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이슈 갤러리 같이 보고 싶은 유머 글이나 이미지를 올려보세요!
URL 입력
-
계층
한국 주식시장의 문제점
[32]
-
계층
"뉴스" 보고 수원에서 무안까지 혼자 버스 타고 간 초등학생
[21]
-
연예
멘탈 금강불괴급 GOAT라는 걸그룹 멤버
[41]
-
감동
‘소방관 김밥으로 끼니 때워’ 소식에 공항 나선 안유성 명장
[12]
-
유머
소름 돋는 뇌경색 전조 증상
[10]
-
연예
오겜 나오고 코리안 조커로 불리는 배우
[38]
-
감동
현빈♥손예진 부부, 취약계층-소아 ·청소년 치료 위해 3억원 기부
[7]
-
연예
카리나
[11]
-
연예
오늘 배우 생활 45년만에 처음으로 상을 받은 사람
[30]
-
유머
계단에서 넘어지기 실제 vs K-드라마
[13]
URL 입력
- 계층 ㅇㅎ) 화요일아침 [19]
- 이슈 굥의 순정을 이해해버린 나... [6]
- 유머 가격 인상된 플스5 프로 싸게 사는방법.JPG [15]
- 이슈 윤석열의 계엄을 보며.. [9]
- 이슈 디코를 통해 댓글 조작 몰이하는 신남성연대 [11]
- 이슈 선결재 푸드트럭은 보기 힘든 탄핵 반대 집회 [11]
고구머
2025-01-05 00:08
조회: 4,910
추천: 6
아프리카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최후아프리카를 42년동안 지배한 카다피의 최후는 아주 끔찍했습니다
트리폴리가 함락된 2011년 8월 21일, 카다피는 측근과 경호원 10여명과 함께 트리폴리에서 남동쪽으로 80km 떨어진 산악지대 타루나와 카다피 지지세력이 포진한 바니 왈리드를 거쳐 고향인 시르테로 도피했다. 무타심이 시르테가 누구도 생각하기 어려운 마지막 도피처라는 이유로 도피할 것을 주장했다. 카다피의 사촌으로 리비아 인민수비대 사령관 만수르 다오 이브라힘이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카다피와 함께 있었다. 이브라힘을 비롯한 일부 측근들은 카다피에게 해외 망명을 건의했지만,[카다피는 "여기가 내 나라다. 나는 1977년에 국민들에게 권력을 넘겨줬다."고 말하며 반대했다. 실제로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고 카다피가 도피 생활 중 반군의 공격으로 사살되기 전까지 당시 여러 국제언론과 중동 정세 전문가들 사이에선 카다피가 해외 다른 나라들로 망명을 하게 될 경우 망명이 예상되는 후보국가들로 알제리, 튀니지, 차드,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기니비사우, 에리트레아, 앙골라 등 리비아와 이웃한 아프리카 주변국들이거나 카다피 정권 시기 리비아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아프리카, 중남미, 동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거론된 바 있었다. 최후의 순간이 다가오자 카다피는 시르테에 고립되었다. 카다피 일행은 빈집을 피난처로 삼았고 NATO의 공습을 두려워하여 2, 3일 마다 위치를 옮겼다. 내전의 영향으로 컴퓨터가 사라져 인터넷을 쓸 수도 없고, 전기마저도 자주 끊어졌으며 물도 없었다. 카다피 지지자들은 카다피가 최전선에서 전투를 독려하고 있다고 선전했으나, 카다피는 전투에 나서지 않았으며 총 한 발 쏘지 않았다. 주로 코란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냈으며, 외부와는 위성전화로만 연락을 했다. 카다피는 시리아 방송에 결사 항전을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이 위성전화는 NATO의 정보망에 파악되어 카다피의 위치는 추적되었다.[17] NATO의 공습으로 카다피가 은신해있던 집에 포탄이 떨어졌으며, 경호원 3명이 부상당했다. 요리사가 다친 이후로 카다피 일행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민가에서 구한 파스타와 쌀 정도 뿐이었다. 이브라힘은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카다피는 도피처로 사용하던 집에 왜 전기가 안나오느냐, 물이 왜 나오지 않느냐며 측근들에게 불평하는 등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시민군의 포위망이 좁혀오자, 카다피는 20일 은신처를 옮기려 했다. 자신이 태어난 생가 근처의 주택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당초에는 40대 이상의 차량을 이용해서 오전 3시에 빠져나가려 했으나, 친위대의 집합이 늦어져 오전 8시가 돼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카다피는 토요타 랜드 크루저에 이브라힘과 경호대장, 친척 한 명, 운전사와 함께 탔다. 