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룡과 그의 아들 정성공.

※다음 글은 <해적> 피터 레이 지음. (2023) 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중국 해안에서 최초로 (대규모) 해적이 창궐한 사례는 명나라 때 왜구였다. 왜구 선단이 바다에서 판을 치자 명나라는 15세기 해금을 단행했고, 이 때문에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다. (이 때 왜구 해적은 주로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 말레이인 등으로 구성됨)
두 번째로 해적이 창궐한 때는 17세기 중반 명·청 전환기였다. 명나라 군대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만주족을 내륙에서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고, 중국 남해안에는 조정의 통제력이 미치지 못했다.
1662년 명나라 영락제가 살해되어 황조의 명운이 끝나기 훨씬 이전부터 극단적인 조치 없이는 최소한의 치안도 유지하기 어려웠다. 극단적인 조치의 일환이 1628년 가장 성공한 해적단장 중 하나였던 정지룡을 장군으로 임명하는 것이었다. '장군'이라는 높은 직함과 재물을 합법적으로 축적할 기회를 제공하면 명나라 황실에 충성을 바치리라고 기대ㅐ해서였다. 초기에는 꽤 효과적인 조치인 듯했다. 1637년까지 정지룡은 명나라 수군의 일부가 된 자기 해적선단을 지휘하여 명나라 남해안을 평정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1636년부터 정지룡은 더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마침내 1645년경 그가 비공식적인 '남중국의 왕' 또는 '해협의 군주'로 자리를 잡았을 때, 쇠퇴일로에 있던 명나라 황실은 이 해적왕을 몰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지룡의 재산과 정치적 영향력이 이제 명나라 조정의 것을 능가했고, 조정은 '그가 황실을 버릴 수는 있어도, 황실은 그를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조정은 그에게 훨씬 더 높은 직급과 직함을 안겼고, 이후 얼마간 정지룡은 자신의 재산과 배와 병사를 동원해 명나라를 지켰다. 하지만 1650년경 정지룡은 자신의 공식 지위를 최대한 악용하여 그 당시 이미 승세가 완연했던 만주족 편에 섰다. (1644년 명나라 황실은 이미 멸망했으므로...)
 반면, 정지룡의 장남 정성공은 명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정성공은 해적역사에서 아버지보다 훨씬 유명한데, 중국식 이름보다는 '콕싱가 Coxinga'(국성야. 명나라가 국성(國姓)인 '주'씨를 정씨 가문에 하사한 데서 유래한 이름인 '국성야(國姓爺)(국성을 가진 군주)'를 서구식으로 발음한 것)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일부 자료에 적힌 것처럼 명나라에 충심을 다 바쳤는지, 아니면 그저 정치적 입장을 영리하게 취한 것인지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심지어 그의 동시대인들조차 정성공을 어떤 인물로 여겨야할지, 뭐라고 불러야 할지 확신하지 못한 것 같다. 만주족과 네덜란드인들은 그를 해적이라 불렀고, 영국인과 스페인인은 왕이라 일컬었으며, 그의 동포들은 마음내키는 대로 이 이름, 저 이름으로 불렀다. 확실한 것은 그가 1650~1651년에 '반청복명'의 기치를 내세우고 광동성에서 청나라 군대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정성공은 중국 남해안 지역과 대만에서 해적제국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지지층을 확보할 수 있었다. 
 청나라는 칙령을 내려 해안으로부터 50km 이내에 사람이 거주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해안에 척박한 중간지대가 생기면, 해적행위를 끝낼 수 있으리라는 헛된 기대에서 나온 발상이었다. 하지만 해안의 기반시설은 파괴되었고, 해안 주민들의 집단이주와 기근이 뒤따랐다. 명나라의 해금 조치보다 더 참혹한 상황을 낳았던 이 칙령은, 어떤 의미로는 정성공을 도운 셈이었다.
 그는 남경부터 광저우까지 이어지는 넓은 해안가에 해적왕국을 세웠다. 그리고 대만에 자리잡은 네덜란드의 핵심 군사기지 질란디아 요새를 포위 공격하여 1662년 마침내 네덜란드인들을 대만에서 완전히 몰아냈다. 이 결정적 승리로 정성공은 현 대만 정부와 중국 정부 모두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고작 4개월 후인 1662년 6월,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했다. 정성공의 부관들은 그의 사망 직후 곧장 후계자 자리를 놓고 사분오열했으며, 정성공이 세운 해적왕국은 1683년 청나라 군대가 대만에 쳐들어오기도 전에 붕괴했다. 
 정성공을 어떤 인물로 볼 것인가는 흥미로운 주제다. 해적, 왕, 심지어 국가적 영웅이자 자유의 투사 중 무엇이든, 여전히 진실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