화보 안 먹고 묻어가는 저놈 때문인 것 같다. 미워 죽겠다!

5
무덤 파기

왜 못잡느냐, 잡아본 놈을 왜 못잡느냐. 답답하기 그지 없다. 하던 대로 했다. 하지만 어디선가 계속 구멍이 난다. 겨우 좀 가능성이 보이나 싶을 때는 꼭 처음 참가한 신입이 아드폭사 사고를 낸다. 기껏 마지막 화보를 먹으면서 이걸로 꼭 잡기를 하고 바랄 때는 처음 참가한 힐러가 제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냅따 첫 탱커 어글 잡히기 전에 힐 줬다가 브레스 직격으로 맞고 힐러 피해 발생한다. ! 도대체 답이 없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여기저기서 사고가 나지? 묻어가는 놈들이 밉다. 우리 공대 전사들은 도대체 어글을 먹을 줄을 모른다. 딜러들은 전부 녹템 단검 들었는지 전사 6명 갈아칠 때까지 힐을 해댔는데도 벨라 피가 줄지를 않는다. 어쩌란 말이냐! 아차, 이번엔 내가 실수했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실수지. 전멸을 8번이나 했는데 주의집중 흐트러지는 것도 당연하잖아! 하이고, 겨우 천신만고끝에 생난리 쳐서 잡긴 잡았네. 화보도 안 먹었을 때 잡다니. , 몰라, 지친다 지쳐. 아득바득 화보 먹으면 뭐해. 그냥 나도 판판이 화보 먹지 말고 대충 묻어가자.

이것이, 바로 '한 번 벨라를 눕힌 공격대가 벨라 앞에서 망가져가는 전형적인 코스'. 도전할 땐 일어나지 않던 일이, 한 번 잡은 몹에 재도전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문제는 <벨라를 잡는 법을 머리로 알게 되었고, 경험도 해봤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분명히 안다. 탱커가 이렇게 해줘야 하고 힐러가 이렇게 해줘야 한다는 걸. 대부분의 네임드들은 그 규칙에서 어느 정도 살짝 벗어나더라도 실수를 회복할 여유가 있다. 그러나 벨라는 살짝만 벗어나면 바로 전멸에 이르는 네임드다. 그러니 실수에 대한 비판은 엄혹하다. 공격받은 클래스는 또 나름대로 반론한다. 그러면서 공격대는 서로가 적이 된다. 의욕이 사라지고, 신뢰가 증발된다. 여기에 조금만 더 무게를 얹어주는 사고가 터지면, 그들은 언제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벨라스트라즈의 진정한 필살기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하는 전투 디자인의 치밀함에 있다. 실수를 용납할 줄 모르는 사람들, 타인의 실수를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비난하는 철없는 게이머들에게 그건 공격대의 애초 목적 자체를 잊게 만드는 극약이다.

우리에게도, 그 일은 찾아왔다. 우리 공격대의 일곱 명 전사 중 한 명이 등장할 차례다. 이 친구는 성격 까칠하던 전사 A가 떠난 뒤 새로 합류했고, 전사 B와 마찬가지로 우리보다 경험이 많은 선발 공대에서 다른 클래스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전사로는 첫 레이드였지만 검은날개 둥지에 대한 지식은 빠삭했고, 나이는 어렸고, 특성은 무분이었으며, 먼저 떠나간 전사 A와는 전혀 다른 스타일로 까칠했다! 결정적으로 캐릭이 노움이었다! (.......) A-1 이라고 기호를 붙일 수 있는 이 전사가 벨라전 1번 전사로 배치되었던 어느날.

벨라전 1차 트라이. 첫 전사가 벨라에게 막 붙으려는 순간 과도하게 의욕이 넘친 한 드루이드가 도트 힐 마법을 전사에게 검. 벨라 힐러진을 향해 브레스 발사. 전멸
.

전사 A-1: 아놔~ 누구세여~ (''라고 말하면 두배로 얄밉다(...)) 도트힐 넣지 마시라니깐
.

벨라전 2차 트라이. 첫 전사가 아드레날린에 걸릴 때까지 버텼으나 아드 폭사 전에 누워버림. 순간 탱킹 공백이 발생하고 전사들의 조기 사망으로 전멸
.

전사 A-1: 저 힐 끊겨서 죽었어여 (역시 ''에 주목
(...))

벨라전 3차 트라이. 일제 소멸 매크로를 놓친 도적으로 인해 벨라가 옆으로 브레스 발사. 힐러들이 도적 및 전사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이에 역시 첫 전사 아드 폭사 전에 사망. 전멸
.

전사 A-1: 전사가 꼭 아드로 죽어야지 힐 끊겨서 죽으면 안되는뎅. (뎅도 여에 못지 않다
)

무던하게 참고 있던 사제 반장이 드디어 폭발했다. 이 사제는 공대 첫날부터 메인사제로 쭉 활동해왔고, 맡은 바 일을 성실하게하는 무게있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보였다. 공대장인 내게 그 사제가 귓말을 해왔다
.

사제반장: 아 정말 전사 A-1님 너무 하네요. 말끝마다 전부 힐러 탓이라네요. 지금 사제 채널 분위기 말이 아닙니다. 공대장님. 도저히 못 참겠어요. 공대창으로 한 마디만 하면 안될까요?

사제반장이 바로 공대창으로 반박하지 않고 나에게 이렇게 물어본 이유가 있다. 조금 과거로 거슬러올라가서, 내가 아직 공대장이 되기 전, 까칠한 전사 A가 아직 공대에 있던 시절의 이야기다.

전사 A와 전사 B (전사 A-1과 마찬가지로 타공대에서 활동 경험이 있는) 가 어느날 매우 시시한 (...) 일로 논쟁을 벌였다. 레이드 중 탱커가 아닌 전사들이 어떤 스킬을 써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생산적인 논쟁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어린(...) 남자애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대로, 그냥 지기 싫어서 하는 싸움의 성향도 강했다
.

공대장을 맡게 된 후, 나는 만약 레이드 중에 저런 싸움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다. 생산적인 논쟁까지도 못하게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분쟁은 막아야 한다. 그래서 초기에 공대원들에게 미리 말해뒀다
.

"
제가 다른 부탁은 안드리겠습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레이드 중에 제가 볼 수 있는 공대창, 공대채널 등으로 분쟁이 일어날 경우 잘잘못과 무관하게 양측 공히 벌점 나갑니다. 싸우지 마세요."

이 원칙 때문에 사제 반장은, 말하자면 분쟁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는 말을 공대창으로 꺼내겠다고 나에게 요구한 것이다. 나는 일단 대답했다.

"
가능한 참으세요. 분쟁이 일어나면 양쪽 다 벌점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전사 A-1님의 자극적인 발언 태도에 대해서는 제가 나중에 따로 주의드릴게요
."

다행히 사제 반장은 참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물밑은 아주 죽 끓는 솥과 다름이 없었다
.

사제들의 쓰린 속을 달래고 있는 사이, 전사 클래스 채널에서 오가는 대화가 보였다
.

"
공대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네요
."
"
또 전멸하면 더 할 텐데
."
"
어떻게 하죠? , 너무 안 잡히네
..."
"
사기가 가라앉은 건요. 사제들이 좀 너무 예민한 것 같은데요
."
"
무슨 의미로 하는 말씀
?"
"
전사 A-1님이 한 말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를 않구 기분 나쁘게 바라보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래서 공대창도 싸늘하고
..."

사제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한 사람은 전사 A-1과 친한 전사 B였다. 이렇게, 8클래스 중 가장 굵직한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전사와 사제 클래스가 각각 다른 불만으로 동시에 끓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나는 생각했다. , 이것이 바로 공대 균열의 시작이구나. 이렇게 한 공대가 죽어가는구나. 불만을 표면상에 끌어내지 않는 것은 최소한의 방어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 40명이 모인 집단 내에는 불만이 끓기 마련이고, 그렇게 끓어오른 불만은 어떤 방식으로든 공대의 혈관을 경색시키고 조금씩 세포들을 죽여간다. 그 일이 시작되고 있었다. 벨라 앞에서.

누가 공격대를 살해하는가?
벨라가 아니다
.
분열이다
.
벨라라는 몹의 성격상 돌출되기 쉬운 '책임소재'의 분명함이 야기시킨 분열이

공대를 죽이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늙은 말의 지혜를 빌어, 나는 즉시 공대 채널을 통해서 부탁했다.

'
클래스별로 자기 클래스의 문제를 먼저 짚어주세요. 혹시나 타클래스에 협조를 요청할 부분이 있다면 각 클래스 팀장들을 통해서 운영진 채널로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

'
모든 전투 진행 중에는 일절 전투 상황에 대한 비난이나 평가는 금지합니다. 무조건 전투에 집중합니다. 전투가 종료된 후 문제의 원인을 각 클래스별로 토론하고, 의견을 수합해 다음 도전시 수정할 사항을 결정합니다
.'

'
타 직업의 전술에 대한 의견은 반드시 직업장을 통해서 운영진 채널로 모읍니다. 개별적으로 지적하지 마세요. 감정을 자극하는 요청이 반복될 경우 1회 경고, 그 다음부터는 벌점입니다
.'

잠시 클래스별로 자기 클래스의 벨라전 전술에 대한 토론을 진행시켰다. 그 사이에, 또 한 명의 노마 (...) , 사냥꾼 B (전사 F를 공대에 소개시킨) 가 귓말을 넌즈시 보내왔다
.

사냥꾼 B: 공대장님. 채찍 주셨으니 당근도 좀
. +_+

그래서, 공대원의 (...) 요청에 충실히 따랐다. 이미 한 번 정복해서 퍼스트 킬 보너스 점수를 받았던 벨라지만, 오늘은 특별히 벨라 두번째 킬 보너스를 주겠다고 공지했다
.

사실 그 몇점의 포인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라앉은 분위기를 상승시킬 '계기'가 필요했던 공대원들은, 마치 그 보너스를 위해서인것마냥 눈에 불을 켰다. 물약이 떨어진 사람들을 체크하고, 여유 있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물약을 나눠주는 모습이 보였다. 시키지 않았지만, 공대원들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

그러는 동안 운영진 채널에서는 금지해야할 것과 챙겨야할 것을 이야기했고, 역할을 분담하고, 각 클래스별로 지침이 내려갔다. 믿음의 탱킹을 강조하던 전사 반장은, 아직 익숙치 않아 벨라의 고개가 돌아가는 것에 대해 사과하고,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했다. 힐러들은 좀 더 힐이 용이한 파티 배치를 요구했고, 그 요구에 나는 따랐다. 도적 클래스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도적 반장: 공대장님. 화저셋 벗고 뎀딜셋으로 입어도 되겠습니까? (이때까지, 우리 공대는 도적클래스가 화저셋을 적당히 섞어 입고 딜하던 상황이었다)
공대장 : 힐러분들이 감당해주실 몫이 커질 것 같은데, 메인탱커님과 힐러반장님 의견은 어떠세요
?
메인탱커가 찬성했고, 3개의 힐 클래스에서는 도적까지 살리기 위한 역할 분담을 마쳤다
.
공대장: . 그럼 이제부터 도적분들은 가장 뎀딜을 잘 할 수 있는 장비로 입어주세요. 빠지는 피는 힐러분들이 채워주실 거에요
.
도적 반장: 최선을 다해 썰겠습니다! (<-- 정말로 이렇게 말했다. --;; 군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어서, 모니터를 벅벅 긁으며 웃었다. 아휴 남자애들이란 (...))

칼은 더욱 날카롭게, 치유의 방식은 좀 더 복합적으로, 그리고 탱킹은, 믿음으로. (웃음)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벨라를 잡았다.

하지만 이 '대처'만으로 만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또 다른 일이 남아 있었다
.
그날, 레이드가 종료된 뒤, 나는 전사 A-1을 따로 불렀다
.
그리고.

순간에, 같은 곳에서 거대한 용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믿음, 바보들의 신화이기 때문이다.

공대장의 발언은, 그 하나하나가 알게 모르게 공대원들의 심리속에 잠자고 있는 '어떤 것'을 일깨우기도 한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노부인 탐정 마플 여사는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아요. 단지 어리석을 뿐이지요. 그렇다. 어떤 공대원도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단지 40명의 바보일 뿐이다. 의심과 분열, 불만, 아이템을 먹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처럼 하는 게임. 이런 이야기를 공대장이 하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공대원들의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의심과 분열, 불만, 피동적인 태도가 구체화된다.

그러므로, 공대를 이끄는 사람들은 가능한 바보 영웅들에게 맞는, 그들의 피를 끓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걸 퍼뜨려야 한다. 그것이 설령 허구일지라도, 조금만 근거를 만들면 그 허구가 곧 진실이 되고, 믿음이 된다. 분열이 있는 곳에 화합을,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를
!

주의해야할 것은 '좋은게 좋은거'라고 넘어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원인 파악과 대처는 냉정하고 재빨라야 한다. 하지만 처벌은 규칙에 의한 것이어야지 밀려드는 원망에 등을 떠밀려 집행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현실적인 영역이다. 집단의 분위기를 만드는 신화는 그보다는 좀 더 다른 영역이다. 공대장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만들 수 없다. 많은 협조자가 필요하다. 바보들의 신화는, 바보들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위선을 행하고, 신화를 만들고, 그 신화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40명의 바보들.
그리고 그 신화의 집단창작을 이끌고, 전승을 지원하는 공대장
.

하지만, 여기에는 '만들고, 퍼뜨려야할' 신화만 있는 것이 아니다
.
절대로 말할 수 없는
,
끝까지 마음 속에 묻어두어야할
,
비밀스러운 신화도 있다.

 

36. 별전: 미칠 듯한 !! - 용기대장전

사실, 공대원들과 공유할 수 없었던 이야기, 나나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간직하고 있어야 했던 이야기를 막상 하려니 여러 가지로 걸리는게 있다. 내 이야기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까지 침범하는 이야기들이 들어 있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무슨 대단한 비리나 비밀 같은 건 아니다. 단지 '타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렇다. 타인의 이야기라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존중되어야할 이유가 충분하기 때문에, 어떤 통로로 퍼져나갈지 모를 공간에 털어놓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아직도 망설이고 있고, 그래서 잠깐 쉬어가는 의미에서 용기대장전에 대한 짧은 이야기나 써볼까 한다.


용기대장은 검은날개 둥지의 3번째 네임드로, 벨라를 잡고 난 다음 꽤나 까다로운 함정을 제거하면서 그 함정 주변을 지키는 무수한 새끼용과 네파리안의 부하들을 제거한 다음에야 만날 수 있는 녀석이다. 중간에 제거해야 하는 몹들은 짧은 시간내에 다시 리스폰되기 때문에 중간에 쉴 틈이 거의 없다. 파워 자체로야 밀리지 않겠지만 그 몹들 잡으면서 천천히 가기 시작하면 결국 마나가 말라서 항복하게 되는 코스다.

그래서, 용기대장을 잡으러 가는 동안 공대는 거의 단체 100미터 달리기를 해야 한다. 메인탱커의 사인에 따라 "이동!" 하면 이동을 하고, 중간중간 벽감 같은 곳에서 "광역마법!" 하면 광역마법으로 쌓인 잡몹들을 처리해준다. 중간중간 설치된 함정은 전 공대원의 이동속도와 캐스팅 속도를 늦추는데, 이건 도적 몇명이 공대의 전방과 후방에서 제거를 해줘야만 이동에 문제가 없다. 이런 방식으로 공대의 전력에 따라 약 10-20분 정도 걸리는 코스를 뛰는데, 이 과정에서 최악의 적은 바로 랙신강림이다. 이 코스가 유달리 토나오는 곳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도, 엄청난 프레임을 잡아먹는 다수 몹의 출현과 광역 마법의 난사가 필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

그렇게 해서 코스의 마지막에 도달하면 용기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용기대장은 아주 무식한 놈이다. 벨라전같은 섬세한 디자인이 아니다. 이놈에게 있는 것은 오직 한 방! 뿐이다. ; 따라서 잡는 방법도 단순무식하다. 원거리계열과 힐러는 거리를 띄우고, 도적과 전사는 용기대장을 둘러싸고 난타전을 한다. 전사는 특정한 탱커를 지정하지 않고 거의 '미칠 듯이' 서로 어그로를 돌려먹는다. 워낙 한 방이 강해서, 최초 도전시에는 크리티컬 히트를 맞으면 누구라도 일격사하기 쉬운 녀석이다. (요새는 장비가 좋아져서 안 그렇지만
)

스치면 죽음인 이 용기대장이 만의 하나 원거리 계열로 어그로가 튀어서, 연약하기 그지없는 힐러나 마법사들 사이로 뛰어와 칼질을 시작하면 그야말로 볏단 쓰러지듯 전멸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략 초기에는 용기대장이 원거리 장소로 뛰어올 경우 어그로 대상자는 재빨리 전사들의 위치로 달려가 죽더라도 그곳에서 죽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용기대장을 공략하던 당시에는 부활조 가동이 가능했던 때라 (아직 패치 전) 사상자는 얼른 리필(...) 해서 잡곤 했다
.

