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레이크가 당신에게 무엇을 요구한 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간곡하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혹은 당신에게 무엇이 되라고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변화될 것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까?"

 다레니안은 입을 딱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레인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한 번도 없었겠지요.  우리들이 보통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종의 파괴입니다. 상대에 대한 적극적 파괴행위지요.  그 점에선 당신의 말이맞습니다. 우린 불길일지도 몰라요."

 "파괴라고?"

 "그래요. 상대를 원래의 모습으로 있게 만들지를 못하지요. 어떻게든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하려 애씁니다. 상대가 스스로의 즐거움, 스스로의 기쁨을 누리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있음으로써 즐겁고, 나와 함께 함으로써 기쁘기를 바랍니다. 상대가 알고있는 자신만의 즐거움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이 점에선 사랑과 증오는 거의 같아요. 어쨌든, 상대를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니까요."

 "난, 난 네 말을…"

 제레인트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랑이 뭔지 아십니까?"

 "뭐?"

 제레인트는 엄숙하게 말했다.

 "짝사랑이지요."

 윽.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가누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제레인트는 여전히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뭔지 아십니까?"

 "난, 난…"

 "상사병이올시다."

 도저히 못참겠다. 난 맹렬하게 입을 틀어막으며 몸을 돌렸다. 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찔끔거리는 동안에도 제레인트는 계속 웃지도 않은 채 말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짝사랑과 상사병은  상대를 변화시키지 못하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슬프고 아프지요. 참 글러먹은 문제입니다.  짝사랑을 하면 그냥 그 사랑을 소중히 여기면 될 문제인데 말입니다. 상대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에  꼭 그것 때문에 슬퍼하고 아파해야 된단 말입니다. 상대도 날 봐주었으면, 날 생각해주었으면, 날 사랑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고, 그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고장이 나버리지요. 고약하다면 고약한 것이고,  동정하려고 들면 정말 동정받을 일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드래곤 라자, 대마법사의 만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