냥마루
2018-09-13 18:49
조회: 18,994
추천: 3
애니메이션 쉘터(Shelter) 리뷰: 무수한 상징 속에서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글에 앞서서 네이버 블로그랑 인벤은 글쓰기 기능, 정확하게는 이미지나 인용 문구, 글꼴 등이 틀린 탓에 수정이 어렵-귀찮-네요. 모바일 지원 수준도 약간 그렇고요....... 암튼, 글은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 보시는 게 더 보기 좋을 거 같아요. 뭘로 보실지는 각자의 마음이지만요. 절대 네이버 블로그 조회수 올릴 심보는 아니에요. 이런 링크로 조회수 올라가는 지도 솔직히 모르겠고요. 어쨌거나 제 입장에서는 부족함이 많은 긴글이라 뭐라도 보기 편하신 게 더 좋으니까요. 네이버 블로그 링크: https://blog.naver.com/zkdlsk1/221357792961) 여러분들은 이 짤을 본 적이 있나요? 인벤, 디시, 루리웹 등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를 하시는 분이라면 가끔씩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본 적이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귀여운 소녀가 아빠(혹은 엄마) 미소를 절로 흘러나오게 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부풀려주는 매력적인 짤이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하겠죠. 뻔한 문구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이 짤 속에 소녀는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에서도 정말로 행복할까요? 고리타분한 답이지만, 답은 ?(물음표)입니다. 행복해 보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제3자가 확답을 드릴 수 없는 애매한 상태죠. 그렇기에 짤 속에 행복한 소녀를 보고자 했던 분들에게는 애니메이션의 결말은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했던 건 이게 아니야.”라면서 말이죠. 그것이 악명 높은 <쓰르라미 울 적에 1기>, <스쿨 데이즈>, <학교생활> 같은 악의적인 편집으로 사람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치(명적)유(해)물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소녀의 행복을 예상한 사람에게는 다른 의미로 숙연하고 먹먹하게 해주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는 거죠. 귀여운 소녀가 등장하지만, 그 소녀가 행복해 보이면서도 결단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 언밸런스한 애니메이션. 이번에 제가 리뷰하려는 애니메이션, Shelter(이하, 쉘터)입니다. 본 리뷰는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를 분석하였기에 작품의 상세한 내용이 유출되므로 가급적 애니메이션을 감상하시고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6분의 러닝 타임인 단편 애니메이션이기에 감상하는 데에는 그리 큰 부담이 되지 않거나와 애니메이션 노래도 좋으니 순식간에 몰입하고 감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유튜브 영상에 자막 기능으로 한국어 자막이 지원되오니, 자막 걱정은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애니메이션 <쉘터>는 2016년 8월 11일에 디지털 다운로드로 발매한 포터 로빈슨과 마데온의 곡인 <Shelter>의 단편 애니메이션 형식의 뮤직비디오입니다. 공식적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판매된 게 아닌, 2016년 10월 14일에 포터 로빈슨의 트위터로 처음 공개되었죠. 그렇다고 <쉘터>의 뮤직비디오가 허접한 곳에서 제작된 건 아닙니다. 야구 명작 애니메이션, <크게 휘두르며>와 죽을 뻔한 게임 IP를 되살린 명작 애니메이션, <아이돌 마스터> 등 걸출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A-1 Pictures에서 제작되었죠. 제작할 때는 기획자로 포터 로빈슨도 참여했습니다. <쉘터>는 단편 애니메이션이란 뮤직비디오 덕분에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래서 포터 로빈슨의 유튜브 동영상 중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조회 수인 3500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동영상의 인기는 지금도 식지 않아서 현재도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가 한 달 내지 두 달 전에 조사했을 때는 조회 수가 3300만 가량 되었는데, 현재는 200만이 불은 걸로 어림짐작이 가능할 겁니다. 참고로, 유명 축구 시리즈 게임인 <피파 2017>에서 BGM으로 사용되기도 했죠. 그 외의 누가 제작했고, 이런 상세한 내용은 어차피 유튜브 영상 마지막 크레딧 부분에서 다 나오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기타 불필요하다 생각되는 내용도 생략했습니다. ▲마데온(좌)과 포터 로빈슨(우) 사진이다. 사진은 <쉘터> 투고와 동시에 라이브 투어가 발표된 당시 포스터
분명 독특한 뮤직비디오가 시선을 끌어서 인기가 순간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마케팅 전략이기도 하죠. 그러나 <쉘터>는 단기간이라고 말하기엔 지금도 인기가 많습니다. 앞서 말했던 조회 수가 올라가는 정도가 그를 증명해주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째서 인기가 많을까요? 단언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가 좋았다는 점을 꼽을 수가 있습니다. 일렉트릭 뮤직의 중독되는 비트와 흥겨움은 곡의 매력에 단숨에 홀려놓죠. 포터 로빈슨과 마데온의 명성도 당연히 한몫 단단히 차지합니다. 그리고 곡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청취자의 심금을 울리죠. 바로, 그 메시지를 뮤직비디오가 너무 잘 나타냈습니다. 주제를 그대로 드러난 갖가지 상징성, 의미심장한 도입부 등으로 몰입을 이끌어내는 플롯과 연출은, 메시지를 진하게 담아낸 노래와 조화를 이루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줍니다. 배경을 그려낸 화려한 작화는 약간 뒷전으로 밀려낼 정도로 말이죠.
