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블랑은 일부러 나무위에서 등장하고는 엘리스의 편에서 싸웠던 챔피언들을 향해 내려앉았다.

"실례합니다. 소문을 좀 늦게 들어서 말이죠. 이 장소에 제가 끼어들어도 되는건가요?"
"네가 우리 편에서 싸우겠다면 말이지."
 마오카이가 답했다. 르블랑은 외모에 비해 조금 성숙한 웃음을 지었다.

"당연하죠. 제가 온 이유는 엘리스 때문이니까요. 그녀는 지금... 저 '공허의 방랑자'분께서 찌르고 있는 상대가 혹시?"
"맞다. 하지만 지금의 엘리스는 모데카이저의 스킬에의해 노예로 부활한 상태다. 마음만은 고맙게 받들어야겠지만, 너무 늦었군 르블랑."
 르블랑의 눈이 반쯤 감긴 채 거미 여왕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주변에 있는 리신과 카르마를보고 마음을 먹은듯 그림자 군도의 챔피언들에게 다가섰다.

"그런데 말이죠, 리신이면 모를까, 카르마까지왔단 소리는... 엘리스의 사후에 왔어도 해야할 일이 남아있겠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되는건가요?"

 그 말을 들은 마오카이와 리신, 카르마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르블랑을 쳐다보았다.

"그 일에 저도 거들어드리죠. 누가 그녀에게 볼 일이 있죠?"
"마오카이요."
"좋아요 마오카이. 우리들이 가능한한 빨리 엘리스의 몸을 그대에게 드리고 저들과 놀면서 시간을 벌어드리죠. 각오되었나요?"
 카르마는 리신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달려나간것과는달리 르블랑에게 물었다.

"이해가 안되는군요. 엘리스와 관계가 있다고해도, 당신은 왜 그녀를 도우려고하는거죠?"
 말을 들은 르블랑은 엘리스를 이성으로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할법한 대답을 흘리고는 자신만의 이동기를 시전했다.

"마음에 들어서... 그 이상으로 자세히 말할려면 많이 민망하니까!"



 예정에 없던 세 챔피언이 엘리스의 편으로 등장하자 그림자 군도 챔피언 진영에서도 말이 오갔다.

"중립이 있다해도 4대 8인가..."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제는 빠지지 헤카림. 하지만 이 숫자로서는 귀찮을테니 내가 일부를 흐트러지게 만들면서 어딘가에 쓰러져있을 쓰레쉬와 합류해서 퇴각하겠다. 그나저나, 너는 아직까지도 만족을 못하는거같은데?"
"...그렇다 모데카이저. 나는 아직 더 싸우고싶다. 위험을 무릅쓰고 싸우려는 저들의 마음을 공포로 일그러뜨리고싶거든."
 모데카이저는 '흥'하고 코웃을을 치더니 자신의 철퇴를 땅에 박더니 가시박힌 철구에 쇠구름덩어리 에너지를 뭉쳐냈다.

"내 힘의 3분의 1을 네게 빌려주지. 절대 저들에게 지고오지 말도록."

 헤카림은 쇠구름덩어리를 만질수 있다는듯 그것을 움켜잡더니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그러자 카사딘의 검과 거대 거미의 독이빨에의해 부서져나갔던 갑옷들이 전보다 더욱 단단해지고 견고하게 그의 전신을 감쌌고, 챔피언의 창이기엔 조금 초라했던 굴곡진 창날은 무예로 이름을 떨쳤던 장군의 창마냥 거대해지고 검에 더 가까운 날의 모양으로 바뀌었다.

"자... 카사딘, 네가 소중히 여기는 여인을 찌른 그 검을 다시 한 번 휘둘러보라고."

 그는 멀리서 다가오고있는 르블랑과 리신을 응시하다가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의 상대에게 재결전의 막이 올렸음을 알렸다.



 카사딘은 헤카림의 말을 듣고 오른손목검이 뚫은 자의 육신을 보았다. 검을 찔러넣어 또다시 피가 넘쳐나와 몸을 적시고 있었지만 그 육체의 뒷태마저 아름다웠다. 이 여자는 몸매는 색기가 넘쳐흐를만큼 아름다웠고, 이는 처음봤을 때부터 변함없이 들었던 생각이다. 하지만 저 몸매와 외모를 가지고 저질러온 수많은 행위가 카사딘이 그녀를 적대시하도록 만들어왔다.

