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박상륭을 꼽고 싶음.
물론 이미 작고하셨지만 죽음의한연구 첫째날의 표현을 보고 충격 받았음. 동서고금의 사상들을 아우르면서 동시에 어떻게 그런 표현력을 가질 수 있는지, 존재의 순간을 언어로 길러낸다고  했을 때 그 선명한 예를 보는 것 같았음.
박상륭은 마치 사르트르처럼 소설이란 형식으로 철학한 사람이라 생각함


1. 소설 도입부의 한 문장(개인적으로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의 도입부에 비견된다고 생각)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羑里)로도 모인다.


2. 주인공이 가야금 소리를 듣는 부분
그러며, 내가 저 소리에 의해 병들고, 그 소리의 번열에 주리틀려지며, 소리의 오한에 뼈가 얼고 있는 중에 저 새하얗게 나는 천의 비둘기들은 삼월도 도화촌에 에인 바람 람드린 날 날라라리 리루 루러 러르르흐 흩어지는 는 는 는느 느등 등드 드등 등드 드도 도동 동 동도 도화 이파리 붉은 도화 이파리, 이파리로 흩날려 하늘을 덮고, 덮어 날을 가리고, 가려 날도 저문데, 저문 해 삼동 눈도 많은 강마을, 강마을 밤중에 물에 빠져 죽은 사내, 사내 떠 흐르는 강흐름, 흐름을 따라 중모리의 소용돌이, 자진모리의 회오리 휘몰아치는 휘모리, 휘몰려 스러진 사내, 사내 허기 남긴 한 알맹이의 흰소금, 흰소금 녹아져서, 서러이 봄꽃 질 때쯤이나 돼설랑가, 돼설랑가 모르지, ……계면(界面)하고 있음의 비통함, 계면하고 있음의 고통스러움, 계면하고 있음의 덧없음이, 그리하여 덧없음으로 끝나고, 한바탕 뒤집혔던 저승이 다시 소롯이 닫겨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