길어서 접습니다

다시 접습니다
요즘은 용기대장이 원거리 쪽으로 달려오는 일 자체도 없고, 부활조를 돌릴 일도 없다. 정신없이 바뀌는 용기대장의 타겟을 일일이 쫓아다니면서 힐하느라고 고생하던 힐러들도, 죽은척하기(자신을 보는 몹을 따돌리는 사냥꾼의 스킬이다)가 저항이 나서 용기대장을 끌고 전사 자리까지 뛰어간 사냥꾼이 끝까지 죽지 않도록 치료를 해주면서 채널창으로 농담따먹기까지 가능해질 만큼 익숙해져버렸다. (...) 도전 중인 공대에게는 벨라 다음이라 상대적으로 더 약해 보이고, 이미 파밍상태인 공대에게는 힘만 세지 크게 어려움도 없고 저항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존재감 없는 네임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옛날, 죽을둥 살둥하면서 잡아냈던 용기대장에 대한 기묘한 애착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 용기대장이 내가 처음으로 공대 동영상을 만든 몹이고, 그 위태롭고 격렬한 공략 자체가 상당히 내 취향이기 때문이다. 내가 마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 벨라전을 치른 직후 경험하게 되는 용기대장전은 극히 상반되는 매력을 품고 있다. 평타 1.5대 차이로 앞 전사와 뒷전사가 절묘한 어그로 수위를 조절해야 하는 벨라전과 달리, 누구할 것없이 전사라면 최선을 다해 자기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 그야말로 극대화의 싸움이 갖는 호쾌한 맛이란! ... 이를 테면 북두신권! (... 앗 이건 역시 마초취향인가 --)


아래 덧붙인 동영상은, 공략 초기의 용기대장전을 촬영한 것인데, 이무렵은 슬슬 투톱 체제도 슬슬 안정화가 되어가던 시기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메인탱커와 나는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 외에는 별 대화가 없었다. (, 아이템 안 밀어주겠다는 이야기 한 번 한 거 빼고는 --a)

그런데 성실하게 메인탱커 임무를 잘 수행하던 그분께서 어느날 갑자기 '부탁'이 있다고 해서 사실 좀 간이 콩알만해졌다 (....) . 들어주기 어려운 부탁이면 어쩌나 하고. 그런데 그 부탁이란 --;; 동영상을 하나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촬영은 했는데, 편집할 줄은 모르니 공대원 중에 편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시켜서 하나 만들어보면 .. 안될까욧
? (.......)

..
솔직히 영상 편집을 어디서 배운 것도 아니고 정말 주먹구구식으로 밖에 못만드는데 (효율적인 압축방법은 완전 젬병이고) 시간은 엄청 많이 걸린다. (..대충 하는 걸수록 더 그런 듯) 하지만, -_-;; 말 잘듣고 착한 메인탱커의 소원이라는데 간을 빼달라고 해도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orz (....아마 많은 공대장들이 이 말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한다. -_-;;) 결국 이걸로 그동안 고생시킨 값을 대신 치른 셈인데, 해보니까 의외로 재미있었다. (아하하하하) 가장 만들고 싶어했던 것은 벨라전 동영상이었지만, 우선 시험삼아 먼저 만들어본 것이 용기대장전이다.

동영상을 보다보면, 메인탱커가 촬영한 것이라 화면 중심의 캐릭터가 메인탱커 그분 (...) 이다. 보면 탱킹은 둘째고 일단 뭐라뭐라 지시하기에 바쁘다 (...) 공략 초기였던 때라 아직 어그로 튀는 것이 심하다. 용기대장이 힐러들 자리로 몇번 뛰어간다. 강력한 한 방, 주변 일대에 데미지를 주는 휩쓸기, 그리고 넉백까지 있는 이 놈이 원거리 쪽으로 튀면 아주 난리가 난다. 그래서 힐러에게 달려간 용기대장을 전사와 도적들이 피를 철철 흘리면서 도로 끌고 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장면에 이르면 안쓰럽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다. >_<

메인탱커도 한 번 눕기도 한다. 곧바로 부활조(.. 나다 -_-V)가 부활시켜주긴 하지만. 메인탱커가 누웠을때, 항상 그 근처에서 멋진 포즈 ( -_)로 버티고 서있는 나엘 남자 전사가 바로 전사 반장이자 서브탱커다. 언제 봐도 든든한 모습이다. (.. 건들거리기도 하지만 ;) 메인탱커 사망시 화면을 붉게 물들이는 효과는 게임 이펙트가 아니라 내가 편집해서 넣은 거다
. >_<

난전 와중에 사방에서 솟아오르는 빛기둥은 부활마법이 시전되는 효과다. 내가 다 살렸다 (!) 부활하다 마나 떨어져본 건 용기대장전이 유일하다 (.. 그 이후로는 부활조 자체가 막혀버려서 --)


영상 중간에 '미칠 듯한 뎀딜' 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극뎀딜을 요구할 때 메인탱커가 항상 외치던 일종의 구호다. 라그나로스때부터 시작된 이 구호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상당히 고민했다. 왜 미친 듯한이 아니라 미칠 듯한 일까? -_-a 그런데 자주 듣다 보니 두 말의 차이가 오묘하게 와 닿았다. 미친 '듯한' 은 일종의 완성형이다. 하지만 미칠 '듯한' 은 진행형이자, 바로 코 앞에 있는 결승선을 향해서 닿을 듯 말 듯한 느낌이라서, '미친 듯한' 뎀딜이라고 할때보다는 '미칠 듯한' 뎀딜이라고 할때 .. 뭐랄까, 더 간지럽고.. -_-a 약이 오른다!!! (...)

극도의 데미지 딜링을 요구하는 몹들이 많긴 하지만, 그리고 용기대장은 지금에 와서는 뭐 그리 극뎀딜을 요구하는 놈 같지도 않게 손쉽게 잡히지만, 나는 이 '미칠 듯한' 이라는 형용이 가장 어울리는 것은 역시 용기대장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그로 관리도 안되고 사상자도 많이 발생하던 시절의 거친 영상 (게다가 편집도 매우 거칠다. 첫 연습작이어서) 인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역동적이고, 그야말로 '미칠 듯한' 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그림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영상을 더욱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

특히 매우 여려(...) 보이는 인간 여전사 메인탱커가 쓰러지고 난 뒤 그 자리를 대신 차고 들어가는 남자 나엘 전사의 든든한 등짝(!)은 그야말로 꺄하하다. >< (후르릅)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고,
용기대장은 그대로인데 사람은 변했구나
.

온몸이 망신창이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딪치고, 부딪치고, 또 부딪치면서도 포기할 줄 몰랐던, 젊은 시절의 약간 민망한 추억 한 토막처럼, 이걸 보고 있다면 묘하게 맘이 아릿하다. 지금은 더 이상 함께 게임을 하지 못하는, 그리운 이름들도 곳곳에 보이고
.
그런 의미에서, 동영상 배경음악은 Still Waiting.


*..영상을 올려놓고 다시 보니까, 이건 마치 <연약하고 아리따운 캐스터>를 덮치러 자꾸 가려고 하는 <변태 용기대장>을 온힘을 다해 막아내는 <열혈 전사/도적>들의 순정을 그린 눈물나는 매드 무비가 아닌가! (.. 도주)

 

37. 당신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 1/2

절대로 퍼뜨려서는 안될 신화, 라는 말에서 무엇을 연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19금도 아니고 (?) 비리도 아니다. (...) 공대장 노릇을 하면서,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선, 반드시 지켜야할 선이라고 생각했던 원칙들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기기 무척 쉬운 원칙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가능한 선까지는 이 원칙들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했다. 이것마저 무너지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 일하지 않기

눈뜨자마자 와우 접속해서 지쳐 쓰러져 잠들 때까지 자나깨나 공대 걱정 앉으나서나 공대 걱정, 인던도 못가고 하루종일 아포나 오그리마에 죽치고 앉아 공대 관련 문의나 상담 처리만 종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회의가 찾아올 것이다. "... , 공무원인가." orz (....)
성실하게 공대 일을 처리하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24시간 공대를 위해 헌신하는 건 하나도 좋을 게 없다. 설령 실제로 그렇게 할 일이 많더라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일이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다. 이건 게임이다. 이런 태도를 견지하기 위해 의식적으로라도 노력하는 것이 왜 중요하냐면, 안 그랬을 경우 일찍 지치기 때문이다
.
그래서 머리 속에 두 개의 스위치를 준비해두는게 좋다. 공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 있고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한참 한탄하다가, '앗 이거 과열인데' 싶으면 재빨리 다른 스위치를 켜는 연습이 필요하다. 성격상 이게 안되거든, 와우에 접속하지 않는 시간을 정해두던가 아니면 부캐를 키우되 공대원들한테 절대로 비밀로 해야 한다.

공대에 너무 많은 문제가 있어서 도저히 머리를 쉴 수가 없어요? 그럼 집어쳐라. 게임이 아니라 일이 되는 공대는 할 필요가 없다. 공대장에게 일이 될 정도면 공대원한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마스터키튼이라는 만화에, 인질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유괴범과 교섭하는 네고시에이터에게는 하루 일정시간 이상의 휴식을 취할 '의무'가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공대장 역시 마찬가지다. 쉬어야할 의무가 있다. 이 의무를 지키지 않고 난 열심히 하려고 안간힘을 썼기 때문에 이렇게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흑흑흑 이렇게 변명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직무 유기다.


물론, 공격대를 운영하다보면 싫어도 해야할 일도 있고, 의무적으로 지켜야할 원칙도 있다. 그건 공대원에게도 공대장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건 그야말로 암묵적인 약속이다. 더 큰 즐거움을 위해서, 더 긴장감 있는 게임을 위해서 하는 것이지 과제하듯이, 직장생활하듯이 할 일이 아니다. 잊지 않아야 한다. 누구보다도 일이 많은 공대장이 게임을 늘 즐기고 있어야 공대원도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따금 어쩔 수 없이 '일처럼' 임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자신에게도 공대원들에게도 속여야 한다. 이건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이도 저도 안되면 최후에는 이런 사기라도 쳐야 한다. (...) 공대장 노릇 하면 열라!!!! 재미있다고 말이다.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고생 무척 한다고 티만 내다보면, 아주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 그 무서운 일이란 바로

길어서 접습니다

다시 접습니다
... 후임자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게 고생만 하는 일을 누가 하려고 하겠니 ㅠㅠ)

티내지 않아도, 항상 노는 척 해도, 어차피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 동안은' 제정신박힌 공대원이라면 공대장이 일 많다는 거 다 알고 있다. 공대원들이 그걸 알고 있다는 것 역시 제정신 박힌 공대장이라면 다 알고 있다. 그걸 전제로 우리는 '게임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조금 더 수고하고 있을 뿐이지, 일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해결책이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볼 줄도 알아야 한다. 붙들고 있다고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게임이 일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가장 즐길 수 있는, 공격대 관련 일 이외의 다른 컨텐츠'를 스스로 하나 정해두고 그걸 꾸준히 하기를 추천한다. 그건 평판 작업일 수도 있고, 아이템 콜렉션일 수도 있고, 골드 모으기일 수도 있다. 뭐 정 안되면 와우 밖에서 찾아도 된다. 어쨌거나 늘 게임을 하고 있다는 걸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미워하지 않기

이건 참 공대장도 인간인 이상 지키기 힘든 원칙이다. 공대원 중에 분명히 미운 놈도 있고 이쁜 놈도있을 거다. 왠지 궁합이 안 맞고 부담스럽다거나 짜증나는 타입, 없을 수가 없다. 그런 놈들은 꼭 규칙은 아슬아슬하게 잘 지켜서 잘라낼 명분도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미워해서는 안된다.

사실, 나는 사람을 잘 미워하지 않는다. 착해서? 천만에 --;; 관심이 있어야 미워하지. -_-;;;; 나한테 인간은 딱 두 종류다. 내가 '그나마'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과, 그외 다수의 투명인간들. 하는 일이 이렇다보니까, 나는 '미워하거나' '내 타입이 아니거나' '싫어하는 사람'과 억지로 한 조직, 한 공간 안에서 숨쉬고지내야만 할 이유가 없다. 직장을 다녔다면 어쩔 수 없이 그걸 인내해야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 있다면, 그냥 그 인간, 그 인간이 속한 조직, 그 인간과 친분이 있어서 어울리다보면 반드시 같이 엮이게 되는 사람들과는 아주 단호하게 관계를 끊는다. 안 보면 그 뿐이기 때문에, 내 타입이 아닌 인간들은 미움이 충분히 익기도 전에 먼저 투명인간이 되어 무관심의 영역으로 추방당한다. 내가 좋아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는 미워할 에너지도 투자하기 아깝단 말이다.


그런데, 공대장이 되고 보니 이거 큰일이었다. 공대장을 때려치우지 않는 한, 지금껏 내가 지켜왔던 저 무관심의 원칙을 지킬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공대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별 문제 안된다. 감정 없이 규칙에 의해 결정하면 되니까. 문제는, 생리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들을 견디면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공대 분위기가 좋다고 해도 저건 어쩔 수 없다. 그 사람이 나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안 맞는다. 그런데 참아야 한다. 쿠어어, 미칠 노릇이다.

, 초인적인 인내와 공대에 대한 헌신적인 애정으로 모든 공대원을 동등하게 보면서 미움도 편애도 하지 않고 원만하고 평온무사 불편부당하게 처리했.... 을까
?

그랬으면 참 위인전이겠지만 ^^;; 나도 싫은 건 싫은 거라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게다가 '취향' 문제만 있는게 아니다. 말 잘 듣던 사람들도 때로는 똥고집을 피우고, 속을 썩인다. 그렇다고 그걸 일일이 화낼 수는 없다. 공대장의 분노는 정말 중요한 칼이라서 반드시 둘러 엎어야할 때만 휘둘러야지, 아무 때나 꺼내서 가볍게 쓰다가는 분노가 아니라 짜증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꾹꾹 눌러 참는다. 그러다보면 속이 썩는다. 미움의 독이 고인다. 이 독이 더 커지기 전에 나눠가질 사람을 찾아야 했다. 혼자 안고 있다가는 언젠가 펑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

독을 나눠가질 사람은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공대 관련 일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고 많은 상의를 했던 건 물론 메인탱커와 각 클래스 팀장들이었지만, 이건 절대로 그들과 공유할 수 없는 문제였다. 왜냐면, 독을 나눠가진다는 것은 곧 전염시킨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독이 퍼지고, 이건 공대를 분열시킬 수 있다. 공대의 중요한 주력들과는 이런 문제를 나눠선 안된다. 잘못하면 따돌리기, 불신을 조장할테니까.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한참 전에 무대에서 퇴장했던 전임 공대장이었다. 낮시간대의 공대를 뛸 수가 없어서 다른 시간대로 옮겨가고, 이따금 쉬는 날 도우미를 와주곤 했던 전임 공대장은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런 저런 공대장의 속내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친구가 가장 훌륭했던 점은, 한참 울화가 치밀어서 한바탕 소리를 버럭버럭 지를 때 그냥 잠자코 귀를 기울여줄 뿐, 같이 덩달아 분노하거나 내 분노를 어리석다고 탓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냥 들어주고 적당히 고개 끄덕여줄 뿐이었다. 다 듣고 나서는 주로 이런 평가를 했다. (...)

전임 공대장: 진짜 욕 잘 하시네. (...)