 그런 여자가 3개월동안은 마음을 잡고 다른 삶을 살기위해 노력했다. 가증스럽고 혼란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여자를 적대시할 도덕적인 동기가 약해졌다. 아직 이 여자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치루지않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경이 쓸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돌아와라 엘리스! 단 몇개월간의 모습에 불과하지만... 그 동안의 네가 아니라면, 나는 너를 적대할 수밖에 없어!"


"네~ 멋진고백 잘들었어요, 카사딘 씨. 이제 이 여자를 마오카이에게 전해주겠어요?"

"알겠... 뭐라고 했나?"
"두번 말하지 않겠습니다. 얼른!"
 카사딘은 검을 뽑은 뒤 다시 미동도 없는 엘리스의 몸과 같이 공간이동해서 마오카이에게 건네줬다. 그런 그가 엘리스의 시신을 마오카이에게 넘겨주기까지는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카사딘은 마지막 눈빛을 전하듯 마오카이와 시선을 교환하다가 이내 등을 돌리고 헤카림을 노려봤다.



 카사딘과 르블랑은 헤카림을, 리신은 요릭을, 카르마는 카서스를, 어디론가 사라진 모데카이저는 킨코우 형제단의 닌자 3인방이 뒤따라갔다. 마오카이는 엘리스를 맡았다.

"웃기지않나 엘리스? 다들 너를 적대시하고 부정적으로 여겼던 챔피언들이 네 편에 서서 저들과 싸우고있다. 그리고 난... 저들보다 훨씬 더한 무리수를 두고있지."
 마치 잠들고 있는 사람에게 속삭이며 들려주듯이 마오카이는 엘리스의 감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군도의 몰락 이후에 인간을 증오해왔다. 죽을 때까지 자기의 안위만을 위해 살아가는 종족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리그가 시작되면서 자신만의 정의를 선한 쪽으로 맞춰서 살아가는 몇몇 인간 챔피언들을 보면서 이 선입견은 허물어져갔지. 하지만 악역조차도 새로운 삶을 살고자하는 의지를 가지면서 노력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서 난 깨달았지. 네 삶은 내 삶보다 훨씬 더 값지다는 사실을 말이다. 챔피언이란 명예를 저버리면서까지 너의 삶을 그려나가겠다는 의지는, 오히려 챔피언이라는 직업에의해 나아갈 곳 없는 삶을 사는 나같은 자보다 훨씬 더 낫다."

 마오카이는 할 말을 마친듯 두께가 다른 두 손을 맞잡고 엘리스의 배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검은 안개조차도 건드리지못할 생기넘치는 연두빛 마법진이 바닥에 새겨졌다.

"엘리스. 네 여정이 성공적으로 끝나길 바란다."
 순간 마법진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공간과 존재가 하나의 빛으로 통합하여 반구모양의 영역이 생성되었다.



 엘리스는 그토록 올리고싶었던 자신의 눈썹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하늘과 땅을 가로짓는 선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공간.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지만 이들중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 번화가 한복판에 서있는듯한 느낌이지만 공허함은 살아생전 느껴봤던 감각 중 제일 강하게 와닿았다.

"거기있는 너, 여기서 만날줄은 몰랐군."
 엘리스의 뒤에서 몇 개월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목소리였다. 무겁고 진중하고, 피부색일 뿐이지만 가벼워보이는 이미지라곤 하나도 없는 언데드 사냥꾼, 루시안이었다.

"루시안? 어째서 이곳에 있는거야? 잠깐, 그러면 나는..."

"죽었다. 너는 죽었어."

 큰 충격이었지만 엘리스는 사후세계로 추정되는 이 공간에서 어째서 루시안과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과거로부터 캐보았다. 자신과 루시안 사이에서만 있을만한 대화소재가 그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도달하자 그녀는 서론없이 루시안에게 말했다.

