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바닥에 느껴지는 딱딱한 감각이 사라지고 진은 옛 기억으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약5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진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한참 아이오니아의 남단의 주가 녹서스의 침략당해 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있던 때이다. 진은 덕분에 자신을 죽어라 쫒았던 현상금 사냥꾼들에게서 비교적 자유로워졌고 마을을 편하게 둘러볼 수 있었다. 진은 녹서스가 침공한 주변 마을에서 전쟁의 잔혹성을 표현하고자 시체를 광장 한복판에 전시해놨지만 두려움에 빠진 마을주민은 그것을 녹서스가 벌인 짓이라고 착각했다. 진은 이곳에서 자신의 작품성을 뽐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멀리 떠났다.

 북동쪽으로 점점 이동하며 전쟁의 흔적조차 닿지 않는곳으로 계속해서 걸었다. 깍여진 언덕으로 올라가자 주변 지형을 보기가 훨씬 쉬웠다. 절벽 아래로 광활한 숲이 멀리 펼쳐져있었고 그 뒤로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험한 산길을 올라오지 않았다면 발견할 수 없는 곳이였다. 진은 그곳으로 가기위해 3일을 숲속에서 보낸 뒤에야 도착했다.




 진이 본 마을풍경은 생각보다 낯설었다. 시장을 곳곳에 피어오르는 분향의 자욱한 연기 사이로 썩은 양배추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이국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바로 고양이 귀를 가진 이상한 종족과 한쪽 팔이 새의 날개로 되어 보기만해도 신비로움이 풍기는 종족이 인간들과 거리낌없이 거래를 하는 모습 때문이였다. 진은 이곳이 곧 원로와 병사들이 발길조차 닿지 않은 곳임을 알아차렸다. 만약 그랬다면 저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테니까.




 진은 이 마을을 찾아낸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그동안 아이오니아를 이루는 10개의 주를 전부 돌아다녀보진 못했어도 대부분은 마음의 수양을 하며 지내기 때문인지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대단한 정신력으로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고위급 관리자부터 평범한 시민까지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조각해도 영 만족스럽지 못했다. 내적 성찰이니 균형이니에 얽매이지 않는 인간 본연의 모습 그 자체인 이 마을은 진에게 새로운 작품을 완성 하기에 최적의 장소임은 분명했다.


 마을의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며 타겟을 물색하고 있을때 어디선가 노랫 소리가 흘러와 진의 귀를 자극했다. 소란스러운 거리의 소음들은 걸러지고 그 노랫소리만은 진의 귓속에 파고들고 있었다.
​ 소리를 따라 길을 걸어 나오자 광장가운데 커다란 분수 앞에 서서 노래하고 있는 한 소년을 발견했다.
10살도 안되보이는 어린 소년은 악단과 공연을하며 더많은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었다. 이미 그 시간에 오리란걸 알고있던 몇몇 사람은 이미 큰 나무 상자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아놓고 있었다.
 
 진은 주변에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관중들 틈속으로 섞여들어갔다. 앞쪽에 자리를 잡자 소년의 모습이 더 잘보였다. 두 갈래로 솟은 파란 앞머리를 제외하면 전부 흑백으로 덮힌 짧은 머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소년은 눈썹 끝이 올라가 있어 꽤 고집있어보였다. 하지만 눈을 감고 노래하는 모습자체는 영락없는 순진한 어린 소년의 모습이였다.

 진은 자신이 어릴 적 여러번 즐겨들었던 천사의 속삭임이란 곡을 노래하고 있는걸 알아차리자 소년의 모습에 자신의 어린시절이 겹쳐보였다. 그리고 곧 어린시절이 한편이 떠오르자 심장에 가시가 돋는 것같았다. 진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흑백머리 소년에게 집중했다.

 소년은 이 마을에서 본 어느 아이들보다도 값비싼 옷감으로 된 옷을 입고있었다. 하지만 소년의 눈밑과 볼이 핼쑥하게 파여있는 것이 근심이 가득해보였다 . 진은 소년이 차고있던 액세사리중에 익숙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소년이 차고있는 목걸이였다. 잘못 본건가 싶어 다시 유심히 뜯어봤지만 진이 생각한 것이 맞았다. 바로 '용암의 보석'
​ 목걸이 가운데에 달린 붉은 보석은 주변 1m 내외로 전부 흔적조차 없이 녹아버린다는 폭팔장치이며 필트오버에서 개발된 물건이지만 악용한 사례가 너무 많이 발생해 결국 생산을 중단한 물건이였다.


