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네시스 궁수 교육원 內 치료실

현재 이곳에는 론도와 올리비아를 비롯해, 그들의 파티원인 슈가·아론·테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올리비아의 수배 소식에 더해 아리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파티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리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아리가 천천히 눈을 뜨자 슈가가 눈물을 글썽이며 아리에게 달려들었다.

“슈가…? 그리고, 다들 여기 웬일이야?”

아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올리비아가 수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 같이 헤네시스로 왔어. 근데 도착하니까 네가 다쳤다고 하길래, 우리가 전부 여기로 모이게 된 거야.”

테스가 대표로 상황을 설명하자, 아리는 순간적으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쳤다니…?”

조금 전 일을 떠올리려 애쓰던 아리는 곧, 자신이 왜 기절했는지 생각해 냈다.

“그러고 보니… 바로크는? 봉인석은 어떻게 됐어?”

아리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상처의 통증 때문인지 잠시 숨을 골랐다.
슈가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헬레나 님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바로크는 이미 봉인석과 함께 사라졌대. 넌 쓰러진 상태였고, 헬레나 님이 널 이곳으로 데려오셨다고 해.”

테스가 차분히 상황을 전달했다.

“그런…!”

아리는 분노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고 이내 침대 옆 책상에 내리쳤다.

“제길…!”

그녀의 과격한 반응에 슈가는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헬레나 님은 지금 이 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려고 회의를 시작하셨어. 우린 네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고.”

테스의 말을 끝으로, 잠시 뒤 헬레나가 치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헬레나는 아리가 정신을 차린 걸 확인하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무사히 깨어나서 다행이네요. 많이 걱정했어요.”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사과는 저보단 옆에 있는 파티원들에게 하는 게 맞겠네요. 이 분들이 계속 걱정하며 기다렸으니까요.”

헬레나의 말을 듣고 아리가 주변을 둘러보자, 슈가와 아론, 테스, 론도, 그리고 올리비아까지 다들 쑥스러운 듯 고개를 긁적이며 눈길을 피했다.

“다들… 정말 고마워.”

아리는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며, 주변의 파티원들에게 짧게나마 인사를 건넸다.

“그럼 아리 님도 정신이 드셨으니, 회의 결과를 알려드릴게요.”

헬레나의 말에 방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모두 그녀에게 향했다.

“우선 보물을 훔쳐 간 범인은 바로크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저희는 상급 모험가들을 소집해, 봉인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장소에 투입할 예정이에요.”

“예상되는 장소라니요? 어디를 말하는 거죠?”

론도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바로크는 블랙윙의 간부입니다. 다들 블랙윙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겠죠?”

“에델슈타인을 점령했다는 조직이라면 알고 있어요.”

아리가 대표로 대답했고, 다른 이들도 대체로 비슷한 정보를 갖고 있는 듯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그리고 블랙윙은 과거 ‘검은 마법사’라 불리던 존재를 다시 깨우려는 단체이기도 합니다.”

“검은 마법사...?!”

아리는 물론, 그녀의 파티원들도 순간 술렁였다.

검은 마법사
과거 800년 전, 빅토리아 아일랜드를 비롯해 메이플 월드 전역을 전쟁으로 물들인 최악의 존재.
메이플 월드는 그의 침략으로 몰락 직전까지 갔고, 다섯 영웅에 의해 가까스로 봉인되었다.
현재까지도 역사상 최흉의 적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런 자를 깨우겠다니, 블랙윙 놈들은 제정신이긴 한거야?”

론도가 흥분해서 말하자, 헬레나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는 집단입니다. 세계 평화 따위엔 관심이 없겠죠.
그러니 하루빨리 봉인석을 되찾아 와야 해요. 다만 상급 모험가들은 어느 정도 모였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서 골치 아픈 상태예요.”

“곤란한 상황이라니, 뭐가 문제인 거죠?”

이번에는 테스가 물었고, 헬레나가 대답했다.

“블랙윙이 점령 중인 에델슈타인은 블랙윙과 그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가 소규모 교전을 계속 벌이고 있는 지역이에요. 그래서 저희도 실력이 증명된 상급 이상 모험가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리는 중인데, 문제는 블랙윙이 그런 모험가들이 오는 걸 반길 리 없다는 점이죠. 게다가, 레지스탕스 쪽에서도 우리 모험가 길드가 에델슈타인에 들어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잠시만요. 블랙윙은 그렇다 쳐도, 어째서 레지스탕스까지 우리를 적대하는 거죠?”