내가 어떤 사람을 얼마나 미워했고 얼마나 화를 냈었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그냥 저 평가만으로 그 내용의 수위를 짐작하길 바란다. (먼산) 중요한 건 그 욕의 등급이 아니다! (화제 돌리기) 그렇게 한 번 울분을 해소하고나면 조금 진정이 되었고, 그 다음에 그 '미운 사람'을 다시 보게 되면 그 과분한 (..) 욕 때문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스트레스도 이미 해소했고) 조금이라도 더 공정한 태도로 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불편해했던 상대와 기묘한 신뢰 관계가 생기기도 했다. 애초에 타입이 아닌 사람을 좋아하게 되기는 힘들지만, 나는 저 사람과 다르고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는 사실, 둘 사이에 지켜야할 선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의외로 관계의 룰이 생긴 셈이다. 사람과 관계 맺는 또 다른 방법에 대한 개안을 한 셈이라, 나름대로 인생공부가 되었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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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이 넘는 각양각색의 인간들과 가장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공대장에게는, 저런 '대나무숲'이 간절히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공대장이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다면, 부디 그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용서해주기 바란다. 그가 그 미움을 공대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은 최소한 자기 안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이 바로 그 '대나무 숲'으로 간택된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함구하는 것이 공대를 위해서나 공대장을 위해서나 가장 좋은 선택이다. 그리고, 대나무숲을 필요로 하는 공대장들이여. ....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 잘 보고 골라야 한다. 그리고 창구는 단일화해라
(...)

대나무숲을 사용한 것은 공대장 취임 초기의 일이었고, 점차 그 역할에 도취되면서부터는 실제로 공대원을 '미워'한다는 감각 자체가 점차 퇴화되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분명히 그쯤 같이 굴러먹다보면 대부분의 공대원들이 갖는 장단점들이 눈에 보인다. 심지어 가장 신뢰하는 메인탱커나, 각 클래스 반장들의 경우에도 저마다 어떤 단점과 장점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단지 알고 있을 뿐, 그로 인해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은 촉발되지가 않는 것이다
.

타인을 대체로 귀찮아하는 내가, 그 수십명의 사람들을 하나도 귀찮아하지 않게 되는 지경에 이르자, 가장 놀란 것은 나였다. 이따금 나는 자문해보곤 했다. 나는, 이 많은 다수의 인간들을, 단지 '같은 공대원'이라는 것만으로 '사랑하게' 된 것인가? 으윽, 생각만 해도 닭살이 돋았다. --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공대장을 하면서, 한 번도 '우리 공대를 사랑합니다' 라든가 '공대원 여러분 사랑해요' 같은 멘트는 진지하게 사용해본 일이 없다. 가끔 있긴 한데, 주로 삥 뜯을 때였다 (...이럴 때는 써줘도 된다 -_)

나는 한 사람이 다수의 조직을, 실체 없는 개념을 사랑한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조직과 개념은 이성적 판단의 대상이어야지 감정적 대상이 아니다. 감정만큼 터무니없는 대가를 요구하는 것도 없다. 보답을 원치 않는 사랑이란 없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나는 그 누군가가 나만큼, 혹은 나 이상으로 나를 사랑해주기를 원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한 인간이라면, 그나마 답이 나온다. 나는 그에게 사랑을 받거나, 혹은 거절당할 뿐이다.

 

그러나 다수의 조직을 상대로 하는 사랑은 다르다.
그것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는 길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38. 당신이 결코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들, 2/2

조직에 대한 헌신의 뒷면은 조직에 대한 소유권의 주장이다. 그래서,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생각해서는 안되는, 행해서는 안되는 것의 세번째 항목을 이렇게 꼽는다
.

세번째, 공대를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나 없으면 안된다. 내가 이만큼 키웠다. 내가 얼마나 이 공대를 위해서 헌신했는데? 누구보다도 많이 시간을 투자하고 고민한 공대장이나 운영진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공대장을 맡고 나서 초기에, 메인탱커가 각 인던 네임드 공략법을 연구하고 있을 때 나는 각종 와우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서버, 다른 공격대들이 앓고 있는 문제점들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조금 놀랐다. 와우는 게임등급상 초등학생이 할 게임은 아닌데다가, 공격대 활동까지 할 정도면 어느 만큼 집단 생활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 연령대의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초보적인 부분에서의 실수들이 너무 많이 보였다. 의사결정의 과정이 터무니없이 생략되었다거나, 기본적으로 대화 자체가 부재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

공격대 활동 자체가 처음이었던 데다가, 독야청청 방구석에만 처박혀 살던 호젓한 인생이었던지라 도대체 요즘 애들 -_-;;;은 조직에 대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다. 공대 경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모든 것이 '나만큼 공대에 대해 생각한 사람이 없고' '나만큼 고민하는 사람도 없으니' '이런 문제 정도는 나 혼자 결정해도 된다'는 식의 아집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물론 그렇게 혼자 '고생하게' 내버려둔 공대원들도 잘한 것은 없다. 한 나라의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공격대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 일을 하게 버림받고, 대나무숲 하나 없이 혼자 끙끙 앓아야 했던 공대장과 운영진이 그 헌신만큼 공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는 것, 어찌 보면 감정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억울하겠지. 그렇다고 '그러니까 공대 자산은 전부 내꺼' 이런 식이 되면 뭐 --;;; 웃기는 노릇이지만, 공대 규칙의 변경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때 공대원들이나 운영진의 의사를 묻는 과정을 생략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 가장 좋은 쪽으로'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 빠른 공략을 위한 현명한 판단인지, 아니면 단지 독선인지 분간하기는 참 쉽지 않다. 이런 경우 판정법은 사실 간단하다. 공대원들이 다 싫다고 하면 독선인거고, 다 좋다고 하면 현명한 판단인 거다. (...) 무척 바보스러운 규칙이지만, 원래 민주주의가 그렇다. 바보스럽고 더디게 가는 제도다.

이 금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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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아닌, 왕정으로 롤플레잉하는 공대를 만들거나,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 소유권 주장해도 된다. 실제로 소유권이 행사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공대가 의외로 많다.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사람의 카리스마로 유지되고, 그 사람이 게임을 떠나면 사멸하는 공격대. 사실,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게임이니까. 현실과 다른 제도를 체험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대부분의 공대는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은데도 애착과 소유권을 느끼게 되면, 독선으로 빠질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이것이 게임이기 때문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추가된다. 소유권은 공대의 발목만 붙잡는 것이 아니다. 공대의 목에 개줄을 거는 사람은, 자기 목에도 개줄을 걸기 마련이다. 이 문제를 눈치채고 나서, 나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 마지막 날까지, 이 공대가 내것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물리게 될 테니까.

어느날, 나의 수고에 감사하며, 한 공대원이 말했다. 아마 제도 변경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던 와중이었을 것이다.

공대원: 이 공대는 이제 에덴님 공대에요. 그렇게 말씀하셔도 돼요. 강경하게 밀고 나가셔도 돼요. 믿고 따라 줄 겁니다
.

이 말을 들을 때, 나는 절대반지의 시험을 받는 갈라드리엘 마님이 된 기분으로 그 공대원의 신뢰에는 감사했지만, 그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이 공대가 내것이 되면, 나 역시 이 공대의 것이 된다. 그러면 내게 와우는, 레이드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게 된다.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가 없게 된다. 나는 내가 언젠가 필요로 할 자율 만큼을 공격대에 주었다. 내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고, 머물고 싶을 때 머물 수 있을 만큼의 자율을. 공격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그리고 40명의 바보들은, 40명의 ''. 나의 자유는 곧 40명의 자유이기도 하다.


네번째, 희생하지 않기

이쯤 읽어보면 뭔가 오묘한 모순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일하지 말 것, 미워하지 말 것, 소유하지 말 것. 사실, 공대장 일 많다! 안할 수 없다. 그런데 하지 말라고 했다. 미워하지 말 것. 사람인 이상 누군가 미운 사람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하지 말라고 했다. 소유하지 말 것. 독선은 아니더라도 공대장을 하는 동안 일정한 소유지분, 공대에 대한 발언권, 책임감등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소유하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이 모든 것이 절대적인 금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금기'처럼 여겨야하는 이유는 이렇다. 실제로 다른 사람보다 공대장이나 운영진들이 짊어져야할 책임이 조금은 더 많다. 이 과부하 때문에, 절제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선을 넘게 된다. 그러므로 과도한 선을 넘지 않게, 원칙에서 어긋나지 않게, 항상 자신에게 주지시켜야할 가장 큰 원칙이자, 공대원들 역시 함께 지켜줘야할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꼽는 '희생하지 말 것' 역시 마찬가지다. 실제로는 언제나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그걸 인정하지 않을 것, 티내지 말 것.

오랫동안 공대에서 활동했던 사제 B가 어느날 폭발했다. 공대 창설때부터 쭉 스트레스가 심한 사제 역할을 하면서 쌓였던, 타클래스에 대한 불만부터 시작해서, 모든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진 모양이었다. 격렬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다. 당연히 그것에 반대하는 이야기들도 쏟아져나왔다.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헌신과 희생, 그동안 바친 시간에 대한 설움을 털어놓는 사제 B에게, 나는 결국 끝까지 하지 않으려고 했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사제 B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공대 채널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설전을 지켜보고 있었고, 슬슬 사제 B의 반대편에 맞서던 사람들도 '자신의 설움'을 털어놓기 시작한 분위기라, 진화를 위해 그래야 했다.

제가, 공대장을 관두는 날까지 절대 안하려고 했던 이야기 지금 해드릴게요
.
공대를 위해 이만큼 희생했다, 이만큼 더 열정을 바쳤다
...
'
저보다' 더 그렇게 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분 지금 계시면 나와보세요
.
(
잠시 기다렸다.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 이제와서 하는 말인데 그때 누가 나왔으면 내 손에 죽었다
)
정말로 이 말은, 제가 공대장이니까, 운영진이니까 각별히 더 희생했다, 그런 말은 마지막 날까지 제 입밖에 내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
왜냐하면, 다들 조금씩은 희생하고 있고, 누구나 다 나름대로 서러운 건 있으니까요
.
각자 서러운 것만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답이 없어요. 서로 상처 주는 것밖에 안남아요
.
어차피 게임이고, 자기 즐거우려고 하는 희생입니다. 남 위해서 하는 희생도 아니에요
.
서로 고생하고, 희생하는 거 모르지 않아요. 사제님들 특별히 더 고생하는 것도 알아요. 버프 돌리는 것만 해도 일이죠. 그런데 그건 클래스 역할이에요. 단지 알아줄 수 있을 뿐이지, 그걸 대신해줄 수도 없어요. 애초에 그걸 하려고 시작한게 게임이고 레이드니까요
.
정말로 마지막날까지 이 말은 안하려고 했습니다. 제가 이 말 꺼내기 시작하면 전부 자기 서러운 이야기만 하실 테니까요. 지금 어쩔 수 없이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들은 이야기는 다 잊어주세요
.
전 희생한다고 생각 안해요. 남을 위해서 게임한 거 아니니까요
.

상처는 남았지만, 그날의 싸움은 거기서 겨우 진화됐다. 폭발했던 사제 B는 잠시 후 진정하고, 감정을 수습한 뒤에 '제가 선후를 잘못생각한 것 같네요. 남 위해서 게임하는게 아닌데...' 하고 귓말을 건네왔다. 얼마 뒤, 사제 B는 공대 생활을 정리했다. 아마도 자신을 위한 게임과 남을 위한 게임 사이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한계가 왔으리라. 그동안 쌓인 포인트로 유달리 좋아했던 치유량 증가 아이템들을 차근차근 다 획득하고, 거의 남기는 것도 모자라는 것도 없이 0점에 가깝게 포인트를 맞춘 뒤 마지막 셋템을 완성하고서 공대를 떠나는 사제 B를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으로는 숙련된 사제를 잃었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사제 B에게는 그편이 나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공대장의 입장으로는,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공대원을 '힘들면 가세요~ 성격 안 맞으면 못하는 거죠~' 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저건 꼭 등 떠미는 것 같잖아 --;; 공대장이 해야할 말은 언제나, 이 공대는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 당신은 이 공대에서 의미있는 존재다라는 것이다. 그게 '공격대'가 공대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정상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이야기는 개인인 내 안에 감추고, 상대가 판단할 여지만을 남겨두어야 했다. 개인인 나는,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한계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성격도 다르고, 처지도 다르고, 역량도 다르다. 그건 당연한 일이다. 자신에게 맞는 만큼만 바치고, 그만큼만 견디고, 못 견딜 것 같으면 떠나면 된다.

그래, 우리는 서로 희생할 필요가 없다. 아니, 희생하더라도 그건 감당할 정도만 하면 된다.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보통 희생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그 이상을 넘어설 때는, 어떤 상황이든 자유롭게 보내주는 것이 정상이다. 게임이잖아
!

그런데, 또 다른 종류의 희생도 있다. 이건 참 어찌할 수 없는 희생이다. 이 희생의 목적어는 현실생활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현실을 희생시킬 일이 없다. 놀고 먹는 인생이라 현실에 일이 없어서 현실과 놀이의 영역 다툼을 이미 오래 전에 끝내버렸기 때문에, 더는 그런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예를 들 수 밖에 없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좀 고민했는데, 양해를 기대하면서 그냥 해야겠다. -_-;;

검은날개 둥지의 공략이 한창 진행되던 어느 날이었다. 레이드는 무난하게 흘러갔는데, 뭔가 분위기가 오묘하게 달랐다. 공대원들은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최소한 내 느낌에는 그러했다. 뭐가 달랐는고 하니, 메인탱커가 유달리 말이 없었다. 속으로 생각하기를, 오프라인상에서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었다.
레이드 후반쯤에 한 공대원이 조퇴를 했다. 부인의 생일이라 일찍 나가서 외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들 축하해주고 그 공대원을 보내줬다. 그리고 얼마후, 레이드가 종료되었다
.
레이드가 끝나면 언제나 하던 메인탱커의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인사조차도 어딘가 맥이 빠진 듯이 들렸다. 오프라인의 문제까지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라서 물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만의 하나 내가 알아두어야만 할 문제 (다음 레이드에 결석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거나)일지도 몰라서, 결국 묻고 말았다. 혹시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면 적당히 둘러대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

: 기분이 별로이신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
그분:

그분: 별로인걸로 보였나요? (허걱! 욧이 아니라 요다 요 ... ;;)
:
.
그분: 에고

그분: 심려끼쳐서 죄송합니다. 티 안나게 했어야 했는데.

잠시 후에, 메인탱커는 털어놓았다. 오늘이 가족 중 한 분의 기일이었다고
.

더 설명을 듣지 않아도, 게이머로서 나는 저런 경우에 느낄 수 있는 기묘한 죄책감을 십분 이해한다. 게임에서의 약속은 언제나 후차적인 것, 현실에 비하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 생산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실의 일이 아주 다급한 건 아니더라도 약간이나마 무게가 있는 상황일 때 게임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우울해진다
.

그날, 한 공대원은 부인의 생일이라고 조퇴를 했다. 특별한 날, 특별한 상황이다. 구속력은 다를지 몰라도, 누군가에게는 똑같이 특별한 날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었고, 비울 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만약 내가 메인탱커에게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메인탱커 없이 레이드를 진행하려고 했을까? 한창 공략이 진행중이던 때에, 아무 사유도 말하지 않고 지휘자가 출석하지 않았다면, 공대원들은 불안해했을 거다. 그렇다고 사유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 했을까?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건 엄연히 한 사람의 사생활이니까.



몸이 조금 안 좋아도, 친구나 애인과 싸웠어도, 어쨌거나 당장 컴퓨터 앞에 앉을 힘이 된다면 책임자들은 정시에 공격대에 참여해야만 한다. 아주 작은 희생, 아주 사소한 헌신일 수도 있다. 정말 컴 앞에 앉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천하에 없어도 못오는게 당연하니까. 힘겹지만 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올 수 있었을 테니까. 정말로 작은 희생, 사소한 헌신이다.

하지만 그 작은 희생, 사소한 헌신은, 공대를 유지하는 힘이기도 하면서, 또한 많은 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 일도 희생이다. 헌신한 만큼 사람은 누군가를 미워할 권리를 획득하기도 한다. 집단에 대한 소유욕 역시, 희생과 헌신에서 비롯된다. 슬프고, 우울한,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함정이다. 지금 당장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작은 희생, 사소한 헌신이 적체되면 노후한 모든 공대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희생이 쌓이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된다. 나도, 다른 누구도.

아마도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벨라를 넘고, 용기대장을 넘고, 화염아귀를 넘으면서
,
검은날개 둥지의 마지막이 점점 가까워지던 그때
.
우리는 은밀히

다음 투톱 체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공대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또 다른 전사와, 공대장을.

