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경험은 대부분 체감형에 맞춰져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재접속을 유도하는 게임’과는 거리가 있다. 이는 대중이 접하는 VR이 일회성 체험에 그쳐 있다는 말이다. 가정에 자리잡은 최고급 PC와 바이브, 오큘러스와 같은 HMD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비싼 기기를 사놓고도 진득하게 즐길만한 게임의 부재로 코어 게이머들은 불만이 가득하다.

오큘러스의 제이슨 루빈(Jason Rubin)은 오큘러스 스토어에 올라가 있는 500여 개의 게임이 있으며 이 중 1M 달러(한화 약 11억 5천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린 게임은 단 4개에 불과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해서 좀 잘나가는 모바일 게임의 일 매출도 못 벌고 있는 상황이다. 콘텐츠로써의 VR 게임이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배의 오범수 대표는 진득하게 즐길만한 JRPG와 같은 VR 게임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래서 ‘로스트케이브’를 만들었다. 로스트케이브는 3인칭 어드벤처 VR 게임으로 보물을 찾아 동굴에 들어간 2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플레이어는 두 명의 주인공을 각각 움직여 탐험하거나 퍼즐을 풀면서 진행해 나가야한다.

▲ 두 캐릭터를 통해 개발자가 원하는 '것'들을 보게된다.

게임 자체는 기존의 VR 게임과 비교해서 특출난 것은 없다. 동굴 특유의 분위기 그리고 3인칭 시점과 1인칭 시점을 오가는 시스템이 조금 독특할 뿐이다.

로스트케이브의 진짜 매력은 높은 몰입도에 있다. VR 게임이니까 당연히 몰입도가 높지 않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대체로 많은 VR 게임들이 실패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VR 콘텐츠가 처음 나왔을 때 ‘멀미’이야기가 나왔던 것이다. 사실 멀미라는 건 게임에 얼마나 몰입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배제되기도 한다. 지금 와서는 초창기에 기피 대상이었던 자유 이동이 선호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몰입은 오범수 대표의 목표인 ‘진득하게 즐기는 게임’을 구현하기 위한 선제조건이다.

요즘은 장르 구분이 모호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어드벤처만의 전유물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어드벤처 게임을 즐기는 과정을 소설에 비유하고는 했다. RPG가 '내가 만드는 이야기'라면 어드벤처는 개발자가 짜놓은 치밀한 장치를 따라가며 준비된 결말을 즐기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 VR을 통해 바라보면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캐릭터 역시 마찬가지

로스트케이브는 어드벤처의 문법에 충실하다. 체험에서 해방된 VR은 동선과 경험을 완벽히 통제하여 ‘완성된 이야기’에 집중하게 한다. 사용자는 횃불을 켜는 행위와 트리거를 통한 1인칭 시점의 과제 해결을 통해 제작자가 의도한 경험을 한다.

‘로스트케이브’에서 다양한 조작을 경험하게 하는데 이는 단순한 클릭이 아니라, 손목을 비튼다든지, 사다리를 잡고 올라간다든지, 레버를 당긴다든지의 경험을 ‘직접’하게 만든다. 밖에서 보기에는 허우적거리는 것 뿐이지만, 게임 속에서는 경험이된다.

VR계의 ‘매니악 맨션’이랄까. 루카스 아츠의 매니악 맨션은 어드벤처 게임 최초로 마우스를 사용해서 키워드 중심이었던 어드벤처 게임을 포인트 앤 클릭으로 바꿔놨다. 눈으로만 보던 게임 속 장치를 직접 조작할 수 있게 했다. 당연히 몰입도도 올랐다.

로스트케이브는 VR 전용 컨트롤러를 사용한 조작으로 몰입감과 편의성을 모두 잡았다. 만약 게임패드로 작동했다면 위와 같은 조작은 단순한 ‘클릭’에 그쳤을 것이다. 캐릭터가 점프해야 하는 구간에서 컨트롤러 버튼이 아닌 진짜 점프를 하는 시연객들이 있었다는 점은 몰입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려주는 부분이다.

조작에 이은 반응은 또 한 번의 몰입을 이끌어낸다. 커다란 바위가 하늘로 치솟거나, 퍼즐 요소를 클리어했을 때 나오는 효과 등은 ‘뒤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궁금증 자극한다.

이는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나오는 정체불명의 장소와 창 밖을 보는 여자 캐릭터를 보았기 때문에 생긴다. '저 여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게임의 끝에서 이유를 말해줄까?'라는 궁금증이 게임 내 요소로 이어지면서 플레이어를 게임에 잡아둔다.

▲ 작년에는 패드였지만, 올해는 전용 컨트롤러로 변경했다.

물론, 1인 개발이라 AAA급 게임 같은 화려함은 없다. AAA급 게임처럼 칼 같이 떨어지는 이야기 전달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모험보다는 퍼즐의 연속에 가깝다. 다만, 국내 VR 게임 중에서 모험 감성을 전달하려고 노력한 게임이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확실히 '로스트케이브'는 개발자의 목표에 착실히 다가가고 있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머쉬나리움이나 림보는 인디 개발사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저니는 콘솔에서도 인디 감성이 충분히 대중적으로 호응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줬다. 더 새롭고, 기발한 스토리와 퍼즐을 발굴하려는 인디 개발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화려하고 관록 있는 기존 플랫폼 게임과 ‘로스트케이브’를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VR 게임 중에서는 가장 끝을 궁금하게 만드는 게임 아닐까 싶다.