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기 sf 무협의 신체개조 복수극

비록 실력은 삼류지만 

인공의체 따위에 의지하지 않고서도 그정도에 다다랐다는 점을 큰 자랑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주인공.

주인공은 도심지 외곽에 작은 VR 수련관을 차린 뒤, 여동생과 함께 소소하지만 행복한 삶을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날, 종남 코퍼레이션에서 나왔다는 무인 3명이 수련관을 찾아온다. 그들은 주인공과 여동생이 힘겹게 차려놓은 VR기계들을 부수며 갑자기 행패를 부린다. 

주인공은 그들을 막아서며 대체 왜 이러는 것인지를 묻는다.
무인들 중 두 눈 모두를 의안으로 교체한 사내가 대답한다.

'이곳에서 종남의 무공을 불법 다운로드했다는 기록이 나타났다.'

주인공은 그럴 리 없다며 항변하지만 사내는 의안의 조리개를 끼릭거리며 가게 안을 둘러본다. 사내의 시선이 주인공의 여동생으로 향했다.  단번에 신체 스캔을 끝낸 사내가 말한다.

‘저 년이군.’

의안의 사내가 손짓하자 나머지 두 명의 무인이 여동생에게 향했다.

주인공은 그들의 앞을 막아서며 주먹을 날렸지만, 최신형 의수에서 뿜어져나오는 폭발적인 위력의 ‘22세기식 330v 낙뢰신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과 주인공의 실력 사이에는 ‘JN 군림천하 타워’만큼의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전류의 저릿함에 주인공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의안의 사내가 여동생의 단전을 스캔하는 것을 눈뜨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사내의 손끝이 촉수처럼 늘어나 꿈틀거렸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주인공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여동생이 비급 불법 다운로드라니, 그러한 중범죄를 저지르다니.

아닐 것이다. 분명 원격 스캔에서 오류가 난 것일 것이다.

내 여동생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곧이어 들린 사내의 말에 주인공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확실하군. 이 년의 단전 안에 있는 것은 우리 종남의 것이야.’

주인공은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내의 손 끝에 홀로그램으로 띄워진 여동생의 무공 사용 로그에는 분명 ‘천하삼십육검’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충격적인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한 사내가 여동생의 다리를 훑어보더니 말했다. 

‘하, 의족? 네깟 년이 무슨 무공을 한다고 의족까지나 단단 말이냐? 보아하니 불법 시술 같은데 참으로 겁도 없는 년이로군.’

의족?
여동생이 의족이라니? 

주인공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여동생은 고개를 숙였다. 여동생이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 주인공은 간절히 보길 원했지만 결국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주인공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 


종남의 무인들은 가게에 남아 있는 VR 수련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부순 뒤에야 돌아갔다.  

혹시라도 종남의 무공이 기록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였다. 


여동생은 바이오웨어가 심어진 고독을 삼킨 채 그들에게 끌려갔다. 

모든 무공 기록을 삭제당하고, 어쩌면 단전마저도 파괴당하고, 또 어쩌면 뇌 스캔을 통해 관련 기억을 모두 소각당할 지도 모른다. 

관련되지 않은 기억이 무엇일지 판단하는 것은 종남의 몫이다.
어쩌면 여동생은 주인공조차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 


끌려나가기 전 여동생은 주인공에게 딱 한마디만을 남겼다. 
미안해, 하며 그녀는 아프게 웃었다. 말은 그것뿐이었지만, 주인공은 그 뒤에 그녀가 하지 않은 말이 무엇인지 모를 만큼의 바보는 아니다.

아마 그 뒤에 하지 않은 말이란 이것일 것이다. 

‘잘해보려 그랬는데 잘 안 됐네.’

여동생이 처음으로 계란후라이를 하겠다며 계란 5개를 모두 태워먹었을 때도 그랬다. 

vr로 많이 연습해봤으니 걱정말라며 처음으로 50cc짜리 곤륜표 윤룡스쿠터를 타고 사고를 냈을 때도 그랬다. 

