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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공유 글이라 안 보이실 수 있습니다. 퍼 오면서 맞춤법 등 일부 교정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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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시스템이 자본주의 질서에 역행하고 있기 때문에 필수의료가 망한다고 생각하는 일부 의료인들이 있는 것 같다.(퍼온이 주: '일부'?!) 공통적으로 이번 사태가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들 계신데, 자본주의 어쩌고 하면서 밥그릇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그건 그렇다치고...

정말로 자본주의적으로다가 수가를 시장에서 결정할 수 있게 해 버리면, 필수의료 하겠다고 의사들이 다 달려들게 될까? 오히려 자본주의적으로 폭망하는 상황이 될 것 같은데.

애초에 필수 의료라 불리는 것들은 대개 비용이 많이 들고 들이는 비용에 비해 아웃풋이 별로 없는, 자본주의에서 포기해야 할 비효율 투성이들이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적으로 이득이 되려면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필요한 것을(시장성)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 수 있어야(대량생산 및 대량판매) 한다. 유병률의 관점에서 볼 때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보다 훨씬 많고, 당연히 이 건강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 수요가 필수의료가 필요한 환자들의 수요보다 훨씬 많으며, 건강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중재들은 비교적 간단하고 빨리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인기과라고 불리는 과들이나 요새 욕먹는 미용의원들이 로컬에서 어떤 사람들을 상대하는지만 봐도 금방 계산 나온다. 자본주의적으로 시장에 맡겼을 때 어떤 분야들이 가장 피똥을 쌀지.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 의료는 너무 사회주의적으로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필수의료의 사회적 가치가 너무 싸구려가 된 것이 문제라고. 일견 타당한 면도 있지만 잘 한번 생각해보자. 대형 병원에서 사람 하나 살리자고 투여되는 자원들이 얼마만큼인지 눈 앞에서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본주의적으로다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 살아도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가능할지에 대해 확신이 없는 환자에게 이 정도의 자원을 투여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고민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투여되는 자원의 비용을 모두 자본주의적으로 정산해야 한다고 할 때, 사회적인 부조 수단이 없다면 시장의 소비자들 중에 이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억지로 살아서 남은 삶을 경제적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그냥 생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그게 자본주의적으로 합리적 선택이니까. 이것이 필수 의료를 지키려는 의사들에게 자본주의적으로 이득이 되는 상황일까? 당장 수술해야 할 환자 수 자체가 얼마 없는데, 그 의사들을 병원에 데려다 놓고 있는 것부터가 자본주의적으로 심각한 비효율이다.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료인마저도 의료사회주의 때문에 필수 의료가 망했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필수 의료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생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소중하다"라는 철학이다. 태생적으로 자본주의 관점에선 비효율과 낭비로 가득찬 필수 의료를 버티게 해주는 이유가 윤리적 형이상학적 가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며, 그 가치의 현실화인 국민건강보험이 그 밑바탕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필수 의료를 망치는 것은 의료사회주의가 아니라, 그 윤리적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할 정부마저 자본과 효율성의 논리로 의료 제도에 접근하고 있으며, 그 논리에 사회 전체가 동의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자본주의 말기적 현상이다.

나는 필수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로서, 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의료사회주의를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하는 것이며, 그 근본을 형성하는 생명에 대한 윤리적 가치를 회복하기 위해 사회가 노력해야하며, 의사들, 특히 필수 의료 의사들부터 그를 위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와 같은 필수 의료 의사들의 밥그릇에 가장 이익이 되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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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이 사족: 이국종 교수님은 "한창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다가 (교통) 사고 나고, 산재 당해서 으스러지고 뭉개진 채 오는 곳이 중증 외상 외과다. 이들을 건강하게 살려내는 일이 사회적으로 효율성 떨어지는 일일 수 없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사실 이는 산과, 소아과, 지난 전염병 사태에서의 감염내과 등 여타 필수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편익이 큰 일이라 해서 시장에서 공급자가 반드시 큰 이익을 남길 수는 없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공급자의 비용(특히 초기 비용)이 매우 크거나, 앞서 말한 비용 문제나 다른 이유로 수요-공급 곡선의 교차점과 사회적 편익의 최고 지점이 서로 다른 경우가 그러하지요. 이럴 때 발생하는 게 <시장 실패>입니다. 이 때 시장 실패를 대신해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여 사회적 편익을 제공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며, 이렇게 공급되는 재화와 용역을 우리는 공공재, 사회 인프라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미학이가 달려든다면 뭐라고 물어뜯을지 대충은 짐작이 갑니다만, 그 내용이 위를 반박하지 못할 것이야말로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러니 바라건데, 꼭 이 글에 미학이가 출몰해서 찌질거렸으면 좋겠습니다. 귀 막고 눈 가리고 소리지르는 "수능 1등급 엘리트"(본인이 의사라고 주장하니 그건 뭐 맞다 치는 의미에서)의 문해력 수준이 어떠한지 많은 분들이 보고 가셔서 널리 좀 뽀록이 났으면 좋겠거든요.

짤방은 제 글이 언제나 그러하듯, 우아한 테라 하이엘프 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