 

39. 공격대를 떠나는 사람들

*
이 챕터의 제목은
어슐러 르귄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에서 따온 것이다. 그리고, 용기대장과 벨라전 동영상을 만든 뒤, 화심과 오닉시아를 종합해 만들었던 동영상도 여기 덧붙인다. 이 글과 비슷한 내용의 것이기에. BGMOur farewell.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공격대를 떠날까? 그리고 떠나는 행위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대장으로서 나는, 늘 떠나는 사람들을 붙잡는 역할이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떠나야 하는 사람들은 잡지 않았지만, 떠날까 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은 잡아야 했다. 이건 우유부단한 태도만을 말하는 건 아니다. 돌이켜보니, '떠나겠다'고 말했을 때 내가 붙잡으려고 했던 공대원은 딱 다섯, 아니 여섯명이었다. 줄잡아 백 오십명 정도는 거쳐갔을 공격대에서, 오직 여섯 명뿐이다. 그외의 사람들은 떠나야할 때가 되었다고 말해왔을 때, 안타깝더라도 보내주었고, 이제부터 하려는 일이 잘 되기를 기원했다. 붙잡았던 여섯 명과, 붙잡지 않은 나머지 수십 명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나는, (공격대장이 아니었던 때이긴 했지만) 초대 공대장이 떠나려고 할 때 정말로 간곡히 붙잡았다. 왜냐하면, 그가 만들고 기초를 잡았던 공격대를 통해서 진짜 고통과 즐거움을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떠나려고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상태로 떠나는 것은 공대가 아니라 그 초대 공대장에게 아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붙잡았지만, 실패했다.

2
대 공대장이 떠난다고 할 때는, 잡지 않았다. 그건 친분이나 애정도의 차이 때문은 아니었다. 2대 공대장이 떠나는 사유는 그만큼 급박했던 것이고, 비록 라그나로스를 잡지 못하고 간 것이 안타깝긴 해도 그는 최선을 다 했고, 떠나야할 일이 생겨서 떠난 것이니까.

길어서 접습니다

다시 접습니다

두번째로 붙잡은 사람은 사제다. 네파리안 공략을 얼마 앞둔 어느날, 공대 결성 초기부터 메인힐러와 사제 반장의 자리를 지키던 이가 유학 준비를 위해 곧 그만두어야 한다고 알려왔다. 비슷한 이유로 떠나던 사람들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데, 이 사람은 붙잡았다. 딱히 개인적으로 친했던 사이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는 정말로 별 말도 없이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던 타입이었다. 유일하게 말이 많았던 경우가 전사 A-1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던 그 한 번뿐이었으니. 이 사람은 정말 네파리안을 쓰러뜨릴때까지만이라도 같이 할 수 없겠느냐고 간곡히 붙잡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이때쯤 나 역시 네파리안을 눕힌 뒤 공격대를 정리할 생각이었고, 그래서 창설 초기부터 쭉 고생해온 사람들과 함께 네파리안 공략을 하나의 엔딩 지점으로 삼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무던하면서도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 이런 공대원이 좀 더 남아주는 것이 공격대에 큰 힘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실패했다.

순서는 좀 더 뒤지만, 세번째, 네번째로 붙잡았던 사람들 역시 사제다. 사제라는 클래스가 갖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분들이 공격대 활동에서 오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각별히 견디지 못하는 성격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두 사제들을 잡은 이유는 동일하다. 한 사람은 앞서 언급을 한 번 했던 사제 B, 위에 말한 사제 반장이 떠난 후부터 쭉 메인힐러를 맡아 고생한 사람이다.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다른 현실상의 이유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인지라 붙잡았다. 한 번은 잡을 수 있었지만, 두번째로 그가 스스로 결심을 굳혔을 때는 잡을 수 없었다. 그쯤 되어서는 나 역시 잡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로 그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고 여겨졌을 때니까
.
사제 C의 경우는, 사제 반장이자 메인힐러였던 사람이 떠난 후 사제 반장의 역할을 맡았던 사람이다. 책임감도 많고 걱정근심도 많은 성격이라 잔소리도 많은 타입이었다.(!) 이것 역시 공격대에 대한 나름의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가끔은 이런 애정이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킬 때도 있다. 그렇게 돌아온 충돌에 상처를 받기도 하는 여린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문제로 공대를 떠나려고 했을 때 열심히 붙잡았고, 다행히 성공해서 지금도 같이 레이드를 뛰고 있다.

공격대장으로서 떠나는 공대원을 붙잡는 심리의 저변에는 세 가지가 깔려 있다. 하나는 오랫동안 같이 레이드를 즐겨온 '동지'가 떠나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슬픔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상 그런 이탈이 공격대의 전력에 마이너스이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이건 어쩌면 나같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결벽증일 수도 있는데, 어떤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고 '중간에' 그만둔 것 같은 어정쩡한 엔딩을 내고 싶지 않은 마음 탓이다. 물론 그 엔딩은 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이지만, 40명의 '게임'을 운영하던 사람으로서는 누구 하나 그렇게 못다한 이야기를 남겨두고 가는 것이 찜찜하기 그지 없다.

되돌이켜보면, 나는 각별히 고생한 사람들이 찜찜한 엔딩을 남기고 공대를 떠나는 경우에 한해서만 사람들을 붙잡았던 것 같다. 현실생활의 일을 준비하기 위해서, 라는 이유라면 잡지 않았다. 물론 떠날 때는 누구나 현실생활의 핑계를 조금씩 대지만, 그게 정말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아닌지는 분간할 수 있다. 가끔 돌이켜보면, 그렇게 잡은 것이 그 사람들에게는 좀 못할 짓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
사실 인간의 한계나, 인내심을 꼭 레이드를 통해서만 확인해야할 문제는 아니다. 재미있는 게임이 와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레이드를 해야만 와우를 즐겼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대장은 저렇게 떠나려는 사람들은 잡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저렇게 잡는 행위는 반쯤은 나의 생각이지만 반쯤은 공격대라는 무생물체의 의지이기도 하다. 공대장은 공격대라는 무생물체의 대변자이고, 개인의 호오, 취향과 무관하게 공격대가 필요로 하는 어떤 틀과 한계, 그리고 소속원의 성취를 생각하면서, 자신이 행사해야 마땅할 <인력>을 언제나 잃지 않아야 하는게 아닐까? 공격대가 힘들고, 레이드가 스트레스를 준다고 해서, 공대장 자신마저도 그렇다고 해서, 떠나는 사람들을 그냥 무중력으로 떠나보낸다면, 일말의 가능성마저도 포기하는 것이 된다
.

그런 고로, 붙잡는 행위에 대해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는 없다. 아직 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지만, 다른 별이 끄는 힘이 더 강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대장이 행사하는 인력은 그를 이 별에 발붙이고 남아있게 만드는 힘이 된다. 때로는 그렇게 붙잡아주는 말 한 마디를 바라고 떠나겠다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누군가가 나를 붙잡아주는 것으로 인해 자신과 이 공격대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고 말이다
.
무엇보다도, 그렇게 붙잡아봤자 떠날 사람들은 다 떠난다! 그건 그들의 자유의지일 뿐이다.

다섯 번째로 내가 붙잡았던 사람에 대한 다소 긴 이야기를 하자. 사실 '여섯' 명이라고 언급했는데 이 글에서는 '다섯명'째까지만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그 사람은 전사B였다. 다른 공대에서 사제로 활동했고, 전사A-1 이상으로 까칠했으며, 언제나 누군가와 좌충우돌 싸우고 있던 사람, 그리고 지금까지 공격대를 거쳐간 사람들 중에 2대 공대장과 더불어 나잘나 왕자 1,2호라는 별명을 몰래 지어주고 놀렸던 사람이다
. (...)
재능도 감각도 있지만 자신감이 그보다 더 위에 있고, 타협과 융화 스킬은 아예 찍지도 않은 것이 분명한 성격의 친구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인 공격대에서는 하루도 마음 조용할 날이 없었던 그가, 어느날 레이드 중에 갑자기 귓말을 보내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것도 하필 토나오는 용기대장 코스 진행 중에 온 귓말이라 각별히 지옥이었다
. -_-;;
이유 또한 참 그 다웠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던 공대원 누구가 아이템 문제로 자신을 약올린 것에 열받았다는 것이다. orz (.......) 집단 생활에 정말 맞지 않는 까칠한 성격인 것은 분명한데, 나는 그런 식의 성질부리기에 나름대로 익숙했다. 아주 가까이에서 저런 케이스를 늘 지켜보고 살았기 때문이다. (
백림원 힐끔)
세상이 다 그게 맞다고 해도 내가 싫으면 그뿐이다! 꼴보기 싫은 것과는 절대로 한 하늘을 이고 살지 않는다! 벌컥! <-- 이런 정서를 나는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런 성격이 있으니까. 이해하기 때문에 비난할 수는 없는 문제였지만, 그래도 공대장의 입장에서는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용기대장 코스의 그 미칠 듯한 랙속에서, 역시 미칠 듯한 귓속말로 열심히 붙잡았다. ㅠㅠ 이런 식으로 가는 건 말도 안된다. 성질 좀 죽여라. 문제가 있다면 이야기해서 풀자. 제발 좀! 하지만 예상대로 그는 떠났다. 정서는 이해하더라도 판단은 성급했다고 생각했고, 성급한 판단은 분명 아쉬움과 후회를 남길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공대에 남아있던 그와 친한 사람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그를 약올린 사람이 되어버린 공대원에게만 이 일의 전후를 알리고, 그는 일신상의 이유로 공대를 탈퇴한 것으로 처리했다
.

전사 B의 사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이 친구는 공격대가 전사를 필요로 하던 시기에 역시 예상대로 복귀했다. 한 입으로 두말한 결과가 되어버린 것을 무척이나 쪽팔려 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공대장이 고생하는 것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라고 복귀사유를 우기던 (...) 모습 역시 귀여웠다. (먼산
)
그런데, 이 친구와 공격대의 인연은 참으로 험난했다. 복귀해서 일주일이되었을까 말까 한 어느 날, 갑자기 카페에 기습적인 전사 B의 사퇴 게시물이 올라왔다. 이유도 구체적으로 쓰지 않고 그저 떠난다는 말만 있었다. 또 저번처럼 누가 삐지게 한건가 싶어서 불러다 캐물어보니, 사제로 활동하던 공격대와 우리, 두 공격대를 동시에 뛰면서 규칙의 충돌이 일어났고, 어느 쪽도 버릴 수가 없었던 그는 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이다. 양쪽 다 공대를 떠나고, 양쪽 다 캐릭을 지우겠다고 말이다. 이것 역시 참 그다웠다
. -_-;
나는 게임 시간이 너무 많아서 어느 한쪽을 정리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더라도,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말라고 권했다. 우리 공대를 떠나더라도 괜찮으니까 '적절한' 판단을 하라고, 그때까지는 양쪽 다 지우겠느니 하는 소리는 말라고 했다.

전사B: 하지만 너무 쪽팔리잖아요. 복귀해서 정말 안퀴라스도 공략하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실컷 잘난 척 해놓고 벌렁 그만둬버리다니.
: 살다보면 쪽팔리는 일이 한 둘인가. -_-;; 전사B님 잘 아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고민 있다는 거 이해할 테고 모르는 사람들한테야 쪽을 팔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냥 맘 편하게 선택해요
. -_-;;
전사 B: 다른 공대는 내가 지금 이 공대보다 훨씬 오래 뛴 곳이라서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어요
.
: 그럼 거기만이라도 열심히 해요. 안 섭섭해한다니깐
. --;
전사 B: 그럼 내가 공대장님 도와준다고, 안퀴라스 같이 정복해보자고 한 말이 다 뻥이 되잖아요. -_-;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지만 내가 믿는 사람들한테 거짓말 쟁이가 되는건 못참겠어요
.
: .......
전사B: 이것도 저것도 못택한다면 둘 다 버린다. 이게 내 스타일이에요
.
: (쿠어어어어어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남자애들이란 ㅠㅠㅠㅠㅠ 이 녀석은 분명히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삼각관계에 처하면 사랑하기에 둘다 포기한다 이러고 절규하면서 차 몰고 벼랑으로 떨어질 거야 ㅠㅠ )

어쨌든간에 설득해서, 감정적인 사퇴글은 지우게 하고,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기를 권했다. 타공대와는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되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지만 다시 두 공대 모두 활동이 가능해져서 겨우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싶던 다음날, 문제가 발생했다. 이건 전사 셋템 입찰과 관련된 문제로 불거진 것이라 더욱 복잡했는데, 말하자면 상황은 이러했다.

1.해당 사퇴글이 새벽에 잠깐 올라왔다가 내가 제일 먼저 보고 재빨리 접촉을 시도해서 설득하고 사퇴 의사를 취소시킨 뒤 글을 삭제시켰으므로, 전사 B는 탈퇴자가 아닌 정규공대원으로 나는 간주했다.
2.
잠깐 올라왔을 때 글을 읽은 공대원 소수는 전사 B가 탈퇴를 한 것으로 생각하고 , 다음날 레이드에 전사 B가 온 것을 OB가 도우미 온 것으로 판단했다. 더구나 전사 B가 전사 채널에 입장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다
.
3.
라그나로스에서 전사용 격노 아이템이 나왔을 때 전사 B가 입찰했고, 포인트 우선순위에 의해서 전사 B가 해당 아이템을 획득했다
.
4. 2
라고 생각했던 공대원이 의문을 품었고, 문의를 해왔다.

나는 생각했다.

1: 어떤 사유가 있건간에 사퇴글이 가볍게 올라왔다 내려갔다 한 것은 공대 규율의 측면에서 볼때 문제가 있다. 아무도 못봤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그 글을 본 사람들이 있는 마당에는 묻어놓고 갈 수가 없다. 그러니 밝혀야 한다.
2:
하지만 저런 사연을 늘어놓는 것은 정서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자칫하면 타공대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까칠한 성격의 전사B는 그런 고백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것 자체에 울컥해버릴 것이다. 그는 같은 공대원이라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선을 딱 그어놓고 있는 성격이니까
.
3:
그러므로, 설렁설렁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가는 다음 둘 중 한 가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
-
묻어놓고 가려고 하면 말썽 많은 전사 B를 비호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
-
감정에 호소하듯이 이 사람 나름대로 고민 많아서 그랬던 것이니 용서해주세요 라고 하면, 도마 위에 올라가 있던 전사 B지 성질에 못이겨 판을 둘러 엎을지도 모른다. (무협지에 나오는 성질 까칠한 남자애들은 해명 한 마디 하는게 자존심 상해서 종종 절벽 아래로 떨어지곤 한다. -_-;;)

한 공대원의 감정적인 행동에 대한 '공정한' 결정과, 전사 B의 자존심 양자를 다 고려해야만 하는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그래서, 전사 클래스 회의를 소집한 다음, 일단 까칠한 태도로 '내가 왜 그랬는지를 설명해주마' 라고 나서려는 전사 B의 입을 막고 (...그 입으로 해명하면 또 까칠한 소리 나올게 분명해서) 상황 설명은 내가 했다. 타공대와 이중활동에 트러블이 발생할 여지가 있어 양쪽 모두 캐릭을 지우고 떠나겠다고 벌컥해서 쓴 글이었다. 상황을 조사해보고 내가 일단 사퇴와 캐릭 삭제 모두 중지시켰고, 대화로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권했다고.
그리고 전사B에게는 공대를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지금까지 두 번째인데, 항상 판단이 너무 감정적인 경향이 있다는 것은 문제다. 지금까지는 넘어갔지만, 세번째는 없다. 그러니 또 다시 이런 충동이 일어날 때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신중히 생각해라, 라고 전사들이 보는 앞에서 이야기했다. 일종의 마지노선을 그어준 셈이다
.

이런 말을 듣는 전사들의 마음 속이 어떠했을지는 다 알 수 없지만, 믿어마지 않는 노대 전사 F가 상황을 매끄럽게 마무리해주었다
.

전사 F: 복잡하게 생각하실 거 없구요. 아까 전사 B님이 전사 채널에 들어와 있지 않아서 그런 전후 사정을 못듣다 보니까 오해 생긴 것 뿐이네요. 전사 B. 채널 꼭 들어오시고, 돌아온 거 환영해요. 앞으로 더 잘 해보죠
.

이렇게 해서, 전사 B의 두번째 탈퇴 소동은 마무리 되었다. 나는 세번째는 없다고 했다. 그리고 좀 더 세월이 지난 훗날, 전사 B는 결국 세번째의 탈퇴를 선언하게 된다. 레이드에 지쳤고, 다른 방식의 게임 라이프를 즐기겠다면서 그는 떠났다. 세번째의 탈퇴선언에, 나는 약속대로 그를 잡지 않았다
.

전사 B와 나눴던 대화의 한 토막이 생각난다.