 마을사람들은 그 소년의 노래에 환호할뿐 소년의 목에 차고있는 폭탄에 대해선 관심 없는 것 같았다. 아니 무지한 것이 틀림없었다.
악단 중 한명이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자 관중들은 소리를 멈추고 소년의 노래를 숨죽이고 감상했다.


 소년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지면서 몇몇 사람은 눈물을 훌쩍이기까지 했다. 
진은 문득 저 소년도 저 소형폭탄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 궁금증이 들었다. 목걸이를 발견하고 나니 소년이​ 겉으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있어도 가사 하나하나에 저주가 깃든 주술을 외우는 것처럼 우울하게 보였다. 하지만 확실히 지금도 절대 10살짜리 소년이 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도 즐거워하는 낯빛하곤 거리가 멀었다. 


 진은 이곳의 모든 배경과 소리를 지우고 오롯이 자신과 그 소년만을 남겼다.  이 능력은 어릴 적 감옥에서 꺼내준 어둠의 집단중 암살에 능했던 자가 전수해준 기술이였다. 작품 가치를 매기거나 정할 때 쓰는 기술이지만 저 소년에게 쓸 이유가 충분해졌다.
 일단 집중상태에 들어가면 흘러가는 모든 시간이 잘게 쪼개져서 거의 모든것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진의 눈동자는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소년의 입모양과 감고있는 눈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귀는 소년의 심장소리에 집중했다.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진에게 들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

 진은 상기된 얼굴로 천천히 눈을 뜨는 소년의 눈동자가 자신과 마주칠 동안 기다렸다. 그 소년은 곧 눈을 떴고 관중을 보다가 진과 눈이 마주치는 짧은 순간 동공이 크게 확장되고 그 속에 증오로 가득찬 다양한 감정들이 일렁거렸다. 하지만 이내 사라졌다. 소년의 눈동자는 금새 다른 곳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였다. 순간이지만 소년은 자신이 내뿜고 있는 살기를 너무나 쉽게 그것도 믿기힘든 반응속도로 느꼈다는 것에 놀랐다. 그냥 노래만 하는 평범한 소년이기엔 이상했다.




 진은 집중상태에서 나오자 주변 소음이 조금씩 원래의 크기대로 돌아왔다. 이제 막 악단이 반주를 끝마치고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소년은 앞에 놓인 긴통으로 된 모금함은 돈으로 가득 채워지고 있었고 소년은 관중들에게 인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이 서있는 곳은 고의적으로 시선조차 두지않으려고 하는 모양이 어색해보였다.

"연기는 영 소질이 없나보군."








 진은 머릿속으로 소년의 모습을 유리를 깨듯이 부시고 다시 섬세하게 조각했다. 말 한번 안 섞어본 그 소년에게서 이런 애뜻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진이 그를 작품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 그 과정은 마치 소년을 하나의 음표로 보고 자신의 악보위의 여러 음들 중 어떤 자리가 가장 좋을지 찾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런 과정은 진의 머릿속에서 영감과 함께 폭팔하면서 곧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진의 두 눈동자속에 광기가 아른거리다가 이내 어두운 눈빛으로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소년은 이미 광장 뒤편으로 멀어져가고 있었고 관중 대다수도 이미 자리를 떠난 상태였다. 진은 유령이 스쳐가듯 유유히 소년의 뒤를 밟았다.


 소년은 악단들과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고 헤어지고는 큰 저택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심부름인가 생각했지만 여러번 저택에서 소년의 노랫소리가 들렸고 나올때마다 두둑한 돈주머니를 챙겨나온 걸 보니 그 생각은 접었다. 저 소년은 왜저렇게 필사적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걸까.  진은 아직 알 수 없었지만 맞추지 않은 퍼즐조각처럼 남겨두기로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어느새 해가 지자 소년은 작은 상점에 들어가 간단하게 끼니 떼울 것을 산 뒤 갑자기 마을 외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마을 울타리를 벗어나자 진이 거쳐온 숲속이 펼쳐졌고 소년은 어두운 그 곳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 소년이 멈춘 곳은 작은 공터였는데 그곳에 훈련용인듯 엉성하게 만들어놓은 허수아비들이 즐비했다.  