상징은 애니메이션, 게임, 소설 등 갖가지 창작물에서 애용되는 문학적 장치로, 어떠한 특정 상황에서 표현된 눈짓, 입모양, 사소한 행동거지, 옷차림 등을 보고서 연상되는 무언가를 말합니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검은 양복, 평화를 나타내는 비둘기, 실패를 보여주는 자조 섞인 웃음 등을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은 대사로 표현된 직접적인 행동보다 상황과 분위기가 묻어난 현상의 묘사로 감정을 훨씬 극적으로 표현해주는 매력적인 장치인 거죠. 하지만, 상징은 다르게 말하면 독이기도 합니다. 관객의 심도 있는 관찰이 필수불가결하며, 관객의 해석에 기대는 측면이 많아서죠. 만약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대미를 장식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졌을 때 어떤 사람은 평화를 떠올리며 감격에 젖을지도 모르지만, 어떤 사람은 해충 덩어리가 날아다닌다고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관객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심어주는 매력적인 장치, 반대로는 연관성을 찾지 못하고 미궁에 빠뜨리는 딜레마적 장치가 바로 상징이죠. 그래서 상징은 많을수록 혼란을 야기하고, 잘못되면 상징물을 작가의 꼭두각시 인형으로 절락시키는 달콤한 독입니다. 이렇게 상징에 대해서 얘기를 한 까닭은 <쉘터>가 그야말로 상징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쉘터>는 도입부와 결말에서만 상황을 특정 시켜주는 대사가 단 몇 줄뿐이고, 모든 내용은, 인물의 행동거지와 연출을 통한 시청자의 자의적 해석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단서도 전개 중일 때의 주인공 소녀의 표정과 손짓 등 사소한 행동에 모두 의지해야 하죠. 이런 자의적인 해석은 깊이 있는 사고와 성찰을 유도하고, 소녀나 다른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떠올리면서 체험시켜주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지만, 동시에 감상을 각자의 관점에 맡겨버리면서 본연의 의도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쉘터>는 열린 결말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해석의 중심이 될 결말이 시청자의 퍼즐 조각 중 하나가 돼버린 거죠. 결국 결정적인 단서를 얻지 못하고, 자신이 연상한 결말에 맹목적으로 결론지을 수밖에 없어집니다. 그것이 작품의 메시지를 반감시킬 수도 있을지라도 말이죠.