: 그래도 어중간하게 뭔가를 끝내면 좀 아쉽지 않아요? 그게 라그나로스든, 네파리안이든, 쑨이든, 뭔가 목표를 정해놓고, 그걸 성취한 다음에 멋지게 떠나야죠. 그래야 좋은 엔딩이죠.

전사 B: 아뇨
.

전사 B: 레이드에는 엔딩이 없어요. 끝이 없어요
.

전사 B: 몹을 잡아서 끝을 내려고 해도, 또 새로운 인던 나오고, 또 새로운 몹 나오고
.

전사 B: 레이드의 엔딩은요. 자기가 끝내는 순간이 엔딩이에요.

이기적이고, 편협하고, 감정적이고, 좌충우돌하던 전사 B, 레이드 엔딩에 대한 이 말에 나는 무척이나 공감했다. 그래, 온라인 게임에는 엔딩이 없다. 자신이 게임을 끝내는 순간이 바로 엔딩이다. 자신이 레이드를 끝내는 순간이 바로 엔딩이다.

하지만 나는 또 생각한다. 마음이 견딜 수 있다면, 현실과 균형을 잡을 수만 있다면, 스스로 맺는 엔딩의 끝은 가능한 충분히 만족스러운 편이 좋지 않을까 하고. 누군가와 싸워서, 무엇인가 마음에 안들어서, 무엇인가에 지쳐서 맺는 엔딩이 아니라, 자신만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성취해냈을 때 멋지게 떠날 수 있다면 가장 좋은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충분히 만족하지 않는다면, 언제나 남은 미련이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만족스러운 엔딩은 약간 시시하니까
. ^^

그래서, 네파리안을 향해 한 발 한 발 전진하고 있던 그 무렵, 메인탱커와 다음 레이드 일정과 필요한 물약 준비에 대해 의논하던 중에 나는 문득 말했다.

: 요샌 말이죠.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이 와우의 엔딩을 어떻게 낼까, 하는 거에요.
그분: 허걱

그분: 놀래라
그분: 저도 요새 그 생각 많이 하는데.

그리하여, 공대장/메인탱커를 그만둘 꿍꿍이를 각자 몰래 하고 있던 투톱은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의논한 것은 차기 메인탱커는 어떤 사람이 될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렇게 마음으로 정해놓아봤자 계획대로 되기 어렵다는 것에는 둘 다 동의했다. 우연, 개인의 사정, 공대의 흐름이 더 많이 영향력을 미치지, 미리 짜놓고 어쩌고 하는 것은 대체로 무의미해지기 쉽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우리들이 공대장/메인탱커가 된 것도 우연과 필연의 조합에 의해서가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준비 안할 수는 없다. 진인사대천명이니까. 우연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예측과 준비는 거쳐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적벽대전을 앞둔 주유와 공명이 조조의 대군을 상대할 전략의 묘책을 의논할때

손바닥에 글자를 써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것처럼
,
각자 다음에 공대의 전술을 이끌어갈만하다고 여긴 사람의 이름을 대기로 했다
.
서로 말하고
,
'
' 했다
.
둘 다 같은 사람을 지목한 것이다
.
그 사람은 바로

 

40. 리더의 조건

''
그 사람은 전사 C였다. 왜 하필 그 사람이었을까? 이쯤에서 한 가지 변명을 해둬야겠다. 사실 '누구'인가를 염두에 둔다고 해도 손에서 손으로 권력이 이전되는 것처럼 넘겨주는 사람과 넘겨받는 사람 사이의 합의만으로 모든 일이 결정나지는 않는다.

전사 E가 메인탱커의 책임을 맡게 되었던 날의 이야기로 잠깐 돌아가보자.

전임공대장: 사실 XXX(전사E)님이 메인탱커 맡아주셨으면 좋겠는데요.
: 끄어억! (물론 속으로만
)

저말은애초에저분을염두에두고있었다는것처럼들리잖아대체무슨장점이있길래암만봐도너무조용하고소극적인성격인데가뜩이나유들유들한공대장한테한참익숙해져있던공대원들이어떻게저수줍은메인탱커말을듣겠어원래생각하고있었다는건암만해도뻥이고지금마지막까지남아있으니까할수없이강권하는거지

''''''라는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지만, 사실 여기에는 후일담이 있다. 뒷날, 내 대나무 숲이 되었던 전임공대장은 뜻밖에도 '설마'로 사람을 잡는 고백을 했다. 자기 혼자 결정할 수도 없고,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사 E가 맡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실제로 있었다고 말이다. '무슨 장점을 보고?' 라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그냥 믿음이 가서' (...)

사실 이런 저런 복잡한 고려나 예측, 그런 것보다도 이쪽이 더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경험과 시간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얻어진 믿음. 하지만 이 믿음이 늘 곧바로 응답을 얻게 되는 건 아니다. 우연과 필연이 함께 손을 잡지 않는 한은 말이다. 마침 그 사람도 상황이 되고, 마음이 있고, 조건이 되어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

그러므로, 전사 C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왜 하필 전사 C였는가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공격대의 리더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조건의 상을 그려보는 것 뿐이다. 그것이 전사 C여도,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길어서 접습니다

''''사실, 당시로서는 공격대의 전사진에 대한 믿음이 상당히 두터워서, 조금은 파격적일 수도 있지만 누가 하더라도 큰 차이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다만, 서브 탱커이자 전사 반장으로 고생한 전사 D의 경우에는 전사 E와 오랜 기간 같이 호흡을 맞춰왔고 책임을 져왔던 고단함이 있기에, 그것을 더 연장시키는 것은 무리할 수도 있다던가, (보통은 서브 탱커가 눈에 드러나는 역할을 하지 않기에 피로도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메인과 함께 시작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뒷받침을 해준 서브의 노고는 메인의 그것에 못지 않다.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노대전사 F의 경우에는 그 장점이 잘 발휘될 수 있는 것은 '대도오'의 자리가 아니라 '노대'의 자리라고 여겨졌다던가 하는 점은 고려해야 했다.

''
전사 C는 서브가 아닌 세번째 탱커, 3파티의 전사 역할을 주로 해왔다. 메인과 서브에 누구보다 가까우면서도, 한 걸음 떨어져서 현재의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 객관적인 위치이기도 했다. 게다가 공대 초기부터 메인/서브와 함께 활동하며 맞춰온 호흡과 신뢰가 있었다. 왠지 모를 '믿음'이 생기기에는 딱 적합한 상황이었다
.

''
하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또 한 가지의 특성을 전사 C에게서 보았다. 그건 내가 공격대의 리더에게 필요한 유일한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이다. 공격대의 리더에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단 한 가지의 조건을 무엇일까? 다른 모든 조건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말이다. 그것을 말하기 위해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해야겠다
.

아래는 막 안퀴라스가 개방되었을 무렵 내가 공대 카페에 올렸던 글 중에 고유명사만을 살짝 바꾼 것이다. 고백하자면, 이것은 천의무봉의 추리력을 자랑하는 내게 (...) 유일하고도(!) 치명적인 실패담이다. (...)

전사 C 스토킹 사건

레이드 종료 후에 전사C님한테 여쭤볼 것이 생각났음. 그러나 검색해보니 안계심. 어쩔까. 담 레이드 날 물어볼까 하다가 ; 자신의 치매 증세를 잘 알기 때문에 (생각났을 때 물어봐야지 ;) 혹시 부캐로 접속했나 찾아보기로 함. 공대 채널 검색. 알만한 분 안 계심 ; 고민고민하다가 길드명 Leg******로 검색. 몇명이 그물에 걸림 그 중에 유독 한 아이디가 눈에 확 들어옴. 60레벨 도적 도적L

오옷 --;; 이 네이밍 센스는 딱 전사C님인데??????? 게다가 얼핏 들은 바로는 다른 캐릭이 도적이라고 한 것 같기도... 그래, 아마 저 캐릭터일 거야! ;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예의 바르게 귓말 넣어봄. 이하 괄호안은 나의 독백 ;

: 안녕하세요
도적L: 누구신지?
(
오옷 - 저 껄렁한 반응은 틀림없는 전사C님 타입. -_-;;; 확신 70프로.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
)
: Leg**** 길드분이시죠
?
도적L: 네 그런데요
.
: 저는 그 길드원이신 전사C님의 공대원인데요.. 여쭤볼 것이 있어서 전사C님을 찾고 있는데.. 혹시 부캐로 접속했는지 알아봐주실 수 있을까요
?
도적L: ??? 전사C이라는 사람 없는데요
?
(
;;; 장난 치시는군 ;; 확신 75프로. 없을리가 없잖아! 하지만 장난이라면 받아주마! --++ 이 시점에서 이미 무슨 용건인지는 잊었다
)
: ~ 그러세요. 그럼 이만 실례
~
(
가는척하면서 떠봄. 만약 저분이 전사C님인데 장난을 친거라면 내가 찾은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그냥 가게는 안할 것이다
!)
도적L: , 그런데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건데요
?
(
오호호홋!! 물었다. 물었어........ 걸렸구나! 그럼 그렇지. 크하하
..)
: ~ 중요한 용건인데..(사실 뭐가 중요한지 잊었음;) 본인이 안계신다면 할 수 없죠.. 이만 가볼께요
~
도적L: [공명의 퀴라지 수정]

:

(-_-;;;
모르는 사람이 실수 귓말한 거라면 아이템 득한 걸 왜 링크하겠어! 이건 분명히 전사C님이군! 확신 80프로
)
도적L: 제가 안퀴라서 지금 바빠서
.
: 아 네
.
도적L: 그런데 그런 분 없는데
.
: , . 그나저나 도적L라는 캐릭명은 전사C이라는 이름과 참 네이밍센스가 비슷하시네요
. ^^+
(
나름 다 알아, 다 안다고의 압박을 마음껏 가함
;;)
도적L: 대답 없음

(
한참 기다려봄. 그래도 대답없음 ;; 슬슬 부아가 치밈. 물론 레이드로 바쁘다가 부캐로 한가하게 쉴 때는 가능하면 건드리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까지 발뺌을 하다니! 에에잇.... 그냥 둘 수 없다
!)
그래서
...
좀 오래 시간차를 뒀다가
...
비장의 필살기를 날림
(...........)
갑자기 귓말

: 전사C님 바보!!!!!!!!!
도적L:
????????????
: 앗 죄송 ^^ 방사
.
그리고나서는 혼자 매우 통쾌해함 -_-;;; 음하하하핫........ 간만에 속이 다 후련하군 캬캬캬
..
아무리 말하기 싫어도 그렇지 같은 길드인걸 뻔히 아는데 생까시다니! 두고보자! 계속 스토킹해주마. ~~ 라고 속으로 외치면서

누구 도적L 해서 자세히 보니..
악숲에 있던 그 캐릭은
..
길드명이
..
Leg****** Legion
이었..............
.
전사C님 길드는 LEG****** (...)

...........
.......
.....
....
...
..
..
...
삽질했네. .... ;;

ps: 아무튼 -;;; 전사C님한테 물어볼 게 있었느네 지금은 까먹었음 ;;; 얼른 다시 생각해내야지 ;


'' 크윽, 분하다. 이 쪽팔린 일화를 공개하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밝혀졌을 때 전사 C의 반응이 곧 내가 말하려는 바, 리더의 '필수적이고도 유일한 조건' 에 대한 가장 생생한 샘플이기 때문이다.

''''
공대원들은 저 이야기를 듣더니 '삽질도 포크레인으로하셨군요' 라든가 '이유도 모르고 당한 도적L이 불쌍하다' 등의 반응을 보이면서 웃겨 죽으려고 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원인이었던 전사C는 딱 한 마디 이렇게 말하더라
.

전사C: 바보


ㅠㅠ ㅠㅠ ㅠㅠ ㅠㅠ 이 얼마나 냉정한 처사인가. 흑흑.

눈물을 닦으면서 설명하자면, 나는 공격대와 같은 조직의 리더에게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냉정함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외에는 필수조건이 아니다. 냉정한 사람은 자제력이 강하고, 자제력이 강한 사람은 절대로 자신과 조직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것 외의 나머지 영역? 탁월한 게임감각,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 자산이나 포인트 관리를 잘하는 꼼꼼함 기타 등등. 이런 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닌 보너스 같은 것이다. 리더는 냉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외의 나머지 부분은 공격대의 다른 사람들이 채워줄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편이 더 옳기도 하다
.

탁월한 전술가, 마음 푸근하게 상처를 위로해주는 사람, 꼼꼼하게 놓치고있는 것들을 챙겨주는 사람, 노대와 같은 조언가, 누구보다 굳건한 버팀목. 분위기를 띄워주는 무드메이커, 심지어 자잘한 분란을 일으키며 공대원 대다수의 미움을 차지하는 악동 역할까지. 이런 모든 역할은 반드시 공대장이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40명의 바보들이 저마다의 롤을 찾고, 그 역할들을 즐길 수 있을 때가 바로 공격대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 중세의 신분제도와 연결된 직업별 분화를 상상의 토대로 삼아 클래스(직업) 기반의 롤 플레잉 게임은 탄생했다. 보통, 마법사는 강력한 마법을 행사하지만 물리적 방어력은 약하다. 전사들은 근접전에는 강하지만 아웃복싱에는 약점을 보이기 쉽다. 클래스 기반의 롤 플레잉 게임에서 '각자의 역할'이 성립하려면, 장점과 약점 모두가 주어져야 한다. 공격대 역시 롤플레잉이라는 점이라는데서는 동일하다. 공대장에게, 메인탱커에게 완벽을 요구하지 마라. 그는 단지 구심점이 되어주기만 하면 된다. 전체의 상황을 보고, 감정에 휩쓸린 판단을 피할 수 있는 '냉정함'만 간직하면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39, 38명이 하면 된다. 그게 당연하다. 그래야만 공격대는 40명의 것이 될 수 있고, 그래야만 공격대는 자신만의 독특한 빛을 낼 수 잇다.

어떤 사람의 인생에서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있는 것처럼
40
명의 바보들이 모인 공격대 역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있다.
우리에게 그건 어떤 순간이었을가
?
어떤 사람은, 오닉시아를 칠전팔기 끝에 눕히던 그때라고 할 수도 있다
.
어떤 사람은, 벨라스트라즈를 잡았던 그때라고 할 수도 있다
.
네파리안을 눕히던 그날을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빛나던 순간은.

 

공격대 이야기 - 41 : 마지막 임무

게임/디지털

2006/08/27 19:56

가장 빛나던 순간은, 지금 이야기하지않겠다. 그것은 공격대이야기의 맨 마지막 장면을 위해서 남겨두기로 하겠다. (음하하핫)

용기대장을 넘은 뒤, 화염아귀- 에본로크-플레임고르, 일명 비룡3형제를 정리하고, 네파리안 앞의 마지막 수문장인 크로마구스까지 해치워, 공격대는 마침내 검은날개 둥지의 최상층에 도달했다.

그곳의 시간은 언제나 황혼이다. 지붕이 없는 폐허 같은 건물의 옥상에 덩그러니 놓인 옥좌 위에 , 빅터 네파리우스는 인간의 형상으로 앉아서 공격대를 맞이한다. 위를 올려다보면 온 하늘이 노을로 가득 차 있다. 황혼의 시간은, 최후의 결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변화의 때이며, 파멸의 순간이기도 하다.

 

네파리안을 처음으로 대면하던 그날은, 안퀴라스가 오픈되던 바로 그즈음이었다. 벨라보다도 더 쉬운 놈이 네파이기는 하지만, 벨라를 빠르게 눕혔다고 네파도 반드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네파리안은 검은날개 둥지의 최종지점에 있는 녀석이고, 네파리안 대면 자체가 안정적이 되려면 검은날개 둥지의 전코스를 변수없이 클리어할 수 있는 안정적인 공대 전력이 확보가 되어야 한다. 한 공격대가 XX 네임드에서 좌절하고 있다는 것을, XX 네임드의 공략법을 못 찾았다는 이유만으로 해석하는 것은 단견이다. 특히 한 던전의 보스인 경우에는, 그 보스 자체의 난이도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해당 던전 전체 코스의 공략에 전반적으로 적응하고, 그 공략법의 총화인 보스에게도 적응이 되었을 때, 공격대가 하나의 악기라면 40개의 현이 모두 최적의 상태로 튜닝이 되었을 때 클리어가 가능하다.