 소년은 짐을 내려놓고 나무 밑동위에 어제 훈련을 마치고 놓아놓은 듯 보이는 무딘 칼날의 나무막대기를 들었다. 꽤 진짜 칼모양처럼 만들었지만 길이가 짧아서 우스꽝스러워보였다. 하지만 소년은 진지한 얼굴로 표적앞에 서서 두손으로 칼을 잡고 집중했다. 그리고 자세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소년의 눈동자에선 아침에 본 증오의 눈빛이 어두운곳에서도 선명하게 숨김없이 드러나있었다. 소년은 근력을 단련하는 훈련부터 검술까지 꽤 힘든 난이도를 잘 소화했다. 아침에 평화롭게 노래나 하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진은 소년이 훈련이 끝날 동안 말없이 지켜보았다.




 훈련을 마친듯 소년은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려고 짐을 싸고있었다. 진은 아까보다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왠지 이 소년의 훈련모습을 보고나니 너무 과소평가하다간 일을 망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년의 집도 마을의 외곽에 위치해있어서 그렇게 멀지 않았다. 집은 소년이 들렀던 저택만큼 꽤 호화로웠다 . 집안의 불빛이 각 창문밖으로 새어나와 어두운 밤을 유일하게 밝히고 있었다. 진은 소년이 문에 노크를 3번하고 문이 열리자 들어가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진은 다음날 오후까지 기다렸다. 소년이 집에 오는 시간은 7시로 잡고 진은 다음날 30분전에 소년의 집앞에 서있었다. 
집의 오른편에 펼쳐진 갈대밭이 거의 저물어가는 노을 빛에 붉게 물들어있었다. 


 진은 그 소년이 했던 것처럼 나무로된 문을 일정하게 세번 두드렸다.



똑-똑-똑-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자 험학한 인상의 남성이 나타났고 진을 확인하는 순간 곧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하나..둘..셋..넷..”






 진은 죽은 시체를 마치 선반위의 깡통을 가리키는 것 만큼 성의없이 손사락으로 세고 있었다.
진은 시체를 모두 세고는 집안을 훑어봤다. 진이 예상했던 대로 아름다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지만 중년의 뚱뚱한 여자는 스프를 먹었는지 악취를 풍기며 하얀 액체와 함께 카펫을 더럽게 적시고 있었다. 그것만 빼곤 진은 오랜만에 맡은 진한 피냄새가 진의 신경에 황홀하게 퍼졌다.




 "머리를 쏠 걸 그랬군."





 진은 곧 흥미를 잃은 얼굴로 주방에서 나와 거실벽난로로 걸어갔다. 그곳에 크고 산만한 액자와 함께 가족사진이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둘,셋,넷,다섯...”




 진은 눈으로 가족사진의 인물을 세고는 다시 몸을 돌려 고요한 거실을 봤다 .  그 가족사진엔 노래부르는 소년이 빠져있었다.
 


"..흐음."






  진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큰 보폭으로 걸어가 액자만큼이나 요란한 색감의 가죽소파 뒤로 갔다. 그 곳에서 숨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진은 인간이 풍기는 두려움은 너무도 쉽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은 인간을 바로 죽이는 것보다 서서히 두려움을 풍기며 죽어가는걸 지켜보는것을 좋아했다.




  진이 소파뒤에 숨어있던 인물앞에 서자 그 두려움의 냄새가 몇배가까이 더 짙게 퍼졌다. 그곳엔 몸을 웅크리고 공포에질린채 떨고있는 노인이 있었다.
 조용히 미간에 총구를 갖다대자 그 부분이 푸욱 들어갔다. 탄력을 잃은 피부탓에 미간의 주름들이 총구를 삼키는 것처럼 보였다. 


  노인은 두려움과 놀라움이 섞인 표정으로 진을 올려다봤다. 진이 자신 앞에 서있다는 것을 이제 깨달은 표정이였다.
. 총알을 내뿜은지 얼마안된 뜨거운 총구가 노인의 미간에서 작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진이 망설임없이 총을 쏘려고 했지만 노인의 눈동자에 스며든 희망이 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진은 이 뜸을 들이자 노인은 기회를 놓치지않고 속사포 처럼 내뱉었다.



