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일상의 마지막 과업을 마무리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로스트아크에 접속했다. 오늘도 숙제를 끝내야 한다.
발비쿠아일 까지는 무소과금으로 가볍게 즐겼던 로스트아크, 이제는 상아탑부터 시작해 카멘, 에키드나, 베히모스까지 연달아 나온 레이드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친구와 단골 술집에서 한잔하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엘파고, 초파고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현질까지 해가며 골드를 쏟아부어서 겨우겨우 만든 엘40과 풀초월, 버스로 이클립스를 딴 후 진도 사기 치는 바드(버스비도 먹튀했다더라), '이클립스 몇 월에 땄냐'며 군번 운운하면서 이클별제방에서 계속 죽는 이클립스 칭호 보유자, 풀초월 방에서 초월 3단계 지인을 업둥이로 몰래 데려가려는 공대장, 위모 빠진지 모르고 렌먹하다가 죽는 홀리나이트, 짭카를 치거나 격돌 실패는 물론이고 억까 타령하면서 계속 죽는 숙코, 날개 아드 빨기로 해놓고 혼자 머리에 아드빨다가 걸려서 분위기 창내고 결국 파티가 터지기도 하거나 전구 갈아가면서 밤새 박아도 결국 못 깨는 숙련파티까지... 정말 지긋지긋했다. 이 모든 것이 나를 로스트아크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옆에 있던 바텐더가 내 푸념을 들었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왔다.
"어떠한 소원이든 딱 세 가지를 들어준다는 원숭이 동상이 있어요."
술기운에 농담처럼 들렸지만, 반쯤 진담으로 들었다. 잔뜩 취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동상을 찾아가 '로스트아크의 공팟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세요'라고 소원을 빌었다. 동상의 손 부분이 빛나며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지만, 술에 취해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 날 아침, 쓰린 속을 달래며 로스트아크에 접속했다. 파티 모집 창에는 '11111', '혜지팟', 'XX 시청자만' 같은 지인팟이나 버스 모집 방만 가득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싶어 다른 숙제를 하다가 다시 확인해봤지만, 상황은 같았다. 그래도 초월과 상재는 해야 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버스를 타기로 했다. 처음 타본 버스는 리트 없이 빠르게 클리어 됐다. 골드는 아깝지만, 편하긴 하다.

그 후에도 파티 모집 창에는 지인팟이나 버스팟뿐이었다. 몇 주가 지나면서 버스조차 리트가 잦아지고 2시간 넘게 걸려도 클리어하지 못했다. '클리어는 가능한가요? 그리고 버스비 내야 되나요? 너무 오래걸리시는 거 아니에요?' 라고 물었더니, 공대장은 '저는 실수 안 했으니 실수한 다른 기사한테 따지세요'라고 했다. 결국 깨긴 했으니까 더러워도 버스비를 입찰했다. 개나소나 골드 좀 더 벌어보겠다고 버스를 돌리나 보다.

다음 주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다. 이번에는 '리트 4번짼데 이거 무료로 클리어 해주세요'라고 하자, '공짜로 버스 받으려는 쌀먹새끼'라는 욕을 듣고 중단 후 추방당했다. 시간도 날리고 2관 유기에 클리어 보상도 못 받았다. 더러운 기분으로 술을 마시러 갔다.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지난번의 바텐더가 웃으며 다가왔다.

"저번에 빌었던 소원은 잘 이루어졌나요?"

나는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술김에 빌었던 소원 때문에 말 그대로 공팟이 '깨끗하게' 사라졌던 걸까? 친구와의 약속도 잊은 채 원숭이 동상으로 달려가서 새로운 소원을 빌었다.
"버스 3회 이상 리트 시 무료 클리어를 국룰로 만들어 주세요!"
이번에는 동상의 손이 빛나며 부르르 떨리는 것을 확실히 보았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본 파티 모집 창에는 'XXXX 하드 버스 3회 리트 시 무료 클 미참 30 독 35' 같은 방제로 가득했다. 버스비가 몇 배로 뛰었다.
'이건 아니야. 뭔가 잘못됐어'
곧장 원숭이 동상으로 달려가서 마지막 소원을 빌었다.

"소원을 다 취소해도 좋아. 시간을 되돌려 줘!"

나는 눈앞을 뒤덮는 강렬한 빛과 함께 온 세상이 진동하는 느낌을 받으며 정신을 잃었다.








아이고, 의자에 앉아서 깜빡 졸았다보다. 대충 세수를 하고 돌아온 나는 일상의 마지막 과업을 마무리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로스트아크에 접속했다. 오늘도 숙제를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