숙련된 공격대라면,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한 가지 믿음만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어려운 몹이라도 해법이 있고, 언젠가는 잡히기 마련이라는 믿음. 검은날개 둥지의 최종보스인 네파리안은 거만하게 우리를 바라보았지만, 그 삐뚤어진 검은용의 죽음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였다. 하지만 그때가 언제일까? 우리는 가능한 안퀴라스가 열리기 전에 검은날개둥지를 졸업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시간은 너무 촉박했다. 첫 대면 때 우리는 네파리안전의 기본적인 특성을 이해했고 (, 저놈은 본신공력보다 쫄따구 숫자가 문제라는 것을 파악했고 -_-;;), 그 다음주, 두번째 대면을 맞이했다. 바로 우리 서버의 안퀴라스 오픈 이벤트가 저녁무렵 예정되어 있던, 그 날이었다. 안퀴 오픈 전에 검은날개 둥지 졸업을 원한다면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검은날개 둥지의 모든 것을 결산하는 네파리안전. 나는 네파리안 킬의 초읽기가 들어간 상태에서 또 하나의 결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건, 공대장과 메인탱커의 교체였다.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렇다고 언제 네파리안이 누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미리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대의 전력은 항상 변수를 안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네파에서 한달 이상을 끌 수도 있다. 미리부터 지휘부의 교체를 예고해서 한참 잘 조율된 공격대에 불안을 심어줄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은, 네파리안을 눕힌 다음으로 미뤘다.

길어서 접습니다

다시 접습니다

네파리안의 몹디자인은 지나치게 성실할 정도로 검은날개둥지의 '모든 것'을 총화한 녀석이다. 아니, 거기까지 온 공격대의 모든 클래스에 대한 평가를 총화한 것이라고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네파리안이 각 클래스별로 일종의 약점을 까밝히며 외치는 대사들을 생각해보자.

전사에게는 '네가 더 세게 내려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유혹한다. 방패가 되기를 포기하고 피의 욕망에 충실하라는 사탄의 울부짖음(?)이다. 사제에게는 치유가 곧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실증해보인다. 죽은척으로 수리비를 아낄 수 있는 (...) 사냥꾼에게는 원거리 무기의 내구도를 0으로 만드는 최악의 저주를 내린다. (...) 이런 식으로 모든 클래스의 최대 장점을 '반사'하여 최대의 약점으로 만든다. 사실 굉장히 많은 판타지소설, RPG 게임, 애니메이션 등에서 히어로가 마지막에 상대하는 최고의 적은 왕왕 자신의 그림자, 클론, 내면의 자기 - 한 마디로 자기 자신인 경우가 많다. 네파리안은 이를 테면 그런 '자신과의 싸움'을 이미지한 보스인 셈이다. 컨셉은 강렬한데 실제로 네파리안에게서 그만큼의 위협을 못 느끼는 것은 여기까지 온 공격대 대부분이 이미 지피지기에는 통달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면도 있다. '좀 더 약점을 찔러주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말이다. 예를 들어 네파리안이 성기사를 지목할 때는, 성기사의 '보호의 축복'을 네파에게 강제로 써서 일정시간 물리데미지를 받지 않는데, 이것보다는 성기사의 보축을 아군의 근접전 캐릭중 랜덤하게 걸었주었다면 좀 더 위협적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메인탱커에게 '보호의 축복'이 걸리면 메인탱커는 물리 데미지를 받지 않지만 순간적으로 어그로가 튀고 생난리가 났을 텐데 말이다 (...아쉽
)

어쨌거나 네파리안 전의 핵심은 오히려 네파리안이 용의 모습으로 변신하기 전, 용기병들이 가득 쏟아져나올때 얼마나 빨리 그 용기병들을 해치우고, 얼마나 많이 생존하느냐다
.
네파리안 대면 2주차. 송곳니방 오크들과의 집단전을 정면으로 뚫고 온 우리 공격대는 거의 전원이 생존한 상태로 네파리안전 2차에 진입했다. 있는 마나와 기력과 분노를 모두 짜내어 네파리안의 피를 깎는 동안 머리속에는 검은날개 둥지의 지나간 한 장면 한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런 길들을 밟고 우리는 마침내 또 한 던전의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 마침내 네파가 누웠다. 그 거대한 검은 용의 동체가 땅에 쓰러지자, 언제나 황혼인 그곳의 하늘이 좀 더 많이 보이게 되었다.


네파리안을 눕혔고, 안퀴라스 오픈 전에 검은날개둥지를 클리어했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 정한 '가장 적당한 공대장 사퇴의 순간'도 왔다.
첫 네파리안 루팅을 진행하기 전에 나는 '공격대를 위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합니다' 라는, 화산심장부 남작 게돈이 죽기 전에 나오는 멘트를 날렸다. 몇몇 공대원이 어라? 했지만, 곧바로 진행된 루팅 상황으로 관심은 돌려졌고, 레이드는 종료되었다
.

그리고 각 클래스의 대표자 회의를 소집했다. 그 자리에서 공대장과 메인탱커의 사퇴 의사를 밝혔고, 새로운 공대장/메인탱커를 선임해주기를 요청했다. 하필 그 순간을 택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은 메인탱커가 현실의 일로 점점 바빠질 수밖에 없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그래서 다음 체제를 준비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둘째로, 투톱으로 출발한 만큼 나 역시 영원히 공대장 노릇을 할 수는 없고, 안퀴라스라는 새로운 목표도 생겼고 공격대 자체의 결속도 단단한 이때, 전임 공대장이 공격대에 아예 남을 수 없을 정도로 급박한 사정이 생길 때 떠나는 것보다는 신임 공대장을 보조해주면서 차분히 인수인계를 할 수 있을 때 물러나는 편이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의 1차 사퇴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 공대장과 메인탱커 교체를 하려고 소집한 회의에서, 역설적으로 클래스 팀장들 전원이 계속 '함께' 각 클래스를 책임지며 조금 더 일을 나눠받겠다는 약속(..)을 확인하고, 몇몇 분야의 스탭을 더 확충하고, 메인탱커와 공대장은 재신임을 얻어(...) 다 함께 안퀴라스를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자는 결론에 이르러버렸다. (....그나마 각 클래스 팀장들에게 물귀신 작전을 쓴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보복(?) 이었다
-_)

사퇴 실패의 요인은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나, 메인탱커에게는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공격대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만큼, 공대원들도 우리에게 애착을 가지고 있었고,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단호한 작별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이별을 위한 준비가 아직 덜 되었던 셈이다.

그래서,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던 것은 마지막 임무가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 깨달은 것이 있다. 언젠가, 정말로 내가 공대장을 그만 둘 때는, 어쩌면 약간의 상처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느닷없이 공대장/메인탱커를 맡아 벌벌 떨면서 네임드루팅을 진행하고 오닉시아에서 일곱번이나 쓰러졌던 그 불안한 투톱이 이제는 구관이 되어버렸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속담은 좀 씁쓸하고 슬픈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공대를 책임져온 구관들에게 공대원들 자신도 어느 정도는 적응이 되었고, 사소한 지휘상 오류가 있더라도 참아줄 수 있을 만큼 정도 들었다. 구관들에게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관대하다. 그만큼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니까. 실제로 어느 정도는 '명관'이기도 할 것이다. 잘하는 점이 하나도 없다면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것 자체가 사실 불가능하고, 그만큼 오래 하면서 쌓인 경험도 무시할 수는 없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맨 공격대가 아니라면 지휘체계의 교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 공격대가 '잘 돌아가는 것'은 공대장이나 메인탱커에 의해서가 아니라 공대원들이 전부 공유하고 있는 원칙 준수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한 사람의 힘이 아니다. 사람에게 기대한다면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사람이 지칠 때, 그 사람이 무너질 때, 그 사람이 공격대를 떠나야할 때.

그런 의미에서, 나는 6개월 정도가 사실 하나의 지휘체계로 움직이면서 가장 트러블이 없는 임기라고 생각한다. 6개월은 사실 조금 짧고, 1년은 조금 긴 면이 있다. 6개월을 재임기간으로 잡고, 1-2개월 정도가 신구 함께 인수인계와 적응훈련을 하는 기간이면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공격대의 입장에서는 가능한 한 체제가 견고한 편이 나을 수도 있으므로 1년까지도 선택할 수는 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상황의 사람들이 아닌 이상 1년이나 현실의 '부름'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 이상은 그러하지만 결국 이런건 공격대가 처한 상황에 따라 판단할 수밖에 없는 문제긴 하다. 정기적인 교체 시기, 재신임 시기를 정해두는 것도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안 그러면 언제나 공대장의 교체는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아직도 다 정리하지 못한 미련 때문에, 조금 더 이 나무 아래 머물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결국 재신임을 받아들여 다시 안퀴라스를 준비하기 시작하면서, 한편 기쁘기도 하고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 가장 좋을 때 떠날 기회를 놓쳐버렸기 때문에, 이제 필연적으로 내 '공대장'으로서의 엔딩은 비극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의 선택이니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미리 각오도 해야 했다. 내가 공대장으로서 치러야할 정말 마지막 '임무', 공대원들에게 상처를 주고, 나 역시 상처를 받고, 지칠 만큼 지쳤을 때 놓아버리는 것. 더 이상 한 발도 나갈 수 없을 때 그만두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는 예감이 들었다
.

이 예감은 맞아떨어져서, 그로부터 좀 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첫번째 사퇴를 결정했던 검은날개 둥지의 최상층 황혼 속에 누운 네파리안의 시체 앞에서 나는 두번째이자 마지막인 '사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좀 더 먼 훗날의 이야기다.....

원맨 공격대가 아니라면, 소수의 카리스마에 기대는 공격대가 아니라면, 공격대의 규칙 안에 반드시 운영진의 정기적인 교체와, 전 공대원의 운영진 활동 의무가 명시되어 있어야만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24시간을 다 투자하는 일부 폐인(...)들만큼 게임을 할 수가 없어서 운영진을 맡는 것은 무리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정말 하지만, 공격대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면 그건 책임도 의무도 권리도 다 같이 동등하게 나눠가진다는 것이다. 공격대가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면, 공대장이 공대 일에 좀 덜 시간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지휘자일 경우에는 공대원 전체가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좀 더 투자하는 공대장을 만났다면 또 거기에 맞춰가면 된다. 이렇게 의무와 권리를 동등하게 나눠갖지 않는다면 언제나 공격대의 운영체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릇'이 안되서 공대장/메인탱커 못한다는 것은 겸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회피이기도 하다. 누구도 처음부터 그릇인 건 아니다. 처음엔 다 흙일 뿐이다. 좀 더 좋은 흙을 고르는 건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릇을 만드는 건, 일단 틀에 올려놓고 그 다음에 모양을 잡아나가면서 가능하다.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게 아니다. '할수 있다면' '해야 한다면' '하면서 배워나가면' 된다.

어쨌거나, 1차 사퇴 시도에 실패한 뒤 (...) 우리는 여전히 라그나로스를, 네파리안을 잡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퀴라스 도전을 시작했다. 아래는 검은날개 둥지를 총결산하면서 찍은 동영상이다.

네파리안을 잡는 횟수가 늘어날 수록,
나는 한 가지 걱정에 시달리게 되었다
.
어찌 보면 그간 운영해온 공대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평가'받는 시험이라고도 할 수 있었던

그 걱정거리는 바로

 

42. 마검 아쉬칸디

나를 사로잡은 걱정거리는 오직 하나, 마검 아쉬칸디가 드랍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

아쉬칸디, 정확히는 기사단의 대검, 아쉬칸디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양손검은 네파리안이 드랍하는 무기로, 스펙 면에서 최강을 자랑한다. 지나치게 좋은 무기라서, 이 아이템의 소유권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공대의 숨겨진 분열이 표면화되기도 한다
.

''
아이템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이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누가 획득하든 그것을 축하해주고, 자기가 획득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지울 수 있다면 그건 단지 '아이템'일 뿐이지만, XX클래스가 먹은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거나, 그건 원래 XX가 먹었어야 하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떤 아이템이든 마물이 될 수 있다. 마이 프레셔스! 그건 내 반지야
!

''''''''
어느 아이템을 누가 먹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는 것에 대한 논란은 와우 안에서는 그야말로 네버엔딩스토리다. 사람마다 판단이 다르고, 대응도 다르다. 원색적인 비난도 있고, 은근한 비난도 있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지만'이라든가 '그래도 XX가 더 잘 쓸 수 있죠' 라는 온건한 비판 역시 어떤 아이템에는 특정한 '소유권' 혹은 '효율'이 있다고 암시하는 태도다
.

여러 클래스의 이해와 욕구가 얽힌 아이템이라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아주 오래전 공대장이 되기 전에 경험했던 일이다. 줄구룹 20인 레이드에 참여했다. 공개로 모은 막공대였지만 그 인원 중에 1/3 정도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예전에 몸담고 있던 길드의 길드원들이었다. 길드를 나온 이유는 특별한 불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 성격상 따로 특별한 목적없는 친목 단체활동을 오래 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작고 가족적인 길드였기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가족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듯이 가까운 만큼 또 나름의 고민거리도 많다.

''''''''''''''''''''''''''이야기가 살짝 곁길로 빠지는 것 같지만, '친목'을 유일한 목표로 하는 '길드'는 사실 '길드'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패밀리'라는 쪽이 맞다. '길드'는 어쨌던간에 조합이고 조직이다. 목표를 두고 움직여야 하고, 길드원의 이익 추구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게 원래의 '길드' 아닌가? 그런데 사실상 대부분의 '소수 길드'는 내용상 '패밀리'일 수밖에 없다. 그게 현실이다. 소수 길드에 들어가서, 길드채널로 오가는 농담 따먹기나 약간의 정보 교환, 힘들 때 하소연, 뭐 이 정도의 패밀리적 활동 이상의 것 - 이를 테면 체계적인 길드 사냥이나 뚜렷한 목표의식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길드원끼리 인던도 같이 안간다고 투덜댈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게임을 하면서 가장 신선한 만남을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오다가다 만난 인연들 속에서다. 그런 기회를 다 포기하고, 오직 길드원끼리만 움직일 것을 강요하는 건, 이를 테면 저녁밥은 온가족이 모여서 먹는 것이 당연하니 친구,애인과 외식 금지하고 무조건 6시 전에 집에 들어와 밥상 머리에 앉으라고 강요하는 가장과 같은 소리다. '소수 길드' '길드'라고 쓰고 '패밀리'라고 읽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패밀리'에게 '길드'에게나 할 법한 기대를 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딜레마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깨달았을 때 나는 길드를 나왔다. 왜냐하면 내 능력과 성격상, 패밀리 구축에 투자할 시간도, 마음의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패밀리는 좀 더 외로움을 많이 타고, 눈에 보이는 성과나 목표보다도 유유자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패밀리 안에서 길드적 활동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면 (한마디로 가족들끼리 각자 직장은 때려치우고 다함께 사업체라도 하나 차려서 움직여야 한다고 빽빽대는 녀석이 있으면) 패밀리는 패밀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받아 여러 가지 문제에 휩쓸리고 만다.




길어서 접습니다


''''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자. 예전 길드원 다수가 포함된 줄구룹 레이드를 돌고 있었는데, 초반부터 공개로 모집된 한 성기사가 무척이나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 왜, 있잖은가. -_-;; 힐보다는 양손무기 들고 뎀딜하기 바쁘고, 축복도 제때 안 뿌리고, 그러면서 자기 존재 드러내기에 여념이 없어서 성기사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지휘(!)까지 하는 타입.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좀 더 너그럽게 볼 수도 있었던 문제였지만 공격대 활동을 막 시작한 참이라 한참 '닥힐 성기사' '좋은 성기사'라는 오만한 자의식에 빠져 있던 나는, 아무튼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
그러던 참에 몹이 줄리안의 호랑이 가죽 망토라는 것을 드랍했다. 옵션은 정확히 생각 안나지만 민첩과 적중율 등, 대체로 도적이나 사냥꾼 클래스에게 제일 중요한 스탯이 붙은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하필 그 성기사가 손을 했다. 공대장은 좀 당황한 듯, "XX. 이건 도적이나 사냥꾼님이 드시면 더 좋을 것 같은데요." 그래도 그 기사는 "저 손하면 안되나요? 저도 먹고 싶은데요 ;;" 라면서 울상을 지었다. 공대장은 곤란해했지만, 성기사가 못쓸 템도 아니고 막공대에서 1입찰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한 것이니 딱히 막을 논리도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입찰을 진행하기로 했다
.

