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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비타
2024-12-14 12:17
조회: 1,212
추천: 7
[스압주의] 군대와 계엄에 대한 잡썰[스압주의] 서두에 휴전중인 대한민국은 모든 군인이 동일한 가치로서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으며, 누가 더 가치 있거나, 더 쎄다 식의 의견은 적합치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본인은 심심해서 그냥 카더라 수준의 일반 잡지식으로 몇 마디 찌끄릴거니까 관심 없으면 빽하는게 좋다. 군대는 육군, 해군, 공군이 있다. 일반적인 편제고, 유지와 훈련에 돈이 든다. 근데 뭐 특별한 용도의 군인이 필요하다. 그럼 그걸 만든다. 예> 해병대 근데 조금 더 특별한 용도의 군인이 필요하다. 그럼 그걸 만들고, 유지관리에 필요한 육해공 편제에 포함시킨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미국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다. 육군 = 특전사(공수부대), 검은 베레모 해군 = UDT/SEAL, 회색 베레모 공군 = CCT(공정통제사), 빨간 베레모 해병대 = 해병수색대, 녹색베레모 기갑사단 = 얼룩베레모 기갑사단을 넣은 이유는, 그냥 특수목적 병사라는 뜻이다. 요즘에야 모든 부대가 베레모를 쓰는 것 같지만, 예전에는 상기한 부대만 베레모를 썼다. 고위장교가 아니라면 우리는 스타크래프트의 마린, 파벳이거나 장기판의 졸개(병) 이다. 군대 얘기할 때 내가 제일 답답한 점은 자신이 무슨 부대 나왔다고 겁나 으시대는거.. 고생했다고 인증하는 것 밖에 더 되나? 내 예견으로는 또라이 선임이 있는 시간 널널한 후방 보급부대가 위 언급한 특수전부대보다 병영생활이 더 힘들고 하루가 고되다. 각설하고, 본인은 육군훈련소에 갔다가 정보학교에 갔다가 공수부대로 간 병이다. 특이할 점 전혀 없는.. 좀 튀는 점이 있었다면 훈련소 연대 내 체력검정 때 오래달리기 2등한거? 특전사는 텍스트로 보면 뭐 대단해 보이는데, 그냥 (특)수(전사)령부를 줄여진 말이다. 특별한 전사? 이런게 전혀 아니다. 위에 언급한 모든 특수전부대가 특전사라고도 할 수 있고, 일반 육해공군 병과 동일하며, 다른 임무가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냥 공수부대가 이 육군특수부대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름이 아닐까 한다. 왜? 육군인데 낙하산을 타니까.. 그래서 정확한 명칭은 '공수특전여단'이다. 나는 정보병이였다. 후반기교육으로 정보학교를 이수한 병사이기 때문에, 다른 부대원들이 보다 적진에 잘 침투하기 위한 정보를 다루는 것이었고, 대대의 본부병이었기 때문에 선후임이 전부 병이었다. 지역대라고 일반 육군에 없는 편제가 있는데, 그들이 대부분 하사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병도 한 둘 껴있다. 우리나라 공수부대는 왜 있을까? 그야말로 북한에 침투하기 위함이다.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D-day가 있다면, 그 전후에 수송기를 타고 북한으로 침투하여, 중요 타격부위(공항, 레이더, 등)에 폭파를 하고, 주요 인물을 사살하고 퇴각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그럼 갈 때는 수송기 타고 가는데, 올 때는 어떻게 올까? 정답은 "걸어온다" 이다. 이제 알겠나? 특전사 = 천리행군. 이란 사실을! 우리는 전쟁중에 북한지역으로 떨어져서, 적군의 중요 부위를 타격하지만, 당연히 고립된다. 보급도 없다. 지원도 없다. 식량도 없다. 그래서 주특기가 사격, 폭파 등이었나보다. 그래서 뱀, 개구리 먹는 훈련을 하나보다. 천리행군은.. 작전지역에서 남한의 자기 부대까지 걸어서 오는 연습이라고 볼 수 있다. 다 아는 것처럼, 장교들이 실무를 하지만, 선임하사가 경험을 보태고, 전산 작업은 대부분 병이 한다. 