가게 간판에 네온사인을 더 달겠다며 엉뚱한 선을 꽂았다가 간판 회로를 태워먹었을 때도 그랬다. 

주인공은 가게 내부의 cctv를 뒤졌고, 여동생의 개방닷컴 검색기록을 찾았다. 

하오문에 찾아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여동생의 비밀이 무엇인지 그녀의 지난 자취를 추적해달라며 가진 모든 자료를 넘겼다.  

그리고 여동생이 삭제했었던 메일 기록을 발견했다. 

여동생은 의체도 없이 무공 도장을 운영하는 오빠가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게 다 자신을 기르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무렵 우연히 종남의 무공을 발견했고, 이것이라면 분명 오빠의 무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오빠라면 절대 이것을 쓰지 않을 테니 우선은 내가 익혀두고 언젠가 좋은 날을 잡아 알려준다면, 종남의 무공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디딤발을 의족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러는 한이 있더라도 결국 언젠가 끝에 가서는, 다 괜찮아지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또 잘 해보려고 그랬던 모양이다.


그때, 주인공에게 연락이 닿았다. 하오문이었다. 하오문의 사람은 말을 주저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종남 무공 말인데... 그거 아무래도 종남쪽에서 의도적으로 풀었던 것 같은데?’

그의 말은 이랬다. 

새로운 무공을 창안하려는 종남측에서 마땅한 실험체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일부러 무공을 퍼트린 뒤 그 불법 다운로더들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소문. 

그 새로운 무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 종남 코퍼레이션의 회장인 진산월의 야망이 야망인 만큼 대단히 패도적이고 강맹한 무공일 것이라 추측된다고.

그곳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새로운 무공의 피실험체, 혹은 끝없는 초식의 반복을 통한 데이터 추출의 용도로써 사용되다 폐기된다고.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라며 그는 전화를 끊었다. 

*** 

주인공은 가게를 정리하고 부서진 vr기계들의 부품을 모았다. 
모든 부품을 챙겨 팔아치운 뒤 그는 불법 의체 시술점을 찾았다. 


순수한 신체로 무공을 수련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런 것은 이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이제 주인공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더 강한 힘일 뿐이다. 딱 여동생을 구할 만큼의 힘.

‘제 몸이 어떻게 되든 괜찮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로, 가능한 강한 걸 달아주십시오.’

멀쩡한 생 팔다리를 자르는 고통은 과연 끔찍했다. 전자 아편에 절어버린 듯한 노인은 몽혼약과 미혼약조차도 헷갈리고 있었다. 

하지만 괜찮다.

여동생이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남몰래 다리를 잘랐던 고통에 비한다면 이정도는 벌레에 물리는 것보다도 아프지 않다. 

*** 

인공 피부조차도 씌우지 않은 의체를 단 사내가 있었다. 그는 양팔의 크기가 서로 달랐고, 그의 오른 무릎에서는 제발 기름을 발라달라며 관절이 비명을 질렀다. 

사내는 오랜만인 듯이 한 폐가게로 들어와 불을 켰다. 

온통 난장판인 가운데, vr 수련기 딱 한 대만이 온전히 서있었다. 사내는 품에서 usb 하나를 꺼내 그곳에 꽂았다. 

협박, 추격, 폭행, 납치, 살인.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면서 간신히 찾아낸 usb였다.

‘대(對) 종남 전용 시뮬레이션’

사내는 무당표 벽곡에너지바를 한웅큼 집어 삼키며 그 안으로 들어섰다. 

수련기 내부의 AI가 물었다. 

 - 상대 인원은 몇 명으로 하시겠습니까?

그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종남은 언제나 자신들의 세를 과시했다. 상대를 알아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2만 7021명’

 - 2만 7021명. 입력되었습니다. 몇 회 반복하시겠습니까?

사내는 답했다. 


 - 이길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