안 그래도 억하심정 (...)이 있었던 내게 공대장이 권고하는데도 나서겠다고 하는 기사가 곱게 보였을리가 없다. 분노한 상태로 역시 나도 입찰해버렸다 (...) 그리고 나는 분노하면 다이스가 폭발한다 (...) 1등을 하고 루팅하는 사이 사실 무척 망설였다. 내가 원한 템도 아니었고 주로 레이드만 뛰는 내게 그 아이템을 쓸 시간 자체가 많지는 않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이미 1등을 해버린 상태에서 다시 양보를 하고 분배를 하는 것은 상황상 다른 종류의 트러블을 야기시킬 것 같아 결국 루팅을 했다. 그리고 공대장과 예전 길드의 마스터에게 귓말로 이런 저런 연유에서 입찰했었다고 말을 전하고 양해를 구했다
.

''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후 다시 비슷한 방식으로 줄구룹을 가게 되었을 때, 똑같은 상황이 발생했다. 역시 예전 길드원들 다수에, 나머지는 공개로 모집한 파티였지만 문제의(!) 그 기사도 또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민첩인가 크리가 잔뜩 붙은 '반지'가 드랍되었다. 예의 그 기사가 또 손! 공대장 만류와 설득! 실패! 할 수 없이 그냥 입찰 진행! 분노한 나 다시 손! 또 주사위 크리
! (...)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졌다. 예전 길드원들 중 두 사람이 그 상황에서 화를 버럭내고 귀환해버린 것이다. 사실 나는 징벌트리 쪽을 탄 뎀딜형 성기사로 키울 여력은 없었기 때문에 저번날 획득한 망토나 오늘 이긴 반지나 크게 쓸모가 없었고 (나중을 위해 먹어둘 수는 있겠지만 그게 꼭 최우선순위라고 할 수는 없었고) 망토 건때 루팅하면서도 후회했던 기억이 있기에 가능한 도적이나 사냥꾼이나 전사가 먹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사위 순위를 검토하고 (2위가 누구였는지를 살펴보고), 예전 길드의 마스터에게 귓말로 길드원중 도적이나 냥꾼에게 넘길 방법을 의논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길드원에게 비난을 들었다. 순간 피가 싸늘하게 식었다. 반지는 공대장의 중재로 그 자리에 남아 있던 길드원이 아닌 다른 도적에게 넘어갔다.

''''''''이 상황에서 어떤 과실이 있는가를 되짚어보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첫째, 나는 그 기사의 치명템 입찰에 분노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닥치고 힐만 하는 기사가 좋은 기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것은 하이브리드 클래스의 특성을 무시한, 오만한 태도였다. (기사의 적은 때로 기사일 수 있다 (...)) 물론 그 기사가 닥힐을 안해서 미워한 건 아니고, 까불까불 놀면서 '! ! 해제!' (...) 라고 명령한 그 태도가 심기를 건드린 거긴 하지만 말이다 (...말할 시간 있으면 너도 하란 말이야! --) 어쨌거나 방어력/공격력/치유력 세 방면에서 각각 퓨어클래스만큼 100점의 효율은 못내도 골고루 60-70점은 내는 능력을 가진 것이 성기사의 기본 특성이고, 하이브리드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그 '어중간함'을 장비와 플레이 감각으로 조화시켜서 골고루 팔방미인을 만들어보는 것이 퓨어클래스를 키우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재미를 준다. 그런 의미에서 하이브리드에게는 '퓨어 클래스'가 들면 100점의 효율을 낼 템이라도, 한 방면의 60점을 이루기 위해 입찰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 나는 그 기사의 까불까불한 태도를 미워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의 치명템 입찰을 미워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이런 편견 때문에, 또 하나의 우를 범한 셈이다. 어차피 기사에게도 사용가능하고, 용도가 분명한 아이템이었다. (설퍼라스를 만들고 나서 적중템이 없어 맨날 빗나감이 뜨는 걸 보면서 적중 안 맞춘걸 얼마나 후회했던지. ㅠㅠ) 분노로 입찰하고, 1등한 다음에는 마치 먹어서는 안될 템을 먹은 것처럼 양심의 가책씩이나 느꼈으니 비정상적으로 도적이나 냥꾼에게 넘길 궁리나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물밑 뒷거래로 입찰의 방향성을 지키려고 하면, 입찰의 공정성은 다 뭉개진다. 한 사람이라도 '먹을 생각도 없는 템을 왜 굴렸습니까?' 라고 이의제기를 한다면 방금 굴린 주사위 자체가 다 무의미해지는 거다. 분노와 인정, 두 가지 감정에 휘말린 삽질이었다고 생각하고, 두 번 다시 그따위 입찰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_-; 먹으려면 확실히 먹어주는 것이 뒤끝이 없다 (...)

두번째는 공대장의 과실이다. 만약 공대 구성원 중 대다수가 아이템의 클래스별 입찰 제한을 원했다면 출발 당시부터 그 원칙을 공격대 모두에게 인지 시키고 가는 것이 옳았다. 입찰 상황에서 기사의 치명템 입찰을 막으려고 시도한 것은 미봉책이다. 첫번째는 예측 못한 상황이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두번째에 비슷한 구성이 되었다면 역시 출발 전에 확인했어야 하는 문제였다. 길드원을 설득했던가, 아니면 기사를 설득했어야 했다. (물론 그 기사가 입찰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입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공격대 전원과 하나의 원칙에 합의했어야 했다. (그게 어떤 쪽이든
)

''''''''
세번째는 치명템을 획득한 나에게 비난을 퍼붓고 간 예전 길드원들이다. 이들의 문제점은 그 비난이 '공개적'이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과 원칙이 다른 타인의 입찰 행위에 대한 평가는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문제다. 다만 그 평가를 드러내는 방식은, 상대의 과실에 걸맞는 무게로만 이루어져야지 그 이상으로 진행되면 오버다. 문제의 입찰과정이 진행된 '공개적'인 상황을 되짚어보자면 이러하다. 치명템이 드랍되었다 - 한 성기사가 입찰의사를 밝혔다 - 공대장은 재고를 요청했다 - 그 성기사는 거부했다 - 공대장은 성기사의 입찰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해당 성기사 이외의 다른 사람도 입찰권은 확인된 것이다. 만약 '그 기사'만 입찰을 허락했다면 그건 더 오류다) - 다른 성기사도 입찰했다 - 주사위 결과 다른 성기사가 획득했다. 만약 제대로 비난을 해야 했다면 공대장이 해당 기사의 입찰을 재고해주기를 요청했을 때 공대장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면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아무 말도 안한 이상은 전원이 '성기사의 치명템 입찰에 동의'한 것이니 누가 먹더라도 그에 대한 비난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비난을 하더라도, 원칙을 확인할 때 침묵했던 것처럼 비난 역시 침묵 속에서, 그들만의 세상인 길드 채널에서 했어야 했다.


'' 이 경험은 나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번째로, 아이템 입찰에 대해 감정이 개입한다면 그게 어떤 것에서 기인했든 반드시 말썽이 일어난다는 것. 두번째로, '형님 언니 오빠 누나' 하면서 간도 빼줄 것처럼 굴던 사람들도, 아이템 문제가 개입하면 안면 싹 바꿀 수 있는 것이 인정이라는 것. 세번째로, 어떤 상황이든 공대장은 전원이 합의하고 승복할 수 밖에 없는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전체를 위해서 가장 올바른 태도라는 것.

''''''''
그 교훈에 따라 역시 아이템 입찰에 대한 나만의 원칙도 새로 정했다. 첫째, 누가 먹어가든 나와 무관한 아이템에는 관심 끊는다. 둘째, 양보와 배려는 ''는 하더라도 ''에게는 기대하지 않는다. ''가 양보할 때는, 그 사람이 그 아이템을 먹고 내일 와우를 접는 한이 있더라도 후회하거나 비난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만 한다. ''도 나에게 그럴 것이라는 기대는, 설령 상대가 예전에 내게 양보 받았던 사람이라고 해도 하지 않는다. 셋째, 어떤 경우든 규칙의 공정성과 명확함을 최우선으로 신경쓰고, 일단 결정되면 그 이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공대장으로서 공대의 아이템 분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나는 위의 원칙들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메인탱커에게 아이템 밀어주기는 허용하지 않겠다고 외쳤던 것이고, 내가 볼 수 있는, '공개적인' 공대 채널에서의 입찰은 오직 단 하나 명문화된 규칙, 포인트 우선순위에 의해서만 판단할 뿐, 어느 클래스가 드는 것이 더 효율적인가 라든가, 누구는 연속적으로 아이템을 먹었으니 이젠 좀 다른 사람이 먹었으면 좋겠다라든가 하는 부분은 고려에 넣지 않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하지만 집단은 규칙에 의해서만 굴러가지 않지요. 규칙에는 허점이 있기 마련이고, 그거때문에 피해를 보는 사람도 있구요. 클래스 자체 내에서의 합의나 서로서로 신경써주는 배려 같은게 더 플러스 요인이 될 수도 있어요>

''''''''''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영역이 다르다. '배려'는 플러스의 차원이다. 이건 공대장이 할 일이 아니다. 공대장은, 단지 '최후의 보루'일 뿐이다. 규칙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면, 배려 역시 완전하지 않을 경우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공대장이 지켜야할 것은 배려도 인정도 효율성도 모두 합의되지 못하고 아이템을 둘러싼 프리포올의 무한대전 상태가 되었을 때, 최후의 보루로서 규칙을 수호하는 일이다. 만약 공대장에게 '배려'를 요구한다면, 그건 양날의 칼이다. 공대장에게 '배려'를 요구할 때 동시에 '편파적인 진행'의 독도 같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신이 생각할 때 좋으면 배려고 나쁘면 편파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

''''
그러므로, 나는 어디까지나 그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 자신이 필요성을 느끼고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지만), 포인트가 더 높은 사람에게 아이템 루팅을 허락하는 것 외에는 일절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배려는 공대장이 조정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공대장이 해야할 일은 배려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로 흔들리지 않는 공격대의 분위기를 '평소'에 유지하는 것이다. 신뢰가 두터울 수밖에 없는 운영을 해왔다면, 배려는 저절로 일어날 것이고, 설령 일어나지 않더라도 그것에 화내고 불만을 터뜨리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관계가 성립되어 있을 것이다. 만약 아니라면 그건 공격대의 인화 수준이 단지 그정도뿐인 거지, 해당 공대원의 '개념없는 입찰'이 문제의 원인은 아닌 것이다
.

3
일에 한 번 갈 수 있는 20인 인던의 한낱 파템 망토로 인해 위의 예시와 같은 복잡하고 씁쓸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와우다. 하물며, 지금도 그 명성이 사라지지 않는 절대지존도검 (...) 아쉬칸디야 말해 무엇하랴. 마검이라고 불려 마땅한 무서운 아이템이다
.

''''''''''
원래 회의적인 인간이었던 나는, 화산심장부부터 검은날개 둥지까지 쌓여왔던 공격대의 결속에 대해서 절대 맹신하지 않았다. 언니 오빠 누나 동생하던 사이도 저 빌어먹을 마검 때문에 '섭섭함'을 드러내고 '삐지고' '비난하고' 그러다가 갈라지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저런 마물들이 사람의 얄팍한 정을 삼켜왔는지. 그러니, 네파리안 파밍이 시작된 시점에 내가 아쉬칸디의 드랍을 걱정했던 것은, 말하자면 그 절대마검 아쉬칸디 앞에서 우리 공격대가 쌓아왔다고 생각한 결속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던 게다.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지만 (...) 오죽하면 나는 그때 '아쉬칸디 제발 드랍되지 마라'고 기도도 했다(...) 하도 걱정을 했더니,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해줬다
.
"" "
공대원들을 믿으세요
." (...)
그 말이 옳다. 결국 결정하는 건 공대원들이다. 나는 공개된 입찰 의사에 따라 집행할 수밖에 없다
.
또한 그 말은 틀렸다. 나는 실증되지 않은 신뢰는 믿지 않는다. 그래서 걱정했다. (...)

네파리안은 나를 미워한다. 다섯달이 넘게 심판 로브도 안주고 내가 공대장으로 있던 동안만, 마검 아쉬칸디를 네 번 드랍했다. -__________-;;;

첫번째 아쉬칸디가 드랍되던 날. 그 아이템을 공대창에 올리면서 나는 조마조마했다
.

''
아쉬칸디는 양손도검으로, 사용 가능 클래스는 전사/성기사/사냥꾼이다. 우선 우리 공대의 '규칙'에 따라 사냥꾼은 근접전용 무기에 입찰 우선권이 없고, 대신 근접 클래스가 모두 패스할 경우에는 보조 무기의 가격으로 입찰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냥꾼은 문제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전사/성기사였는데
.

전사 중에 3명이 무기전사였고, 그들의 포인트는 모두 낮았다. 상위 포인트자는 전부 방어특성 전사다. 무기전사 중 제일 포인트가 높은 전사라고 해도 거의 전사 중 포인트 끝자락에 해당된다. 메인, 서브, 써드 탱커등 방특전사가 나란히 포인트 1,2,3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

성기사 중에는 나를 포함한 3명 정도가 전사보다 포인트가 우위였다. 나는 일단 관심이 없었고, 성기사 B 역시 양손무기에는 관심이 없는 타입이었지만, 성기사 C는 전통적인 징벌기사로 일명 깡패기사라고 불릴 만큼 온몸에 치명템을 주렁주렁 걸친 분이었다. 물론 그 치명템들 대부분은 무기전사들이 획득한 다음이나, 아니면 포인트 관리를 위해서 양보를 했을 때에만 차근차근 모은 것이긴 했지만, 흔히 볼 수 없는 마검 아쉬칸디 앞에서까지 그런 양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는 문제였다
.

그것이 성기사든, 방특전사든, 무기전사든, 일단 입찰이 시작되면 규칙대로 집행하겠다는 결심을 다시 한 번 했고, 대신 관계자들에게 생각을 할 시간을 주기 위해 아쉬칸디 입찰 진행을 뒤로 미루고 다른 아이템부터 천천히 먼저 처리했다. 이때, 물밑의 상황은 짧지만 복잡했다
.

전사채널의 상황이다
.
방어특성 전사들: 전사G(무기전사로, 포인트는 하위였다) 님 축하드려요. => 이것으로 자연스레 방특 전사들은 패스한다는 의사를 밝힌 셈
.
전사들 : ;; 근데, 전사들만 합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성기사님이 손하시면 GG
.
전사들: 하긴, 공대장님이나 성기사B님은 그쪽 취향이 아니니 그렇다고 해도 성기사C님은 징벌쪽이시니
...

성기사채널의 상황이다
.
성기사B: 성기사C. 아쉬네요
. ^^
성기사
C: ....

마검 아쉬칸디의 입찰이 시작되었다
.

: 아쉬칸디 입찰 진행합니다. 손 하실 분
?
: 5
: 4
: 3
: 2
공대원들: 헉 아무도 손 안한다

: (... 아쉬 녹여야 하나)

이때 성기사 C의 귓말이 전사 G에게로 날아갔다
.
성기사C: 전사G. 아쉬 손 하세요
.
전사
G: ....

: 마지막 카운트
.
: 1
전사 G:

: 마감
: 전사 G님 득. 루팅하세요.


'' 이렇게 해서 전사 G의 손에 들린 아쉬칸디는, 비로소 마검이 아니라 원래의 명칭대로 '기사단의 대검'이 되었다. 전사 G는 후발주자로 거의 공대창에 발언도 없고, 전사 채널 이외에는 존재감도 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었는데, 이날 이후로 말수도 늘고 친화력도 더 높아진 것 같다. 말없던 사람의 말문을 터주었으니 나름대로 성검(...) 이라고 불려도 되는게 아닐까 싶다. (아하하)

''
한 자루의 검을 마검으로 만들기도 하고, 성검으로 만들기도 하는 건 순전히 그 검을 둘러싼 사람들의 마음이다. 한 가지 조심해야할 것은, 이런 배려가 고맙고 따뜻한 것이라고 해도, 그 배려를 고마워하는 마음이 '배려가 없다'는 것을 원망하는 마음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조차도 마검을 만드는 감정적인 판단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정에는 언제나 뒷면이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

그래서, 언제나 공대장은 마지막의 마지막, 최후의 최후, 인정과 타협이 불가능할 때 원칙을 지킬 자세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규칙마저도 흔들리기 시작하면 다시 수습할 방법은 없다. 그런 배려를 해주었던 공대원들에게는 감사하고, 그 공은 온전히 그때 당시의 사람들 몫이다
.

''''''''
우리가 우리들 자신에게 붙여주었던 찬사, 정말로 분위기 좋은 공격대 - 라는 것은 어쩌면 허상일지도 모르고, 약간은 과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곳의' '우리'는 그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한순간이었을지라도, 다른 상황에서는 그럴 수 없다고 하더라도, 또 다시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귀 얇고 허약한 인간들이 '못하는게' 당연한 것을 했기 때문에 말이다.

