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 받는 자리에서 중요한 발표해본 경험 있으면 아마 공감할 건데,
일부러 질문 유도하려고 살짝 부실하게? 구멍을 만들어놓을 때가 있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 들어오면 대응하기 어려우니까
준비 잘 해놓은 질문을 하게끔 살짝 유도하는 꼼수지.
근데 유도한 질문이 안 들어오거나 생각보다 너무 세게 들어오면 
발표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아예 말아먹는 수가 있음.

나는 페이커가 티원에서 그런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 같음.
생각해보면 유독 혼자 위기에 처해서 온갖 쇼 하면서 드리블하는 장면이 많은데
그 중엔 솔직히 스스로 불 속으로 걸어가는 것 같은 의아안 상황도 꽤 많음.
근데 이렇게 미드에서 리스크 감수하고 반 억지로 어그로를 끌고 있으면
그만큼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게 쉬워지고 다른 라인에선 변수가 줄어들게 됨.

이때 당연히 미드라인에서는 결국 손해를 보게 되는데 이건 일종의 정보료에 가까움.
상대 움직임을 (강제해서) 알게 된 것에 대한 대가로 지불하는 셈이니까.

하지만 정보가 있어도 활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첫째는 그 정보를 통해서 더 큰 이득을 계속해서 만들어야 하고
둘째는 그렇게 이득을 본 사람이 게임을 캐리할 만한 역량이 있어야 함.

근데 이러한 전략의 한계점은 손해를 전제로 더 큰 이득을 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손해를 크게 입으면 더 큰 이득을 봐야한다는 압박을 크게 느낌.
그런데 살을 주고 뼈를 취하려다가 실수로 뼈까지 줘버렸다?
그럼 선불로 뼈를 줬으니 뭔가 대단한 걸 가져와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기고
결승에서 맨날 당하는 시나리오처럼.. 떼 쓰면서 무리하다가 시원하게 멸망하는 거지.

아무튼 근데 미드에서 주기적으로 어그로 끌던 페이커가 빠지고 나니
탑바텀에선 언제 상대팀 어그로가 튈지 예측이 어려워지고
딜러 5명 파티로 레이드 뛰는 것마냥 각자 몸 사리고 있으니 본래의 캐리력이 안 나오는 거임.
그래도 다들 탑급 선수들이니까 계속 그렇게 하다보면 또 익숙해져서 잘 했겠지만
단기간에 패턴화된 플레이를 고치기는 쉽지 않지.

아무튼 완치도 아니고 이제 겨우 한 경기라 향후 몰락할지 반등할지 모르겠지만
팀 게임의 전략 전술이라는 게 참 다양하고 그냥 봐선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드네.
누가 이기든 플옵5꽉이나 많이 나왔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