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의 끝이 보이자 전후 세계질서 수립을 위해 모인 
미국 영국 중국
그들의 회담에서 최초로 한국의 독립문제가 거론됐다.


소련은 끝끝내 중국과의 겸상을 거부하여
미.영.소 테헤란 회담이 따로 열렸고
카이로 선언의 내용에 소련도 동의했다.





다만 가능한 빠른 시일에 자유 독립시킨다는 문구가
"적절한 절차를 거쳐(in due course)" 독립된다로
바뀌었고 역사적결과를 보면 이는 신탁통치를 의미한다.





루스벨트는 카이로 회담 이전부터 국제공동관리 라는
전후 식민지들의 신탁통치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장제스는 임시정부의 최대 후원자 였고 
카이로 회담 참가 몇달전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은
장제스를 만나 한국의 독립문제를 의제로 올릴것을 
요청했고 결과적으로 장제스는 약속을 지켰다. 



영국을 뺀 미국 ㅡ 중국의 양자회담에서
한국독립 문제를 거론했고
이것이 카이로 선언에 반영된것





 임시정부 외교부장 조소앙과 충칭주재 미국 대사 고스의
비밀대화라고 주장하는 인터넷자료

위 자료의 진위여부는 개인적으로 모르겠지만 루스벨트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미중 회담이후 이뤄진 미영 회담에서 하게된다.

즉 루스벨트는 장제스가 한국을 독립시키려고 하는건 한반도를 중국의 속국으로 만들거나 영토를 복속시키려는 의도로 보았다.

역사적 결과를 보자면 국민당과 장제스는 1949년말에
대만으로 쫓겨났고 한반도에 대한 야욕은 마오쩌둥의
공산당 정부가 보여줬다. 


그리고 임시정부에 대한 승인을 위해 외교부장 조소앙은
사활을 걸고 엄청난 노력을 하였지만 미 영 소 중 
4개국 중 어디도 임시정부를 한국의 정부로 승인하지
않았다.


카이로 회담에서 영국은 한국에게 빌런 그 자체였다.
처칠이 한국의 독립을 반대했다는 주장이 나올정도로
고추가루를 뿌려댔다

본인들 식민지문제가 눈에밟히기도하고
과거 동맹이었던 섬나라 제국주의 일본에 대한 감정 
적대적이었던 청나라의 후예에 대한 감정
등등이 작용한게 아닐까




오늘날 뉴라이트 계열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루스벨트가 주도적으로 한국독립을 선언문에 넣었으며
이는 이승만의 공이므로 김구와 장제스는 별로한게없다
라는 주장이 뜬금없이 나왔지만 바로 박살나버렸다 


광복 이후 이승만은 장제스를 만나
한국의 독립에 힘써준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했다

루스벨트 또한 카이로회담을 성사시키고 처칠의 불만에도
 한국독립안을 끝까지 관철시켜준 고마운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