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일본편의 3권과 4권은 교토와 나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된 것이, 애초에 교토라는 도시의 시작과 개척이 신라계 도래인 진하승 부부에 의해 이루어졌고, 코류지(広隆寺)라는 절 역시 원래 이 도래인들의 절이었으며, 이후 한반도에서 (아마도 신라?) 제작된 목조 반가사유상이 코류지에 보관되어 있으며, 이것이 일본의 국보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 일정에서 꼭 한번 들러보고 싶었던 사찰이기도 합니다. 제가 갔을 때는 절의 일부 구간이 공사중이었던 관계로 경내만 잠시 돌아다닐 수 있었고, 목조 반가사유상이 전시된 영보전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목조 반가사유상은 예전에 어떤 정신 나간 사람에 의해 훼손을 당했던 적이 있어서 아마 가품이 전시되고 있지 않나 합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진하승 부부의 조각상도 있었는데, 영보전 내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아쉽게도 찍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밑에 신문기사를 가져왔습니다)

목조 반가사유상과 진하승 부부의 조각상 앞에 서니, 무언가 경건해지는 마음이 들더군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다른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매일경제의 기사인 "일본 국보 1호가 신라인 사찰에 모셔진 까닭" (https://www.mk.co.kr/news/culture/8900858)라는 기사를 보시면, 이 사진과 함께 코류지 및 목조 반가사유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해설이 있습니다.



코류지를 다 보고 급하게 니시혼간지(西本願寺)로 부리나케 이동했습니다. 다행히 문닫기 전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불과 십분도 안되어 문을 닫는다는 안내가 나오고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이전 히가시혼간지 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니시혼간지가 원래 정통이긴 하다 보니, 절 내의 안내판에는 니시(西)라는 글자를 빼고 모두 다 혼간지(本願寺)로만 표기하고 있었습니다. 글자 하나에 담긴 자존심입니다.

니시혼간지의 문 하나가 국보인 당문(唐門)이라고 하길래, 담을 돌아서 보러 갔더니 공사중이었습니다. 지금이면 아마 수리가 완료되었을 것입니다. 이때의 여행은 공사중이었던 곳도 몇개 있었고 하루 차이로 입장을 못한 곳들도 두곳 정도 되는 등, 타이밍의 불운이 약간 있었던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