그래서 대외비 등의 아주 낮은 보안수준의 정보는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데, 이따금 일과시간도 부족해서 저녁식사 후에도 가끔 일을 하곤 했다. 어느날은 한달 고참 작전병이 야간 작업하는 모니터를 뒤에서 보는데 우리 대대의 각 중대의 작전 후 생존율이 동그라미, 세모, 엑스로 표기되 있었다. 두 개만 세모였고, 다 엑스였다. 이런걸 해당 중대원은 알지 못한다. 만일 전쟁이 난다면 그냥 베낭과 낙하산을 메고 비행기에 오르는거지.. 공수여단 내에는 여러 대대가 마치 종합대학의 단과대학처럼 있는데, 저 멀치감치 소수인원이 매일같이 훈련하는 낮은 건물이 보인다. 그렇다. 그들이 바로 특수임무대이다. 흑복(검은색 군복, 대테러복)은 부대 내에서도 그들만 입는다. 그리고 언론에 노출되는 707특임단은 사령부 직속부대이고 지휘관은 대령이다. 다시 돌아와서 특전사. 즉, 공수부대는 하사관이 메인이다. 다른 특수전부대는 잘 모르겠다. 여튼 이들이 지원하여 일정조건을 통과하면 하사관으로서 군기본 교육을 받고, 자대에 배치된다. 근데, 계급만 하사관이지 마치 병과 같다. 2년여를 자대에서 숙식을 하며, 병과 동일하게 생활하고, 나중에 영외근무로 출퇴근을 하게 된다.(하지만 대부분 부대 가까이에 있는 독신자숙소? BEQ던가에서 자취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병은 대부분 대학 다니다가 1년 지나서 군대를 오는데, 하사관 특히 특전사는 고졸이 많았다. 어차피 군대 갈거 목돈이라도 모아오자라는? 마인드로 많이 왔던거 같다. 당시 병장 월급이 한 달 만원가량이었는데 약 백여만원?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랬다. 거기에 분기마다 타는 낙하산 때문에 생명수당이 달에 몇만원씩은 더 나왔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병보다 한살 어린 하사관도 무지 많았고, 대부분 전입 초기에 병 못지않게 얼어있고, 군기가 바짝 들어있다가.. 대략 반년에서 1년은 지나야 긴장이 풀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매일같이 하는게 체력훈련이고, 밤에는 헬스등을 헤서 근육을 키우는 하사도 많았다. 그렇게 짬이 찬 하사(진) 내지는 중사들은 확실히 제법 포스도 있고, 강인해보였다. 간부, 말이 간부지 그냥 직업군인이라 보면 된다. 대기업, 기타 전문직 이런 사람은 밖에서 소득이 더 높고 어쩌고 하기 때문에 그냥 짧게 병으로 다녀오는데, 나때만 하더라도 집안이 약간 가난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고졸이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인지 전부는 아니라도 단순한 성격이 많았다. 전입 초기에는 짬이 찬 병들에게도 말을 어려워하는 경우도 많았고 조금 지나면 그래도 하사니까 어렵게 병들에게 말을 놓긴했다. 우리도 정하사님 오늘 근무 있다고 했나? 식으로 친하면 반말을 섞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의 공수부대는 좀 더 거칠었다고 들었다. 공수부대는 해병대와 사이가 안좋기로 유명했는데, 그 옛날 70년대에는, 공수부대가 팀단위로 휴가를 나가면 다른 군복입은 부대원, 특히나 해병대랑은 싸우거나 패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처럼 cctv가 도처에 깔린 시대도 아니고, 약간 무식(?)했던 시대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이런 경험으로 보면 그당시 계엄령과 최근 윤석열이 벌인 계엄령의 차이, 실패 사유가 조금은 이해가 간다. 70년대는 정보가 부족했다. 티비도 갓 보급이 시작되던 시기이고 라디오도 흔치 않았다. 신문이 가장 정보를 잘 전파하던 매게였고, 그날 벌어진 큰 사건은, 아무리 빨라야 다음날 아침에야 집 앞에 툭 하고 배달된 신문을 펼쳐봐야 무슨일인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정보의 비대칭성. 알다시피 신문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게 조중동이다. 조선, 중앙, 동아. 