카다피는 이동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카다피가 출발하고 30분이 지나자 NATO의 공습이 시작되었다. 0월 20일(현지 시간), 농성을 하고 있던 고향 시르테에서 도주하다가 붙잡혀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날 아침에 나토에서는 대규모 차량이 운집하는 상황을 정찰중이던 영국군의 토네이도 전투기가 포착하고 미군에 알렸다. 카다피는 이때 시민군의 공격을 피해 도시 중심부를 탈출하고 있었다. 카다피를 태운 차는 호송차 100여대와 함께 서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토는 일단 카다피가 타고 있는지 확신하지는 못 했지만 여러 대의 차량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상황이 카다피와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미군은 시칠리아 기지에서 무인기를 출격시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차량 행렬을 공격했고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도 출동하여 차량 행렬을 폭격했다. 이 공습으로 100여대의 호송 차량 중 기관총을 실은 트럭 15대가 파괴됐고 카다피 친위대 50여명이 전사했다고 알려졌다. 카다피의 측근 이브라힘은 이 공습으로 정신을 잃었다가 시민군에 생포되고 병원에서 깨어났다. 카다피와 친위대원들은 차량에 내려 도로 밑의 배수관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하수구에 숨어있던 카다피에게 시민군들이 추격했고 결국 생포되고 만다. 두 다리에 심한 부상을 입은 채 생포되었으나 부상이 악화되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근데 다음 보도에서는 머리에 총상을 입어 죽었다고 나왔다. 미국 정부는 사실확인이 되지 않았다며 사망을 부정했으나 이후 사망한 것으로 최종확인했다. CNN 속보를 통해 시르테에 있던 리비아 시민군 병사가 휴대폰으로 찍은 카다피 시신 동영상까지 보도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뭐가 잘못됐지?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와 "쏘지 마시오."자신이 전범재판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나본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알 아라비아 방송에 나온 카다피 체포 영상을 보면 발견 당시 두 다리가 절단에 가까운 심각한 외상을 입은 상태였다. 체포 당시에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였고 의식이 있었기에 시민군들이 부축해서 차에 그를 실었지만 부상이 심한 탓에 후송 도중에 사망했다. 하지만 또 다른 보도에 의하면 부상이 아니라 흥분한 과도정부군들이 체포한 카다피를 구타하는데 누군가가 머리를 향해 9mm 권총을 발사하였고 총상이 악화되어 사망하였다. 그리고 구타당하는 카다피의 항문에 이물질을 삽입하려는 병사가 목격되었다. 해당 병사는 구급차를 기다리면서 죽어가는 카다피의 엉덩이에 이물질을 집요하게 삽입하려다가 시민군 장교에게 불호령을 듣고서야 포기하였다. 이 행위는 동성애를 혐오하는 국가에서 사람을 모욕하려고 하는 행동인데 엉덩이에 이물질을 넣어 죽는 순간까지도 여자같은 놈이라는 능욕을 주며 '남성성'과 함께 생전의 명예까지 함께 없애는 행위이다.[ 주로 마피아나 갱스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시체의 항문에 이물질을 꽂아 사람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는 방식으로 쓰인다. 42년동안 법위에 군림하다 결국 시민군에 의해 잡혀서 처참하게 고문당하다가 죽은 카다피. 그리고 그의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경호대 역시 그 끝이 매우 처참했다는데 영상은 너무 잔인해서 안가져왔습니다... 용산 쓰레기 역시 시민들에게 억지로 끌려나와 뒤지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자발적으로 수사에 임해야 할겁니다. 그리고 그의 변호인?내란공범들 역시 마찬가지
EXP
165,906
(23%)
/ 185,001
고구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