, 이제,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의 마지막을 쓸 차례다.
그래, 정말로 이제는 마지막을 쓸 차례다.

[출처] 진산의 공격대 이야기 - 42 : 마검 아쉬칸디 (Team Genocide) |작성자 아쉔베일

 

43. 공격대 이야기를 돌아보며

내가 이 공격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때, 아마도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을 웬수땡이 좌백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통찰력 있는 지적을 했다. "당신 이제 와우 때려치우려나 보구려?" 아마 이 블로그를 통해서만이라도 나를 쭉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비슷한 짐작을 했을 것이다. 무엇인가에 몰두했다가 그것을 털어버릴 때 종종 글로 쏟아내버리고, 머리속에서 지우는 내 버릇을 알 테니까.

''''''''''
그 말이 옳다. 나는 와우를, 공격대를, 공대장을 잊기 위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거의 다 토해내고 난 지금은 속이 후련하다. 사실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글에 공감을 표시해와서 오히려 좀 당황스러웠다. 그건 아마 '전형적인 소시민 판타지의 히어로 타입'으로 묘사된 전사 E의 캐릭터가 갖는 매력의 덕이 많았을 거고 (죄송해욧 전사 E) , 글쓰기 생활 십수년으로 단련된 (...) '보여줄 것만' '예쁘게' 포장하는 내 서술법의 영향도 있을 거다. 노파심에서 덧붙이자면, 우리 공격대는 사실 '평범한' 와우 게이머들의 '평범한' 공격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장점의 빛나는 부분만을 묘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점 까지 다 늘어놓으면서 쓰는 건 재미도 없고 글의 길이도 늘어나기 때문에 안한 것이니 혹시라도 우리 공격대에 환상(...)은 갖지 않으시길 바란다. 그냥 평범한 공격대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어난 일들은, 어느 다른 공대에서나 다 일어난다. 다른 공격대에서 일어난 문제들 역시, 우리도 노상 대면하고 있다.


네파리안을 킬하고 난 뒤의 과정 역시, 많은 공격대들이 겪은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더 혹독했을지도 모른다. 1년을 넘긴 시점에서 공격대의 노화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였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공대원들에게 더 못 버틴다고 탓할 수도 없고, 새로 들어온 공격대원들에게 1년을 넘게 한 사람과 동일한 애착을 요구하는 것도 무리다.

지금까지 글에서 써온것과는 다소 다른 관점에서, 조금 냉정하게 우리 공격대의 특징을 분석해보자.

첫째는 낮공대''''라는 것이었다. 저녁시간, 혹은 주말 레이드팀은 많지만 주중 평일 낮공대라는 것은 특이한 삶의 패턴을 가진 사람들만 참여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 해당되는 것은 주부/휴학생을 포함한 백수/ 방학중인 학생/ 프리랜서 직업인/ 회사의 오너이거나 네트워크 관리자 등 근무 중에도 레이드가 가능한 사람 등이 포함된다. 이것은 장점으로도 단점으로도 작용한다. 낮공대를 뛸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사람의 폭은 아무래도 좁다. 그 인구에 기반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정규 낮공대가 2개 이상이 되긴 힘들다. 따라서 신규공대원을 '구하기도' 어렵다. 이건 단점이다. 하지만 동시에, 구인이라는 측면에서 동일 시간대의 경쟁 레이드팀이 없다. 따라서 이미 '낮공대'밖에는 뛸 수 없는 조건인 사람이라면 이 공대가 마음에 안든다고 해도 쉽사리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는 못한다. 유일무이하기 때문에 충성도와 결속도가 높아지기 쉬운 조건이고, 레이드 철새들의 잦은 유입으로 문제가 일어날 확률도 적다
.

길어서 접습니다

두번째는 공대 초기부터 집행된 각종 저항템의 무상분배 시스템이다''''''''. 많은 공대들이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안 그런 공격대도 많다. 저항템은 개인적 용도로는 쓸모가 없고 오직 특정한 저항력을 요구하는 몹의 공략에만 쓰이는 것이라 아무래도 입찰 의욕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항템을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스스로 구입하게 '요구'하는 공격대에서는 분명히 '대가를 지불한 만큼 애착도 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옳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무상분배 시스템으로 갔을 때는 새로 유입된 공대원의 전력 강화가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고, 공대원들이 저항템 마련을 위해 바치는 시간을 절약해서 그 여유시간 동안 다른 것을 할 수 있다. 물론 그 시간 동안 무얼 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별 선택이다. 나는 심지어 공격대에 아무런 이득도 없어 보이는 '전장놀이'를 하든 '개인앵벌'을 하든 궁극적으로는 결국 공격대에 이득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공격대가 덜어준 부담 만큼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상의 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면, 와우라는 게임에 지치는 시간은 좀 더 늦게 찾아올 것이고, 그 만큼 공격대에 머물 시간도 길어진다. 게임이 재미없어져봐라. 충성심만으로는 공대원을 잡을 수 없다. 게다가, 공격대에서 획득한 무상템을 나눠줄 때는 좀 더 당당하게 요구할 수도 있다. <공격대에서 못얻는 저항템은 개인별로 좀 더 신경써서 모아주세요!> 벨라스트라즈의 빠른 공략은, 액면 그대로만 볼 문제는아니다. 공대원들도 잘했고, 운도 좋았던 거지만, 송곳니에서 지겹게 헤딩하던 기간 동안 화산심장부에서 획득한 저항템으로 공대 전반적인 화염저항력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었기에 가능했다는 물질적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세번째는, 전사 중추부의 결속력이다.'' 물론, 다른 클래스에도 여전히 올드멤버들은 남아 있고, 그들은 꼭 운영진을 하지 않더라도 공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 마련이어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전사진은 타클래스보다 공격대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우리 공격대의 모든 전사들에 대해서 나는 '어느 공격대에 가도 메인탱커로서 지휘를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사람들' 이라고 자랑스레 말해왔다. (... 솔직히 한 두명쯤은 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수사학의 영역이니 넘어가자! (...))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장기간 서로 장단점을 알고 보완해가면서 한 공격대에서 팀웍을 맞춰왔다. 당연히 장기활동자인만큼 장비는 튼튼하고, 경험도 많다. 탱커가 획득하는 어그로의 한계치에 따라, 딜러들의 공격 밸런스도 안정적으로 잡힌다. 힐러 역시 마찬가지,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어도, 탱커가 HP 빠지는 속도와, 회복제 들이키는 방식에 적응을 익숙해지면 치유는 훨씬 효율적이고 안정적이 된다. 탱커가 바뀌면 딜러도 힐러도 다시 적응을 시작해야 한다. 전사진의 안정은 그런 변수를 없앴다. 게다가 신뢰라는 것은 장비나 경험으로도 커버 못하는 미지의 영역까지도 채워준다. 이번엔 비록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언제나 희망은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큰 재산인지. 그리고 그런 믿음을 주는 역할의 태반은 전사의 등짝(...)에 달려 있는 것이다
.

장점이라고 생각한 것은 왕왕 단점이 되기도 한다. 낮공대라는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했던 것처럼, 무상분배라는 시스템에 익숙해졌던 것은 후후란전을 맞이하여 자연저항 장비의 개별 획득전에서 단점으로 작용했다. 전사진의 결속력이 기댄 만큼, 그 결속이 깨어질때 공격대는 가장 크게 흔들렸다. 모든 웃음은 눈물을 배태하고, 눈물은 언젠가 올 희망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네파리안을 킬하고, 안퀴라스를 공략해가던 어느 날. 지쳐가는 공대원들에게 힘내세요라고 말해야 하는 나 역시 지쳐가고 있던 무렵.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예고없이 자리를 비운 적이 없던 메인탱커가 결석을 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 우연이란 없다. 조만간 그 일이 닥쳐오겠구나. 이제 한계에 도달했구나.

레이드가 끝나고 저녁, 메인탱커가 접속했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많은 공격대 회의의 명소 (...)인 아이언포지 성문 앞 구석, 눈 덮인 카라카스의 산들이 내다보이는 곳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1분에 한번씩 말이 올라올 정도로 힘들게, 힘들게 이어간 그 이야기는, 이제 어쩔 수 없이 일 때문에 공대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

''
충분히 고생했고, 메인탱커로서 겪을 수 있는 고난과 즐거움을 모두 맛보았으니, 그리고 부동의 현실이 부르는 것이었으니 공대장으로서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경우가 아니었다. 안 잡기로 결심했다. 이젠 정말 엔딩을 내게 해줘야했다
.

""''
내가 잊고 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전임 공대장과 전사E, 나 셋이 모인 자리에서 내가 공대장을 하기로 했을 때, 전사 E가 내게 했던 첫 말은 "충성을 다할게욧" 이었다. (...) ~욧체의 이미지 그대로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나온 과장된 (...) 발언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웃고 넘어갔었는데, 내가 '공격대는 내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되뇌었던 것 만큼이나 이 메인탱커는 그 약속을 어기지 말자고 자신에게 다짐을 거듭했던 모양이다. 그 이후로 내가 아이템 밀어주기 없다고 요구를 하든, 불합리한 결정을 강요하든 한 번도 반대를 한 적이 없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그 만큼의 신뢰와 충정(...)에는 보답해야 한다. 충신의 목은 직접 쳐주는 것이 왕의 도리다
.

그래서,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잘 해주셨습니다. 앞으로의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메인탱커가 비운 자리 감당 못할 정도로 허약한 공격대 아닙니다. 조금 허전해하고 흔들릴 수도 있지만 금방 다시 일어설 거에요........ 그렇게 말을 이어나가다가
.

결국 붙잡고 말았다. 이것이 내가, 공격대를 떠나는 사람들 중에 여섯 번째로 붙잡은 케이스다. 이 여섯번째는, 잡지 말았어야 한다고 곧바로 후회했다. 이것은 공대장으로서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잡아야할 사람의 원칙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

''
너무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사람이기 때문에, 그 빈자리에 가장 휘청거린 것은 아마 나였을 것이다. 만약 운명의 그날 (...) 전사 E가 아니라 전사 C가 그 자리에 남았다면, 혹은 전사 D였다면, 전사 A였다면.... 아마 내가 공격대를 운영해나가는 방식도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거나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고, 그렇게 '같이 움직인' 기간이 길다면 그만큼 서로에게 스타일이 구속되기도 한다. 외계인이라고 정평이 난 나도 이런 구속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이제는 체제 개편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왔다. 그건 나까지도 포함한 것이다. 전혀 다른 체제, 전혀 다른 사람과 이제부터 다시 호흡을 맞춰나간다는 것은 나에게는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는것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
언젠가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그분'은 떠났다. 그리고 그 얼마 뒤, 나 역시 공대장을 그만뒀다. 이번만큼은 어떤 설득과 약속에도 지지 (...) 않기 위해서 공개적으로 사퇴 의사를 표명하고, 사퇴서를 올렸다. 메인이 자리를 비운 상태에서 공대장까지 교체되는 시련을 준 것은 미안하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만 둬도 되는 때'라는 건 쉽게 찾아오지가 않는다. 공격대가 잘 돌아갈 때는 아쉬워서, 이 좋은 리듬을 깨고 싶지 않아서 못 그만두고, 공격대가 힘들 때는 더 힘들게 할 수가 없어서 못 그만둔다. 그때 그만 두지 않았다면, 나는 한 번의 휴식도 없이 교체된 메인탱커와 함께 자리를 지켜야 했을 것이고, 언젠가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오면 또 그 사람들과의 의리 때문에 그만두지 못했을 것이다.

''공대장의 역할이라는 것은 그냥 ''이다.
그것도 매우 신축성이 좋은 옷
.
뚱뚱한 사람이 입으면 늘어나고, 마른 사람이 입으면 줄어든다
.
누구든 입어야 하고, 돌려 입을 수도 있다
.
그런데, 너무 오래 입고 있으면 살에 달라붙어 버린다
.
벗으려고 할때 살점도 같이 떨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기도 하다
.
내 것, 내 사람들, 내 공격대, 내 시간, 내 추억, 내 살과 뼈
.

말리는 소리에 귀를 막고 그 옷을 벗을 때, 살점이 찢겨져 나가는 것처럼 아팠다
.
정말로.

 

44. 또다른 이야기를 위하여

메인탱커가 교체되고, 공대장이 교체되었다. 시련은 한꺼번에 닥쳐오는 것인지 서브탱커도, 새로 책임을 맡기로 했던 전사 C, 노대도 (...) 모두 현실상의 일로 자리를 비웠다. 짧은 시간 동안 공대장이 한 번 더 갈렸고, 메인탱커의 책임은 '역시나 예측과는 다르게' 내가 공대장을 그만 두던 날 공대에 처음 출석(...)했던 전사에게 황망히 넘어갔고, 이미 오래 전에 팝시킨 쑨을 아직도 잡지 못하고 (사실 쑨은 둘째치고 쌍둥이 황제한테 복습을 강요당했고) 매주마다 '처음'으로 쑨 앞에 서는 신입들에게 쑨전의 공략법을 알려주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또 사람을 떠나보내고, 또 새 사람을 맞이하고, 고통과 나태에 관성화되어갔다...

나는 명색뿐인 마교장로 고문 (...) 역할로 자질구레한 노하우나 전수하면서 성기사의 한 사람으로, 이렇게 삽질하는 공격대의 삽질하는 공대원이 되어가고 있다. ^^ 원망도 자주 듣는다. 좀 더 버티지 왜 거기서 팽개쳤어요 ! (...) 원망을 들으면 어허허허 웃을 도리 밖에 없다.(먼산) 한때 무서운 속도로 안퀴라스 공략까지도 진도를 뽑았던 우리 공격대를 부러워하거나, 경이롭게 생각했던 타 공격대의 사람들에게는 위로 (...)와 염장(버럭), 격려도 듣는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나는 공격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쓸 때는 단지 털어버리기 위한 목적이 컸다. 써나가면서, 글에 다 표현하지는 못했지만(쪽팔린 이야기는 안썼다니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실수들을 했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지금의 어려움도 역시 비슷하다. 이걸 쓰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답답해서 제풀에 버럭 뛰쳐나갔을지도 모르겠다
.

공대의 한 성기사로서의 나는 여전히 '현재'에 속한 사람이지만, '전임 공대장'으로서의 나는 과거에 속한 사람이다. 과거에 속한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책임이 있다.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과거의 교훈이 필요할 때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걸 짚어주는 역할이었고, 그래서 공격대 이야기를 끝까지 쓸 이유가 되었다
.

또 한 가지, 어떤 이유든 떠나간 사람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현실상의 일로 떠났거나, 레이드에 지쳐서 떠났던 사람들이 이제 돌아오기 시작한다. 여전히 공대에 같이 남아있긴 하지만, 마음이 떠난 사람들도 있다. 소망이 있다면, 이 글이 그 사람들에게 등대가 되었으면 싶다. 돌아올 자리가 어떤 곳인지, 방향이 어디인지 밝혀주는 것도 과거에 속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된다
.

현재와 미래는 '전임 공대장'인 내 몫이 아니다. 현재와 미래에 속한 것은 그냥 성기사인 나일 뿐이다. 나는 한 사람의 공대원으로서, 내가 원하는 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레이드의 엔딩을 낼 것이고, 그때까지는 '공대가 가는 방향'대로 따라가며 같이 침몰하거나 같이 순풍을 탈 수밖에 없다
.

바라건대, 돌아오는 사람들이 과거에 너무 발목 묶이지 않기를. 그런데, 이거 정말 어려운 일이다. 메인탱커가 아닌 전사 아무개로, 공대장이 아닌 부활조 (...), 아니 부활조는 패치때문에 사라졌으니 그냥 '성기사 아무개'로 돌아가기. 아마도 이것이, 부활조에서 공대장이 되기보다도 더 어려운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공대장은 공대원 전부가 도와주면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역할이지만, 공대장에서 성기사 아무개로 돌아가기는 온전히 자기 혼자 해야할 일이니까
.

지금도 그 과정에 적응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_-; 확 공대장 관두면서 공대도 때려치웠어야 이런 뒤끝이 안남는 것인데, 남고 보니 아, 이거 시련이다. 때때로 지나치게 간섭하고 있음을 깨닫고 주둥이(...)를 때리며 후회도 하고, 어떻게 하면 내 영역이 아닌 것에 신경을 끌 수 있을까 고민도 하고 있다. 인생, 한순간도 과제가 없는 때가 없다. ( -_) 언젠간 잘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