이들이 편을 들고 있는 세력이 좋게 미화되는게 당연하고, 비교할 방법이 없는 민중들은 곧이 곧대로 믿는게 다였다. 다만, 대학생은 좀 달랐다. 국민 대부분이 학교를 못다니던 시절, 한 가족 6형제가 평균이던 시절. 망해가는 집에서 한줄기 빛이었던 첫째아들은 운이 좋으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학비는 부모님이 농사를 짓던 땅을 팔거나, 동생들이 공장을 다니든 해서 채워나가고, 그렇게 자리를 잡은 큰형은 집안을 책임지거나, 직장이 있는 수도권에 올라와 살게되고, 집안의 동생 하나 둘 올라와서 같이 사는 경우도 흔한 모습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일부 대학생들은 정부에 유리하게 쓴 사설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고, 어떻게 시작된건진 몰라도 부조리한 사회와 잘못된 것들에 대하여 데모를 통해 항의했다. 물론 일부 대학생을 지원하거나 소요시키던 배후에는 남파 간첩도 있었다. 그 시기만 하더라도 갈라선 남북한이 경쟁하던 시절. 직접적인 무력대결은 둘러싼 강대국이 용인치 않기에, 서로 상대방 체제에 혼란을 주는 사태를 일으키기 위해 간첩을 보내고 잡고 잡히던 시절이었다. 왜 대학생이 타겟이었을까? 국민 대다수였던 농민이나 상인들은 입에 풀칠하기도 바빴다. 그리고 무식했다. 이념을 바꾸려해도 뭔지 잘 몰라서 안통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을 범접할 수 없는 신이나 왕 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아직 공화제에 익숙치 않았다. 조선시대라는, 왕과 양반을 모시던 긴 군주제를 일제에 의하여 엉거주춤 끝내고, 일제 치하에서는 일본인 밑의 이등시민으로 살다가, 전쟁 후 온나라가 초토화 되며 갑자기 모두가 평등한 나라가 되었으니, 몸에 벤 서민 습관이 익숙치 않았던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농민이다 보니 농사가 잘 안되거나 추수 마치고 먹을게 없는 시기도 있었고, 보릿고개라 불렸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먹고 입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힘든 시기에 민주주의를 이해하긴 힘들었을 것이다. 이 모든것이 내 이야기는 아니고, 부모님 세대가 겪던 시절을 보고 들은 것이다. 하여간 이러던 시절에 우리 국민들은 자주성있게 나라를 바꾸기 위해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일이었고, 누군가 이끄는 것에 따르는 것을 더 선호하고 안정감을 느꼈다. 그 역할이 좀 배운 지식인들이고, 그 중에 민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던 사람들이 지도자로 불렸다. 그런데 그 때 나타나 군대라는 무력을 통해 사회를 전복시키고 왕처럼 군림한 자들이 있으니, 이들이 바로 박정희, 전두환이었고, 오늘 여기서 그들을 기술하지는 않겠지만, 그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지금의 노연령층들에게는, 몸은 힘들었지만 젊었기에 추억으로 미화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갑자기 다시 군대 얘기로 돌아오자면, 메칸더가 셀까 마징가가 셀까처럼 남자들은 항상 순위를 매기는 것을 좋아하고, 단순한 주제로 침튀기며 밤새 술안주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자기가 더 힘들었다며 싸우기도 한다. 왜 영화 친구 에서도 조오련과 바다거북이던가? 누가 더 헤엄이 빠른지 말싸움 하는 장면이 있지 않던가. 아무튼 군대 얘기하면 어디가 빡세다. 가 가장 흥미로운 주제거리였고, 맨 위에 언급한 특수부대에 대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썰을 하나씩 풀다가 최후에 등장하는게 바로 북파전문부대 HID 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의 간첩이 자꾸 넘어오고 사회를 어지럽히니까, 우리도 보내자고 만든게 북파 군인이다. 