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서울대 ROTC 출신 중대장.

키는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체격과 서글서글한 인상, 멋진 목소리.
이전 찐따 중대장에게 시달린 1년 반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음.
당연히 중대생활은 이전보다 좀 더 빡세졌지만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했고, 합리적인 변화였음.

그렇게 나는 전역을 2달 남긴 상황이었음.
주둔지를 떠나 탄약대 파견근무를 약 한 두 달 나간 상황이었는데, 한 겨울이었음.

하는 일이라고는 밤 낮 안가리고 근무 뺑뺑이만 돌리다보니 밤과 낮의 밸런스가 모두 무너진 상황이었음.
그러다보니 기상하고 아침먹고 다시 자고 일어나서 점심먹음.

그런데 중대장이 순찰을 불시로 다니며 자고있는 근무자를 발견하는 일이 잦아짐. 그 때문에 단체 얼차려를 받는 상황도 몇 번 생기고, 중대장과 중대원들의 사이가 점차 멀어질 때 쯤 사건이 터져버렸지.

자고있는데 갑자기 다 깨우더니 집합하라고 함. 시간을 보니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음.
겨울이다 보니 어둡고 하필이면 눈도 내린 상황.

연병장에 나가보니 이미 중대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또 누가 자다 걸려서 단체 얼차려 받겠구나 하고 생각함.

그렇게 추위에 떨며 중대장을 바라봤음. 
(중대장이 당연히 뭐라고 이야기를 하긴했었는데 기억이 나질 않음. 뒤에 일이 너무 쇼킹해서. 까먹은 듯..ㅋㅋ)

아무튼 뭐라고 중대장이 몇 마디 한 후 갑자기 발 아래 눈을 뭉치더니 씨익 웃더니 우리에게 던짐..

아.. 설마.. 난 제발 아니기를 바랬음. 이 피곤한 파견지 생활에서 남자들만 득시글한 이런 곳에서 그런 감성적인 이.벤.트.가 통할리가 없잖아..

그렇다. 우리 명문 서울대 ROTC출신 중대장은 이 지친 파견근무 생활에서 깜짝 이벤트를 열어 병사들의 사기를 복돋아 주기 위하여, 새벽 5시에 강제로 기상시켜 한 바탕 눈싸움을 벌이려 했던 것이었다!

중대장의 눈을 맞은 병사들은 똥 씹은 표정으로 중대장을 노려봤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감지한 중대장은 간부들에게 눈덩이를 던졌다. 역시 눈치가 빠른 간부들은 하.하.하.하. 거짓웃음을 흘리며 눈을 뭉쳐 중대장에게 던졌다. 웃고있었지만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

이 상황을 병사들은 그저 무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도 전역이 2달 남은 상황이라 눈치를 보니 이대로 가다가는 X될 거 같아서 앉아서 눈을 뭉쳐서 엉거주춤 이걸 던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하던 중.

중대장이 말했다.

"엎드려 뻗쳐!"


한별이형.. 지금 생각해 그 이벤트(?)는 아니었어.. 그리고 호응 안해준다고 돌변해서 얼차려 준 건 너무했다.


아니 중대장님.. 교수 됐어? 
이러면 KCTC때 자기 통신병 쏴죽인 썰을 더 풀 수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