가만히 듣고 있던 아론이 질문하자, 헬레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변을 이어갔다.

“블랙윙이 에델슈타인을 장악한 건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일이에요. 그동안 레지스탕스는 계속해서 그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 왔죠.
그런데 5년 전, 레지스탕스가 블랙윙의 정보를 입수하고 대규모 작전을 계획했을 때, 저희 모험가 길드와 시그너스 기사단도 협력하기로 약속했었어요.”

헬레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작전 당일, 시그너스 기사단은 엘레오노르의 습격을 받았고, 저희 모험가 길드도 바로크와 이베흐의 견제로 에델슈타인에 지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레지스탕스는 혼자서 작전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인원의 절반 이상이 죽거나 체포되는 대참사를 겪었습니다. 그 여파로 지금까지도 전력을 회복하지 못 하고 게릴라전만 지속하는 상태인거고요.”

“블랙윙이 우리의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때의 첩보 자체가 함정이었겠네요.”

테스가 끼어들자,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하지만 레지스탕스 입장에선 ‘약속해놓고 지원을 오지 않았다’며, 그 책임이 우리 쪽에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어떤 협력 제안도 거부한 채, 독자적으로 싸움을 이어 가고 있죠. 그 때문에 현재 저희가 에델슈타인으로 가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헬레나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치료실 안 분위기가 점점 무거워질 때, 아리가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제가 갈게요.”

그녀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모두가 일제히 아리를 바라보았다.

“잠깐, 아리! 그게 무슨 소리야!” 아론과 테스가 놀라며 물었고,

“그래, 네가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론도 역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리, 일단 좀 쉬고 나서 얘기하자... 응?” 올리비아와 슈가도 그녀를 만류했다.

“맞아요, 아리 님. 혹시 죄책감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그럴 필요 없어요.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헬레나 역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아리는 단호했다.

“죄책감 때문이 아니에요. 충분히 생각하고 내린 결정입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론도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거가 뭐야?”

아리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첫째로 우리가 초보모험가라는 점 때문입니다. 에델슈타인 근교 ‘광산 지대’는 우리 레벨대에 적합한 사냥터가 있는 곳이라, 그걸 핑계 삼아 에델슈타인에 간다고 해도 전혀 부자연스럽지 않죠.
블랙윙이나 레지스탕스 입장에서도 굳이 우리 같은 초보 모험가에게까지 신경 쓰진 않을 거예요. 레지스탕스는 인원이 부족할 테고, 블랙윙도 괜히 초보 모험가를 건드려 모험가 길드를 자극하고 싶진 않을 테니까요.”

헬레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결심한 듯 아리를 보며 말했다.

“아리 님, 당신의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역시 당신 혼자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 말과 함께 헬레나는 아리를 둘러싼 파티원을 훑어보았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의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중 한 사람이라도 반대한다면, 저는 이 임무를 맡길 생각이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의 얼굴을 살피는 사이, 올리비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갈래!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게다가 난 그 변신술사한테 빚진 게 있다고!”

“나도 갈게. 아리에게 신세진 것도 있고.” 론도 역시 동의했다.

“나... 나도! 같이 갈게!” 슈가도 그들의 결심에 힘을 보탰다.

이제 남은 건 아론과 테스.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뭐, 파티원들 다 간다는데 나만 빠지긴 그렇지.” 

“하아... 점점 일이 커지는구만.”

결국 테스와 아론도 동의했고, 그 결과 여섯 명 모두가 에델슈타인 잠입을 결정했다.
헬레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들의 의견 잘 알겠습니다, 그럼 에델슈타인에 잠입하여 봉인석의 위치를 알아내는 임무는 여러분에게
일임하도록 하지요. 단, 꼭 명심하세요. 이번 임무는 어디까지나 잠입과 정찰이 목적이에요.
만약 여러분이 탈환 작전 이전에 발각될 경우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헬레나는 다시금 당부했다.

“절대 무리하게 전투에 뛰어들지 마세요.”