상징물 덩어리인 <쉘터>의 스토리는 의미심장한 도입부에 걸맞은 장황한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소녀가 지구가 파괴되고 혼자 살아남게 된 경위이죠. 하지만, 이런 장황한 서사에도 스토리나 세계관은 사실상 별거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행성과 지구의 충돌로 인한 문명의 파괴, 우주선과 가상현실의 구현, 그리고 우주의 떠돌이가 된 주인공 소녀. SF를 조금만 접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뻔한 소재거리의 나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러한 SF의 클리셰를 따르면서 <쉘터>는 감상의 방향은 달라도, 스토리의 이해는 같게 해줬습니다. 게다가 친숙한 도구를 사용하면서 몰입감을 해치지도, 상징성이 벗어나지도, 주제가 최대한 흩트리지도 않도록 하려고 했죠. ▲가장 예를 들 수 있는 도구인 태블릿과 터치펜이 세계관의 몰입을 돕는다. 그렇게까지 해서 <쉘터>가 담아내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바로, 부성애입니다. 정확하게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아버지의 희생이죠(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노래도 이를 두드러지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래와 애니메이션은 주제만 같지 내용이 약간 다르기 때문에 노래 가사는 얘기에서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쉘터>의 이런 의중을 알아챌 수 있는 부분은 실질적인 <쉘터>의 스토리인 과거를 살펴볼 때입니다. 사실 소녀가 과거를 회상하는 건 스토리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소녀가 의도적으로 과거 회상을 억제하려는 장면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과거를 살펴볼 때 태블릿에 그려진 정교한 그림체는 소녀가 그렸던 허접한 그림체로는 상상도 할 수 없으며, 소녀의 당황스러운 반응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지요. 그렇기에 이때의 과거는 소녀의 아버지가 기록해둔 아버지의 기억입니다. 과거 이야기가 철저하게 아버지의 시점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이유기도 하죠. ▲죽음은 눈앞에 당돌했는데도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자신보다 소중한 소녀가 살아갈 거라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참고로, 우주선이 떠났는데도 아버지의 기억이 보존된 거에 대해선 너무 연연하지 말자. 덕분에 과거 이야기를 통해서 소녀는 아버지의 소녀에 대한 애정과 각오, 희생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소녀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으면서 미안함과 변명을 듣게 되며 자신이 혼자 살아남게 된 경위를 깨닫게 되고, 한층 성숙하게 되죠. 게다가 과거의 마지막 순간에는 1인칭 시점으로 연출한 간절한 손짓은 소녀의 애절한 감정과 아버지의 감정을 둘 다 직접 체험하고 동화시켜줍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순간에 음악이 뚝 끊기고 침묵과 기계 소리를 들려주고 광활한 우주, 홀로 있는 우주선, 소녀의 처참한 몰골 순으로 비춰주면서 소녀가 처해있는 암담한 현실을 단번에 자각시켜주는데도, 아버지의 부성애를 느꼈기에 끔찍하다는 인상보다는 잔잔한 감동을 받게 되죠. ▲1인칭 시점과 간절한 손짓은 소녀의 감정을 무엇보다 잘 표현해줬다. ▲'우주'와 '우주선'과 '소녀'를 연결하는 걸로 소녀가 처한 모든 상황을 단번에 이해시켜준, 감탄을 금치 못했던 연출이다. 이런 <쉘터>의 의중을 단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건 바로 제목입니다. <쉘터>는 피난처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그리고 소녀의 피난처는 ‘우주선’에 해당합니다. 소녀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의 모든 노력이 깃든 장소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소녀를 구하고자 하는 아버지의 의지가 담긴 소녀의 단 하나뿐인 피난처이기에 아버지의 애정과 희생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쉘터>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잘 나타낸 단어이죠. ▲딸을 지키고자 하는 아버지의 모든 게 담긴 피난처이다. 여담이지만, 소녀는 가상현실 속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꿈꾸는 것은 뭐든지 가능하죠. 그렇기에 소녀의 어린 꼬마 같은 그림체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정신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표현한 게 아닐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보네요. ▲꼬마 아이 같은 그림체는 아직 미성숙한 소녀의 정신과 어린아이들의 독창적인 꿈과 무안한 가능성을 나타낸 게 아닐까?
