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르골 컨텐츠를 참 좋아합니다.

캐릭터가 성장하고 레이드를 하는 것이 일상에서 벗어나 경험하는 모험이라면

오르골은 우리 인생을 구성하는 다양한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합니다.

 

특히 음악오르골이라는 소재를 사용한 것이 참 좋았습니다.

음악은 어떤 기억들의 촉매가 되고 당시의 감정을 오랫동안 담습니다어느 날의 바람온도냄새까지도 떠오르게 합니다.

로스트아크의 오르골에 삽입된 음악들은 각각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줄 뿐만 아니라 컨텐츠를 즐기는 우리를 기록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문득 들려온 멜로디에 우리는 로스트아크를 즐기고 감동했던 지금의 우리를 떠올리게 되겠죠.

 

소중한 20가지의 이야기 중 특별히 20번 오르골에 대한 감상을 남기고 싶습니다.

장애 아동을 상담하는 상담사로서 특별한 의미로 남게 될 이야기일 듯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원치 않으시면 뒤로 가기 추천 드립니다.

여기부터는 개인적 해석과 감상으로 적습니다.

 

 


카렌은 자폐 스펙트럼(이하 자폐)을 가진 아이입니다.

성장할수록 발달이 늦고 사회성이 부족한 모습에서 부모는 아이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눈맞춤과 의사소통의 어려움상동행동낮은 지능평범하지 않은 감각 체계 등 카렌은 자폐 아동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의사의 진단으로 사실상 확정된 자폐는 그의 말처럼 어떤 질병이 아닙니다그러니 완치의 개념도 없습니다.

아직까지 밝혀진 명확한 원인도완전히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할 방법도 없습니다.

자폐는 그저 기질이며 개인이 가진 특징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습니다.

 

자폐 아동들은 평생 적응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하게 됩니다.

보통 사람의 규칙과 관습은 자폐 아동에게 굉장히 복잡하고 난해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세상이 정해 놓은 것들을 이해하고 또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카렌의 행동의사의 대사리처드가 카렌을 다루고 대하는 태도에서 금강선님이 공부를 많이 하고 이야기를 쓰셨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카렌은 달님과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의 얼굴을 닦는 등 이상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자폐의 특징 중 상동행동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심리적 긴장을 완화하고 안정을 찾으려는 자폐 아동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또 카렌은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에 서툴고 친구들의 악의를 읽지 못해 놀림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후반부 나오는 카렌의 연습장을 보고 알 수 있듯 자폐 아동들은 상호작용에 필요한 수많은 사인을 학습하고반복하여 정답에 유사한 반응을 찾아냅니다.

마치 수백 가지 색깔로 된 신호등에 의지해 초행길을 운전하는 것처럼 느껴지겠죠보라색갈색검정색 신호가 동시 다발적으로 켜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요?

 

카렌에게 나타나는 고집스러운 모습들 역시 변화를 낯설어하는 특성으로지금까지 익혀온 신호 체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충격에 대한 거부일 것입니다리처드가 카렌의 말과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환기하며 주의를 돌리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자폐 아동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자극으로부터 감정을 받아들이고 해석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출력하는 과정이 다수의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답답해하고속상하고기쁘고좋은 음악을 들으면 즐겁죠그러나 이야기 속에서 카렌의 표현은 번번이 왜곡되고 좌절됩니다실제로 타인을 불편하게 하고 규칙에 맞지 않기도 하니까요.

 


카렌은 그럼에도 울타리 밖으로 나갈 결심을 합니다처음으로 리처드가 정한 규칙을 깨고 자신의 의지로 결정하고 행동했죠.

카렌이 달의 기사단원이 되고 새로운 친구들이 생긴 장면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카렌이 남들과는 많이 다름을 알지만 기사로서의 자질을 인정하고 합격시켜준 부단장카렌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녀가 받아들이기 쉬운 신호로 소통하고자 했단 동기들..무엇보다 제 몫을 해내기 위해 고집스럽게 노력하고 용기 내는 달의 기사 카렌.

클라이언트들을 만나며 가장 궁극적으로 바라던 모습이 펼쳐지자 가슴이 먹먹하고 그 장면을 벗어나고 싶지가 않아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전쟁에 참전하는 카렌의 모습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좋았습니다.

자폐 아동들이 성장해 성인이 되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은 그야말로 전쟁 같이 비장하고 잔인한 일입니다.

적의 무기는 사정을 두지 않으며 타인의 힘에 의존해서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카렌의 체력은 8888888로 표기되어 있는데 마나는 건드리지 않은 것을 보면 무언가 의미가 있는 듯합니다.

8은 무한대 기호와 유사합니다우리는 자폐 아동에 대해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어디까지 나아갈지얼마만큼의 속도로 언제 나아갈지도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자폐 아동들은 눈에 띄게 좋아지기도아주 오래 제자리에 머무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이상 무슨 일이든 일어났습니다무한대가 연상되는 카렌의 체력을 보며 그런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무사히 돌아온 카렌은 많이 성장했습니다.

울타리 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과 울타리 밖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서툴지만 감정을 살필 줄도표현할 줄도 압니다무던한 노력과 경험의 반복 덕분이지요.

료의 편지가 다시 읽어보니 처음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의미가 보입니다.

 



카렌은 누군가에게 동정 받을 필요도감동의 재료로 쓰일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흔들리고 아파하며 자라는 아이였고 마침내 혼자 당당히 서게 되었을 뿐이죠.

우리는 울타리가 필요하다면 울타리가 되어주고그녀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그녀처럼 노력하고때로는 앞에 때로는 뒤에 서서 서로를 지켜주면 충분하죠.

 

이 이야기를 감명 깊게 진행한 모든 분들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다면 전 그것만으로 20번의 메시지는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카렌의 방패 막기 기술의 훌륭함을 알아봐 주고, ‘한 턱 쏜다는 말 대신 비싼 걸 사줄게라고 말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이 이야기 덕분에 저는 제 일에 임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지칠 때 떠올릴 수 있는 따뜻한 기억과 멜로디가 생겼습니다.


스트아크좋은 음악과 기억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