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는 빌드 짜서 손맛 즐기는 전투도 전투지만 가장 코어한 재미는 바로 '아이템 깎기'에 있습니다.

드랍템들이 오로지 순수 확률에 따라 랜덤하게 옵션들을 달고 나오는데 좋은 옵션이 하나 나온다한들 다른 두 줄은 쓸데없는 옵션이 떠서 아쉽거나 해서 결과적으로 그저그런 평범한 템이 뜰 확률이 태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작위 확률을 기어이 뚫어내고 정말 좋은 옵션들로만 꽉꽉 채워진 아이템을 득했을 때 오는 그 특유의 쾌감이 있죠. 좋은 옵션들로만 구성되어 있는데 심지어 수치들도 랜덤성을 이겨내고 고수치로 떳다? 이건 그냥 그 자리에서 오르가즘 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옵션들이 이쁘게 붙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수없는 전투를 하고 수많은 몹들을 학살하는 것입니다. 순수 확률상 극악으로 뜨기 힘든 아름다운 옵조합을 가진 템도 수만번의 독립시행을 해서 기어이 뜨게 만드는 거죠. 이렇게 이쁜 옵들로 채워진 아이템을 보고 있으면 결국 해냈다는 성취감을 넘어 흐뭇해지기까지 하는 그런 뿌듯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맛에 한번 빠지면 디아에 100시간 1000시간까지 갈아넣게 되는거구요.

이를 '아이템을 깎는다'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템들이 얼마나 띄우기 어렵고 희소한 것인지를 알기에 디아블로 유저들에겐 옵션 잘 뜬 아이템이 보물처럼 보입니다.
이쁜 옵션들로만 극상위로 붙은 아이템 그 자체가 디아블로 유저들이 찾아 해매는 가치이자 그 숱한 노가다에 대한 보상인 셈이죠.
고로 제대로 된 디아블로 플레이 경험은 마치 보물을 찾아 다니는 해적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일종의 소유욕? 과시욕? 자기만족감? 성취감?
괜찮은 템도 딱 한줄 옵션이 아쉬워서 또 노가다하러 들어가는 게 디아 유저입니다.

요컨대 정말 극악의 확률을 뚫어야 나올 좋은 옵션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초희귀 아이템들로 온몸을 칭칭 두르고 다니는 게 디아블로를 하며 느낄 수 있는 찐재미이자 디아블로 유저들의 자부심(비틱거리)인 거죠.

보통 디아블로 시리즈를 한번도 안 해본 분들이 스토리 깨고나서 더이상의 플레이는 더 투자할 의미가 없다고 느끼고 접습니다.
저도 디아3로 디아를 처음 접했는데 스토리만 깨고나서 뭐? 악몽 난이도? 고행 난이도? 굳이 갈 필요가 있나? 그저 몹만 쎄지게 만든 무의미한 똑같은 과정인데?하며 1년 정도 봉인해뒀던 초창기 시절이 있었죠.
그런데 템 파밍의 맛을 알게 된 후로는 1000시간 넘게 잡고 플레이하게 되더군요.

그러기에 디아블로 같은 아이템 파밍 게임을 처음 접하신 분들은 이 경계선을 어떻게든 한 번 넘기만 하시면 신세계급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게 되실 수 있습니다.

이 경계선을 넘기 위해선 어떤 아이템이 좋게 뜬 아이템인지 감별할 수 있는 눈이 생기셔야 하고 특정 빌드를 만들어보고 싶은 욕망도 생기셔야 해당 빌드를 위한 고유템을 득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 파밍 노가다를 해나갈 원동력이 만들어지실 거에요. 여기서부터가 시작입니다.

목표 제시를 위해 무기의 경우,
1. 주요스탯(의지, 힘, 지능 등)
2. 취약피해
3. 극대화 피해
4. 핵심 기술 피해 or 모든 능력치

이렇게 붙은 아이템을 목표로 파밍해보세요.
현존 가장 좋은 옵 구성입니다.
(새 시즌 기념 과거 글 재업이므로 현 시즌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딱 눈 감고 이 선만 한 번 넘기만 하면 즐길거리들이 넘치게 되실 수 있습니다. (물론 시즌 전인 지금 시점에서 고유템 수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기에 딱히 끌리는 빌드가 없으실 수 있다는 게 사실. 시즌과 더불어 추가되는 고유템들 수에 비례해서 재미도 올라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추가로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디아블로는 고렙 컨텐츠가 적어서 문제’라는 문제 제기는 뭔가 고개가 갸우뚱해지더군요.

컨텐츠가 적다는 게 고렙에 해금되는 악몽 던전, 지옥 물결, 속삭임의 나무 같은 것들이 수도 적고 별 거 없어서 컨텐츠가 적다는 뜻으로 말씀들 하시는 건가 싶더라구요.

