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4-0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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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3 -1987년, 한국 바둑 역사에 길이 남을 한 해가 시작됐다.
당시 11세였던 김진성은 입단 2년 차의 소년이었지만, 그의 기풍은 이미 성인 기사 못지않았다. 대담한 수읽기, 정석을 무시한 창의적인 전투, 그 속엔 “배운 바둑”이 아니라 “태어난 바둑”이 있었다. 그해 초, 조훈현 사범이 참가한 국내 초청기전에서 김진성은 뜻밖의 본선 진출을 이뤄냈고, 결국 8강전에서 자신의 스승과 마주하게 된다. 기자들은 긴장했고, 조훈현은 웃으며 말했다. “진성이가 이긴다면… 기쁜 일이지. 나도 이길 준비는 하고 있네.” 그러나 그날, 바둑판 위에서 웃은 건 제자였다. 김진성은 사범의 수법을 정면으로 받아치며, 중반에 대마를 끊어내는 승부수를 던졌고, 흔들림 없이 종반까지 몰고 갔다. 126수, 백 불계승—김진성. 그 순간, 한국 바둑계는 충격에 휩싸였다. "조훈현, 제자에게 패하다." 그보다 더 놀라운 소식은 불과 한 달 뒤 터졌다. 이번엔 이창호였다. 같은 대회, 다른 조편성. 이창호는 그 특유의 철벽 같은 수읽기로 조훈현을 집요하게 몰아붙였고, 집 차이로 승리를 따냈다. 두 제자에게 연달아 패배한 스승은 담담히 말했다. “이제 나는 물러설 때가 온 것 같다. 진성이와 창호… 너희 둘이 앞으로의 바둑을 책임져야 한다.” 1987년은 그렇게, 스승의 시대가 끝나고, 두 소년 제자의 시대가 동시에 열린 해였다. 그리고 모두가 알았다. 앞으로의 수 년, 아니 수십 년— 한국 바둑은 김진성과 이창호, 두 별이 나란히 빛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김진성, 12세. 제1회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그 전설의 무대에서, 그는 마치 동화처럼 우승을 일궈냈다. 중국의 창하오,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 대만의 린하이펑 등 당대의 초거물들을 차례로 꺾은 김진성의 바둑은 "신동"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다. 그의 수는 때론 무모할 정도로 날카로웠지만, 그 안엔 세 번의 수읽기와 여섯 번의 함정이 숨어 있었다. 결승전에서 그는 중국의 마샤오춘 9단을 상대로 중앙 대마를 가르며 불계승을 거뒀다. “이 아이는, 앞으로 100년의 바둑을 앞당긴 존재다.” —일본 NHK 해설자 하지만 김진성의 눈빛은, 트로피를 들고 있는 그 순간조차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마음속엔, 이미 다음 승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창호와의 대결. 한국기원 최연소 결승전, ‘세계 챔피언’ 김진성과 ‘철벽의 계산자’ 이창호가 다음날 국내기전 결승에서 맞붙게 된 것이다. 기자들이 물었다. “오늘 우승 소감은?” 김진성은 조용히 말했다. “내일 이창호 형과 대국이 있습니다. 그 바둑이 끝나고 말씀드릴게요.” 그날 밤, 조훈현은 홀로 두 제자의 기보를 펴 놓고 중얼거렸다.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이 둘은 그 정점에서 반드시 부딪히게 돼 있지.” 그리고 다음 날— 1988년 10월 3일, ‘12세의 세계 챔피언’과 ‘11세의 냉정한 추격자’가 서울 한국기원 본관 대국실에서 마주 앉는다. 세상은 숨을 죽였고, 기보는 천천히, 그러나 숙명처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완전히 깨뜨렸다. 1988년 10월 3일. 한국기원 본관 대국실. ‘신산(神算)’ 이창호 vs ‘전신(戰神)’ 김진성. 12세와 11세, 한국 바둑 역사상 가장 젊은 결승전이었지만, 그 긴장감은 그 어떤 성인 기사들의 대국보다도 팽팽했다. 초반은 예상대로 흘렀다. 김진성은 치고 나갔다. 속기처럼 빠른 수, 날카롭게 찌르고 파고드는 공격. 해설자들은 말했다. “저건… 김인 선생 이후 저렇게 공격적인 바둑은 처음 보는군요.” 반면 이창호는 느렸다. 돌 하나하나에 몇 분씩, 길게는 십 분 넘게 고민했다. 그 모습에 일부 관중은 지루해했고, 일부는 긴장했다. “계산 중이다. 아직 이창호의 수는 안 나왔다.” 그러나 중반. 김진성의 돌들이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이창호는 하나씩 ‘숨겨진 약점’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기보로는 멀쩡해 보이던 진성의 포석이, 마치 퍼즐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돌 하나가 끊겼고, 그 여파로 우상귀 전체가 잡혔다. “아… 저건…” 해설자 조민수 6단은 말을 잃었다. “이건, 인간이 본 수가 아닌데요…?” 그리고 238수. 흑 불계승—이창호. 그 순간, 대국장을 가득 메운 관중석은 완전히 침묵했다. 누구도 김진성이 질 거라 예상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 챔피언이었고, 그 누구보다 공격적이며 빠른 천재였다. 그러나 이창호는 그 속도마저 계산에 넣고, 그 모든 공격의 빈틈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이창호는 ‘신산’이라는 별명을 공식적으로 얻었고, 김진성은 ‘전신’이란 이름과 함께 "오직 이창호만이 꺾을 수 있는 천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게 됐다. 두 소년은 한국 바둑의 양날개가 되었고, 그들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김진성은 대국 직후 돌을 천천히 덮개 위에 내려놓았다. 관중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표정을 지켜봤지만, 그 소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조훈현의 자택.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김진성은 식사 자리에도 앉지 않았고, 자신의 방 문을 닫고 말없이 기보만 들여다봤다. 잠시 후, 조훈현이 문을 두드렸다. “진성아. 오늘은… 잘 싸웠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진성은 책상을 쾅 내려치며 벌떡 일어났다. “잘 싸웠다고요? 졌잖아요. 졌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하세요?!” 조훈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진성이 이 대국에 얼마나 많은 자존심과 미래를 걸고 있었는지를. “바둑은, 지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걸 알아야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어.” 그러나 진성은 눈을 부릅떴다. “창호 형한테만 그러지 마세요. 전 언제나 ‘그다음’이었잖아요. 전 오늘 이긴다고 생각했어요. 세계 챔피언인데, 전 이길 줄 알았다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고, 진성은 작게 중얼거렸다. “…전 이제, 사범님 제자 안 할래요.” 그 말은 칼처럼 조훈현의 가슴에 꽂혔다. 하지만 그는 말리지 않았다. 그 다음날 새벽, 김진성은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조훈현의 집을 떠났다. 한국기원에도 알리지 않고, 지도 기사도 두지 않은 채. 세상은 놀랐다. “세계 챔피언, 바둑계를 떠나나?” “조훈현의 수제자 탈퇴… 진성, 무슨 일인가.” 그러나 소문과 달리, 진성은 바둑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홀로 기보를 외우고, 전국 각지를 떠돌며 무명의 기사들과 실전 대국을 쌓기 시작했다. 그의 수는 점점 더 거칠어졌고, 더 깊어졌으며, 무엇보다—이창호만을 이기기 위해 변해갔다. 그리고 2년 후, 1990년. 한 세계대회 예선전에서, 한 남자가 복귀했다. 이름: 김진성. 소속: 무소속. 직함: 없음. 이명: 전신(戰神) 그의 눈빛은, 조용히 복수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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