"맞아, 그 때말이야 루시안! 그림자 군도에서 죽기전에 내게 말했던 '가능성'이란 무슨 뜻이었던거야?"
"이미 죽은 상태에서 나와 만났다는거자체가 가능성에서 벗어났단 뜻이다."
"그래도 알고싶어! 그 날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변했어. 맨몸으로 구르면서까지 여러사람을 만나봤지만, 나는 네가 말했던 가능성의 의미는 커녕 추론도 못했으니까."
"그래서 이후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나에게 모두 털어놓을건가, 내가 들어주겠단 말이나 보장은 어디에도 없는데!"

 말문이 막힌 채 엘리스는 자신과 루시안이 말을 터놓고 말할 관계가 아니었음을 상기했지만, 그래도 알고싶었다.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싶지않다는 부정심리도 있었지만, 이는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썼을 때에만 가능한 일. 엘리스는 자초지종을 모두 설명하려는 최초의 계획을 접고 루시안의 말과 태도를 되짚어서 물어보는 과정에서 자신의 처지를 짤막하게 전해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자신의 죽음에 기뻐해야할 이유가 있냐고 꼬집었던 네 말은 틀리지 않았다면서 자신의 청문회 이후의 자신에게 무심했던 같은 소속의 챔피언에 대해 들려줬고, 남의 불행을 즐기면서 살았다는 말을 인정하면서 과거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는 어조로 털어놓기도했다.


 루시안은 그녀의 말을 무조건 배척하지않고 지켜들었다. 그 정도로 무시하기에는 당시 그림자 군도에서 남달랐던 존재였기에, 그는 자신이 일말의 기대를 걸었던 자의 몸부림에 박자가 자신이 원하는 바에 들어맞는지 판단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말을 해주면서 얘기를 전한 거미 여왕의 마지막 물음은 이러했다.

"왜 나는 그들중에서 유일하게 너의 도발에 넘어갔던거지? 그 모습으로인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거잖아?"
 루시안은 '제법이군'하는 표정을 들키지않으려고 뒤로 돌아선 채 뜸을 들인 다음에야 엘리스의 물음에 답했다.

"네 삶이 만족스럽지 않았으니까다."

"내... 삶?"
"돈가 명예. 둘 다 가졌기에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삶이라는 말은 들었어도 네 마음 한구석에서는 타인의 평가와는 반대되는 평가를 가지고있었기에 그랬던거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있었어도 무의식적으로라도 너는 지금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있었기에 꾹 참으면서 살아왔던거지. 그 점이 열등감을 부추겨서 도발에 걸려들게 만든거지만."

"그랬구나... 만약 내가 다른 삶을 살 자격이 주어졌다면 어떻게 사는게 좋았을까?"
"이미 죽은 상태에서 듣는 말인데, 뒷북치는거에 불과..."
  엘리스의 물음에 대한 답을 의도적으로 표현하길 거부하던 루시안의 말끝이 흐려지더니 이내 태도가 바뀌어졌다.

"...했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군. 답을 알려주지. 죽기를 거부하고 살아가기를 택했다면, 너는 네 죄를 시인하고 사람들에게서 용서를 받아야한다. 그들이 너를 격하게 맞이해줘서 죽게되어도, 그것은 너에겐 속죄가 아닌 도피일 뿐,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들의 몰매와 공격속에서 살아남아라. 또한 부정한 방법을 통해 얻은 이익을 사회에 모두 환원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스스로에게 모질고 엄하게 대해라."

"...알았어 루시안. 그런데 왜지? 왜 태도를 바꾸고선 내 물음에 대답한거야?"

"소생의 신호다. 누군가가 너를 살리는데 성공했다는 뜻이지. 분해되어가는 네 손을 보라고."

 과연 그의 말대로 엘리스의 신체는 공중분해되어서 사라져가고있었다. 하지만 분해가 진행될수록, 몸에서는 어딘가모르게 골고루 빠져있던 생기가 채워지는듯해 나쁘지 않은 감각이었다. 마침내 엘리스가 딱 한 마디만 할 수 있을 만큼의 분해가 이루어질 때, 그녀는 루시안에게 말했다.

"고마워, 내가 해야할 일을 알려줘서."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공중에서 흩어져버렸다. 루시안은 그 광경이 끝난 뒤에 중얼거렸다.

"내 입장에서 나올만한 말을한 것뿐인데 고마워하다니, 자존심이 낮은건가 아니면 인간말종으로 살았어도 사람의 면모가 하나쯤은 남아있었던건가..."

<계속>


<글쓴이의 말>


공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