그런 걸 고렙 컨텐츠라고 칭하는 거면 애시당초 디아블로 시리즈에서는 컨텐츠라는 게 없었습니다.
되려 지금 디아4가 전작들 대비 가장 컨텐츠가 많아진거죠.
디아2 해봤자 메피런 하고 다시 새로운 방 파서 메피런, 디아3라고 해봤자 대균열 돌고 대균열 닫고 다시 대균열 열고.

그에 반해 전투 컨텐츠는 디아4가 가장 다양합니다.
속삭임의 나무, 지옥 물결, 악몽 던전, 군단 이벤트 등.

그런데 이런 것들도 사실 다 부차적인 거고 디아블로 게임에서 진정한 컨텐츠는 이런 게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아이템’이었습니다.
아이템 파밍이 곧 본질이자 컨텐츠가 되는 게임입니다.
전투하려고 아이템 파밍하는 게 아니라 아이템 파밍하려고 전투를 한다는 거죠.

이런 면에서 고렙 컨텐츠가 적다는 말은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수많은 독립시행으로 극악의 확률 뚫어내고 좋은 옵들로만 구성된 아이템을 기어이 띄우는 게 디아블로 게임 플레이의 메인 컨텐츠이자 목적인데
이런 ‘확률 뚫기 놀이’는 디아2, 디아3, 디아4 막론하고 변한 게 없습니다. 똑같다는 말이죠.

아 물론 지금 드랍되는 고유템들 수가 적어서 보다 더 다양한 빌드 선택지가 적은 건 맞습니다.
죄다 수치나 지속 시간 같은 숫자 관련된 지루한 버프들만 달린 전설들이 태반이구요.
스킬 자체를 변화시켜주는 재밌는 고유옵들이 훨씬 많이 추가되는만큼 재미도 덩달아 나아질거라 생각합니다.
이건 뭐 시즌 추가될수록 새로운 고유템 많이 추가해준다면 해결될 문제라 생각해봅니다.

여튼 그래서 이어가자면 디아블로 하면서 고렙 컨텐츠가 적다는 말씀들이 전 좀 어감이 이상하게 들리더라구요.
그냥 확률 뚫어서 좋은 옵 달린 템 띄우는 게 주목표였던 게임에서 고렙 컨텐츠라고 따로 불릴 만한 게 있나?

아니면 이번 작으로 디아블로 시리즈를 처음 접한 분들이 말씀하시는건가? 아이템 파밍 게임을 깊게 부먹해본 적이 아직 없으신 분들이실 수도 있구요.
그렇다면 애당초 게임을 바라보시는 방향성이 잘못 되었던 겁니다. 이런 분들은 디아2, 디아3도 스토리 밀고 나선 컨텐츠 없다고 말씀하실 가능성이 높아요.

이 게임은 로스트아크처럼 템렙 높이면 뛸 수 있는 군단장 레이드(주 컨텐츠)가 차례차례 해금되는 그런 식이 아닙니다.

아이템 레벨 500 달성 전까진 릴리트 보스 레이드 잠김.
아이템 레벨 800 달성 전까진 메피스토 보스 레이드 잠김.
아이템 레벨 1500 달성 전까진 디아블로 보스 레이드 잠김.

이런 구조를 기대하신 게 아닌가 싶더라구요.
이런 시각으로 보시면 스토리 밀고 나서 잠겨있는 레이드 보스 같은 거 없이 그냥 평지 느낌이니까 고렙 컨텐츠 즐길 게 없다는 말씀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애시당초 디아블로 시리즈의 본질은 ‘아이템’.
득템과 세팅이 알파이자 오메가가 되는 게임입니다.
로아처럼 레이드를 뛰려고 상위 아이템을 끼는 것이 아니라 상위 아이템을 끼려고 레이드를 뛴다는 거죠.
앞뒤 관계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디아2 때도 메피런, 바알런 이런 플레이만 있어도 유저들이 아무 소리 없이 즐겼던 거구요.
목적은 전투가 아니라 떨어지는 아이템이었어서..
물론 차후 시즌이나 확장팩으로 로스트아크 같은 노선의 컨텐츠도 추가될 수 있겠지만
본질은 옵션 극상위 아이템이었지 보스 레이드가 아닌 게 디아블로의 코드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쁜 옵션들만 붙은 극상위 아이템 그 자체가 디아블로 유저들이 찾아 해매는 가치이자 그 숱한 노가다에 대한 보상인 것입니다.
마치 보물을 찾아 다니는 해적 같은 느낌인 거죠.

고로 아이템 옵 감별력을 갖추고 떨어지는 아이템들에 집중하셔야 이 게임의 재미를 느끼실 가능성이 큽니다. 약간 대어 낚길 기대하며 하루하루 찌 던져보는 낚시 같다고 해야 할까요?
허탕 치는 날도 분명 있죠. 대어를 낚는 날도 있구요.
이 방향으로 즐길거리 노선을 잡으셔야 하는 게임입니다.

모쪼록 입문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대격변 시즌 기념 석유 글 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