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참 많이 고민하는 부분입니다만..

지금처럼 게임이 자본집적 산업이 된 이상 해결되기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P2W은 싫어합니다.

하지만, P2W 게임을 만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게임을 만드는 것에는

비교도 하지 못할 차이가 있습니다.



P2W 은 신입 기획자 불러다놓고 유료화 모델을 짜라고 해도 짤 수 있습니다.

지금 진행되는 프로젝트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어도 짤 수 있습니다.

P2W으로 성공한 게임들의 유료화 모델을 그대로 가져와도 중박은 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게임일 경우 유료화 모델을 짜는 데 있어 굉장히 골 아픕니다.

게임 잘 만들고 정액제로 한다고 칩시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무수한 고민을 해야합니다.

어떡하면 유저들에게 동기 부여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건 단순한 고민이 아니라 유저들의 플레이 패턴이라든지

유저군별 성향이라든지.. 심리적인 요인까지 다 파악해야 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데이터를 수집해야하고 또 분석해야 하며,

이것을 기계적이 아닌 감성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능력은 경험과 훈련으로 쌓이는 것도 아니고,

천부적으로 타고난 재능에 상당히 의존하는 분야입니다.

즉, 타인의 행동과 성향의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는 디자이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디자이너가 분석을 한다고 해도 100% 장담할 수도 없고요.

그에 비해 P2W은 간단합니다.

설정이야 어찌됐든 대충 새로운 지역 내놓고 또 새로운 아이템과 함께

기존의 프리미엄 아이템보다 더 강하며, 새로운 지역에서 나온 아이템보다도 강한 것을 내놓으면 됩니다.

좀더 유저에게 친절한 게임이라면, 앞서 팔아먹던 캐쉬 아이템은 무료로 필드 드랍시키는 정도겠지요.

어차피 앞서 팔아먹던 건 팔리지 않거나 고작 신규 유저들 등쳐먹기용일 뿐일 테니까요.



P2W의 게임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또 하나 있습니다.

자신들의 자본으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기업급의 개발사라고 하더라도 개발팀이 본사로부터 개발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때 개발제안서를 내게 되는데요.

개발제안서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기대 수익'입니다.

기대 수익을 뽑을 때 P2W은 아주 깔끔하게 뽑힙니다.

경쟁 게임들에서 몇 %의 유저들이 유입될 것이니 각 시장별 기대 유저는 얼마이며,

그 유저들의 게임 플레이 동선을 분석하여 어느 시점에 무엇을 결제하고,

중간에 이탈할 것으로 보이는 유저들도 걸러내고 하면,

서비스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기간별로 기대수익이 쫙 뽑힙니다.

그에 비해 P2W이 아닌 게임은요?

경쟁 게임에 비해 어떠한 요소들이 강화되었다고 하더라도

기존 게임과 비슷한 시스템이 아니라면, 기대 유저를 뽑을 수가 없습니다.

경쟁 게임과 비슷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기존 게임에 정착한 유저들이 새로운 게임으로 건너올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

어떠한 보장도 할 수 없게 됩니다.

P2W이 아닌 게임은 그야 말로 '프로듀서'의 네임밸류를 믿고 가든가,

아니면, 정말 투자자가 새로운 게임을 원하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저도 몇 해 전부터 투자를 받으려고 하는 게임 시스템을 가지고는 있습니다.

기존의 어떤 게임에서도 보여주지 못했던 발상의 과금 시스템을 가지고 있고요.

이러한 시스템은 '권력'을 추구하는 국내 헤비 차저에게도 충분히 먹힐 것이고,

도네이션에 익숙한 해외 유저들에게도 충분히 먹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생각일 뿐입니다.

투자자들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요구합니다.

새로운 시도이기에 데이터가 없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데이터가 없다면, 투자자들에게 믿음을 주어야 하는데 저는 아직 그럴 능력도 명성도 없더군요.

그러면 입 다물고 그냥 P2W 게임이나 만들 뿐입니다.

아니면 게임 업계를 떠나든가 말이죠.

그래서 요즘 게임 기획을 공부한다는 지망생들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P2W이 나쁘다?

저도 나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참.. 이게 딱 부러지게 결론을 지을 수 있는 내용은 아닙니다.

그나마 방법이라고는 P2W 게임들이 돈을 벌지 못하게 만들면 된다는 것 뿐이지요.

그래서 토론장에도 관련글을 몇 번 썼던 것이고요.

"지금 나와 있는 게임이 그런 게임들 뿐인데 어쩌란 거냐?"

네, 맞습니다. 지금 국산 게임들 대다수가 P2W 이죠.

그렇지 않은 게임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런 게임들이 취향이 아닐 수도 있고요.

어쩔 수 없이 P2W 게임이라도 한다고 한다면...

이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도 언젠가는 제 이름을 타이틀에 걸고 게임을 만들 날이 오겠지요.

솔직한 심정은.. "P2W이 그 때까지 대세였으면 좋겠다." 입니다.

돈 벌 목적이라면 그런 게임 만드는 게 쉽고 편하거든요.



유저 입장에서의 이러한 논쟁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논쟁이 아닌 행동으로 항의를 하는 수 밖에 없어요.

물론 개발자 입장에서도 이런 논쟁을 해봐야 '해고 통보' 밖에 없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개발자를 두둔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객관적으로 생각하자면, 누구도 잘못한 것이 없다입니다.

투자자들은 돈이 될만한, 성공을 보장할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는 것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개발자들은 만들기도 어렵고 미래 보장도 안되는 것보단 만들기 쉽고 수익이 보장되는 것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유저들은 욕은 하지만 그래도 그런 것들을 열심히 사줍니다.

지금의 상황은 딱 이 정도로 정리 됩니다.

저 셋 중 누군가가 사슬을 끊어야할 뿐입니다.

투자자들은 수 억, 수 십억 원의 돈을 포기해야 도전할 수 있을 것이고,

개발자들은 처자식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도전할 수 있을 것이며,

유저들은 지루함을 이겨내야 도전할 수 있을 문제이지요.

행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각자의 몫입니다.



P2W이라고 광범위하게 잡았지만, 랜덤박스도 사실상 P2W의 범주에 들어가니

구분하여 글을 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