<쉘터>의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도, 감상이 하늘과 땅처럼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이는 결정적인 요인은 소녀가 불행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처참한 몰골을 한 소녀의 현재와 앞날이 깜깜한 소녀의 미래를 상징하는 연출 장면은 소녀의 불행을 보여주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도덕적인 관점이 약간의 차이를 보여도 아버지는 무책임한 인물 내지 이기적인 인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당연히 뚜렷한 결말이 없이 소녀의 불행만이 가득 내비친 이야기에서 지극히 타당한 의견이죠. 다만, 이러한 결론은 아버지의 부성애를 주제로 내세운 작품의 메시지에 반하는 결론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앞서 상징에 대해 얘기했을 때 우려했듯이 시청자에게 잘못은 없습니다. 잘못이라고 하면 극적인 연출과 스토리로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명확하고 더욱 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제작진에게 있을 겁니다. 그래도 조금 제작진의 편을 들어주고 싶은 게,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자신의 의도와 메시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건 힘든 일이라는 거죠. 이런 관점의 따른 감상의 차이는 처음 언급했을 때처럼 이분법적인 사고로 소녀가 불행한지 행복한지 정의 내릴 수 없게 합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소녀는 불행과 행복 사이의 경계선에서 정의 내릴 수 없을까요? 그런데 이런 의견과는 다르게 소녀는 작중 대부분은 불행했다고 말해도 잘못된 게 아닐 겁니다. 소녀의 불행을 가장 먼저 살펴볼 수 있는 건 도입부입니다. 소녀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면서 의미심장한 독백을 하게 되죠. 이때 생각을 멈췄다는 독백과 함께 소녀의 공기 방울이 멎게 됩니다. 바닷속에서 공기 방울이 멎는 건 즉, 죽음과 같은 의미이며, 소녀가 미래로부터 의도적인 도피, 삶에 지친 모습을 살며시 드러냅니다. 그리고 벚꽃 잎이 지나가면서 살펴보게 되는 지옥 같은 풍경은 소녀의 불운한 삶과 심적 상태를 대변해주게 되죠. 벚꽃 잎의 순결한 모습과는 대립되는 모순이 이런 불행과 심적 상태를 더욱 극적으로 표현해줍니다. ▲공기 방울의 멎음과 벚꽃을 이용한 극적 연출은 소녀의 불행을 암시해준다. 이렇듯 도입부에서 쓰인 두 개의 상징적 도구는 소녀의 불길한 삶을 직간접적으로 보여주면서 상황과 분위기를 잡아주고 알려줍니다. 소녀는 불행하다고요! 그리고 이후로는 소녀의 심적 상태와 변화는 배경을 통해서 꾸준히 드러나게 됩니다. 작품 속의 배경이 소녀의 심적 상태를 대변하고 있다는 이유는 소녀의 무의식이 가미되었기 때문입니다. 소녀가 환경을 구성할 때 의식적으로 구현해낸 것, 무의식적으로 구현된 것이 조화를 이룬 거죠.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소녀가 어느 때보다도 밝은 환경을 구축했을 때입니다. 소녀의 거짓된 도피와 본심의 차이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이죠. 드넓은 초원, 눈부신 태양과 깨끗한 구름은 한없이 밝아 보이고, 그 속에서 뛰노는 소녀의 미소는 정말 기분 좋아 보입니다. 이때 함께 배경이 되는 나무 한 그루와 간이 그네에 소녀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게 되죠. 그리고 나무를 만지려고 하자 소녀의 외면했던 기억을 보게 되면서 살며시 태블릿을 확인시켜줍니다. 이게 소녀가 의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을요. ▲태블릿에 그려진 그림 어디에도 나무는 그려져 있지 않다. 가슴을 옥죄는 소녀의 반응이 자신의 아픔과 직면했다는 걸 보여준다. 여태까지 소녀는 현실에서 일어났던 일을 부인하는 방어기제를 보였습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과거를 의도적으로 배제해서 자신을 심적으로 보호하려고 했죠. 이 나무는 소녀가 가장 행복했을 때에서 비롯된 무의식의 산물입니다. 소녀가 부인해왔던 불운한 과거에서 모순되는 행복했던 순간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고, 그 모순으로 소녀의 방어기제를 무너트리며 과거와 직면시키는 매개체가 되어준 거죠. 그래서 이후의 배경은 점점 어두워지고 험악해지게 됩니다. 이게 소녀가 배제했던 과거와 직면하면서 받는 심적 불안과 마음의 상처 등의 내적 갈등을 대변해주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때까지 소녀는 분명하게도 불행했다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소녀의 상처로 인해서 배경은 점점 생기를 잃고 험악해져 갔다 하지만 이런 소녀의 불행은 곧 과거를 보면서 변화하게 됩니다. 불행했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기억이 아버지의 행복했던 기억과 맞물리면서 과거를 재조립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소녀는 심적 불안을 해소하고 한층 성숙해지게 됩니다. 이런 소녀의 심적 불안의 해소와 성숙해지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은 총 두 곳입니다. 첫 번째가 안개 걷히듯 맑아지는 배경이죠. 뻥 뚫리는 배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밝아 보입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하는 건 하늘의 색깔입니다. 이전까지 소녀가 구축했던 하늘은 짙은 파란색이었는데, 진한 파란색은 밝지만 일부로 속을 가린듯이 불투명하고 탁했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겪은 후의 하늘은 맑고 속을 비추듯 투명하고 깨끗한 하늘색을 하고 있죠. 