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생일 때 도서 대여점은 거의 저물어가는 문화였다.

학교 도서실에는 아마 망한 대여점에서 기부했을 판타지와 무협소설들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그것을 잘 읽지 않았고 라이트노벨은 괄시받는 오타쿠들의 즐길거리였다. 나는 괄시하는 쪽에 속했다.

국어성적이 좋단 이유로 배정된 도서위원 자리는 그래서인지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애는 늘 싱글벙글 웃고 다녔고 시덥잖은 나의 말에 까르르 웃었다.

그 아이의 입에서는 이상하게 단내가 났다.

고루한 책들을 읽던 나에게 그 아이는 이런저런 장르소설을 추천해주었다.

아마 SKT가 처음 읽었던 판타지 소설로 기억한다. 여자애들이 즐겨 읽는다고 했었지.

그 뒤로 그 아이와 난 때로는 판타지 소설을, 때로는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가까워졌다.

학교의 벚꽃은 아름다웠고 우리는 그것을 내려다보며 아이들이 하교하는 것을 지켜보다 도서실을 정리했다.

아마 봉사시간을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옆의 여자 중학교를 바라보며 우리학교와 합교되어 남녀공학이 될거라는 소문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결국 그런 일은 없었지만

그 아이와 난 하교길이 겹쳤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아이는 새하얀 색이었고 유달리 목덜미가 희었다.

스쳐 지나가는 그 애의 목에선 분유의 향이 났다.

그 말을 하자 얼굴이 빨게지던 너.

중학교를 졸업하며 나의 판타지는 끝났다.

그래도 소설을 읽을 때면 언제나 단내와 분유의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