아리는 의지를 다지듯 고개를 끄덕였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파티원들이 만류했지만, 그녀의 결심을 꺾기는 어려웠다. 결국 여섯 명은 함께 치료실 밖으로 나섰다.

모두가 떠나자, 헬레나의 보좌관 엘렌이 들어왔다. 그녀는 헬레나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헬레나 님, 어떻게 저분들께 그런 임무를 맡기신 건가요? 그들의 의견이 일리가 없는건 아니지만, 거긴 적진 한가운데잖아요. 너무 섣부른 결정 아닌지...”

엘렌의 우려는 타당했다. 그러나 헬레나는 어딘가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 지었다.

“후후... 글쎄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역시 저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군요. 이 나이에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헬레나는 아득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웃었다.
검은 마법사와의 전쟁 당시, 누구보다 앞장서 적과 맞섰고, 자신들을 지켜준 영웅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가 아니죠. 우리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니까요.”

“네? 무슨 일을 하신다는 건지...?”

엘렌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헬레나는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에레브로 갈 겁니다.”



몇 시간 뒤,

그들이 에델슈타인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는 길게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비행장은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후우, 긴장되네… 우리 잘 될까?”
론도가 걱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뭐, 잘못되면 너를 미끼 삼아 도망치면 되겠지.”
테스의 농담에 론도가 발끈했다.

아리와 파티원들은 그간의 일에 대해 잡담을 나누거나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그들의 차례가 오자, 심사관이 불렀다.

“다음!”

테스가 먼저 모험가 수첩을 건넸다.
심사관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테스를 살폈다.

“모험가가 여기엔 왜 오지?”

테스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이 근처 광산 지대가 우리 레벨에 딱 맞는 사냥터라고 들었습니다. 오래 머무르진 않을테니 허락해주시면 안 될까요?”

심사관은 잠시 고민하더니 테스의 수첩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체류 기간은 일주일로 해주지. 이 비행장을 나가 오른쪽으로 쭉 가면 광산 지대가 있을 거다.
그쪽에 간부가 있을 테니, 가서 말하도록.”

“감사합니다.”

파티원 모두 심사관에게 도장을 받아 비행장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우선 광산으로 향하기로 하고 몸을 돌렸다.
심사관 말대로 광산 쪽으로 가보니, 검은 제복을 입은 콧수염의 남자가 보였다.
그는 하품을 하다가 새롭게 온 이들을 발견하고 걸어오기 시작했다.

“이봐,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남자의 물음에 아론과 테스가 대표로 응대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초보 모험가들인데, 이곳에서 사냥 좀 하려고요.”
아론이 대답하자, 남자는 흥미 없다는 듯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흠… 난 또 모자를 사러 온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 그럼 됐고, 알아서 적당히 사냥하다 가.”

그가 돌아서려 하자, 테스가 불러 세웠다.

“잠시만요! 모자라니, 그게 뭔가요?”

“응? 당연히 ‘블랙윙 모자’지, 뭔긴 뭐야.”

“네?! 그걸 살 수 있다고요?”

뜻밖의 말에 파티원들은 얼떨결에 남자에게 몰려들어 모자에 대해 캐물었다.

“당연하지. 10만 메소만 내면 얼마든지 팔아주마.”

“10… 10만 메소요?!”

고작 모자 하나에 10만 메소라는 이야기에 모두 놀랐다.
그들은 남자를 뒤로 하고 모여 가진 돈을 합쳐봤다.

“야, 다들 돈 얼마나 있어?”
“난 버섯 잡아서 2만 메소밖에 안 되는데…”
“난 4만 메소.”

결국 이리저리 끌어모아 10만 메소를 간신히 마련했다.
테스는 모은 돈을 들고 다시 남자에게 다가갔다.

“여기 10만 메소입니다.”

“흐흐, 좋아. 여기 약속한 모자다.”

남자는 테스에게서 돈을 건네받고, 모자를 하나 내주었다.

"이거 진품은 맞겠죠?"

올리비아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남자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당연하지. 어차피 본부에 말하면 또 공짜로 받을 텐데, 굳이 가짜로 속일 이유가 있어?"

‘공짜로 받은 거라니...?’
눈앞에서 사기를 당한 듯한 이들은 멍하니 남자의 말을 듣고 있었다.