이런 색깔의 차이가 갈등의 해소와 과거를 수용한 심적 변화, 그리고 내면의 성장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배경의 탁한 파란색에서 투명한 하늘색으로 변화하면서 소녀의 내면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곰 인형입니다. 곰 인형은 과거의 소녀가 아버지에게 받은 생일 선물로, 아버지를 대신하여 소녀와 함께하는 우주선에 탄 물건이죠. 그래서 곰 인형은 소녀의 소중한 추억이자 아버지를 상징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과거를 외면하던 초반의 소녀에게 곰 인형은 구석에 내몰려있는 등 철저히 외면당해왔었죠. 그러나 마지막에 곰 인형이 소녀의 곁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녀가 과거를 받아들이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되었음을 직접적으로 나타내준 거라고 생각됩니다. ▲곰 인형의 위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된 소녀를 나타내준다. 이런 성장에도 소녀의 몰골은 언뜻 봐서는 소녀는 불행하다고밖에 판단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행복의 기준은 주관적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교수이자 긍정심리학자인 탈 벤 샤하르는 감정은 파이프를 통해 전해지고 행복도 이 파이프를 타고 온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정의 파이프에는 분노, 격노, 불안, 슬픔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도 전해져온다고 했죠. 탈 벤 샤하르는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감정을 억제해서도 안 되며, 부정적인 감정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도 좋고 나쁨을 정할 수 없으며, 받아들여야 해결할 수 있다고 했죠. 이처럼 소녀는 불행했지만, 결국 불행을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성장해냈습니다. 분명 몰골은 처참하고, 예견된 것 같은 현실 속의 미래는 소녀를 불행하다고 짐작하게 해주지만, 소녀는 자신의 소중한 삶의 의미를 찾아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고 해결할 수 있게 되었죠. 그렇기에 소녀는 불행해 보이는 미래와 온갖 의구심 속에서도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소녀가 행복해 보인다고도, 불행해 보인다고도 정의 내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소녀가 짓는 마지막 웃음은 그 순간은 분명 소녀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는 걸 말해줍니다. ▲소녀의 미소는 지금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우리는 눈을 가린 채 현재를 지나간다. 기껏해야 우리는 현재 살고 있는 것을 얼핏 느끼거나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중에서야, 눈을 가렸던 붕대가 풀리고 과거를 살펴볼 때가 돼서야 우리는 우리가 겪은 것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밀란 쿤데라 의 소설 <우스운 사람들 中>- <쉘터>는 소녀의 붕대가 풀려서 다시 과거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고, 그저 불운하다고만 생각했던 순간을 다시 돌아보면서 누군가의 대가를 바라지 않은 희생과 그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 그 과정을 담아낸 이야기는 결코 치밀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직접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도 않습니다. 플롯이 좋지만 스토리는 사실상 뻔하고, 그렇다고 온전한 단편 애니메이션도 아닌, 그저 한 노래의 뮤직비디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죠. 하지만, 소녀를 향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은 가슴을 먹먹하게 울렸습니다. 아버지의 희생에 공감하고, 소녀의 슬픔에 공감하게 되죠. 그리고 그 감정은 소녀를 통해서 과거를 함께 돌아보는 시각이 되고, 자극제가 되어 시청자의 붕대를 풀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극적인 표현들이 본연의 메시지를 모두에게 완벽하게 전해주지는 못하겠지만, 과거의 어느 순간을 조금이라도 상기시키게 해줬다면, 그 의미만으로도 <쉘터>는 큰 가치를 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붕대가 풀린 세상은 어쩌면 지금과 180도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 약간 못한 얘기를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불필요해서 그냥 안 할까도 싶었는데, 그냥 해보려고요. 이 메시지 이력에 관한 얘기입니다. 원래는 맥거핀, 즉 낚시로 보고 있었는데, 글을 검수하면서 다시 확인해보니까 아닌 거 같더라고요. 이 장면은 아무래도 소녀가 삶에 지치고 정말 힘들었을 때의 상징 같아요. 소녀가 삶에 지쳐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때면 메시지를 확인하죠. 이건 외로움을 표시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여 힘든 순간을 이겨내고 싶다는 간절함, 즉 불행한 순간을 그대로 드러낸 거 같네요. 솔직하게 제가 생각해도 바보같은 게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한 장면 한 장면이 소중한데, 이걸 맥거핀으로 썼을리가 없겠죠....... 탈 벤 샤하르의 얘기를 인용한 것도 약간 잘못된 거 같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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