맨 위에 언급한 특수부대들은 정규균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북한에서 죽더라도 영향이 적은 고아출신이나 부모형제가 없는 인물들을 위주로 편성했다고 하고, 나중에는 영화 실미도 처럼 복역자를 모아서 훈련 시킨적도 있다고 한다. 누가 얘기하는 것처럼 막연히 싸움을 잘한다. 이런건 너무 유치한 얘기라 인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임무가 좀 달라서 그에 적합한 훈련을 좀 했을 뿐이다. 찾아보면 옛 정부들은 그들을 활용하려다 제대로 처우를 해주지 못해서 데모를 한적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암살도 해야하고, 바다를 루트로 가는 경우가 많기에 헤엄도 잘쳐야 한다. 당연히 체력도 좋아야 하겠다. 특이한 점은, 북한이 작전지역이기에 북한사투리도 연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무기의 사용법도 익히고, 북한군으로 위장해야 하기 때문에 인민복을 휴대하기도 한다. 그리고 북한군의 키에 맞춰 너무 큰 사람은 선발하지 않는다고도 들었다. 지금은 정보사에서 관리하고 있고,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신규를 항시 충원하는 것 같지 않다. 그러다보니 OB도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한 OB란 김어준이 말한 그것. 현직이 아니면서도 영향을 충분히 줄 수 있는 각종 뒷세력을 말한다. 판사가 될 수도 있고, 그게 군인일수도, 경찰도 될 수 있다. 하여간 요즘 시대가 시대다보니 예전만큼 북파군인을 양성할 일이 없기 때문에, OB를 활용해 일을 꾸미는게 가능하다 싶었다. 다시 돌아와서, 계엄이 실패한 이유는 실제 행동해야할 말단병사들의 기초교육수준이 예전같지 않은점이 컷다. 예전 계엄의 군인의 인지정도라면, 까라면 까고,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는게 가능했다면, 지금은 계엄이라 듣고도 출동을 안한다고 드러눕기엔 군인신분으로서는 조금 힘들겠지만, 가서 막상 죄없는 시민과 국회의원에게 헤코지 하자니 뭔가 내키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시민은 사태와 거의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소식을 받고 모일 수 있었으며, 심지어 야당의 당대표는 실시간 방송으로 국가의 위급상황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었다. 군 장성들도 마찬가지. 대부분 아들딸 키우며 부대 내에서는 왕처럼 지휘만 하는 안정된 직장에 익숙해졌는데, 갑자기 본인들 열댓살 남짓 뉴스에 나오던 계엄군이 되라니.. 국군통수권자와 국방부장관이 시켜서 뭔가 하기는 하는데, 일순간에 민족반역자에 내란군이 되가는 모습에 자신이 처량하기도 하고, 동시에 본인이 지휘하는 부하지휘관 및 병사들이 동반하여 죗값을 치루는 것에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윤석열의 2차 탄핵 소추안이 의결되는 날이다. 윤석열은 2024년에 계엄령을 선포하여 잊을만 하던 국민의 기억속 상처와 트라우마를 헤집고 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의 노력과 시민들의 눈부신 희생으로 간신히 고비를 넘겼다. 몇백 몇천만원 넘게 선결제를 통해서 집회를 응원하는 국민성이 있다. 서울시가 지원 안해도 번개같이 오픈된 공중화장실지도 사이트가 나오는 저력이 있다. 오늘 탄핵이 가결되든 안되든 우리는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축소되더라도 언제나 대한민국을 흔들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전진하는 국민을 막을 순 없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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