"이보게...자네가 무엇 때문에 이러는진 모르겠지만. 나는 보다시피 수명도 얼마 안남지않은 늙은 병든 몸이라네..”




 노인은 최대한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불쌍한 척 했지만 진은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며 말했다.


"..그럼 내가 편하게 보내주지 .”

"그..그런뜻이 아니라..!이보게..!"


 진은 더이상 들을 가치가 없다는 듯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힘을 주는 것을 보고 노인은​ 기겁하여 바쁘게 덧붙였다.


"내..내겐 엄청난 재산이 있소..! 나를 살려준다면 그 재산을 당신에게 주겠네..!!그럼 날 살려줄 조건이 충분하지 않은가!!”


  노인은 자신의 가족이 죽어있는건 안중에도 없는듯 재산을 들먹거리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고있었다. 진은 노인에게서 낯설지 않은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먼지에 까마득히 쌓여있어서 볼수도 느낄수도 없었다. 표정없던 진의 얼굴에 어째서인지 미세하게 분노로 일그러졌다. 
 총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지만 참새처럼 재잘대는 노인의 말중에 흥미로운 단어가 들렸다.


“세상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것이지..바로 내 손자놈인데 그 놈이 목소리로 하나는 기가막혀서 떼돈을 벌어다줬지. 데려가면 당신은 평생 부자가 될수 있어!!”

"..광장에서 노래하던 흑백머리 소년말이군.”


 노인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진의 반응에 노인은 승기를 잡은 듯 이미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그래!맞아!!자네가 직접 두눈으로 봤으니 더 설명할 필요가없겠군. 그 녀석의 목소리때문에 그걸 원하는 사람이 정말많아. 하지만 푼돈만 벌뿐이지. 하지만 자운이란 곳에 팔아넘기면 억단위로 받을 수 있다네..!!내 친구가 그 쪽에 아는 노예상인이 있거든."

  자운이란 이름이 진의 귀에 들어오자마자 몸 속어딘가에 벌어진 상처안으로 구데기가 비집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진은 자신의 속안에 온갖 더러운 물질로 가득 차는 것을 느끼며 구토가 치밀어올랐다.
​진은 총을 든 손을 서서히 내렸다.


 노인은 진이 돈의 액수에 반응한 것으로 착각하고 혼자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후후..그돈의 무게를 잘 생각해보라고...평생가도 못만져볼 돈을 아주 쉽게 벌 수있어. 어떻게 하든 자네 마음일세. 여러모로 쓸모있는 놈이니까..비록 더러운 피가 흐르는 출신이긴 해도...."


  노인은 곧 마지막에 내뱉은 말을 후회하는 듯했다. 노인은 진의 눈치를 볼려고 슬그머니 올려다보니 진이 무서운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겁한 노인은 몸을 더욱 움츠렸다.



" 손자라고 하지 않았나?."



 진은 방금 구토를하고 온 사람처럼 인상일 찌푸리며 묻자 노인은 손사레를 쳤다.



"그..그게...그러니까 어릴적에 입양한 녀석이라 그렇게 부른걸세.
어쨋든 내가 그 소년을 마음대로 다룰수 있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네.”


“그 소년의 목에 달린 기폭 장치말인가.?”


“그걸 어떻게....”


 노인은 어째서 이 자가 그 장치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지 의문을 품기 전에 혹시나 속이려던 속셈이 들켜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 그 장치는 어디있지?.”


“내..내주머니에..”


“내놔.”


 노인은 다행히 진이 장치만 넘기라고해서 안심한듯 허둥지둥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건내줬다. 
진은 가운데 작은 버튼이 달려있는 작은 장치를 실눈으로 보며 말했다.


