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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락호
2021-06-09 19:06
조회: 20,998
추천: 1
일본의 AV산업이 발전하게 된 이유일본의 성인 비디오 산업이 발달한 것은 태평양전쟁 패망 이후,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단카이 세대)의 등장과 그로 인한 1980년대 버블경제 심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원래 일본의 성인 비디오 시장 또한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와 별 다를 바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과거 극장에서 ‘애마부인’, ‘지옥에서 건진 내 딸’이나 ‘훔친 사과가 맛있다’, ‘먹다버린 능금’과도 같은 성인영화들이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었는데 일본 또한 이와 마찬가지였고 수위도 성인영화 등급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이 때의 에로물들은 대부분 필름 영화로 만들어져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었죠.
이를 이른바 '로망 포르노'의 시대라 부릅니다. 그러던 것이 1977년 비디오 시장의 성장을 눈여겨 보던 비닐잡지(일본의 가판대 등에서 판매하는 싸구려 성인잡지) 제작사 쿠키가 캠코더로 이를 촬영해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 공급할 경우 대박을 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작사를 만들고 이를 실행했는데요. 일개 싸구려 잡지 회사가 영상 제작판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은 쿠키가 바라보고 있던 '야한 동영상'에 몇 가지 특이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영세한 제작사가 제작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제작비가 가능했다는 점. 당시 쿠키는 로망 포르노나 다른 기타 에로물들과 차별화를 하기 위해 퀄리티는 떨어질지 모를지언정 '본 플레이'만을 담은 영상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따라서 많은 배우들의 섭외가 필요 없었고 촬영장소도 많은 필요가 없었으며 스태프들도 간소화 되었습니다. 비닐잡지 제작사였기 때문에 성인 배우들의 섭외는 전문이었던 것도 이점으로 작용했죠.
촬영의 결과물은 매우 조악했던 수준이었고 퀄리티도 떨어졌지만, 로망 포르노나 에로물과는 달리 ‘플레이 자체’만을 담은 영상이었기 때문에 센세이션한 반응을 일으켰고 스토리나 이야기의 전개나 촬영 배경 등 감안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제작비는 저렴한 수준이 될 수밖에 없었죠. 로망 포르노에 이어서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본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무라니시 토오루(라고 쓰고 정신병자 양아치 쓰레기라고 읽는다)를 위시한 캠코더 촬영 비디오 제작자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고, 당시 호쿠토(현 Will, S1, 무디즈 등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최대 DVD&비디오 유통업체) 산하의 비디오 대여점에 이들 촬영 비디오들이 배포되면서 ‘어덜트 비디오’라는 장르가 창작되고 현재 이는 AV라는 이름으로 굳어졌습니다. 저렴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즉각적이었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범람했고 당연히 제작물들은 쏟아졌죠. 비닐잡지의 에로 모델을 하다가 AV배우가 된 아이조메 쿄코는 최초의 AV배우라는 수식어를 따냈고 야가미 야스코는 초대 ‘여왕’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히트였냐면, 당시 비디오 시장의 ‘표준’경쟁을 하던 파나소닉이 아이조메 쿄코를 모델로 해서 비디오 판매 이벤트를 하기도 했었으니까요. 이 과정을 통해 로망 포르노를 비롯한 에로 영화들은 모두 사장되고, AV의 시대가 온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급진적인 발전에 대해 국가가 나서지 않았는가 하면, 이는 단카이 세대의 등장과 80년대 버블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로망포르노가 등장한 이유는 68세대, 전공투 세대를 위시한 좌파 세대의 대두와 이로 인한 저항정신, 아직 남아 있는 우파 제국주의 성향을 걷어내고자 하는 자유민주진영의 저항정신이 시대의 화두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성적인 분야에서도 급진적 바람이 일어난 것이었죠. 이는 영화산업의 상업적 이해와 맞물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는데요.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당시 종신고용과 인공서열을 주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파나소닉이 전자기기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는데 당시의 ‘뜨거운 감자’는 단연 비디오 데크였습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산요전기, 소니 등은 파나소닉과 함께 비디오 데크에 대한 표준 시장에서 경쟁을 벌였고 이는 각 가정에 비디오데크 하나정도는 들어가게 되는 폭발적인 보급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비디오 산업 혁명은 당시 성장하던 일본 경제에 큰 힘이 되죠. 한편, 이러한 흐름에 이전에는 없던 과격한 성인 에로 콘텐츠가 개입되고 있다는 것을 정부 또한 알고 있었지만, 딱히 이렇다 할 규제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우라 비디오라는, 형식상의 심의를 무시하는 비디오들까지 유통되고 있었지만, 1980년에 들어서 일본 경제를 세계 2위까지 끌어올린 버블경제 시대를 맞이하면서 돈이 되는 산업에 칼날을 들이댈 수 없었기 때문이었죠. 특히 이 때에는 유럽, 미국 등 세계 시장으로까지 일본 가전이 부각되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내수시장에서의 성장세를 억제하는 정책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태평양전쟁 이후 각 가정이 울며겨자먹기로 보유하고 있던 쇠구슬 베어링(당시 일본은 볼트나 베어링 등 군수물자의 어느 정도를 각 가정에 할당해 납품토록 했음)을 쓸데가 없었는데 그것이 빠찡코 가게들의 줄창업으로 이어졌고 경제가 어렵다 보니 붐을 일으키던 빠찡코를 애써 외면한 일본 정부의 이면적 모습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래서 일본은 도박이 불법인 반면 빠찡코는 합법입니다).
물론 규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현재로써도 규제는 '자체적으로 검열을 해야 한다'라고만 명문화 되어 있고, 암묵적으로 이 자체 검열은 자체적인 모자이크 처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비디오 산업의 부흥을 이끌고 콘텐츠 산업의 한 축으로 성장한 업계를 더 이상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고민이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흐름이 일본 최대 비디오 콘텐츠 공룡인 호쿠도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고, 일본 자동차 산업의 30%수준까지 올라오는 대형 매출 시장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유교적인 관점이나 나라 특유의 성향과는 별개로, 과도성장기에 있었던 나라의 사정과 패망 이후 자연스럽게 등장한 전체주의 저항세력의 대두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보는 게 맞겠네요. http://www.ppomppu.co.kr/zboard/view.php?id=freeboard&no=7464009 옆동네에서 퍼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