"어쨌든, 또 모자가 필요하면 돈 가져와. 난 바쁘니 이만 간다."

남자가 멀어지자, 파티원들은 다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이제 이 모자를 쓰면 내부까지 당당히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올리비아가 말하자, 론도가 갸우뚱하며 대답했다.

"글쎄, 겨우 모자 하나로 통과가 쉬울까?"

"헬레나 님 말씀이면, 블랙윙 멤버들은 다 돈으로 해결하는 탓에 인원 관리가 엉성하다고 했잖아.
그러니 아마 모자만 써도 무리 없이 통과가 가능할 거야."
아리가 설명하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모자가 아직 하나뿐이니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어. 가능하면 두 개는 구해야 안전할 텐데..."
아론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두 번째 모자를 사려면 10만 메소를 또 마련해야 하는데, 그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결국 그들은 광산 입구 근처에 숨어 있다가 적당한 블랙윙 멤버가 나타나면 기습해 모자를 빼앗기로 결정했다.

잠시 후, 그들은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적당한 인물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시야에 혼자 돌아가는 블랙윙 멤버 한 명이 보였다.

"얘들아, 저기! 저쪽에 혼자 다니는 사람!"
올리비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론도가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좋아, 맡겨둬!"

론도가 성큼성큼 다가가자, 파티원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지켜봤다.
론도가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소년도 눈치챘는지 론도를 빤히 쳐다봤다.

"어이, 이봐. 모자 멋지네? 순순히 넘기면 살려주지."

"불량배냐!"

론도의 어이없는 협박(?)에, 파티원들은 이러다 더 큰 소란이 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그런데 예상밖으로 소년은 순순히 대응했다.

"그러죠."

"엥?"

론도는 물론, 파티원들도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했다.
소년이 건넨 모자를 론도는 어리둥절한 채 받아들였다.

"진짜? 이렇게 쉽게?"

"물론이죠. 이제 전 가도 되겠습니까?"

"어... 그래..."

소년은 해맑게 웃으며 론도를 지나, 광산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아론이 그를 앞에서 가로막았다.

"이봐, 미안하지만 그냥은 못 지나가."

"당신은 또 누구죠?"

"저 멍청이의 동료다. 미안하지만 넌 여기서 못 나가."

"어째서죠? 전 모자를 이미 건넸는데..."

"그래서 잡는거야, 바보가 아니고서야 저 모자를 이렇게 쉽게 줄리가 없잖아?"

아론이 말하자 옆에 있던 론도는 "내가 왜 바보냐!"며 발끈했지만, 아론은 무시했다.

"그러니 저 모자를 준 건 함정일 가능성도 배제할순 없지. 걱정은 하지마
너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으니까."

소년은 한숨을 쉬듯 머리를 살짝 흔들었다.

"후... 어쩔 수 없군요."

"억지로라도 비키게 할 수밖에 "

그가 마지막 말을 하자마자, 순식간에 아론의 뒤쪽으로 몸을 이동했고 
어느샌가 그의 손에는 에너지 형태의 채찍이 들려 있었다.

"아론!"

아리와 파티원들이 수풀에서 튀어나오려 하자, 소년은 손짓으로 이쪽을 제지했다.

"그만, 저는 당신들과 싸우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여기서 더 큰 소란을 내봤자 저나 여러분이나
손해만 볼게 뻔하니, 그저 조용히 서로의 길을 가면 되는겁니다."

"너를 뭘 믿고 그냥 보내주란 거지?"

아리가 소년을 노려보며 물었다.

"제 말대로 당신들의 ‘친구’를 지금 해치지 않는 게 자비일지, 여유일지는 생각해 보시길.
거듭 말하지만, 전 그저 이곳을 조용히 빠져나가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들한테 필요한 건 이미 제가 준 ‘모자’잖아요?"

소년이 채찍을 내려놓자, 파티원들도 그를 놓아주기로 하였다.

"너, 정체가 뭐야?"

아리가 떠나려는 소년에게 물었다.

"그저.. 지나가던 레지스탕스일 뿐입니다."

"뭐? 레지스탕스? 야! 잠깐!"

하지만 소년은 그 말과 함께 어느샌가 모습을 감췄다.

"레지스탕스라니…"

남겨진 파티원들은 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