“너는 그 녀석에게 채워놓은 개목걸이 하나가 너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하게 할거라 믿고있군. “


  진의 머릿속에 매일밤 소년이 저녁마다 그 공터에서 거칠게 훈련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제 자신의 목숨이 보장된 느낌이 들어서인지 신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 목걸이를 내가 생일선물로 줬더니 소중하게 매일 차고 다니더라고.  주인을 정말 잘 섬기는 개지. 심지어 내가 귀족에게 협박을 받고 있어서 돈을 지불해야 한다했더니 그 뒤로 매일 나에게 큰 돈을 벌어다주고있지. 자신이 나중에 크면 존재하지도 않는 귀족을 죽이겠다는 말까지 하더라니까. 이제 자네가 그 충성심넘치는 개의 주인이야. "

  


 그제서야 진은 소년의 눈동자에서 본 증오의 감정이 이해 되었다. 역시 그저 내면을 갈고 닦고 정신수양을 위해 무술을 연마하는 평범한 아이오니아인과는 다른 것이였다. 소년은 오직 가족을 지키겠다는 신념하나로 훈련해온 것이였다. 만약 자신이 생각했던 가족의 모습이 전부 가짜라는 것을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매우 기대됐다.





"그냥 나를 살려주기만 한다면.. 이 정신나간 살인 또한 전부 사고처럼 보이게 만들어주......"



  노인은 말을 잇지못했다. 주변 공기가 위험하게 바뀐 것을 인간의 본능으로도 느꼈기 때문이였다. 노인은 함부로 입방정을 떤것을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노인은 온몸에 서리가 내려앉은듯 오한을 느끼며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나고 있었다 . 두려움의 연기가 다시 방안을 빼곡히 채우기 시작했고 그것이 모든 산소를 빼앗아 숨이 막히는 듯했다. 눈의 절반 이상이 흰자로 뒤덮이고 침을 자신의 턱수염에 지저분하게 흘리고 있는 노인은 진의 살기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는 상태였다.

 
  진은 씨끄러운 노인이 드디어 조용해지자 만족해했다. 진의 건조한 눈동자에 담긴 추한 노인의 모습은 더이상 인간으로서가 아닌 작품이 완성되기 위한 하나의 장치 그 이상도 아니였다.
진은 주변에 있는 긴 타원형 원목 서랍장으로 다가가 가장 낮은곳을 열었다. 손을 넣어 뒤적거리다가 차가운 금속이 닿자 그것을 꺼내들었다. 총이였다. 진이 집 내부에서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죽기전의 타깃은 항상 서랍장 낮은 곳에서 총을 꺼내 자신에게 저항했었던게 떠올라 찾은 것이였다. 인간의 습성은 비슷한 모양이였다.


  탄환이 장전되있는지 확인한 후 노인에게 다가왔다. 아직 쇼크 상태에 빠져나오지 못한 노인은 마치 영혼이 나간 듯 생동감이라곤 찾아 볼수 없었다. 
 진은 그 노인앞에서 무릎 한쪽을 굽히고 앉아 나직하게 말했다.

​"탄환이 장전되어있군. 들리지 않나? 방아쇠를 당기라는 속삭임?."

 진은 총을 감상하듯 훑어보곤 그것을 노인의 손에 쥐어주었지만 떨리는 손으론 그것을 움켜쥘수 없었다. 진은 노인이 떨어트린 총을보고 혀를 찼다. 


“내 작품의 비평값인데 별로 만족스럽지 않나보군..”


 진은 총을 들어 직접 노인에게 겨낭하며 물었다.


“그럼 이건 어떤가?."


 노인은 떨림이 잦아들고 눈동자가 맑아지며 총구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정신이 돌아온 모양이였다. 노인은 자신이 잠깐 정신이 나가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듯다시 입을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그만..제발..살려만 준다면 뭐든지 들어준다고..하지 않았나.!!.”


진은 더이상 들리지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툭 내뱉었다.


“그럼 그 총으로 소년을 죽여라."
​​

 노인은 얼어붙은채로 눈만 깜빡이다가 진의 뒷모습에 애원하듯 말했다.


“하..하지만..아까 내가 그 소년은.. 재산이라..고..”


“가족으로 보든 돈으로 보든, 결국 없어도 되는 존재라는 걸 나에게 증명해.”




 “왜 그런... 짓을..”




진이 고개만 돌리자 노인은 따지려던 말을 삼키고 비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나는 확실히 살려주는 겐가..?."


"살 수 있고 말고,죽기 전까지 말이야."


진의 의미심장한 말에 노인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쨋든 목숨은 부지하게 되어 다행이라 여기는 듯했다.




똑-똑-똑-



 소년임이 틀림없는 반가운 노크 소리가 들리자 진의 표정에 드리워져있던 지루함이 말끔하게 사라졌다.




"공연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