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씨왕후 말인데
이게 의상고증 논란이 있는 사극이던데
의상이 중국풍 같다고 말임
근데 그당시 중국은 알고 보니 후한시대 였었고
위.촉.오로 셋으로 갈려서 싸우고 있었던
그야말로 삼국지 시대 였었슴
우씨왕후가 형사취수혼으로 결혼을 한 산상왕의 기록이 엉뚱하게도 진수의 정사삼국지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슴
거기에는 그의 아들인 동천왕도 같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게 다름아닌 관구검과 관련된거 였기 때문
관구검은 동천왕 시절 242년 위나라의 서연을
선재공격을 했었고 그로 인해 쌍방간의 교전이
벌어지게 됨
관구검은 가을쯤에 10월달에 군사1만을
동원해서 동천왕과 싸우기 위해 출전을 했으나
비류수전투에서 군사 3천을 잃고 패퇴를 했었고
그후에 양방에서 한번 더 싸웠으나 또 3천을 잃고
패퇴를 했었다고 함
이때 동천왕이 전투에 투입시킨 병력이 보병만
2만이나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쪽수로
밀어붙인셈
해서 동천왕은 관구검의 목숨은 내손안에 있는거나 다름이 없다고 방심을 하게 됨
그리고 막타를 치기 위해 기병들을 동원해서
관구검의 남은병력들을 모조리 쓸어버릴려고
했었는데 위나라병사들이 결사항전을 결심하고
방진을 짜서 반격을 시작함
이 전투에서 고구려군은 1만8천명이 전사를 했었고동천왕은 동옥저로 도망을 갔다는것이
진수삼국지에 실려있는 얘기 라고 함
이얘기를 지끄려 보는것은 우씨왕후 시즌2에
왠지 비류수전투가 나올꺼 같아서 임

그리고 의상말인데 그 신삼국지나 중드사마의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우씨왕후에 나오는 의상들이랑 비슷해 보여도 다름
황궁에서 신하들이 입는 옷만 봐도 전부 관복을
통일시킨 반면 고구려 쪽은 오부제로 인해
관복을 안입고 그냥 각 가문을 뜻하는 의상을
입고 나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